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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09권, 선조 32년 2월 20일 경오 6번째기사 1599년 명 만력(萬曆) 27년

오종도의 게첩

오종도(吳宗道)의 게첩은 다음과 같다.

"군문 표하 좌영 도사(軍門標下坐營都司) 오종도는 머리 숙여 조선국 대왕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저보(邸報)를 읽다가 대왕께서 정 주사(丁主事)가 무함한 주본에 대해 변명하신 소장을 보건대 수천 년을 두고 속일 수 없는 충의가 일성(日星)처럼 빛나니, 조정의 문무백관들이 그 누가 허위로 떠든 독설에 분격해 하고 동쪽 나라에 악을 퍼뜨린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대신들이 회의한 글 중에 ‘정(丁)은 양심은 사라지고 혀만 살았다.’고 한 사람도 있고 또 ‘인면수심(人面獸心)으로 흉악함이 번개처럼 번득인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으니, 이는 참으로 교활한 자에 대한 단안(斷案)으로서 만년이 가도 변경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여우는 모래를 머금고 사람의 그림자를 엿보고 있다가 쏘아 죽이는 것이니 눈에 박힌 못을 뽑아버리지 않으면 동방이 어느 날 편할 때가 있겠습니까.

오종도가 보건대 대왕의 나라 형세는 마치 사람의 종양이 금방 터져 기혈(氣血)이 다 허한 것과 같으니 반드시 약성이 순한 삼출(參朮)053) 을 복용하고 양육(粱肉)054) 으로 보양하여 원기가 충실하게 해야 비로소 회복할 수 있으며, 만약 용렬한 의원이 약성이 강한 망초(芒硝)와 대황(大黃)을 잘못 투여한다면 필시 즉사할 것입니다. 대왕께서 보기에 지금 쓰고 계신 약은 과연 삼출과 양육입니까, 아니면 망초와 대황입니까? 그 이해(利害)가 몸에 핍절하여 생사가 즉시 결판이 나는 것인데 대왕은 어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종도는 귀국에서 일을 한 지 7∼8년 동안 대왕의 은혜를 받은 것이 누구보다도 깊은데 이제 경략 상공(經略相公)을 따라 서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며칠 후면 길을 떠나니, 이번에 이별하면 나중에 만나기란 기약하기 어려우므로 산천초목만 보아도 섭섭하여 차마 떠날 수 없습니다. 이별의 말씀으로 드릴 것은 와신상담을 잊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 미리 방비하는 일이 조금 소홀하시어 참소하는 말이 크게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대왕께서 문을 열어놓고 도적을 맞아들인다고 할 것이니, 제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종도는 게첩을 올립니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9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82면
  • 【분류】
    외교-명(明)

  • [註 053]
    삼출(參朮) : 인삼과 삽주뿌리.
  • [註 054]
    양육(粱肉) : 기장밥과 고기·기름진 음식.

軍門標下坐營都司吳宗道, 頓首拜朝鮮國大王殿下。 閱邸報, 見大王辨丁主事誣奏疏, 昭數千年忠義, 炳如日星, 擧朝文武臣工, 孰不憤讐舌之簧鼓, 而愧流惡於東海之波也? 玆會議疏中, 有謂之心死舌存者; 有謂其人面獸心, 閃爍如電者, 此眞狎邪之斷案, 可垂萬代而不刊。 然短蛌含沙, 窺影射人, 眼前之不拔, 東方何日可安枕也? 試觀大王之國勢, 如人之病疽方潰, 氣血兩虛, 必須服之以參朮, 養之以粱肉, 使元氣充實, 方可作用。 使庸醫, 誤投以芒硝、大黃之劑, 必立死矣。 大王見今日之藥, 果參朮、粱肉乎? 芒硝、大黃乎? 利害切身, 生死立判, 大王胡可以視之乎? 行役貴邦七八霜, 許沐大王之恩, 最深厚。 今隨經略相公西歸, 啓行有日。 自玆別去, 後會難期, 雖見山川草木, 亦覺依依不忍舍也。 贈以別言, 莫忘薪膽。 不然, 將陰雨之防少疎, 而讒口罔極, 則人將謂大王開門而揖盜矣。 幸惟盛亮。

吳宗道揭帖。


  • 【태백산사고본】 68책 109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582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