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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16권, 선조 32년 8월 1일 정축 5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양사가 유성룡·홍여순·구의강·홍식의 일을 아뢰다

양사(兩司)가 아뢰었다.

"신들이 어제 성상의 비답을 받드니 도타운 유시가 간곡하였습니다. 신들이 모여 앉아 보고 나서는 감격스러움을 이길 수 없었으나 신들의 의혹은 더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소인이 국가에 화를 끼친 일이 없는 세대가 없었으나, 화의(和議)를 주장하여 나라를 그르친 경우는 소인 중에도 극심한 자들이었습니다. 송(宋)나라의 진회(秦檜)118) 가 화의를 주장하여 송나라를 망쳤으므로 당시 송나라 군자들이 모두 그 죄를 수죄(數罪)하여 죽이려 하였고 후세에서도 이미 썩어버린 해골을 참하려 하였으니, 나라를 그르친 죄는 고금을 물론하고 일반입니다.

유성룡(柳成龍)은 문묵(文墨)으로 겉치장을 하여 오랫동안 재상의 자리를 절취, 권세를 탐하여 사당(私黨)을 심고 자기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배척하고 자신에게 아첨하는 자는 진취시켰습니다. 따라서 사론(士論)의 괴리와 조정의 알륵은 모두 이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능원(陵園)이 파헤쳐지는 통절한 일을 당했고 생민이 어육이 되는 참화를 겪었으니, 왜적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비록 삼척 동자라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룡은 불공대천의 원수를 잊고 반대 의논을 제의하여 팔을 걷어붙이고 화의를 주창함으로써 사설(邪說)이 다시 일어나게 했고 사기(士氣)가 저상되고 국세가 약화되어 끝내는 무너져 수습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그가 나라를 그르친 죄가 여기에 이르러 극에 달했습니다. 또 참소하는 사람이 망극하게도 우리의 군부(君父)를 모함하였으므로 온 나라의 신민(臣民)이 마치 엎어진 동이 밑에 든 것 같아 절통함이 천지에 사무치는데 성룡은 이를 변주(辨奏)하는 일에 있어 스스로 사신으로 가기를 청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회피할 계책을 내어 더없이 다급한 조천(朝天)의 사행(使行)을 끝내 지연시켰으니 임금을 망각하고 나라를 저버린 죄가 이에 이르러 더욱 큽니다. 대신이 이러한 죄를 졌으니 전하의 죄인일 뿐 아니라 또한 종묘 사직의 죄인입니다. 성룡의 죄악이 이처럼 방자한데도 전하께서 시종 극구 비호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지금 적서(賊書)가 또 이르렀는데 내용이 몹시 패만스러우니, 이것은 모두 전일 주화론(主和論)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만약 이때 성룡이 화의를 주창한 죄를 명백히 규정하지 않으면, 이해가 관계된 마당에 국시(國是)를 정하지 못할 뿐 아니라 흉적이 듣기라도 하게 되면 반드시 우리를 업신여기는 마음을 내어 결국 그들의 간사한 조짐을 꺾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성룡의 죄는 더욱 오늘날에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기구신(耆耉臣)이라 하여 엄히 다스리지 않으니, 천하 만세의 공론이 성명(聖明)을 어떻게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오늘날 국사가 날로 해이해지는 것이 어찌 성룡의 거취에 달려 있는 것이겠습니까. 성룡은 한갓 문묵(文墨)의 잗단 재주로 한 시대의 이목을 기만할 줄만 알았습니다. 설사 성룡이 가지 않고 지금까지 집정(執政)하였다 하더라도 국사가 오늘날 같이 해이하게 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들이 고집하면서 논계하여 마지않는 이유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속히 성명(成命)을 거두소서.

홍여순(洪汝諄)의 음험하고 탐욕스런 작태는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고 공론에 용납되지 못한 지 오랩니다. 그래서 항상 사분(私憤)을 품고 남을 해칠 것을 생각하다가 헌장(憲長)이 되자 일가 중의 부박한 사람을 사주하여 저격할 흉계와 도적질할 모책을 멋대로 자행하고 스스로 ‘간교한 술책을 부려 위세가 날로 치성해지면 온 조정 사람을 얽어서 모두 나의 수중에 넣을 수 있으니 누가 감히 나의 잘못을 비난하겠는가.’ 하였으니, 그 마음씨가 너무도 흉참스럽습니다. 이런데도 징계하지 않으면 훗날 청류(淸流)를 일망 타진하는 환란이 이루 형언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순이 사악을 자행한 정상에 대해 어찌 파직에만 그칠 수 있겠습니까. 죄는 중한데 벌이 가벼우니 공론의 격발은 당연한 일입니다. 삭직(削職)으로 논하는 것이 어찌 과중한 일이 되겠습니까. 대개 의론은 저울대와 같은 것이어서 가벼이 할 데 중히 하고 중히 할 데 가벼이 하는 것은 모두 확론(確論)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찌 전일 파직을 청한 것은 반드시 따르고 후일 삭탈을 추론(推論)한 것은 반드시 따를 수 없는 것이 되겠습니까. 이는 신들이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세 번 생각하시어 빨리 유음(兪音)을 내리소서.

