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로 가서 도승지 윤돈 등을 인견하고 담소하다
상이 막차에서 도승지 윤돈(尹暾), 우승지 남이신(南以信), 우부승지 송순(宋諄), 동부승지 이상의(李尙毅)를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주문은 중국 및 우리 나라에서 전고에 없던 큰 거조이니 신중히 다루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접반사의 말이라 하지 아니하고 순찰사와 병사의 말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하니, 윤돈이 아뢰기를,
"순찰사 및 병사는 정벌을 맡은 장관이므로 들어서 말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석만자(石曼子)에 대한 말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말한 것인가?"
하니, 윤돈이 아뢰기를,
"신이 이충원(李忠元)에게서 들으니, 석만자에 대해서는 앞뒤 장계에서 모두 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판서의 말이 옳다. 나도 심안도(沈安道)가 있음은 아나 석만자가 있음은 모른다. 군문은 늘 석만자가 싸우다가 사로잡혔다고 하는데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하겠다. 그리고 문자(文字)를 어찌 이와 같이 자주 고친단 말인가. 무릇 일을 너무 자주 고치면 반드시 잘못 되게 되는 법이다."
하니, 윤돈이 아뢰기를,
"자주 고친 까닭으로 문자가 형편이 없어지고 말이 중첩되었으니 신이 볼 때에 좋지 않은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무릇 문서란 뜻이 위주요, 문자는 다음이다. 왜적이 비록 건너갔으나 승첩을 거두지 못하였으니 군문이 비록 이 말을 집어넣고 싶어하나 쉽사리 말할 수는 없다. 이번의 일은 극히 황당스럽다. 급사(給事)가 이곳에 오기는 했으나 아직 질관(質官)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더구나 조정이 어떻게 자세히 알겠는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방언(方言)으로 말하면 우리 나라가 안고 눕는 격이 될 것이다. 내가 문자에 있어서는 비록 모르나 뜻만은 알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하니, 윤돈이 아뢰기를,
"신의 소견으로는 그 뜻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빗나간 논의가 떠들썩하다고 했는데, 이 말도 남에게 미움을 사는 말이다. 어찌 문장을 잘 꾸미기에 적당한 말이 없겠는가. 중조의 권세를 잡고 있는 신하 가운데에도 주화자(主和者)가 많은데 반드시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하니, 남이신이 아뢰기를,
"어제 병부의 제본을 보니, 우리 나라를 감죄(勘罪)에서 면제시키는 일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제본을 보니 뜻은 좋다. 다만 ‘금번의 승첩은 정(丁)의 공이다.’고 하였으니, 이 말이 매우 해괴하다. 이는 양쪽 모두를 좋게 하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론(正論)은 이와 같지 않으니 이는 황상을 기망하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정응태(丁應泰)는 관적(官籍)을 회수하라는 명이 있어 들어갔으나 급사의 경우는 현재까지 관적을 회수하라는 명이 없는데도 어째서 들어갔는가?"
하니, 윤돈이 아뢰기를,
"급사는 군문의 탄핵을 입었으니 반드시 이 때문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동정(東征)에 대한 곡절을 반드시 중조로 하여금 분명히 알게 하는 것이 옳다. 조정에서는 승첩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으나 저 왜적은 강화 때문에 물러갔으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반드시 뒤탈이 있을 것으로 일이 매우 곤란하다."
하니, 윤돈이 아뢰기를,
"중원 사람은 비록 군졸같이 천한 자라 하더라도 우리 나라의 군병과 같이 어리석고 무지하지 아니하여 능히 문자를 해석하고 시비를 정확히 판단하며 사대부와 연결되어 있는 자도 더러 있으니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중조의 장관을 따라나온 자 가운데에는 양 경리(楊經理)나 심 유격(沈遊擊)의 하인들도 많아 반드시 이쪽의 일을 듣고 있을 것이므로 덮어두기는 곤란할 듯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번의 주문(奏文)은 반드시 십분 상의하여 하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8책 108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64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軍事) / 외교-명(明)
○上於幕次, 引見都承旨尹暾, 右承旨南以信、右副承旨宋諄、同副承旨李尙毅。 上曰: "今此奏文, 是天朝及我國前古所無之大擧措, 不可不愼。 且不曰接伴使之言, 而以巡察兵使之言爲之, 何耶?" 尹暾曰: "巡察及兵使, 專征伐之官, 故擧而言之也。" 上曰: "石蔓子之言, 何所據而言之乎?" 尹暾曰: "臣聞李忠元之言, 石蔓子之言, 前後狀啓, 皆不爲此言云矣。" 上曰: "判書之言是矣。 予亦知有沈安道, 而不知有石蔓子也。 軍門每稱石蔓子, 戰而被擒云, 予未知其意。 且文字則何如是數改乎? 凡事數改, 則必至誤改。" 尹暾曰: "以數改之故, 文字破碎, 一言重疊。 以臣見之, 似爲不好矣。" 上曰: "凡文書, 意爲主, 而文字次之。 倭雖渡去, 而未得勝捷, 軍門雖欲入此言, 不可易以爲言。 今番之事, 極爲荒唐。 給事來此地方, 亦未悉質官之意也。 況朝廷豈能詳知? 未知前頭, 當有何事, 以方言言之, 我國抱而臥之矣。 文字則予雖不知, 意思則可知矣。 予不知其可也。" 尹暾曰: "以臣所見, 意甚不好矣。" 上曰: "橫議紛挐云, 此言亦見憎於人之言。 豈無措辭可贊之言乎? 天朝執權之臣, 亦多主和者, 必不好見矣。" 南以信曰: "昨見兵部題本, 以我國免勘之事爲言矣。" 上曰: "觀此題本, 意則好矣, 但云: ‘今番勝捷, 未必非丁之功’ 云, 此言極爲駭愕。 是不過兩好之言。 然正論則不如是也, 是不過欺罔皇上之言也。 且丁應泰則有回籍之命, 故入去矣, 給事則時無回籍之言, 而何以入去乎?" 尹暾曰: "給事被軍門參奏, 必以是入去矣。" 上曰: "東征曲折, 必使天朝洞知可也。 朝廷則以專捷知之, 彼賊以講和退去, 此不是細事。 必有後尾, 事甚難矣。" 尹暾曰: "中原之人, 雖軍卒賤輩, 非如我國軍兵, 蠢蠢無知者, 能解文字, 的知是非, 或有與士大夫相結者, 甚可畏也。 且中朝將官隨來者, 或多楊經理下人, 或有沈遊擊下人, 必打聽此間之事, 恐或難掩也。" 上曰: "今此奏文, 必須十分商議爲之。"
- 【태백산사고본】 68책 108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64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군사(軍事) /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