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 어사 만세덕이 왜적 문제로 게첩을 올리다
경리 어사(經理御史) 만세덕(萬世德)이 게첩(揭帖)을 보냈다.
"요즈음 해상의 보고에 근거하면 세 제독(提督)이 차임한 첩자들이 모두 돌아왔다고 하니, 조선의 화근(禍根)이 이제야 비로소 발본(拔本)된 셈입니다. 이는 섬 오랑캐들이 죄를 뉘우친 것으로 실로 하늘이 그들의 마음을 꾄 것이니 귀국(貴國)의 생령과 여러 장수 및 관리들의 다행입니다. 주신 바 귀국 시신(侍臣)의 편지는 원봉(原封)대로 갖추어 올렸습니다. 시급히 격문을 초하여 그날로 바다를 건너온 왜노들을 즉시 물리쳐 해안에 올라와 우리의 허실(虛實)을 엿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깊이 생각하여 영구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 대마도 태수(對馬島太守)가 보내온 글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대마주 태수(日本國大馬州太守) 풍신의지(豊臣義智)는 조선국 예조 대인 각하(朝鮮國禮曹大人閣下)께 두려운 마음으로 삼가 아룁니다. 무술년·기해년·경자년에 천조(天朝)의 노야(老爺)들이 보낸 네 사람의 차관(差官)이 번번이 합하에게 편지를 전했는데 답장이 없어 사신들이 머물고 있으니 이 무슨 경우입니까? 네 사신이 우리 나라에 온 지 이제 3년이 경과했건만 귀국은 아직 한 번도 사신을 차송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상 더 그들을 억류(抑留)하면, 천조에 대해 아무래도 무례한 일이 될 것입니다. 이에 수뢰군(秀賴君)의 명을 받들어 선주(船主) 조차(調次)를 차임하여 회송(回送)하게 했는데, 유야(劉爺)는 여기서 객사(客死)했고, 모야(茅爺)는 살주 태수(薩州太守) 의홍(義弘)에게 명하여 복건(福建)을 통하여 송환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형세는 먼저번의 편지에 소상히 말하였습니다. 속히 한명의 사신을 차송하여 전쟁을 그치도록 해주시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어느 때에 그치겠습니까. 이제 우리 나라는 귀국에 대해 화해하는 것 한 가지 일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태합(太閤)께서 남긴 유명(遺命)이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자세한 내용은 두 사신이 이야기를 할 것이니 자세한 말씀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만력(萬曆) 28년 경자 3월 28일."
○ 섭주 태수(攝州太守)와 기주 태수(耆州太守)가 보내온 글은 다음과 같다.
"섭주 태수 풍신행장(豊臣行長)과 기주 태수 풍신정성(豊臣正成)은 삼가 조선국 예조대인 합하께 아룁니다.
무술년 겨울 천조(天朝)의 여러 노야(老爺)들이 귀국과 우리 나라의 화해에 관한 일을 서로 의논하고 모(茅)·유(劉)·진(陳)·왕(王) 네 사신을 보내어 그 징험을 삼았으므로 바다를 건너 철병하였습니다. 네 명의 사신이 우리 나라에 머물면서 귀국의 사신을 기다린 지 올해 3년이 되었는데도 사자는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유야(劉爺)는 고향을 그리면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천조 사람이 만약 다 객사한다면 이것은 도리어 그 죄책이 우리 나라로 돌아오게 되므로 그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차라리 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의 원가강(源家康)은 수뢰군(秀賴君)에게 아뢰어 대마주 태수(對馬州太守) 풍신의지(豊臣義智)에게 명하여 그들을 회송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때를 당하여 귀국은 사신 한 사람을 차견하여 강화(講和)하겠습니까, 아니면 한 사신을 아끼어 신의를 끊겠습니까? 조정의 의논을 속히 결정하여 회답을 주십시오.
우리 나라의 형편을 말씀드리자면 그 결정이 천조 사람들의 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자세한 말씀은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서로 화해하는 것 한 가지 외에는 별달리 바라는 것이 없으니 부디 이상스럽게 여기지 마십시오. 만약 회답이 또 지연된다면 당장 근심거리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나라가 천조의 노야들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귀국이 난을 자초한 것이 될 것이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행장과 정성은 다만 두 나라의 백성들을 위하여 잠자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잘 살펴서 하십시오. 이만 줄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만력 28년 경자 정월 27일."
○ 풍신조신(豊臣調信)이 보내온 글은 다음과 같다.
