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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10권, 선조 32년 3월 8일 정해 3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군문 접반사 노직이 대 중군의 말로써 아뢰다

군문 접반사 노직(盧稷)이 아뢰기를,

"대 중군(戴中軍)이 【대연춘(戴延春). 】 오늘 아침에 신을 불러 말하기를 ‘노야(老爺)가 경보(京報)를 보고 이르기를 「섬서(陝西)의 경왕(慶王)은 건청궁(乾淸宮)과 곤령궁(坤寧宮)의 건조를 위하여 공역(工役)을 돕고, 양응룡(楊應龍)은 토관(土官)인데도 코끼리를 바치고 금을 바쳤다고 하니, 조선도 외국으로 자처할 수는 없고 공역을 돕는 일이 있어야 할 듯하다. 」 하였다. 귀국이 전일에는 군량을 이어대느라 여가가 없었으나 이제는 이미 세상이 평온해졌으니 돕지 않을 수 없다.’ 하였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비변사에 말하여 회계하도록 하라."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한 문제(漢文帝)는 백금(百金)의 비용을 아껴 노대(露臺)를 짓지 않았고, 노(魯)나라의 사람이 장부(長府)를 개축하려 하니, 공자(孔子)의 제자인 민자(閔子)는 ‘옛 모습대로 두는 것이 어떻기에 굳이 개축하려 하는가.’ 하였다. 황제가 즉위한 지 30년에 안으로는 실정(失政)이 많았고 밖으로는 변방의 분쟁이 빈번하였으니, 건청궁과 곤령궁의 재변은 하늘의 인애(仁愛)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어찌 알겠는가. 두 궁이 이미 재변을 당하였으면 반드시 새로 지을 것은 없으며, 가령 부득이하여 새로 짓는다 하더라도 고금 천하에 어찌 궁실을 건조하면서 외번(外藩)에 도움을 요구한 일이 있었던가. 형개(邢玠)는 중국 조정의 노신(老臣)으로 명을 받들고 나왔으니 공순하지 않은 자를 치고 속국을 안정시켜 주는 것이 곧 그의 임무이다. 이제 큰 적이 갓 물러나 전쟁이 아직 수습되지 않았는데 세상이 평온해졌다는 것으로 구실을 삼아 공역을 돕도록 하려 하니, 이는 군주에게 토목(土木)의 욕구를 길러주고 외번이 공물을 사사로이 바치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다. 저 양응룡은 파주(播州)의 큰 도적으로 중국이 토벌하고 싶어도 못하는 자인데 이제 오히려 코끼리와 금을 바치면서 공역을 돕는다고 명목을 붙이니, 어찌 그 마음이 진정으로 중국에 충성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두어서이겠는가. 그런데 군문은 도리어 이것으로 천하에 과시하려고 하니, 아, 어리석도다.


  • 【태백산사고본】 69책 110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88면
  • 【분류】
    외교-명(明)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

    ○軍門接伴使盧稷啓曰: "戴中軍 【延春。】 今朝招臣言曰: ‘老爺見京報, 陝西 慶王, 爲乾淸坤寧營造助工, 楊應龍乃土官也, 亦獻象亦獻金。 朝鮮亦不可以外國自處, 似當有助工之事。 爾國前日則無暇於餉軍, 而今已乾淨, 不可不助’ 云。 敢啓。" 傳曰: "言于備邊司回啓。"

    【史臣曰: " 惜百金之費, 不作露臺, 人新長廐, 孔子曰: ‘因舊貫如之何, 何必改作?’ 皇帝卽位三十年, 內多荒政, 下多邊釁。 乾淸坤寧之災, 安知不出於上天仁愛之心也? 二宮旣災, 則不必新之, 假令不得已而新之, 古今天下, 安有營繕宮室, 而求助於外藩者乎? 邢玠以中朝老臣, 奉命出來, 討不庭綏屬國, 乃其責也。 今大賊纔退, 干戈未戢, 而乃諉以乾淨, 欲使助工, 是長人君土木之欲, 而啓外藩私獻之路也。 彼楊應龍, 播州劇賊, 中國欲討而不得者也。 今乃獻象獻金, 以助工爲名, 豈其心誠有忠愛於天朝者乎? 軍門反欲以此, 誇示天下, 嗚呼愚哉!"】


    • 【태백산사고본】 69책 110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88면
    • 【분류】
      외교-명(明) / 역사-사학(史學)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