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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15권, 선조 32년 7월 12일 기미 3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이광정·이충원·송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광정(李光庭)을 공조 판서로, 이충원(李忠元)을 한성부 판윤으로, 송준(宋駿) 【본래 학식이 없는데 시세로 인해 갑자기 뛰어올랐다. 급기야 옥당(玉堂)의 장(長)이 되어서는 더욱 적합하지 않다는 비난이 많았다. 】 홍문관 부제학으로, 성이문(成以文)을 병조 참지로, 김상용(金尙容) 【사람됨이 편벽되고 품성 또한 교만 방자하였다. 】 형조 참의로, 조정지(趙庭芝)를 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로, 김요립(金堯立)을 장악원 정(掌樂院正)으로, 김신국(金藎國) 【재덕(才德)이 없다. 】 사복시 정으로, 이사욱(李士郁)을 군기시 부정으로, 이빈(李馪)을 예조 정랑으로, 신율(申慄)을 병조 정랑으로, 이유홍(李惟弘)을 홍문관 수찬으로, 이성경(李晟慶) 【간사하고 아첨을 잘하여 시의(時議)에 붙었으며, 평소의 거취는 오직 염량을 살펴 정하였다. 】 예조 좌랑으로, 유담(柳潭)을 형조 좌랑으로, 박사제(朴思齊)를 예조 정랑으로, 홍우(洪遇)를 호조 좌랑으로, 윤길(尹) 【시류에 아첨하여 높은 반열에 올랐다. 】 형조 정랑으로, 강주(姜籀)를 예조 좌랑으로, 윤홍(尹宖) 【어버이에게 불효하여 인륜에 죄를 짓고 품성 또한 흉험하여 사림(士林)을 해쳤다. 】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으로, 김치(金緻) 【연소할 때부터 노성하다는 이름이 있었다. 】 시강원 설서로, 이구징(李久澄)을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로, 강홍립(姜弘立) 【교만 방자하고 행실이 없다. 】 함경도 도사(咸鏡道都事)로, 신감(申鑑) 【어리석은 자로서 기세를 부렸으므로 사람들이 많이 비웃었다. 】 평안도 평사(平安道評事)로, 이정경(李禎慶)을 함평 현감(咸平縣監)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71책 11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44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以李光庭爲工曹判書, 李忠元漢城府判尹, 宋駿 【素乏學識, 因時驟陞。 及長玉堂, 尤多不稱之譏。】 爲弘文館副提學, 成以文爲兵曹參知, 金尙容 【爲人偏隘, 性且驕妄。】 爲刑曹參議, 趙庭芝爲承文院判校, 金堯立爲掌樂院正, 金藎國 【無才德。】 爲司僕寺正, 李士郁爲軍器寺副正, 李馪爲禮曹正郞, 申慄爲兵曹正郞, 李惟弘爲弘文館修撰, 李晟慶 【奸邪便侫, 附托時議, 平生去就, 唯視冷暖。】 爲禮曹佐郞, 柳潭爲刑曹佐郞, 朴思齊爲禮曹正郞, 洪遇爲戶曹佐郞, 【媚事時輩, 得躋顯列。】 爲刑曹正郞, 姜籀爲禮曹佐郞, 尹宖 【事親不孝, 得罪人倫, 性又兇險, 狺噬士林。】 爲成均館典籍, 金緻 【自在年少, 有老成名。】 爲侍講院說書, 李久澄爲藝文館檢閱, 姜弘立 【驕妄無行。】咸鏡道都事, 申鑑 【愚而多氣, 人多笑侮。】平安道評事, 李禎慶咸平縣監。


    • 【태백산사고본】 71책 11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44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