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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28권, 선조 33년 8월 19일 기축 3번째기사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인산에 행장과 좌장을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김시헌(金時獻)이 예조의 말로써 아뢰기를,

"국장 도감(國葬都監)의 계사에 의하여 행장(行幛)·좌장(坐幛)의 일을 여러 대신과 의논하였더니, 모두가 ‘고찰한 만한 등록이 없으니 예관 스스로가 참작해서 더할 것은 더하고 줄일 것은 줄여 옛 제도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대신들의 뜻은 이렇게 단정을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덕형이 의논드린 ‘용유(龍帷)’·‘삼지(三池)’와 ‘순이설주(輴而設幬)’의 설을 고찰해보니 ‘유(帷)’는 유거(柳車)가에 둘러치는 휘장이고 ‘지(池)’는 대로 만든 농(籠)에다가 푸는 색의 베를 입혀서 유거 위 가장자리에 거는 것으로 처마끝의 물받이를 상징하는 것이니, 이는 오로지 대여(大轝)위에 장식하는 제도입니다. ‘주(幬)’라고 한 것도 순여(輴轝) 위에 장식하는 것으로 휘장 좌우의 행장·좌장에 관계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례의(五禮儀)》를 참고해보니, 혼백여(魂魄轝)와 대여는 모두 행장·좌장이 있는데, 행장은 각각 네 벌[具]이고 좌장은 각각 두 벌로서 모두 혼백여와 대여의 좌우에 나누어 행장이 먼저 가고 좌장은 다음에 갔습니다. 대개 혼백에는 여(轝)와 거(車)가 따로 있는데, 빈전(殯殿)에서 외문(外門) 밖까지는 여를 쓰고 외문 밖에서 인산(因山)의 영악전(靈幄殿) 유문(帷門) 밖까지는 거를 쓰고 유문 안에서는 다시 여를 씁니다. 그리고 주정처(晝停處)에 이르러서는 유문 안에서 또 다시 여를 쓰는데 대여도 이와 같습니다. 빈전에서 외문 밖까지는 순여를 쓰고 외문 밖에서 인산의 영악전까지는 대여를 쓰고 유문 안에서는 다시 순여를 쓰며, 혼백과 순여를 받들고 갈 때는 행장으로 휘장을 치고 혼백거(魂魄車)와 대여는 앞뒤에 모두 끄는 줄이 있으며 좌우에만 휘장을 치기 때문에 좌장은 두 벌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행장은 혼백여와 순여를 봉행할 때에 쓰고 좌장은 혼백거(魂魄車)와 대여를 봉행할 때 쓰는 것입니다. 다만 《오례의》에 ‘순여에서 대여로 올릴 때와 대여에서 순여로 올릴 때’라고 한 곳의 소주(小註)에 모두 ‘내시(內侍)가 삽(翣)과 행장·좌장으로 한다.’라고 하였으나, 혼백여에서 거로 올릴 때와 거에서 여를 올릴 때에는 그러한 주가 없습니다. 그러니 도감이 의심을 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다만 혼백거를 여에 올릴 적에는 행장·좌장을 쓰지 않는데, 재궁(梓宮)을 순여에 올리고 여(轝)에 올릴 적에는 무슨 이유로 혼백여의 좌우에다가 모두 행장·좌장을 설치하겠습니까. 이는 그 글이 빠졌다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지금은 혼백거를 쓰지 않고 혼백여만을 쓰고 있으니, 혼백에는 행장만 쓰는 것입니다. 혼백여·대여·순여에 모두 채색 물품을 쓰고 있으니, 아마도 행장·좌장에만 흰 것을 쓰는 것은 합당치 않은 듯하고 길례(吉禮)를 따라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닥친 일을 단순하게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로 끝내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어 감히 이렇게 아울러 여쭙니다."

하니, 본조가 조처하라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8책 128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114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金時獻, 以禮曹言, 啓曰: "因國葬都監啓辭, 行幢坐幢事, 議于諸大臣, 則皆以爲旣無謄錄可考, 禮官。 自當斟酌增損, 不失古制云云。 大臣之意, 如是難斷, 就李德馨所議, 龍帷三池, 及輴而設幬之說, 考之, 則帷卽柳車邊幢, 池卽織竹爲籠, 衣以靑布, 掛於柳〔車〕 上, 荒邊爪端, 象宮室取霤。 此則專是大轝上裝之制。 其云幬者, 亦是輴上之飾, 俱不係於幢, 左右之行幢坐幢明矣。 取《五禮儀》參證, 則魂帛轝及大轝, 俱有行坐幢, 而行各四具, 坐各二具, 皆分左右於魂帛轝及大轝, 而行先坐次。 蓋魂帛有轝與車, 自殯殿至外門外, 則用轝, 自外門外, 至因山靈幄殿帷門外, 則用車, 帷門內, 還用轝, 凡至晝停處帷門內, 亦用轝。 大轝亦類此, 自殯殿至外門外, 則用輴轝, 自外門外, 至因山靈幄殿, 則用大轝, 帷門內, 還用輴轝。 魂帛及輴轝奉行時, 則用行幢幢之, 魂帛車、大轝, 則前後俱有引索, 只左右設幢, 故坐幢, 只二具。 以此觀之, 則行幢, 用於魂帛轝及輴轝奉行時, 左幢用於魂帛車及大轝奉行時。 但《五禮儀》內, 從輴轝陞大轝, 及從大轝陞輴時, 小註, 則俱云: ‘內侍, 以翣及行幢坐幢之’ 云, 而從魂帛陞車從車, 陞轝時, 則獨無此註。 都監之致疑宜當。 但魂帛陞轝, 獨不用行幢坐幢, 如榟宮之陞輴陞轝, 則何故魂帛轝之左右, 幷設行幢坐幛也? 此則其爲闕文無疑矣。 但今則不用魂帛車, 只用魂帛轝, 則於魂帛, 只用行幢矣。 魂帛轝、大轝、輴轝、俱用彩物, 似不當。 獨於行坐幢用白, 而似當用吉。 及時之事, 不可徒以難詳, 而終無結末, 敢此幷稟。" 傳曰: "本曹處之。"


  • 【태백산사고본】 78책 128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114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