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정·이충원·송준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광정(李光庭)을 공조 판서로, 이충원(李忠元)을 한성부 판윤으로, 송준(宋駿)을 【본래 학식이 없는데 시세로 인해 갑자기 뛰어올랐다. 급기야 옥당(玉堂)의 장(長)이 되어서는 더욱 적합하지 않다는 비난이 많았다. 】 홍문관 부제학으로, 성이문(成以文)을 병조 참지로, 김상용(金尙容)을 【사람됨이 편벽되고 품성 또한 교만 방자하였다. 】 형조 참의로, 조정지(趙庭芝)를 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로, 김요립(金堯立)을 장악원 정(掌樂院正)으로, 김신국(金藎國)을 【재덕(才德)이 없다. 】 사복시 정으로, 이사욱(李士郁)을 군기시 부정으로, 이빈(李馪)을 예조 정랑으로, 신율(申慄)을 병조 정랑으로, 이유홍(李惟弘)을 홍문관 수찬으로, 이성경(李晟慶)을 【간사하고 아첨을 잘하여 시의(時議)에 붙었으며, 평소의 거취는 오직 염량을 살펴 정하였다. 】 예조 좌랑으로, 유담(柳潭)을 형조 좌랑으로, 박사제(朴思齊)를 예조 정랑으로, 홍우(洪遇)를 호조 좌랑으로, 윤길(尹)을 【시류에 아첨하여 높은 반열에 올랐다. 】 형조 정랑으로, 강주(姜籀)를 예조 좌랑으로, 윤홍(尹宖)을 【어버이에게 불효하여 인륜에 죄를 짓고 품성 또한 흉험하여 사림(士林)을 해쳤다. 】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으로, 김치(金緻)를 【연소할 때부터 노성하다는 이름이 있었다. 】 시강원 설서로, 이구징(李久澄)을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로, 강홍립(姜弘立)을 【교만 방자하고 행실이 없다. 】 함경도 도사(咸鏡道都事)로, 신감(申鑑)을 【어리석은 자로서 기세를 부렸으므로 사람들이 많이 비웃었다. 】 평안도 평사(平安道評事)로, 이정경(李禎慶)을 함평 현감(咸平縣監)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71책 11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4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以李光庭爲工曹判書, 李忠元爲漢城府判尹, 宋駿 【素乏學識, 因時驟陞。 及長玉堂, 尤多不稱之譏。】 爲弘文館副提學, 成以文爲兵曹參知, 金尙容 【爲人偏隘, 性且驕妄。】 爲刑曹參議, 趙庭芝爲承文院判校, 金堯立爲掌樂院正, 金藎國 【無才德。】 爲司僕寺正, 李士郁爲軍器寺副正, 李馪爲禮曹正郞, 申慄爲兵曹正郞, 李惟弘爲弘文館修撰, 李晟慶 【奸邪便侫, 附托時議, 平生去就, 唯視冷暖。】 爲禮曹佐郞, 柳潭爲刑曹佐郞, 朴思齊爲禮曹正郞, 洪遇爲戶曹佐郞, 尹 【媚事時輩, 得躋顯列。】 爲刑曹正郞, 姜籀爲禮曹佐郞, 尹宖 【事親不孝, 得罪人倫, 性又兇險, 狺噬士林。】 爲成均館典籍, 金緻 【自在年少, 有老成名。】 爲侍講院說書, 李久澄爲藝文館檢閱, 姜弘立 【驕妄無行。】 爲咸鏡道都事, 申鑑 【愚而多氣, 人多笑侮。】 爲平安道評事, 李禎慶爲咸平縣監。
- 【태백산사고본】 71책 11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4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