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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27권, 선조 33년 7월 17일 무오 3번째기사 1600년 명 만력(萬曆) 28년

비변사에서 전사한 첨사 구황과 토병에 대한 휼전과 오랑캐에 대한 대책을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삼가 전교를 받고 평안도함경도 병사(兵使)의 장계를 참작하여 남병사(南兵使) 이일(李鎰)과 함께 반복하여 상의한 결과, 구황(具滉)이 용맹을 믿고 경솔히 진격한 사실은 진실로 성교(聖敎)와 같습니다. 평시 북방을 제압하는 규례에 오랑캐가 건너편에 있어 그곳에서 저들끼리 싸울 경우에는 변장(邊將)이 엄히 경계하며 성을 지킬 뿐이요, 강을 건너와 우리 나라의 지경을 침범하는 경우에는 군을 정비하여 쳐서 소탕하도록 되어 있으니, 이는 변방에 유래하는 약속입니다. 지금 적병(賊兵)이 이미 운두령(雲頭領) 밑에 들어와 보을하(甫乙下)와의 거리가 10리도 채 되지 않으니, 그 형세로 보아 나아가 서로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과(衆寡)와 용겁(勇㤼)을 살펴 헤아리지 않고 경솔히 고군(孤軍)으로 대적(大敵)을 공격하다가 국위를 손상하였으니 실로 애석한 일입니다. 구황에게 추증(追贈)하고 부의 및 호상할 것과 같이 전사한 토병(土兵)들에게 휼전(恤典)을 내리고 고아를 보살피는 등 등의 일은 성상의 하교에 따라 해조 및 본도로 하여금 각별히 거행하게 하겠습니다.

노토(老土)가 공격한 번호(藩胡) 마적합(馬赤哈)은 본래 노토와 동성(同姓)입니다. 호인(胡人)들의 풍속에 동성이라 하면 매우 친밀하여 매사를 협력합니다. 유독 마적합은 성품이 자못 공순하고 이해(利害)에 대해 아는 자이므로 노토가 횡포를 부린 후로 겉으로는 은근함을 보였으나 내심으로는 실지 귀부하지 않았습니다. 노토가 하는 모든 일에 절대 동모하지 않고 그들의 소식을 즉시 우리에게 알려 옴으로써 끝내 노토에게 미움을 사 침략을 받고 서로 싸워 그 부락이 소실되고 자신이 도륙을 당하기까지 하였으니, 그 정상을 추구해 보면 극히 가련합니다. 본도로 하여금 은휼(恩恤)을 베풀고 잡물을 넉넉히 준비하여 처자와 남아 있는 유족들을 방문하여 직접 위로하고 부의를 내려 주게 함으로써 모든 오랑캐들이 이 소문을 듣고 감격하도록 하면 변방을 안정시키는 방법에 또한 크게 유익할 것입니다.

변란을 겪은 후 군정(軍政)이 해이해졌으므로 상교(上敎)에 의하여 특별히 왜성(倭城)의 형제(形制)를 잘 아는 자를 파견하여 순찰사의 진영으로 달려 보냈습니다. 도내의 성을 비록 일시에 다 개축할 수는 없겠으나, 그 중에서 더욱 방어에 긴급한 것으로 퇴락되어 수축하지 못한 곳을 우선 수축하되 왜성의 형세를 참작하여 일정한 기간 안에 공사를 마쳐 변란에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백성은 추수가 끝난 후 일일이 쇄환하며, 수령(守令)·변장(邊將)도 해조(該曹)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였습니다.

병사 이수일(李守一)이 오랫동안 남변에 있었기 때문에 노추(老酋)의 동태를 자세히 모르고 문서에 의하여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 오랑캐가 천조를 우러러 순종하여 천조로부터 직함을 받아 용호 장군(龍虎將軍)이 되었는데, 본성은 동(佟)이며 인신(印信)은 건주좌위(建州左衛)의 인(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오랑캐가 전일에 어떤 일로 인하여 1건의 문서를 평안도 변경으로 보내왔는데, 그 문자의 자획이 대개 이 글과 서로 같았습니다. 전해 들으니, 한인(漢人) 공정륙(龔正陸)이란 자가 그들에게 사로잡혀 있는데, 문자를 대강 안다고 합니다. 오랑캐들은 글을 모르므로 모든 문서가 다 이 사람 손에서 나오기 때문에 문자의 자획이 전후 일치하다고 합니다.

