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115권, 선조 32년 7월 22일 기사 3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이정구 등이 과거 합격자의 방을 인원이 많아 뒤늦게 걸게 되었음을 아뢰다
문과 일소 시관(文科一所試官)인 동지중추부사 이정구(李廷龜), 【총민한 성품에 문장을 잘했다. 또 화어(華語)에 능하여 중국 장수를 접견할 때 어전 통사(御前通事)로 활약했는데 말을 자못 분명히 전하였다. 이로 인해 당상(堂上)에 특진되었으나 명망은 본래 부족하였다. 】 행 호군(行護軍) 한술(韓述), 【사람됨이 용렬하고 또 음란, 패려한 행동이 있어 사류에게 천시를 받았다. 문명(文名)이 있다 한들 무엇을 취하겠는가. 】 호조 참의 정사호(鄭賜湖)가 아뢰기를,
"신들이 그저께 저녁 과차(科次)를 끝내고 어제는 이름을 개봉하였는데, 3백여 명이나 되는 많은 숫자라서 정리하다 보니 날이 저물어 입계(入啓)할 방목(榜目)을 미처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방을 걸었습니다. 이름을 개봉한 뒤에 밤을 지내는 것이 미안한 것 같았으나 사세가 이와 같아 부득이 그렇게 하였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71책 115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49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