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가 훼손된 문소전 위판의 일로 아뢰다
예조가 아뢰기를,
"좌승지 권희(權憘)의 계사에 ‘신이 전에 강화 부사가 되었을 때, 문소전(文昭殿)의 위판(位版)이 난리 초에 병기와 함께 버려진 속에서 수습되어 부내의 전등사(傳燈寺)에 옮겨 봉안하고 한두 명의 산승(山僧)을 시켜 수직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더럽고 만홀함이 극심하다. 그러나 신이 재임한 지 겨우 40여 일 만에 수병(水兵)의 침해를 입음으로 해서 또한 미처 봉심하지 못하고 왔다. 선왕의 위판을 이처럼 승사(僧舍)에 두니 매우 미안하다. 바라건대 예관(禮官)으로 하여금 속히 조처하게 하심이 어떻겠는가?’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원묘(原廟)의 위판이 여러 차례 적의 손을 거쳐 쪼각쪼각 훼손되고 흙속에 밟혀 그 참통(慘痛)함을 차마 말할 수 없는 형편이라서 우선 거승(居僧)으로 하여금 수직하게 하였으니 이는 실로 부득이한 데에서 나온 처사였다. 이미 향화(香火)로 받들기 어렵고 또 관원으로 수직할 수도 없어 더럽고 만홀히 하는 혐의가 있을 뿐 아니라 훗날 난처한 걱정이 없지 않을 것이다. 설사 훗날 원묘를 다시 세운다 하더라도 이 위판을 꼭 그대로 쓴다고 할 수도 없으니, 각 위판을 본릉(本陵)의 곁 정결한 곳에 묻고 그 사유를 고유(告由)하면 사리에 타당할 것 같다. 그러나 중대한 일이라 본조가 천단할 바가 아니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결정하심이 어떻겠는가?’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에 대신에게 의논한 바, 영돈녕부사 이산해(李山海)는 ‘해조(該曹)의 공사에 의해 시행하라.’ 하고, 행 판중추부사 정탁(鄭琢)은 ‘해조의 공사에 따라 본릉의 정결한 곳에 묻고 그 사유를 고유함이 마땅하다.’ 하고, 우의정 이헌국은 ‘해조의 조처가 과연 정례(情禮)에 합치되니 이에 의해 시행함이 마땅한 것 같다.’ 하고, 최홍원·윤두수·이원익·이덕형·이항복은 병으로 수의하지 못하였습니다. 대신의 뜻이 이와 같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2책 117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74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인사-임면(任免) / 사상-불교(佛敎)
○禮曹啓曰: "左承旨權憘啓辭, 臣前爲江華府使時, 得聞文昭殿位版, 亂初收拾於兵戈抛擲之中, 移安於府地傳燈寺, 使一二山僧守直, 其爲褻慢甚矣。 臣在任僅四十餘日, 爲水兵侵擾, 亦未及奉審以來。 先王位版, 如是接置於僧舍, 至爲未安。 請令禮官, 速爲處置何如? 依啓事傳敎矣。 原廟位版, 屢經賊手, 片段毁敗, 踐踏泥土, 慘痛之甚, 所不忍言, 奉安山刹, 姑令居僧守直, 實出於不得已也。 旣難於奉以香火, 又不可守以官員, 非但有褻慢之嫌, 且不無後面難處之患。 設使他日復立原廟, 亦未必仍用此位版, 若埋置各位本陵之側凈潔處所, 祭告事由, 則似乎得宜, 而事係重大, 非本曹所能擅便。 議大臣定奪何如? 傳曰: ‘依啓事傳敎矣。’ 議于大臣, 則領敦寧府事李山海以爲: ‘依該曹公事施行。’ 行判中樞府事鄭琢以爲: ‘依該曹公事, 埋置本陵凈潔處所, 祭告事由爲當。’ 右議政李憲國以爲: ‘該曹處置, 果合情禮, 依此施行似當。’ 崔興源、尹斗壽、李元翼、李德馨、李恒福, 病不收議。 大臣之意如此, 敢啓。" 傳曰: "允。"
- 【태백산사고본】 72책 117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74면
- 【분류】왕실-궁관(宮官) / 인사-임면(任免)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