다만 저들이 이미 이웃과 친목한다고 하며, 그 부하를 경계하여 절대 본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마적합(馬赤哈)만을 공벌한다는 것으로서 서신을 보내 믿도록 했는데, 변장이 그들이 국경을 범하였다 하여 나아가 싸우다 실패하였습니다. 저들이 만약 우리 국경을 침범한 것을 죄스럽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트집을 잡아 말하기를 ‘우리는 옛날의 우호를 배반하지 않고 서신을 보내 믿게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불문 곡직하고 도리어 악의로 대하였다.’고 하면서 이것으로 불화를 일으키는 단서를 삼는다면 훗날의 걱정거리가 극히 우려됩니다.

대개 우리의 원기가 충실한 후에 오랑캐들을 제압하고 이웃과 우호를 다지며 대응하는 데 여유가 있는 것인데, 지금은 내외의 형세가 하나도 믿을 데가 없습니다. 원기가 쇠하였고 지체가 오히려 약하니 의당 보양하며 조섭해야 할 때에 만약 일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남과 맞선다면 이는 지혜로운 자의 섭생(攝生)하는 도가 아닐 것입니다. 노토가 이미 노추(老酋)에게 귀부했다면 노로(老虜)의 마음이 필시 우리의 한 마디 말에 따라 이미 자기에게 귀부한 무리를 잡아 보내 우리에게 신의를 보이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을 따르지 않고 도리어 전에 말한 것으로 트집을 삼아 우리에게 공갈하면 더욱 모욕만 당하게 되고 불화를 유발할 마음을 제지하지 못할 것이니, 이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마땅히 호병(胡兵)이 침범한 상황과 구황(具滉)이 죽은 사유를 대략 갖추어 하루 속히 이기빈(李箕賓)에게 이문(移文)하여 그로 하여금 미리 이 뜻을 알게 한 다음, 만포(滿浦)의 호인(胡人) 중에 혹시라도 찾아와 묻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조사(措辭)하여 답하기를 ‘지난번에 어떤 번호의 노토가 본국을 배반하고 때로 도둑질을 일삼으며 우리의 양민을 살해하므로 변장이 부하를 거느리고 나아가 대략 문죄(問罪)한 적이 있었는데, 노토는 심처(深處)로 도망쳐 들어가 어느 곳에 머물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오래지 않아 갑자기 한 떼의 군마(軍馬)가 나타나 우리 나라를 침범하므로 국경을 지키던 변장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대적하다가 끝내 호인에게 피살되었다. 본국에서는 이것이 노토의 보복 계책이라고 여기어 더욱 통분하였지만 전연 노추의 군사가 우리 나라 국경에 침범해 왔음을 알지 못하였는데, 지금 너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노추의 일이었음을 알았다. 너희 노추는 전부터 우리와 원한이 없이 항상 돈목을 유지해 왔다. 무지한 하졸들이 혹시 삼을 캐기 위해 우리의 국경을 넘어오더라도 우리 나라에서는 항상 변장을 경계하여 참살하지 못하게 하고 잘 타일러 국경에서 내보내게 할 따름이었는데, 너희들은 이러한 뜻을 생각하지 않고 무단히 군사를 일으켜 우리의 변장을 살해하였으니 전부터 돈목을 유지해 온 의리가 어디에 있는가. 설사 마호(馬胡)를 치고자 하여 왔더라도 노추로서는 의당 먼저 이 뜻을 만포의 변장에게 비밀히 고하여 본국으로 하여금 미리 이 뜻을 알게 했어야 옳았다. 그와 같이 하였다면 너희 군사가 비록 오더라도 반드시 군사를 동원해 출전하여 이와 같은 일이 있게 되지는 않았을 것인데, 너희들이 이미 그렇게 못하였으니 의리를 저버림이 크다. 오늘날 너희들의 도리에 있어서 일개의 반호(叛胡)를 불러들여 본국에 대의(大義)를 저버리는 것이 옳은가, 그대로 본국과의 우호를 다지며 반국(叛國)의 적을 끊는 것이 옳은가? 이 이치는 자명한 것이다. 노토 및 그의 아들이 너희 땅에 우거하고 있으니, 너희는 마땅히 그 부자를 붙들어 보내어 지난날 우리 변장을 함부로 죽인 죄를 사과하라. 이와 같이 하면 본국은 반드시 너의 신의를 가상히 여겨 전일의 실수를 생각지 않고 전과 같이 우호를 도타이 할 것이며 또 후한 상이 있으리라.’ 하여 그들의 뜻을 시험해야 합니다.

