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사 신식이 중국 조정에 돌아간 중국 장수의 관직 상황을 아뢰다
사은사 신식(申湜)이 장계하였다.
"신이 8월 7일에 비로소 북경에 도착하여 즉시 조현(朝見)하려 하였지만 9일에 승리를 선포(宣布)하는 의식 때문에 홍려시(鴻臚寺)에서 보고하는 단자를 접수하지 않아 10일에야 비로소 조현하였습니다. 11일에 담당관에게 표문(表文)과 방물(方物)을 무사히 바쳤으며 9월 6일에는 상사(賞賜)를 받았습니다. 11일에 사조(辭朝)하려 하였으나 예부에서 출근하지 않아 사조하지 않고 그날로 북경을 출발하였습니다. 통주(通州)에 도착하여 통사 차경인(車敬仁)과 이마(理馬) 탁영남(卓永男)을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중국 조정에서는 별로 듣거나 본 것이 없었으며, 사조하던 날 대궐에서 죄수를 심리하느라 많은 관원들이 모였었는데 ‘상서(尙書) 석성(石星)이 옥중에서 병으로 인해 죽었으나 상서(尙書) 석성(石星)이 아직 위에 아뢰지 않았다.’고 들었으며, 【이 사람은 중국 조정에서 강화를 주장한 사람이다. 】 또 ‘동정(東征)의 공로 서열을 그저께 내렸는데, 경리(經理) 양호(楊鎬)는 기용되고, 진 제독(陳提督)은 세습(世襲)되었으며, 유 제독(劉提督)은 도독에 승진되고, 동지(同知) 서 급사(徐給事)도 기용되었으며, 정응대(丁應泰)는 상으로 은 50냥을 받았을 뿐이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것은 미처 상세하게 듣지 못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72책 11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93면
- 【분류】외교-명(明)
○謝恩使申湜狀啓:
臣八月初七日始達北京, 卽欲見朝, 而以初九日有宣捷之儀, 鴻臚寺不接報單, 初十日始得見朝。 十一日見堂, 表文及方物, 竝無事驗納, 九月初六日受賞賜。 十一日辭朝, 禮部不坐, 免辭, 同日北京離發。 到通州, 通事車敬仁、理馬卓永男, 先爲出送。 中朝別無所聞見, 辭朝之日, 闕中方有審囚之擧, 多官會集。 聞石尙書在獄中病故, 而時未上聞云。 【此天朝主和之人。】 且聞東征敍功, 昨昨已下, 楊經理則起用, 陳提督則世襲, 劉提督陞都督, 同知徐給事亦起用, 丁應泰只賞銀五十兩云。 其他則未及詳聞云。
- 【태백산사고본】 72책 118권 1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93면
- 【분류】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