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이항복 등과 대행 왕비의 장지 선정 문제로 논의하다
영의정 이항복, 좌의정 이헌국, 우의정 김명원, 해평 부원군 윤근수, 이조 판서 한응인, 【사람됨이 유순하여 조금도 강경한 풍도가 없었다. 】 예조 판서 이호민, 【자신이 종백(宗伯)으로 있으면서도 예전(禮典)에 어두워 모든 상제(喪制)를 의론함에 있어 하나도 건명(建明)한 것이 없었다. 】 병조 판서 신잡(申磼), 【후중하나 문기(文氣)가 적었다. 】 지중추부사 윤자신, 호조 판서 이정구(李廷龜), 【약간의 문명(文名)이 있었는데 엽등하여 정경(正卿)에 올랐으므로 갑자기 승진했다는 비평이 있었다. 】 공조 판서 이충원(李忠元), 한성부 좌윤 성영(成泳), 병조 참판 한준겸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하교를 보니 ‘이미 「백호는 지금 말하는 호가 아니다. 」하고, 또 「내백호이니 더욱 쓸 수 없다. 」고 하였는데 이는 무슨 말인가?’ 하셨는데, 이 한 조항을 술관에게 물어 그가 말한 것을 별도로 적어서 아룁니다. 여염 사람들이 백호에 묘를 쓰는 것은 사족(士族)들 간에 같은 산에다가 회장(會葬)하여 수호의 계책을 삼는 것이지, 같은 산 안에 각각 정혈(正穴)이 있어서 거기다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초와 전조에서 수파(水破)를 따지지 않았다는 것은 전부터 유전되는 말이기 때문에 술관 등이 들은 것을 써서 아뢴 것이며, 만월대가 파군 수파라는 사실은 다른 술관들은 모두 알지 못하고 유독 이의신만이 말한 것입니다. 이른바 수파설은 호순신(胡舜申)의 설에서 나왔기 때문에 술관등이 서계(書啓)한 것이며, 이십사산의 설은 천간(天干)·지지(地支) 등으로 술관이 또한 아울러 서계한 것입니다.
또 신평(新坪)의 두 혈 모두 쌍분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나 다른 흙으로 보충하면 또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우편의 장혈(長穴)은 술관들이 모두 쓸 만하다고 하는데 오직 이의신만이 정통(正統)의 맥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쓸 수 없다고 합니다. 신 헌국(憲國)의 생각에는 국용(國用)에 합당할 것 같은데, 다만 주산(主山)의 자수(子水)와 임화(壬火)에 대해 술관 등이 각각 소견을 고집하여 일치되지 않으니, 반드시 먼저 자(子)와 임(壬)을 분별한 연후에야 이 곳이 쓸 만한가의 여부를 의논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을해년에 강릉(康陵)의 주산에 대해 전후의 논의가 각각 다르므로 그때 총호사와 대신 그리고 육경(六卿)들까지 함께 가서 살펴 확정한 일이 있고, 장경 왕후(章敬王后) 때 또한 다른 대신과 함께 간 예가 있습니다. 이 일은 관계가 중대한 것이라 이와 같이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대행 왕비께서 승하하신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아직 산릉을 정하지 못함으로써 장례에 대한 모든 일을 하나도 조처하지 못하고 있으니, 신들은 극히 민망스럽습니다. 다른 대신과 함께 가서 속히 결정하게 하소서.
지금 계하(啓下)하신 것을 보건대, 섭정국이 논한 고양(高陽)의 구지도(仇知道)와 안산(安山)의 소족 고개(所足古介) 두 곳의 산세는 자못 우리 나라에서 쓰는 격국(格局)과 같지 않으니, 비록 극히 좋다 하더라도 경솔히 써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또 전일에 ‘처음 살피고 도형(圖形)한 곳을 비록 다 보게 할 수는 없으나, 그중 모모처는 가서 보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논이 우리 나라 술관과 같지 않으면 필시 난처하고 정하기 어려운 걱정이 있을 것이니, 신들이 어찌하면 좋을지 알 수 없습니다. 감히 여쭙니다."
