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의정 이덕형이 유 제독의 전투 상황에 대해 치계하다
좌의정 이덕형(李德馨)이 치계하기를,
"유 제독(劉提督)이 수군(水軍)에게 5∼6일분의 식량을 지급하여 순천(順天)으로 전진할 것을 재촉하였습니다. 이에 신이 김수(金晬)·권율(權慄) 등과 계책을 물었더니, 제독이 말하기를 ‘2일이나 3일에 이곳의 병마(兵馬)를 출발시켜 순천 근처에 나아가 주둔하여 그곳에 있는 병마와 합세하라. 나는 하루나 이틀 지나 장비를 검열하고 사체(事體)를 헤아려 수군과 거병을 약속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반드시 장비를 완비하고 계책을 결정하여 수군과 육군이 일제히 거병한 후에야 적의 성 밑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소인이 보건대 수군이 왜적을 죽이지 못하자 마음이 사그러진 재와 같이 생기가 없으니, 삼군(三軍)의 사기를 진작시키기를 마치 임회왕(臨淮王) 이광필(李光弼)이 호령을 고치듯이210) 하고 정기(旌旗)와 벽루(壁壘)도 모두 새롭게 해야 재거(再擧)를 말할 수 있다.’ 하니, 제독이 ‘그때에는 왜적을 위협하여 추격하여서 성밑까지 쫓아 들어가려고 한 것이고 성을 공격할 계획은 하지 않았다. 지금 만약 나아가지 못한다면 마땅히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하였습니다. 제독이 말은 이렇게 하여도 일처리하는 것을 보면 한결같이 교만하고 경솔하며 돈과 여자를 좋아할 뿐입니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은 그를 하찮게 여겨 두려워 하지 않고 있으니 더욱 염려스럽습니다. 이방춘(李芳春)과 우백영(牛伯英) 등의 경우는 더욱 싸우려는 뜻이 없어서 늘 적의 진을 뒤에 두고 진군(進軍)하기가 불편하다고 말하여 의심하는 마음을 부추기고 또 남원(南原)에서 거느리던 기생을 진중으로 데리고 왔으므로 편장(褊將)과 군사들도 다투어 여자를 데리고 다녀 진중이 문란하기 비길 데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싸우려 하지 않고 전쟁에 임하여 후퇴하고 겁내는 모습을 신이 일찍이 도산(島山)에서 보았습니다. 이는 모두 대장이 계획을 정하지 않고 법이 엄격하지 않은 까닭이니 보기에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제독이 또 소서행장(小西行長)을 유인하기 위하여 섭춘(葉春)으로 하여금 왕래케 하였는데, 섭춘은 바로 전일 마 제독(麻提督)이 데리고 온 항왜(降倭)로서 불러내자 바로 도망나온 자입니다. 항왜 중에서 몹시 간사하고 충성스럽지 못하므로 신이 믿기 어렵다는 정상을 진술했더니 제독은 조금도 수긍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저녁에 주돈길(周敦吉)이 순천에서 돌아와 섭춘에 대해 말하니 방춘(芳春)도 크게 꾸짖으며 제독의 실수를 탄식하였습니다. 요즘 도망하여 돌아온 사람들의 진술에 의하면, 소서행장(小西行長)은 중국 군대가 철수한 뒤로 심하게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뜻이 있고, 수군과 육군이 합세하여 다시 진격하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남해의 일로 진 도독(陳都督)에게 은밀히 고하였더니, 도독이 신의 말을 옳게 여겼지만 그래도 순천을 먼저 공격해야 한다고 하면서 신의 군관(軍官)을 불러 조용히 재거(再擧)할 뜻을 말하기를, ‘나는 다시 왜적의 성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유모(劉某)가 약속을 어기고 싸우지 않으면, 내가 조그마한 배를 타고 가서 유모의 머리를 벤 다음 반드시 행장을 죽이겠다.’고 했다 합니다. 왕 안찰(王按察)은 신에게 수군과 함께 속히 남해를 도모하라고 하므로 신이 손문욱(孫文彧)과 남해에서 나온 사람을 진 도독에게 보내어 은밀히 모의하여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啓下)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7책 106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29면
- 【분류】외교(外交)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윤리(倫理) / 역사(歷史)
- [註 210]임회왕(臨淮王) 이광필(李光弼)이 호령을 고치듯이 : 당 숙종(唐肅宗) 시대에 시어사(侍御使)인 최중(崔衆)이 절도사인 왕승업(王承業)을 깔보자 이광필은 평소 좋지 않게 여겼는데, 마침 최중의 군사를 이광필에게 합치라는 조서(詔書)가 있었다. 최중이 본래 거만하여 이광필을 보자 읍(揖)만 하고 즉시 군사를 합치지 않으니 광필이 성이 나서 최중을 포박하였다. 마침 사신이 조서를 가지고 이르러 최중을 어사 중승(御史中丞)에 제수하려고 하자, 이광필이 "최중은 죄가 있어 이미 포박하였으니 지금 다만 시어사의 목을 베겠다. 만약 사신이 조서를 선포하면 어사 중승의 목을 베겠다."고 하니, 사신은 조서를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자 광필이 최중의 목을 베어 조리를 돌리니 위엄이 삼군(三軍)에 떨쳤다. 《당서(唐書)》 권116.
○左議政李德馨馳啓曰: "劉提督催給水兵五六日糧餉, 前進順天。 臣與金睟、權慄等, 問計之所出, 提督說道: ‘初二三, 發此兵馬, 進箚于順天近處, 與在彼兵馬合勢。 我則過一兩日, 督備檢牌, 商量事體, 與水兵約擧’ 云。 臣說道: ‘器具必備完, 計策必決定, 水陸一擧, 然後進逼城下可矣。 小的見水兵不得殺賊, 心如死灰, 三軍之氣必振作, 如李臨淮之改號令, 旌旗、壁壘, 亦爲一新, 可言再擧也。’ 提督說道: ‘彼時, 仍哄他而追, 趕入城下, 不爲攻城計矣。 今則譬不得前, 當以死戰’ 云。 提督言雖如此, 而行事則一驕輕好錢婦人耳。 諸將狎而不怕, 尤爲可慮。 如李芳春、牛伯英等, 尤無鬪志, 每言賊砦之難後, 進兵不便, 以撓其狐疑之心。 又帶南原所率娼來陣上, 故褊將及軍兵, 亦爲爭畜女人, 陣中紊亂無比。 此人之不欲戰, 而臨陣退怯之狀, 臣曾於島山見之。 此皆由大將計不定法不嚴之所致, 而所見痛心。 提督亦哄行長, 令葉春往來, 葉春卽前日麻提督帶來降倭, 而招引逃出者也。 降倭中甚詐而不忠, 臣陳其難信之狀, 則提督甚不肯。 昨夕, 周敦吉自順天回, 語葉春, 芳春亦爲大罵, 嘆恨提督之錯處。 近據走回人等供稱, 行長於天兵撤回之後, 深有疑怕之意, 海南之賊, 先送其妻子, 放賣牛馬云。 水陸若合勢再進, 則可以得志。 臣以南海事, 密諭於陳都督, 都督以臣言爲然, 而猶以順天爲先, 招臣軍官, 從容語以再擧之意, 而我則再進攻城, 劉某違約不戰, 則我乘一小船, 先斬劉某頭, 而必殺行長云。 王按察令臣與水兵, 速圖南海, 故臣遣孫文彧及南海出來人於陳都督, 使之密謀處置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67책 106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529면
- 【분류】외교(外交) / 재정(財政) / 군사(軍事) / 윤리(倫理) / 역사(歷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