북도의 오랑캐에 대해서 이미 병기로 맞서 싸웠으니 다시 와서 수답(受答)할 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뜻밖에 이수일의 생각과 같이 그들이 와서 수답을 청한다면, 양쪽 군대가 서로 싸울 때에 피차 문서를 주고받은 것이 분명치 않으니, 호서(胡書)를 받았다 말하지 말고 마땅히 권사(權辭)로 답하기를 ‘만약 문서를 보낸 적이 있다면 마땅히 미리 사람을 보내 은밀히 전하였어야 너희들의 사정을 알 수 있었을 것인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국경을 침범하기 전에는 막연히 들은 바가 없었고 무단히 국경을 침범하여 우리의 변장을 살해하고 다소의 군마를 상해한 후에 「문서를 보냈으니 의당 회답이 있어야 한다. 」고 하니, 너희들의 교활한 태도가 이에 이르러 더욱 극심하다. 설사 참으로 문서를 보냈다고 한들 양군이 서로 맞서 싸우며 밀고 밀리는 상황에서 어느 사람이 전하고 어느 사람이 받았단 말인가. 지금 상고할 수 없거니와 서신 속에 무슨 곡절을 말하였는지 알 수도 없다.’ 하고, 만포가 오랑캐에게 답하려는 말과 이수일의 장계 중에 기록된 말을 참작하여 요령껏 말을 돌려 대함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이 뜻을 평안도·함경도의 감사와 병사에게 급급히 행이하고 관리를 차출해 내려 보내 사실을 알려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7책 127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99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야(野)

