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 모국기의 관소에서 주례를 행하다. 유격 이천상의 관소에 가다
사시에 상이 유격 모국기(茅國器)의 관소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서 우리 나라의 일로 바다에서 수고가 많았는데 지방이 잔파되어 지공이 소략하므로 늘 황공하게 여기고 있소이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당치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주례(酒禮)을 행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서 우리 나라를 위하여 군기(軍機) 등의 물품을 많이 내려주시니 뒤처리를 잘 하도록 하려는 생각이 지극하외다."
하자, 유격이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적을 방어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보낸 것입니다. 치사(致謝)하는 하교를 받으니 매우 감사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서 해상에서 오셨으니 적의 정세에 대해 들은 것이 없소이까? 듣고 본 것이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라외다."
하자, 유격이 말하기를,
"지금 수길(秀吉)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군사를 훈련한다고 하니 수년 사이에 병화가 그치지 않을 듯합니다. 그러니 귀국에서 적당한 인재를 장수로 임명하여 전수(戰守)하는 계책을 강구하게 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제가 올라올 때 고령(高靈) 등처를 살펴보니 백성들이 농사를 짓지 못해서 기근이 대단히 심하고 매우 허술하였으니 이것이 염려스럽습니다. 지난번 울산의 적은 제가 후진(後陣)에서 막았기 때문에 예봉(銳鋒)이 경성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진심으로 감사하외다."
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상께서 해상에 대해 진념하시어 병선을 많이 만드신다면 적이 염탐하고서 반드시 방비(防備)가 완전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귀국의 수로 총병(水路總兵) 이운룡(李雲龍)과 육로 총병(陸路總兵) 정기룡(鄭起龍)은 두 훌륭한 장수로 몸을 돌보지 않고 나아가 싸우는 것은 이 두 사람보다 나은 사람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분부하여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하외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전에 우리 나라에 온 왜사(倭使)를 군문(軍門)에게 들여 보냈는데 군문이 어떻게 조처하였는지 모르겠소이다. 대인에게서는 아실 듯하기에 감히 묻는 것이외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모두 군문이 임의로 한 것이지, 중국에서 지시한 바가 있어서 보내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그 사이에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하였다. 유격이 책 한 권을 올리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만 노야(萬老爺)가 동정(東征)한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서 우리 나라를 위하여 마음을 다하시니 감격스러움을 금치 못하겠소이다."
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궁전을 지을 곳을 어디로 정하셨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적(大賊)이 겨우 물러가고 종묘와 사직도 세우지 못하였으므로 생각이 다른 데 미칠 수 없습니다. 대인께서는 무슨 소견이 있는 듯하외다."
하자, 유격이 말하기를,
"중흥(中興)하는 때와 창업(創業)하는 초기에 궁실을 짓는 것이 적합한 시기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종묘와 사직에 이르러서는 바로 오늘날에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분부해 주시니 매우 감사하외다."
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왜사가 다시 나오면 귀국에서는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황조에서 처리하기에 달려 있는 것이지 우리 나라에서 관여할 바가 아니외다."
하였다. 유격이 물러가기를 청하자 예단(禮單)을 바치게 하니, 유격이 굳이 사양하다가 받았다. 상이 이어 유격 이천상(李天常)의 【수병(水兵)의 장수로서 사람됨이 매우 간사하며 탐욕스럽고 포악하여 부끄러움이 없었다. 우리 나라 사람을 많이 거느리고 몰래 싣고 가려는 뜻을 품었으니, 그의 간사하고 교활함이 이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다. 】 관소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서는 우리 나라를 위하여 해상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노고가 많았으니 황공하고 감격하외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제가 황명을 받들고 나왔으니 이것도 직분 안의 일입니다. 어찌 치사(致謝)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부산진(釜山鎭)은 대단한 요해지(要害地)이며 대마도와 멀지 않으니 병선을 많이 만들어 적을 방어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분부해 주시니 매우 감사하외다."
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제가 바다에서 싸운 공이 조금 있습니다. 10월 3일에 총탄이 몸을 스치고 지나가 겨우 죽음을 면하였는데 요즈음 사람들이 더러 비난하는 의논이 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많은 고생을 겪은 것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로 마음 속으로 늘 감격해 하고 있소이다."
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늘 상께서 위문하여 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우리 나라에서 지공을 소홀하게 하여 언제나 황공하외다. 지금 사례를 받으니 미안함을 금치 못하겠소이다."