구의강(具義剛)·홍식(洪湜) 등은 모두 신진(新進)들로서 자신이 간쟁의 반열에 있으면서 은밀히 여순(汝諄)의 사주를 받아 남을 모함할 흉계를 꾸미고 공론을 가탁하여 임금을 기망하고 사심을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과연 얼마나 큰 죄인데 언관(言官)이라고 핑계하여 치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이 고집하면서 이렇게 논란하는 것은 구구한 한두 사람의 처지를 위함이 아니라, 사림(士林)에게 화를 전가하여 훗날 차마 말하지 못할 화가 야기됨이 필시 이를 말미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기미가 이와 같아 관계된 바가 매우 중한데, 어떻게 이것을 하찮은 일이라 하여 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상께서는 늘 한두 사람의 일이라 하면서 살피지 않으시니, 신들은 민망한 마음을 견딜 수 없습니다. 파직시키고 서용하지 말 것을 명하여 인심을 쾌하게 해주소서."


  • 【태백산사고본】 71책 116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57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 / 군사(軍事) / 외교-왜(倭)

  • [註 118]
    진회(秦檜) : 남송(南宋)의 재상. 휘종(徽宗)·흠종(欽宗)과 함께 금(金)나라에 끌려 갔다가 고종(高宗) 때 귀국하여 금과의 화의를 주장하였고 악비(岳飛)를 살해하는 등 충신들을 모조리 제거하였다. 《송사(宋史)》 권473.

○兩司啓曰: "臣等昨承聖批, 敦諭丁寧。 臣等聚首相看, 不勝感激, 而臣等之惑滋甚焉。 自古小人之禍國家, 無世無之, 而至如主和誤國, 小人之尤者也。 秦檜, 主和議亡宋國, 故之君子皆欲擢髮而誅之, 天下後世, 亦欲誅之於旣骨, 其誤國之罪, 無古今一也。 成龍粉飾文墨, 久竊鼎軸, 貪權樂勢, 植黨行私, 忤志者排之, 媚己者進之。 士論之乖角, 朝着之傾軋, 無非此人之作俑也。 至如我國有園陵抔土之痛, 有生民魚肉之慘, 不與此賊俱生, 雖在三尺皆知, 而成龍忘不共之讎, 立赤幟之論, 揚臂倡和, 邪說復起, 士氣沮喪, 國勢削弱, 竟至壞了, 莫可收拾, 則其爲誤國之罪, 至此極矣。 讒人罔極, 搆我君父, 擧國臣民, 如入覆盆之下, 至痛深冤, 窮極天地, 而成龍於辨奏之擧, 非徒不自請行, 而反生窺避之計, 使朝天莫急之行, 終乃淹延, 則其忘君負國之罪, 至此尤大矣。 大臣負此罪惡, 則非徒殿下之罪人也, 抑亦宗廟社稷之罪人也。 成龍之罪惡, 前後狼藉, 而殿下之終始曲護, 何也? 今者賊書又至, 辭極悖慢。 此無非前日主和之論, 有以致之也。 若不於此時, 明正成龍首事之罪, 則非但利害當前, 國是靡定, 至於兇賊聞之, 必生侮予之心, 而無以逆折其奸萠矣。 成龍之罪, 尤非今日之所可貸, 而諉以耆耉, 不爲嚴討, 則天下萬世之公論, 未知謂聖明何如也。 況今國事之日益解弛者, 豈係於成龍之去就哉? 成龍徒知文墨小技, 以欺一世之耳目。 設使成龍不去, 至今執政, 國事能保其不至於今日之泄泄沓沓乎? 此臣等之論, 堅執不已者也。 請勿留難, 亟收成命。 洪汝諄猜險貪縱之狀, 國人之所共知, 公議之所不容久矣。 常懷私憤, 思欲射影, 及爲憲長, 敎唆一家浮薄之人, 輒肆狙擊之計, 恣行盜賊之謀, 自以爲奸術得售, 威勢日熾, 則可以籠絡擧朝之人, 俱入頤指之中, 而誰敢議己之非, 其爲設心, 吁亦慘矣。 此而不懲, 則他日網打淸流之患, 有不可勝言。 然則汝諄行胸臆之狀, 豈至於罷職已? 而罪重罰輕, 公議之激, 在所當然。 論以削職, 豈爲過重? 凡議論有如權衡低昻, 可輕而重, 可重而輕, 皆非確論。 然則豈以前日請罷其職, 爲必可從, 而後日追論削奪, 爲必不可從乎? 此則臣等之所未曉也。 請加三思, 亟賜一愈。 具義剛洪湜等, 俱以新進之人, 身居諫諍之列, 陰受汝諄之嗾, 輒逞構陷之計, 假托公論, 誣上行私。 此何等罪, 而其可諉以言官, 不之罪乎? 臣等之論列堅執, 至於如此者, 非爲區區一二人地也, 其嫁禍士林, 爲他日不忍言之患, 未必不由於是矣。 其機如此, 所關極重, 豈可以此爲幺麽之事, 而不之論乎? 聖上每以爲一二人之事, 而不加察焉, 臣等不勝憫鬱焉。 請命罷職不敍, 以快人心。"


  • 【태백산사고본】 71책 116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57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人事) / 사법-탄핵(彈劾) / 군사(軍事)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