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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17권, 선조 32년 9월 15일 신유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제독 이승훈에게 조문하다. 돌아오는 길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중국인을 만나다

상이 제독 이승훈(李承勛)의 상차(喪次)에 나아가니 【이날은 제독의 성복일이다. 】 중군(中軍) 이향(李香)이 대청 내 영전으로 맞아들였다. 제독은 장막 밖 서편에 부복하고, 상은 동편으로 나아가 재배례(再拜禮)를 행하였다. 제독은 감히 일어나 배례하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으로 답례를 행하였다. 상이 곧 부복하여 조문하고 부의 단자를 보낸 다음 또 재배하고 물러나오자, 제독은 또 머리를 조아려 답례하고 중군(中軍)이 바깥 문까지 전송하였다. 제독이 서편에 부복하는 것이 미안하므로 재삼 사양하니, 제독은 상인으로서 영전에 있어야 하고 감히 동편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한다고 하였다. 제독이 행제(行祭) 후 상을 청하므로, 상이 곧 삼포(黲袍)로 바꾸어 입고 근시(近侍)도 모두 삼포를 입고 들어갔다. 이 중군도 상건(喪巾)과 상복(喪服)을 입어 상주와 다름이 없고, 군사들은 모두 소의(素衣)·소건(素巾)을 착용하였다. 중군이 중문(中門) 밖에 나와 상을 맞아 읍양하면서 당내(堂內)로 들어갔는데, 당내에 영악(靈幄)을 설치하고 그 앞에 제상(祭床)을 놓았다. 양시뢰(羊豕牢)를 좌우에 벌려 놓았는데 그 모양이 인형과 같았고, 목우인(木偶人)을 만들어 그 곁 양쪽에 하나씩 갈라 세웠다. 또 불전 병화(佛殿甁花)와 같은 전지화(剪紙花) 및 갖가지의 과채(果菜)와 병자(餠子) 등 물건이 있었으며, 동편에는 여러 음악소리가 청아하였다. 제독이 입은 상복은 대략 우리 나라의 제도와 같았는데, 다만 면전(面前)에 굵은 베로 사(紗)를 만들어 가리웠으며, 두 귓가에는 면화(綿花)를 배[梨]의 크기로 만들어 달았다. 상장(喪杖)은 그리 크지 않은데 종이를 가늘게 오려 그 상장의 위 아래를 감았다. 물으니 그것은 보살봉(菩薩棒)이라고 한다 했다. 제독은 동쪽을 향해 서고 상은 서쪽을 향해 섰다. 제독이 통곡하고 상이 재배하며 조문하니, 제독은 중군과 나란히 서서 조문을 받았다. 상이 말하기를,

"삼가 흉변을 들으니, 선부인(先夫人)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 합니다. 그 애모하는 마음을 어찌 참고 견디십니까. 대인께서 소국에 오셔서 이런 흉변을 당하게 되니 과인은 그 침통함을 참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 기력은 어떠하십니까?"

하니, 제독이 엎드려 머리 조아려 사례하기를,

"제가 귀국에 나와 있는 동안 저의 어머니께서 작고하시어 몸소 임종을 못하고 보니 애통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자, 상이 말하기를,

"효심의 슬픔을 누르시고 예제(禮制)를 따르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상이 재배하고 물러 나오려 하면서 예단첩을 중군에게 보내고 이르기를,

"이는 토전(土奠)의 약소한 물건으로서 감히 부의를 표하는 것이니 제독 대인에게 드리기 바랍니다."

하니, 중군이 제독에게 알리자 제독이 받았다. 제독이 곡하면서 엎드려 청하기를,

"조금 머무르십시오. 예물첩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사례하며 말하기를,

"이곳은 평상시가 아니라 대인이 상중에 있는 것이니 과인은 감히 받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천조의 예가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만야(萬爺)·두야(杜爺)도 모두 이 예가 있었으니 받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하고, 제독이 친히 예단과 예물을 드려 간청하니, 상이 말하기를,

"사양할 수 없어 감히 받겠습니다."

하였다. 제독이 사례를 행하고자 하자, 상이 말하기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제독이 그대로 읍례를 행하므로, 상 역시 읍례로 답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제가 친히 문 밖에까지 전송하지 못하는 것은 천조의 예가 그와 같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상이 바로 나오니, 이 중군이 인도하여 중당(中堂)에 이르렀다. 중군이 가정(家丁)을 불러 병풍으로 그 당내 영전의 제청(祭廳)이 있는 곳을 가리우고 차[茶]를 청하였다. 그리고 교의(交椅)를 설치하려 하자, 상이 중군에게 읍하고 이르기를,

"평시와 비할 수 없는 때라 결코 차를 마실 수 없습니다."

하고, 이어 조문하기를,

"제독 대인이 이 흉변을 만나게 된 것이 또한 소국이 불행한 소치입니다."