하니, 답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대개 좌측의 단혈(短穴)은 수파(水破)의 길흉을 정하지 않았는데 설사 그 수파가 파군(破軍)이 된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쓸 수 있으며, 우측의 장혈(長穴)은 수파가 길하다 하고 술서(術書)에 특별히 백호(白虎)에 묘를 쓰지 못한다는 말이 없을 뿐더러 여염 사람들이 어찌 백호에 묘를 쓰겠는가. 훗날 이 곳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본의이니 이 곡절을 회계(回啓)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만월대(滿月臺)에 범철(泛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지리에 밝은 관원 및 술관(術官)을 내려 보내 범철하여 보게 하는 것이 좋겠다. 다시 간심(看審)할 때에는 두
혈에 모두 쌍분을 만들 수 있을지의 여부를 자세히 살펴보고 오게 하라. 중원 사람이 필시 잘 보기는 할 것이나 다만 근거하여 믿을 만한 것이 없다. 그렇다면 그 말을 준행하기는 어렵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7책 127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102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과학-지학(地學)
○領議政李恒福、左議政李憲國、右議政金命元、海平府院君 尹根壽、吏曹判書韓應寅、 【爲人柔愞, 少無骨鯁之風。】 禮曹判書李好閔、 【身居宗伯懜於禮典, 凡議喪制, 無所建明。】 兵曹判書申磼、 【厚重少文。】 知中樞府事尹自新、戶曹判書李廷龜、 【粗有文名,躐躋正卿,時有驟陞之譏。】 工曹判書李忠元、漢城府左尹成泳、兵曹參判韓浚謙啓曰: "臣等伏見下敎, 旣曰白虎, 非今所謂虎, 又曰內白虎, 尤不可用云, 此何謂也? 此一條問于術官, 以其所言, 別錄以啓。" 閭閻之人, 葬用白虎者, 乃士族間會葬一山, 以爲守護之計也, 非謂一山之內, 各有正穴而用之也。 國初及前朝, 不計水破云者, 自來流傳之言, 故術官等, 以所聞書啓矣。 滿月臺破軍云者, 術官等皆未聞知, 獨李懿信云云。 所謂水破之說, 則出於胡舜申之書, 故術官有書啓, 二十四山之說, 則天干地支等事, 術官亦幷書啓。 且新坪兩穴, 皆不足於雙墳, 然補土則亦可爲之云。 右邊長穴, 則術官皆以爲可用, 而唯李懿信以爲, 脈非正統, 決不可用云云。 臣憲國之意, 似合國用, 而但主山之子水與壬火, 術官等各守所見, 不得歸一。 必先辨子壬, 然後此地可用與否, 方可議之矣。 前者乙亥年, 康陵主山, 前後各異, 故其時總護使, 與諸大臣至於六卿, 偕往審定。 章敬王后時, 亦有他大臣同往之例。 此事所係重大, 不得不如是矣。 今者大行王妃, 昇遐已久, 尙未定山, 凡干襄事, 一未措處, 臣等極爲痛憫。 請與他大臣, 同往速定。
(○) 今見啓下, 葉靖國所論, 高陽 仇知道、安山 所足古介兩處形勢, 頗與我國所用, 格局不同。 雖曰極好, 似不可輕易用之。 且前日, 以初審圖形之處, 雖不可盡令見之, 其中某某處, 則可令往見事, 傳敎矣。 若其所論, 與我國術官不同, 則必有難處難定之患。 臣等未知何以爲之? 敢稟。" 答曰: "依啓。 大槪左短穴, 水破吉凶未定。 設使其水破, 定爲破軍, 今次則可以用之。 右長穴, 則其水破吉云, 術書別無不可葬於白虎之言, 則閭閻之人, 豈葬於白虎? 後日此處, 可以用之。 此予之本意也。 此曲折回啓。" 仍傳曰: "滿月臺泛鐵不難事, 某地理詳知官員及術官下送, 泛鐵而來, 可也。 更爲看審時, 兩穴皆作雙墳與否, 詳見而來。 中原人, 必爲善相, 而但無可據, 而信之之事。 然則難矣。"
- 【태백산사고본】 77책 127권 30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102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정론(政論)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과학-지학(地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