"일본국 풍신조신은 머리 조아려 조선국 예조 대인 합하께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무술년·기해년·경자년에 해마다 천조의 노야들이 보낸 네 사람의 차관이 번번이 서신을 올렸는데 지금까지 답장이 없어 사자(使者)들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으니, 이 무슨 경우입니까? 네 사람의 차관이 온 지 벌써 3년이 지났건만 귀국은 한 사람의 사신도 차송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정정하던 유야(劉爺)는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가강(家康)은 이 소식을 듣고 탄식하기를 ‘만약 네 사신들이 모두 객사하게 된다면 도리어 우리 나라의 죄가 되니 돌려보내는 것이 낫다.’ 하고 수뢰군에게 아뢰어 즉시 행장과 의지에게 명하여 선주(船主) 조차(調次)를 차견하여 보내게 하였으며 또 살주 태수 의홍(義弘)에게는 복건의 항로를 통하여 모야(茅爺)를 보낼 것을 명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형세는 먼저 편지에 대략 진달하였지만 태합 상국(太閤相國)께서 무술년 가을 8월에 돌아가셨습니다. 내대신(內大臣) 원가강(源家康)이 상국(相國)의 유명을 받들어 사군(嗣君) 수뢰를 잘 보좌하기 때문에 국가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도 생활이 풍족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귀천을 가릴 것이 없이 늘 ‘상국이 돌아가신다면 전국이 공전(公戰)과 사투(私鬪)에 휘말려 천변만화(千變萬化)가 생길 것이 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정치가 잘 되고 있으니, 이에 사람들이 모두 상국께서 인재(人才)를 알아보는 밝은 지감(知鑑)이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이 일은 두 분 사신의 편지에 내용이 있을 것이므로 자세한 말씀은 드리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가 두 사신을 돌려보내니 화평과 전란(戰亂)은 아마도 귀국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다른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요, 다만 화호(和好) 한 가지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러니 한 사람의 사신을 차송하여 만년의 평화를 이룩하겠습니까, 아니면 한 사람의 사신을 아껴서 지난날의 어지러움을 다시 일으키겠습니까? 조정의 의논을 속히 결정하기 바랍니다. 저는 본방(本邦)에서 생연(生緣)을 맺고 귀국으로부터 벼슬을 받아 60이 넘은 늙은 나이로 그저 편안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 이외에 별로 다른 소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려움도 돌아보지 않고 저의 속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이니 어여삐 여겨 살피소서. 머리 조아려 삼가 말씀드립니다.
만력 28년 경자 3월 28일."
- 【태백산사고본】 75책 124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56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經理御史萬世德揭帖曰: "近據海上之報, 三提督所差行間之人, 悉歸矣。 東事禍原, 今始盡拔。 此島奴悔罪, 實天誘其衷, 貴國之靈, 諸將吏之幸也。 所致貴國侍臣之書, 謹以原封具上, 刻下草檄完日, 卽斥來倭渡海, 不得登岸, 窺我虛實也。 諸惟長慮, 以懷永圖。 不宣。
日本國 對馬州太守豐臣義智, 誠恐謹稟朝鮮國禮曹大人閣下。 戊戌、己亥、庚子, 每送天朝諸老爺所度與四士差官, 必傳書至閣下, 欠報章留使者, 未審是何謂乎? 四士今雖經三霜, 貴國未差一使。 於是强留之, 則於天朝, 恐是無禮生者乎? 因玆奉秀頼君命, 差船主調次送回之, 此內劉爺客死矣, 茅爺乃命薩州太守義弘, 從福建路送之。 於本邦事勢, 則先書說盡矣。 伏望速差一使, 偃干戈。 若其不然, 干戈何時而止乎? 今也, 本邦於貴國, 更無他望, 只止乎和好一事而已。 蓋是以大閤遺命也。 勿疑。 縷縷, 定在二士淸話, 不能細陳。 誠恐不宣。 萬曆二十八年庚子三月二十八日。
○日本國 攝州太守豐臣行長及老州大守豐臣正成, 謹啓朝鮮國禮曹大人閣下。 戊戌之冬, 天朝諸老爺, 相議講貴國本邦和好之事, 仍度與茅、劉、陳、王四士, 以爲其驗, 故撤兵過海。 四士在本邦, 待貴國使价者, 三霜于玆矣。 雖然, 使价未得過海。 於是, 劉爺思歸作鬼。 天朝人若皆客死, 却是本邦之罪也。 不如送回之。 因是本邦源家康, 奏秀頼君, 命(對馬洲)〔對馬州〕 太守豐臣義智送之。 方乎此時, 貴國差一使講和耶? 又愛一使絶信耶? 請速決廷議, 賜報章。 至本邦事勢, 則定在天朝人話柄, 是以不能細陳。 今也本邦, 無他望, 只止于和好一事而已, 勿怪勿怪。 若又報章遲延, 恐有近憂。 然則本邦, 全非違天朝諸老爺約, 而貴國却招亂者乎? 如何? 行長、正成, 只爲兩國蒼生, 而不獲默止, 聊呈此言, 賢察不宣, 頓首謹啓。 萬曆二十八年庚子正月二十七日。
○日本國 豐臣調信, 誠惶頓首謹奉書朝鮮國禮曹大人閣下。 戊戌、己亥、庚子, 每送天朝諸爺所度與四士差官, 必呈書, 至今未報章, 不還使者, 不知何謂乎? 四士今雖經三霜, 貴國未差一使, 故(其)〔甚〕 力劉爺, 思歸發病死去矣。 家康聞之歎曰: "四士共若客死, 則却是本邦之罪也。 如不送回之。" 而達秀頼君, 卽命行長及義智, 差船主調次送之, 茅爺, 乃命薩州太守義弘, 從福建路送之。 於本邦事勢, 則先書粗陳。 大閤相國, 戊戌秋八月薨矣。 內大臣源家康, 蒙相國遺命, 輔佐嗣君秀頼, 國治家齊, 民亦富矣。 本邦人, 無貴無賤, 常以謂相國若薨, (合)〔全〕 國公戰私鬪, 千變萬化者必矣。 雖然, 今有此治。 於是, 人皆知相國見人鑑之靈且明者也。 此事, 定在二士淸話。 是故, 不能細陳。 今也本邦, 送回二士, 則貴國治亂, 恐在發者歟! 本邦更無他望, 只止于和好一事而已。 然則差一使, 以致萬年之治耶? 愛一使, 以再舊時之亂耶, 伏乞能決廷議。 僕結生緣於本邦, 受司職於貴國, 暮景過耳順, 只見平安, 以要辭世之外, 別無他願, 故不(願)〔顧〕 懼而述卑臆, 憐察。 誠惶頓首謹言。 萬曆二十八年庚子三月二十八日。
- 【태백산사고본】 75책 124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56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