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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13권, 선조 32년 5월 14일 신유 2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만 경리의 접반사 심희수가 아뢰다. 요사인의 주본

만 경리(萬經理)의 접반사 심희수(沈喜壽)가 아뢰었다.

"당초 회감(會勘)하는 일에 대해 전체 의논이 결정되었는데, 중군 팽우덕(彭友德)이 강 건너편에서 좇아와 양 경리(楊經理)의 공이 많이 제외되어 원통하다는 정상을 극력 진술하자, 양 과관(楊科官)도 상당히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뒤로 의논이 갈라져 오래도록 합당하게 되지 않아 연일 사본을 썼다 고쳤다 하였습니다. 대개 공죄를 사감(査勘)한 것은 대부분 실제대로 되지 않아 볼 만한 것이 없습니다.

이 기고(李旗鼓)가 역관에게 말하기를 ‘천조의 태감(太監)이 광산 개발과 점세(店稅) 문제로 금주위(金州衛) 지방에 나와서 가혹하게 수탈하며 갖은 못된 짓을 다하므로 저자 백성들이 원망과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행상 달자(行商㺚子)를 사주하여 태감을 꽁꽁 묶어 작은 우리에 가두고 출입하거나 음식도 들게 하지 않아 장차 굶주리고 목말라 죽게 되었으니, 매우 우습다. 일은 이렇게 되었지만 이것이 어찌 당신 나라에까지 미칠 리야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중국에서 환관을 보내 재물을 모으는 행위가 정당하지 못한 징수이긴 하지만 저자 백성들이 태감을 묶어놓고 꺼리는 바가 없었으니, 인심과 풍속이 극도로 한심합니다. 연방(椽房)에서 얻은 산동도 어사(山東道御史) 요사인(姚思仁)의 주본 1본을 베껴 올려보냅니다."

요사인의 주본은 다음과 같다.

"광산 개발과 점세(店稅)로 천하가 소란한데 이 일은 종묘 사직의 안위와 관계됩니다. 성명께서는 조정의 의논을 널리 채택하시어 빨리 정지령을 내림으로써 인심을 수습하고 국운을 유지하소서.

신들이 삼가 살피건대, 황상(皇上)께서 등극하신 지 20여 년간 백성을 상처난 사람 돌보듯 하시고 백성을 자식처럼 보호하셨으므로 천하가 바야흐로 간절히 태평성대를 바라며 불세출의 임금이라고 칭송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인이 이익을 말하여 성상을 미혹시키면서 처음 광세(礦稅)로 유도한 결과, 기보(畿輔)·산동(山東)·섬서(陝西)로부터 민월(閩越)·광동(廣東)·강서(江西)·절강(浙江)에 이르기까지 거의 다 채굴하였고, 점점 극변 요해지인 요동(遼東)까지 파급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점세(店稅)로 유도한 결과, 천진(天津)·임청(臨靑)으로부터 호구(湖口)·광월(廣粤)까지 세금을 거둬들였으며 점점 교화가 미치지 않는 면전(湎甸)까지 파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심산 유곡까지 파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심산 유곡까지 샅샅이 그물을 쳐 놓고 온 천하 대지 위에 함정을 파 놓은 뒤 장사하는 백성들의 골수를 착취하니 그들은 하소연할 길이 없고 무신(撫臣)·안신(按臣) 역시 가슴을 치고 분노하면서도 누구 하나 감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비는 그 아들을 보전하지 못하고 지아비는 그 아내를 보전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고금에 걸쳐 이러한 행동과 이러한 상황을 간직하고도 종묘 사직이 오래도록 편안하여 무사한 적이 있었습니까. 온 조정의 대소 신료들이 누차 상주하였어도 성지의 윤허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신들은 언관으로 있으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종묘사직이 근심되므로 삼가 국가 안위의 대계를 황상을 위해 극언하겠습니다.

