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판서로 제수된 심희수의 행적을 비난하는 사평
계미년097) 사이에 허봉(許篈)이 이이(李珥)를 공격하여 귀양보낼 적에 심희수가 상(上)의 앞에서 이이는 어질고 허봉은 그르다고 하였다가 다시 또 허봉은 어진 사람이고 이이는 그른 사람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상이 따를 바를 몰랐는데 결국 그가 반복이 심한 사람임을 알고 내쳐서 외직에 보임하였으므로 금산 군수(錦山郡守)가 되었었다. 난리가 일어난 뒤 그의 6촌 형인 심충겸(沈忠謙)이 혼인할 적에 희수에게 위요(圍繞)098) 가 되어 줄 것을 청하니 희수가 응하여 갔다. 충겸의 집에서 성찬(盛饌)을 베풀었는데 그 다음날 희수가 대간(臺諫)에게 말하기를 ‘공직(公直)099) 형의 집에서 융성하게 잔치를 차렸다. 표범 가죽 방석이 20여 장이나 되는데 모두 한결같이 가위로 잘라서 만들었고 대례(大禮)에 쓰는 과반(果盤)과 곁들인 소반(小盤)은 모두 한결같이 새롭게 옻칠을 하였다. 그리고 암꿩 구운 것을 손님마다 세 다리씩 주었으니 푸짐하기는 하지만 또한 탐오하다고 할 수 있다.’ 하였는데, 그 다음날 충겸이 대간의 논박을 입었다. 이는 무후(武后) 때 장덕(張德)의 집에서 양(羊)을 잡아 잔치를 성대히 베풀었는데 두숙(杜肅)이 고기를 가지고와 상변(上變)한 것과 너무도 같았다. 지금 이 일이 무후 때에 있었다면 어찌 ‘지금부터는 손님을 초청함에 있어 반드시 사람을 가려야 한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희수가 흉독한 정철을 아첨해 섬겼었는데 위에서 정철의 간사한 정상을 통촉하자 희수가 정철의 숨겨진 죄악을 들추어 내었다. 그가 소시(少時)에 허성(許筬)과 교우 관계를 맺었었는데 만년(晩年)에는 이웃에 나란히 살았다. 언젠가 희수가 사람을 찾아 나아갔다는 말을 듣고 같은 이웃에 사는 윤의(尹顗)에게 말하기를, ‘백구(伯懼)는 노변(路邊) 각 고을의 늙은 기생처럼 오늘은 어딜 갔는가?’ 하였는데, 백구는 바로 희수의 자(字)이다. 이는 그가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것을 기롱한 말이었다. 어떤 사람이 권세가 있으면 살살거리고 아첨하였다가 권세를 잃게 되면 반드시 먼저 배척하는 말을 하여 시망(時望)을 얻었다. 그리고 일단 배척한 다음에도 곧 칭찬하기를 배척한 적이 없는 것처럼 하였으니, 허성이 늙은 기생이라고 기롱한 것이 정말 맞는 말이다. 그런데도 종백(宗伯)100) 의 직임이 이런 사람에게 이르렀으니, 애석한 일이다.
- 【태백산사고본】 74책 122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2면
- 【분류】정론(政論) /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註 097]계미년 : 1583 선조 16년.
- [註 098]
위요(圍繞) : 혼인을 할 적에 가족 중에 신랑이나 신부를 데리고 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상객(上客)을 가리킴.- [註 099]
공직(公直) : 심충겸의 자(字).- [註 100]
종백(宗伯) : 예조 판서.○癸未年間, 許篈攻李珥, 謫去, 喜壽於上前, 以珥爲賢, 又以篈爲非, 又以篈爲賢, 又以珥爲非, 上莫適所從。 知其反覆, 而以反覆斥之, 使外補, 乃爲錦山郡守。 亂後, 其六寸兄沈忠謙婚姻時, 請喜壽圍繞, 喜壽往焉。 忠謙家設盛饌, 翌日喜壽言於臺諫曰: "公直兄家壯矣。 豹皮方席二十許坐, 皆以一剪刀裁成, 大行果盤, 側小盤, 皆一樣新漆, 雌雉灸, 每客各三肢富矣, 而亦可謂(貪)〔貧〕 矣。 其翌日, 忠謙被論, 殆與武后朝, 張德家殺羊爲宴, 杜肅懷餤而上變, 一般。 若在武后之時, 豈不曰: "自今召客, 亦須釋人乎。" 喜壽謟事毒澈, 自上燭其奸狀, 喜壽乃發澈之隱惡。 其少時友許筬, 與喜壽晩年比隣居, 聞壽喜以訪人事出遊, 言諸同隣人尹顗曰: "伯懼, 如路邊各官之老娼, 今日何往乎?" 伯懼, 乃喜壽字, 議其獻諂於人人之語也。 人有勢, 則輒沾沾焉諂附, 將失勢, 則必先爲排擯之語, 以取時望, 旣已排擯之後, 則又卽還爲稱贊, 似若不曾排擯者然。 許筬老娼之譏, 誠然矣。 宗伯之任, 及於此人, 惜哉!
宣宗大王實錄卷之一百二十二
- 【태백산사고본】 74책 122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24책 42면
- 【분류】정론(政論) / 인물(人物)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註 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