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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12권, 선조 32년 윤4월 6일 갑신 1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유격 이천상을 접견하다

유격 이천상(李天常)이 왔다. 【수병(水兵)의 유격이다. 이덕형(李德馨)의 장계 내용에 탐욕스러워 일로에서 작폐한 자라고 한 인물이다. 사사로이 남방 백성을 시켜 자기 공을 칭송하게 하였으니, 그 사람됨을 알 만하다. 】 상이 시어소에 나아가 접견하였다. 천상이 말하기를,

"귀국이 8년 동안 침략을 당해 피해가 많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천조(天朝)의 힘을 의지하여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이외다."

하였다. 천상이 말하기를,

"조선은 대국의 속방이니 군대를 출동시켜 와서 구원한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지금은 동방의 일이 완료되었기에 속히 돌아가려고 하였는데, 고금도(古今島)에 있을 때 군민이 다 유임을 원했으므로 이제야 올라왔습니다."

하고, 진도 군수(珍島郡守) 선의문(宣義問)의 정장(呈狀) 1통을 내어 보이면서 말하기를,

"저는 털끝만치도 피해를 끼친 일이 없습니다. 뒤처리를 맡은 수병의 장수로 저와 계 유격(季遊擊)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계 유격은 부모의 상을 당해 장례를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만야(萬爺)에게 간청하여 이미 철수를 허락받았고, 제가 해상의 일을 전담하여 거제도와 남해도 사이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라올 때 보니 일로에 인기척이 하나도 없고 고을의 수령들이 다 산으로 도망가 버려 저도 며칠 동안 밥을 먹지 못했으니, 이와 같고서야 어떻게 일을 이루겠습니까? 【천상이 이르는 곳마다 침해와 포학을 일삼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소문만 듣고도 달아나 버렸다. 】 수병의 양식이 떨어진 지도 이미 오랩니다. 속히 군량을 발송하여 구제해 주십시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변방 신하로 하여금 독촉하여 운송하게 했소이다."

하였다. 천상이 말하기를,

"귀국의 풍토가 절강(浙江)보다 아름답고 농사짓는 풍습도 절강과 다른 점이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소국의 풍토가 어찌 절강과 비교나 되겠소이까."

하였다. 천상이 말하기를,

"제가 지난해 왜적과 싸울 때 죽을 뻔한 것이 여러 번이었으니, 어찌 오늘 다시 대왕을 뵐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당초 군문이 여러 장수의 말을 들어 순천(順天)에 일개 부대를 파송했더라면 행장(行長) 또한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석만자(石蔓子)는 저의 군영에서 사로잡은 것으로 다른 장수는 공이 없습니다. 천조에서도 가정(嘉靖) 35년에 귀국에 한 것과 다를 바 없이 왜적이 절강 변방을 침범하여 분탕질하고 살육을 자행하였습니다. 제가 영남과 호남의 토지를 보니 매우 비옥하였는데 몇 해만 경작하게 되면 반드시 회복될 것입니다. 왕께서는 백성들을 유념하여 부흥을 도모하십시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가르쳐 주시니 과인은 감격스럽기 그지없소이다."

하였다. 주례가 끝나고 상이 예물 단자를 증정하니, 받았다.

사신은 논한다. 난리 이후로 기강이 무너져 접대하는 즈음에 입시한 신하들이 권태로운 표정을 지은 자가 많았으며 용안을 지척에 대하고서 태연히 웃고 떠들어대었다. 우리 나라를 예의지국이라고 칭송하였던 것이 이에 이르러 쓸어버린 듯이 없어졌으니 한심하다고 할 만하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112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08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 군사(軍事)

    ○甲申/李遊擊 天常來, 【水兵遊擊。 李德馨狀啓中所謂貪婪一路作弊者也。 私敎南民, 使之稱譽己功, 其人可知。】 上御時御所, 接見之。 天常曰: "貴國八年被兵, 擾害多矣。" 上曰: "賴天朝之力, 保有今日。" 天常曰: "朝鮮爲大國屬藩, 發兵來救, 理所當然。 目今東事已了, 俺欲速回, 而在古今島時, 軍民皆願留, 故今始上來矣。" 因出珍島郡守宣義問呈狀一道, 示之曰: "俺未嘗有一毫擾害之事矣。 水兵善後之將, 俺與季遊擊當留, 而季遊擊以父母之喪, 未及成葬, 故懇乞于爺, 已準撤回, 俺當專管海上之事, 留住於巨濟南海之間。 俺之上來也, 一路人烟斷絶, 郡邑守宰, 皆登山逃走, 俺亦數日不食。 人心若此, 何以濟事? 【天常所至侵虐, 故民皆望風奔潰。】 水兵糧缺已久。 須速發糧餉以濟之。" 上曰: "已令邊臣, 催趲運送矣。" 天常曰: "貴國風土, 勝於浙江, 耕種之習, 亦與中無異。" 上曰: "小國風土, 烏得與浙江比乎?" 天常曰: "俺於上年, 與相戰, 幾死者屢。 豈料今日復見大王? 當初軍門若聽諸將之言, 派送一枝兵於順天, 則行長, 亦可擒矣。 石蔓子乃是俺營所獲, 他將無功矣。 天朝亦於嘉靖三十五年, 倭賊來犯邊, 焚燒殺戮, 與貴國無異。 俺見兩南土地甚沃, 若待數年耕種, 必致蘇復。 願王留念元元, 以圖恢復。" 上曰: "大人敎誨, 不穀不勝感激。" 酒禮訖, 上呈禮單, 受之。

    【史臣曰: "喪亂以後, 綱紀蕩然, 接待之際, 入侍之臣, 多有惰容, 威顔咫尺, 言笑自若。 我國之見稱禮義者, 至此掃地, 可謂寒心。"】


    • 【태백산사고본】 69책 112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608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