근년 이래로 하늘이 노하고 사람이 원망하며 재물은 고갈되고 백성은 곤궁한데, 강회(江淮)사이엔 몇 년째 내리 큰물이 지고 양림(梁林)의 사이엔 천리 들판이 거북등처럼 갈라졌습니다. 인심이 흉흉하여 모두 난리 일으킬 생각만 하는 판에 광산을 채굴하고 점세를 징수하는가 하면 거기에 무변(武弁)으로 하여금 사태를 악화시켜 남의 집을 허물고 남의 무덤을 파헤치며 남의 재물을 빼앗고 남의 생명을 해치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장사꾼이 물건을 지고 저자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경우까지 있으니 도적보다도 심하다고 하겠습니다. 전하는 말에 ‘짐승이 궁하면 달려들고 백성이 궁하면 난리를 일으킨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불령한 천하의 간웅(奸雄)들이 모두 날뛰고 기세를 부려 틈을 타서 일어날 텐데, 기보에서 기병하면 천하의 복심이 위태하고 중원에서 기병하면 천하의 허리가 끊어지고 강회서 기병하면 천하의 인후가 끊길 것이고 강서·절강·민월·광동에서 기병하면 천하의 지체가 부러질 것이니, 순식간에 토붕 와해되고 말 것입니다. 황실 창고에 금은 보화가 하늘에 닿을 만큼 쌓였을지라도 국가의 멸망을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그리고 천하는 황상의 천하이고 인민은 황상의 인민입니다. 재물을 황실 창고에 쌓아놓은 뒤에야 황상의 재물이 되는 것도 아니고 비용을 황실 창고에서 가져다 쓴 뒤에야 황상의 비용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주역(周易)》에서 사람을 모으는 것을 재(財)라 하였고, 《대학(大學)》에서는 재물이 모이면 백성이 흩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녹대(鹿臺)에 재물이 모이자 은(殷)나라가 폐허로 되었고, 채장(彩藏)이 채워지자 한(漢)나라 사직이 위태해졌고, 경림(瓊林)에 재물이 쌓이자 당(唐)나라가 쇠퇴해졌고, 낙구(洛口)에 곡식이 가득차자 수(隋)나라가 멸망하였습니다. 고래로 역대의 군주가 악착같이 재물을 거두어들여 아침 저녁으로 액수를 헤아리면서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후세 자손을 위해 계획하였지만 그 자손은 한 푼도 써보지 못한 채 간웅·도적의 밑천으로 되고 말았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황상께서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재물이라는 《주역》의 가르침을 깊이 생각하고 백성이 흩어진다는 《대학》의 경계를 곰곰 되새기고 녹대거교(鉅橋)를 전철로 삼고 경림대영(大盈)을 거울로 삼으소서. 그리하여 광산개발·점세·시박(市舶)을 담당시키기 위해 파견한 여러 중사(中使)들을 전부 소환하시고, 체포되어 치죄된 군수·현령 등을 모두 관대히 용서하시고, 각부(閣部)의 대신을 불러 함께 정무를 보소서. 그리하면 떠났던 천명이 다시 돌아올 것이고, 원망하던 인심이 다시 기뻐할 것이며, 위태로왔던 종묘 사직이 다시 편안해질 것이니, 만세토록 끝없는 아름다움이 틀림없이 여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70책 11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19면
  • 【분류】
    외교-명(明) / 사법(司法) / 재정-잡세(雜稅) / 군사(軍事) / 광업-채광(採鑛)