하였다. 어전 통사 이정구(李廷龜)가 아뢰기를,
"대인을 보건대 기색이 편치 않으니 자문(咨文)으로 위문하여야지 직접 대면하여 말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경의 말이 옳다."
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지난날 제가 이덕형과 함께 있을 때 귀방(貴邦)의 역인(役人)들을 모두 조사하여 보냈는데, 지금 들으니 사람들이 그르다고 한다고들 합니다. 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니, 상이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다. 유격이 물러나기를 청하자 예단을 바쳤다. 상이 이르기를,
"보잘것없는 물품으로 정을 표하외다."
하니, 유격이 굳이 사양하다가 받았다.
- 【태백산사고본】 72책 118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85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巳時上幸茅遊擊國器館。 上曰: "大人以小邦事, 多勞海上, 而地方殘破, 支供忽略, 每爲惶恐。" 遊擊曰: "不敢當。" 上行酒禮。 上曰: "大人爲小邦, 多賜軍機等物, 其爲善後之慮至矣。" 遊擊曰: "此皆禦賊之具故送呈。 今承致謝之敎, 多拜上。" 上曰: "大人自海上來, 無乃聞賊情乎? 如有聞見, 請聞其說。" 遊擊曰: "今秀吉雖死, 其子代立, 組練兵馬云, 數年之間, 兵火恐不弭也。 貴國得人任將, 以爲戰守之策, 幸甚。 俺來時, 見高靈等處, 則民不耕種, 飢饉太甚, 極爲虛疎, 是可慮也。 前者蔚山之賊, 以俺殿後之故, 其鋒不至於京城矣。" 上曰: "多謝。" 遊擊曰: "自上軫念海上, 多造兵船, 則賊雖間諜, 必謂防備多矣。 且貴國水路總兵李雲龍、陸路總兵鄭起龍, 皆是良將, 忘身赴敵, 無踰此二人。" 上曰: "分付多謝。" 上曰: "前日倭使來于小邦者, 入送軍門, 未知軍門何以處之。 大人似可知之故敢問。" 遊擊曰: "皆在軍門自擅。 非中原有所爲, 而致其來也, 別無他意於其間。" 遊擊進一冊曰: "此萬老爺東征紀事也。" 上曰: "大人爲小邦盡心, 不勝感激。" 遊擊曰: "宮殿經營之地, 定於何所乎?" 上曰: "大賊纔退, 宗社未建, 念不及他。 大人如有所見乎?" 遊擊曰: "中興之際、創業之初, 經營宮室, 雖曰非時, 至於宗廟、社稷, 乃是當今之首務。" 上曰: "分付多謝。" 遊擊曰: "倭使若再來, 則貴國何以處之?" 上曰: "在於皇朝, 非小邦所與知矣。" 遊擊請辭, 呈禮單, 遊擊固辭, 受之。 上仍幸李遊擊天常館。 【水兵將, 爲人孔邪, 貪虐無恥。 多率我國人物, 潛懷載去之意, 其爲奸巧, 至此極矣。】 上曰: "大人爲小邦, 暴露海上, 勞苦甚矣。 惶恐感激。" 遊擊曰: "俺奉皇命出來, 則此亦職分內事。 何足致謝?" 遊擊曰: "釜山爲鎭, 極是要害之地, 且與對馬島不遠, 多造兵船, 以爲禦敵之具, 幸甚。" 上曰: "分付多謝。" 遊擊曰: "俺粗有水戰之功。 十月初三日, 銃丸過身, 僅免其死, 而近日人或有非之之議云。 是以於心不平也。" 上曰: "大人備嘗艱苦, 人所共知。 心常感激。" 遊擊曰: "每蒙自上致問, 多拜上。" 上曰: "小邦怠慢支待, 每爲惶恐。 今承致謝, 不勝未安。" 御前通事李廷龜啓曰: "觀此大人, 辭色不平。 寧以咨文致問, 似不當面陳矣。" 上曰: "卿言是也。" 遊擊曰: "前日俺與李德馨同在時, 貴邦役人等, 皆査覈送之, 今聞人有是非云。 以此心慮不平。" 上曰: "多謝。" 遊擊請辭, 呈禮單。 上曰: "薄物表情。" 遊擊固辭, 受之。
- 【태백산사고본】 72책 118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85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