    ○備邊司啓曰: "伏承傳敎, 參以平安咸鏡兩道兵使狀啓, 與南兵使李鎰, 反覆詳議, 則具滉之恃勇輕進, 誠如聖敎, 而平時北方制勝規矩, 虜在越邊, 自中爭戰, 則邊將, 戒嚴城守而已, 至於越江, 犯我彊界, 則整軍勦擊, 乃是邊上流來約束。 今賊兵, 旣入雲頭嶺下, 距甫乙下, 不滿十里, 其勢不得不出與相當, 而第不察衆寡, 不能勇㤼, 輕以孤軍, 直摶大敵, 致損國威, 誠爲可惜耳。 具滉追贈給賻護喪, 及同死土兵, 恤典撫孤等事, 依上敎, 令該曹及本道, 各別擧行。 且老土所攻藩 馬赤哈者, 本與老土同姓。 胡人之俗, 名曰同姓, 則甚爲親密, 每事同心, 而獨馬赤哈, 性頗恭順, 稍知利害。 自老土橫逆之後, 外示(殷)〔慇〕 懃, 內實不附, 凡老土所爲, 絶不同謀, 自中消息, 登時進告, 故終爲老土所疾, 至於動兵相戰, 焚其部落, 身被屠戮。 原其情事, 極爲可矜。 令本道, 另加恩恤, 優備雜物, 尋問妻子族類之餘存者, 面諭給賻, 使諸, 聞而感激, 則其於綏邊之道, 亦大有益。 經變以後, 軍政廢弛, 依上敎, 別遣詳知城形制者, 馳赴巡察使營下, 道內城子, 雖不能一時改築, 其中尤甚防緊, 而頹壞不修者, 爲先修築, 參以城形勢, 刻期畢功待變, 而其他移他境者, 秋成後一一刷還, 守令邊將, 亦令該曹選擇。 兵使李守一, 久在南邊, 故老酋根脚, 不能詳知, 因其文書, 有此云云矣。 此仰順天朝, 受職爲龍虎將軍, 本姓, 其印信, 則乃是建州左衛之印云云。 此前日, 因事送一文書于平安道邊上, 其文字字畫, 大槪與此書相同。 傳聞有漢人 龔正陸者, 擄在其中, 稍解文字。 因虜中無解文之人, 凡干文書, 皆出於此人之手, 故文字字畫, 前後如一云云。 但彼旣以睦(隣)〔憐〕 爲言, 戒其下人, 絶不得侵犯本國, 止令攻伐馬赤哈, 至於送書爲信, 而邊將因其犯境, 出戰致敗。 彼若不以侵犯我境爲悔罪, 而反爲執言曰: ‘我則不背舊好’, 貽書爲信, 而朝鮮乃不問曲直, 反惡意相待也。 以此爲言, 因爲起釁之端, 則日後之慮, 極爲可虞。 大抵在我, 元氣博厚, 然後禦戎戢隣, 可以酬酢有裕矣。 今則內外形勢, 無一可恃, 元氣澌敗, 支體尙弱, 正宜遵養調攝之時。 若觸事攘臂, 與人相角, 則恐非智者攝生之道。 老土旣附老酋, 則老虜之心, 必不肯因我一言, 縛送已附之黨, 欲取信於我也。 不從我言, 反以前所陳者, 爲執言之地, 恐喝於我, 則益取侮辱, 而無以戢其啓釁之心, 此不可不慮。 今宜略具兵侵犯之狀、具滉致死之由, 急急移文于李箕賓處, 使之預知此意, 滿浦 胡人, 如或有來問者, 當措辭答之曰: ‘頃者, 聞有藩 老土者, 背叛本國時, 作狗偸, 殺我良民, 邊將率所部, 略示問罪之擧, 老土逃入深處, 不知住在何地, 未久忽有一帶軍馬, 侵犯本國境上, 邊將率兵出敵, 竟爲胡人所殺。 本國意以爲, 此老土報復之計, 尤極痛憤, 而全不知老酋之兵, 至犯我國界上。 今聞汝言, 始知老酋之事。 汝老酋, 自前與我, 元無嫌怨, 常修敦信, 無知下卒, 或因採蔘, 雖(攝)〔躡〕 我境, 我國常戒邊將, 勿得斬殺, 開諭出彊而已。 爾等不念此意, 無故動兵, 殺我邊將, 自前敦信之義, 安在? 設或欲攻馬胡而來, 爲老酋者, 當先以此意, 密告于滿浦邊將, 使本國預知此意, 則爾軍雖來, 必不動兵出戰, 致有如此之事。 爾旣不能, 負義深矣。 今日在汝之道, 招納一箇叛, 忘大義於本國可乎? 仍修本國之好, 絶叛國之賊, 可乎? 此理較然。 老土及其子, 寄寓汝地, 汝宜縛送其父子, 以謝頃日妄殺邊將之罪, 則本國必嘉汝信義, 不念前失, 敦信如前, 且有厚賞矣。’ 以此措辭, 以試其意。 至於北道之, 旣以鋒刃相角, 則似無更來受答之理。 萬一意外, 如守一所料, 來請受答, 則兩軍廝殺之際, 彼此文書授受, 旣不分明, 不必以目見書爲言, 當權辭以答曰: ‘如有文書, 則當先期差人, 從容傳送, 然後乃可以知汝情事, 而今則不然, 犯境之前, 邈然無聞, 而無端入境, 殺我邊將, 折了多少軍馬, 然後乃言已有文書, 當有回答, 爾等狡黠, 至此而益甚。 設使眞有文書, 兩兵相當, 變現出沒之際, 何人傳致, 何人承受? 今無可考, 不知書中, 道何曲折云云’, 而參以滿浦擬答之言及守一狀啓中所錄之辭, 周旋措語以對, 似爲宜當。 竝以此意, 平安咸鏡兩道監、兵使處, 急急行移, 差官下送, 知委施行。" 傳曰: "允。"


    • 【태백산사고본】 77책 127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24책 99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