    萬經理接伴使沈喜壽啓曰: "當初會勘之事, 一議乃定, 而中軍友德, 自越邊追到, 極陳楊經理功多見屈冤痛之狀, 楊科官亦頗動念。 自後議論携貳, 久未停當, 連日寫本, 旋寫旋改。 大槪査勘功罪, 類多失實, 無可觀者。 李旗鼓言於譯官曰: ‘天朝太監, 以開礦、店稅, 出來金州衛地方, 苛虐徵斂, 無所不至, 市民不勝怨苦, 指嗾行商㺚子, 將太監酷加綁縛, 禁小圈子裏, 不得出入飮食, 勢將飢渴而死, 極好笑。 事雖如是, 豈有進及爾國之理乎?’ 云云。 天朝遣中使聚財之擧, 雖出於非正之供, 而市民至於綁縳太監, 無所顧忌, 人心、風俗, 極爲寒心。 所得於(椽)〔掾〕山東道御史姚思仁一本, 謄書上送。"

    姚思仁一本: 礦店騷動宇內, 事關宗社安危。 懇乞聖明, 博採廷議, 亟賜停止, 以收合人心, 以維持國運。 臣等伏覩皇上御極二十餘年, 視民如傷, 保民如子, 天下方延頸, 以望太平, 頌爲不世出之主。 不意小人言利, 熒惑天聽, 始中于礦稅, 則歷畿輔、, 以至, 開採殆盡, 且侵淫及於極邊要害之遼東矣。 再中於店稅, 則自天津臨靑, 以至湖口廣粤, 榷稅且浸漬, 及於聲敎不到之(湎甸)〔緬甸〕 矣。 深山窮谷, 寸寸張羅, 普天率土, 步步開阱, 販夫販婦, 椎骨敲髓, 而無所控訴, 撫臣、按臣, 拊膺扼(惋)〔腕〕 , 而莫敢誰何, 父不能保其子, 夫不能保其妻。 從古及今, 曾有如此擧動, 如此景像, 而宗社得以久安無事者乎? 擧朝大小臣工, 連章累牘, 未蒙聖旨兪允。 臣等待罪言官,憂先宗社, 謹以安危之大計, 爲皇上極言之。 邇年以來, 天怒人怨, 財盡民窮, 間水潦連數年, 之間, 赤地千里。 人心洶洶, 皆欲思亂, 而開礦榷店之中, 使武弁, 又從而激之, 析人之室廬, 發人之墳墓, 奪人之財物, 戕人之性命。 甚至小民負物入市, 有徒手而歸者, 比之盜賊, 更有甚焉。 語曰: "獸窮則攫, 民窮則亂。’ 宇內奸雄不逞之徒,悉飛揚跋扈, 乘隙而起, 起于畿輔, 則天下之腹心傾, 起于中原, 則天下之要領絶, 起于, 則天下之咽喉斷, 起于, 則天下之肢體折, 土崩瓦解。 近在眉睫, 帑藏雖(債)〔積〕 , 金與天高, 亦何救於邦家淪喪乎? 且天下者, 皇上之天下也; 人民者, 皇上之人民也。 財不必積諸內帑而後, 爲皇上之財, 用不必取諸內帑而後, 爲皇上之用。 《周易》稱聚人曰財, 《大學》言財聚則民散。 故鹿臺聚而郊虛, 彩藏充而社危, 瓊林積而室衰, 洛口盈而祚滅。 古來世主, 其囊括箕斂, 早會夜計, 絲累銖積, 爲後世子孫計者, 其子孫曾不得一輪半通之用, 皆爲奸雄、盜賊之資藉而已。 伏願皇上, 深惟《周易》聚人之訓, 遠思《大學》民散之箴, 以鹿臺鉅橋爲覆轍, 以瓊林大盈爲氷鑑。 將前後所遣開礦、店稅、市舶諸中使, 悉皆取回, 逮治郡守、縣令等官, 悉從寬宥, 召閣部大臣, 與之共政。 庶幾天命去而復還, 人心怨而可悅, 宗社危而可安。 萬世無彊之休, 端在是矣。


    • 【태백산사고본】 70책 113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19면
    • 【분류】
      외교-명(明) / 사법(司法) / 재정-잡세(雜稅) / 군사(軍事) / 광업-채광(採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