하니, 중군이 아뢰기를,

"어찌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드디어 나가니, 중군이 문 밖에까지 전송하였다. 상이 환궁하다가 정릉 동구에 이르자, 중국인 한 사람이 길가에 꿇어앉아 상에게 호소하기를,

"집주인이 쌀 5두(斗)를 도둑맞았는데, 함께 있던 중국인 3명이 간 곳이 없으므로 주인이 나를 의심하여 두야(杜爺)의 아문에 정소(呈訴)함으로써 장차 중죄를 입게 되었습니다. 제가 어찌 주인의 물건을 훔친 자이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곳 사람이 사사로이 부사(副使) 두잠(杜潛)에게 고발하는 예가 있는가. 우리 나라 사람이 어찌 사사로이 아문에 고발할 수 있겠는가?"

하니, 최천건(崔天健)이 대답하기를,

"외간에 원통한 일이 있으면 으레 아문에 호소합니다."

하였다. 중국인에게 사실을 묻자 중국인이 아뢰기를,

"저는 유격(遊擊) 좌총(左聰)의 휘하로서 명일 원행을 해야 하는데, 그릇 남의 고발을 입어 잡혀 곤장을 맞게 되었으니 몹시 민망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도감(都監)으로 하여금 사문(査問)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2책 117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80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풍속-예속(禮俗)

    ○辛酉/上幸于李提督承勛喪次, 【是日提督成服。】 中軍迎入大廳內靈幄前。 提督俯伏於帳外西邊, 自上就東邊, 行再拜禮。 提督不敢起拜, 以叩頭爲答禮。 上乃俯伏, 措辭致弔, 送以賻單, 又行再拜以辭, 提督又叩頭以答。 中軍送至外門云: "提督俯伏於西邊未安, 故再三相講, 則以爲提督以喪人, 在靈幄前, 不敢在東邊, 故如是爲之矣。" 提督行祭後請上, 上乃換着黲袍, 近侍皆着黲袍遂入。 李中軍着喪巾喪服, 與喪主無異, 軍丁皆用素衣、素巾。 中軍出中門外, 引上揖讓入堂內, 堂內設靈幄, 靈幄前設祭床。 用羊豕牢, 列置左右, 像如人形, 爲木偶人, 雙立其傍。 又有剪紙花, 如佛前甁花樣, 及各品果菜餠子等物, 東邊衆樂寥亮。 提督所服喪服, 略同我國制, 而但面前以麤布爲紗以遮之, 兩耳邊, 用綿花, 如梨子大懸之。 杖則不大, 而以紙細割, 纏于杖上下。 問之則曰其名菩薩捧云。 提督東向立, 上西向立。 提督痛哭, 上再拜弔之。 提督與中軍, 同行而立, 受弔。 上曰: "伏聞凶變, 先夫人奄棄榮養。 伏惟哀慕, 何以堪處? 大人到小邦, 有此凶變, 不穀不勝慘痛。 請問如今氣力如何?" 提督俯伏叩謝曰: "俺到貴邦, 俺孃故了, 不得親決, 割痛割痛。" 上曰: "願抑孝思, 俯從禮制。" 上再拜, 欲辭出, 上送禮單帖于中軍曰: "此乃土奠薄物, 敢賻。 願轉呈提督大人。" 中軍稟知, 提督受之。 提督哭, 俯伏請曰: "願少留。 有帖矣。" 上辭曰: "此處非常時, 大人在喪次, 不穀不敢領。" 提督曰: "天朝禮固當如是, 故爺、爺, 皆有此禮, 不敢不受。" 提督親呈禮單與禮物, 懇請之, 上曰: "不敢辭, 謹領。" 提督欲行謝, 上曰: "不敢。" 提督仍行揖, 上亦揖。 提督曰: "俺不得親送門外。 天朝禮如此故然也。" 上卽出, 李中軍引至中堂, 招家丁, 卽以屛風, 遮其堂內靈幄設祭處, 請茶。 將欲設交椅, 上揖于中軍曰: "此處不得比常時, 決不可用茶。" 仍致弔辭曰: "提督大人有此凶變, 此亦小邦不幸所致也。" 中軍曰: "豈敢?" 上遂出, 中軍送至門外。 上還宮, 行至貞陵洞口, 有唐人一名, 跪于路左, 訴告于上曰: "主人家有米五斗見失, 同舍唐人三名, 無去處, 主人致疑於俺, 呈訴于爺衙門, 將被重罪。 俺豈是竊主人家物者乎?" 上曰: "此處人, 私告杜副使, 有此例否? 我國人何私告於衙門乎?" 崔天健對曰: "外間有冤悶事, 則例訴衙門矣。" 仍問之, 唐人曰: "俺是左遊擊標下, 明日當遠行, 而誤被人訴, 將至拿杖, 悶悶。" 上曰: "令都監査問。"


    • 【태백산사고본】 72책 117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80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 / 풍속-예속(禮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