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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11권, 선조 32년 4월 21일 경오 3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함경 감사 윤승길이 자신의 직책을 바꾸어 줄 것을 아뢰다

함경 감사 윤승길(尹承吉)이 아뢰기를,

"신은 본디 무상한 자였는데 과분하게도 성상(聖上)의 보살핌을 입어 벼슬이 재상의 반열에 이르렀으므로, 항상 감격하고 두려워하여 나라 일을 맡아서는 오직 군부(君父)가 있는 줄만 알았지 제 몸을 생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전일에 관서(關西) 지방의 직임을 받았을 적에 스스로 감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당시 일이 어렵고 염려스러운 데다가 조정에서 쓸만한가를 시험하는 일이라 신자의 의리로서 먼저 사퇴하는 것이 옳지 않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직에 나아갔었습니다만 국은(國恩)에 대해 조금도 보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견책을 내리지 않았으나 하늘의 화(禍)가 갑자기 닥쳐 몸에 중병(重病)이 들자 백약(百藥)이 무효였습니다. 이리하여 어쩔 수 없이 상소로 체직시켜 주실 것을 아뢰자 특별히 윤허하심을 입고 시골로 돌아가 조용히 지내면서 조치(調治)한 결과 스스로 차도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이미 노쇠하였고 상해를 받은 것이 너무도 많으므로 수삼 년을 앓으면서 아예 회복되기는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필시 죽을 것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다시는 주상전하를 뵐 수 없겠기에 북쪽의 대궐을 바라보며 목이 메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질긴 목숨이 실날같이 끊어지지 않아 지난 가을부터 대세는 돌린 듯했으나 찬 기운이 오갈 적마다 일어나는 통증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습니다.

지난번 강동(江東)의 시골집에 있을 적에 감사(監司)의 이문(移文)에 ‘재신(宰臣)으로 외방에 머물고 있는 자를 해조(該曹)에서 불러 들이라.’는 명을 보고 놀라고 황공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때 일기가 매우 추웠는데 조금 찬 바람을 맞으면 곧 신음하며 앓게 되므로 10여 일을 지체하다가 비로소 길을 떠났으나 조금씩 올라오다 보니 벌써 여러 달이 경과하게 되었습니다. 나라 일이 바야흐로 급박한 때를 당해선 애쓰며 힘을 쏟지 못했고 명을 받은 뒤에도 다시 지연(遲延)하였으니, 신의 죄는 만번 죽어 마땅한데도 병으로 쓰러져 있는 중에 기용하여 북쪽 변방의 중임을 맡기셨습니다. 명을 들은 이래로 감격스러워 눈물이 먼저 흐르고 심신(心神)이 나간 듯하여 황공하고 조심스러워 몸 둘 곳을 모르겠으나 끓는 물에 뛰어들고 불을 밟는다 한들 또한 사양할 바가 아닙니다. 단지 신의 재능이 조금도 장점이 없고 지혜도 일을 요량하기에 모자라 지금같이 북방에 흔단이 생긴 때를 당하여 방면의 직임은 결코 감내할 수 없습니다. 일을 그르친 뒤에는 신이 비록 만번 죽는다 한들 이미 미칠 수 없으며, 더구나 신에게 병이 있음은 조정 신하들이 모두 알고 있으니, 신의 직책을 체직하고 감당할 만한 인물을 골라 제수시키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사직하지 말라. 마땅히 의논하여 처리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111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0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咸鏡監司尹承吉啓曰: "臣本以無狀, 濫蒙聖眷, 位至宰列, 尋常感懼, 當國唯知有君父, 而不知有身。 前者關西方面之寄, 自知不堪, 而時事艱虞, 朝廷試可, 臣子之義, 不宜先自辭退, 靦然冒據, 未效涓埃。 譴責不加, 天禍遽至, 身罹重病, 百藥無效。 不得已控疏乞遞, 特蒙恩許, 退伏村野, 靜處調治, 自謂差歇, 而年齡已衰, 受傷已多, 沈綿數三載, 蘇復無期, 自分必死。 不得更覩天日, 瞻望北闕, 不覺嗚咽。 幸而頑命不絶如縷, 自前秋大勢似歇, 而寒氣往來, 作痛之證, 至今未殄。 前在江東村舍, 伏見監司移文, 宰臣之在外者, 有自該曹召來之命, 驚惶罔措。 其時日氣寒甚, 少觸風冷, 輒至呻痛, 遲留十餘日, 始爲發行, 寸寸前進, 已經累月。 當國事方急之時, 旣不得奔走而致力, 承 命之後, 更致遲延, 臣罪萬死, 而起於病廢之中, 授以北關重寄。 聞命以來, 感淚先下, 心神飛越, 惶恐踧踖, 措身無地。 雖赴湯蹈火, 亦所不辭, 而第臣材無寸長, 智乏料事, 今當北塞有釁, 方面之任, 決非所堪。 誤事之後, 臣雖萬死, 已無及矣, 況臣之有病, 朝臣所共知。 請命遞臣職, 擇授可堪之人。" 傳曰: "勿辭。 當議處。"


  • 【태백산사고본】 69책 111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602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