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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104권, 선조 31년 9월 21일 계묘 3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찬획 주사 정응태의 주본 내용의 진위를 밝히도록 지시하다

찬획 주사(贊畫主事) 정응태(丁應泰)의 한 주본(奏本)에,

"속번(屬藩)의 간사함은 증거가 있고 적당(賊黨)의 떼지은 음모는 이미 드러났습니다. 신이 협강(夾江)중주(中洲)에 행차하여 콩과 기장이 무성한 것을 보고 길가는 요동(遼東) 사람에게 물었더니, ‘이곳은 기름진 땅이어서 수확이 서쪽 지방보다 몇 배나 된다. 전년에 조선이 요동 백성과 쟁송(爭訟)하자, 요동 도사(遼東都事)가 여러 차례 단안(斷案)을 내렸는데, 조선 사람들이 불평을 가지더니 만력(萬曆)153) 20년154) 에 끝내 저들 나라에 세거(世居)하는 왜인을 사주, 제도(諸島)의 왜노(倭奴)를 불러 군사를 일으켜서 함께 천조(天朝)를 침략함으로써 요하(遼河) 동쪽을 탈취하여 고구려의 옛 지역을 회복하려 하였다.’는 등의 말을 하기에, 신은 놀라움과 괴이함을 금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이 정주(定州)에 행차하였더니 신을 수행하는 자가 두어 자[尺]의 베[布]를 가지고 조선 백성에게 묵은 책과 포장한 음식물을 바꾸었는데 그 책 이름이 《해동기략(海東紀略)》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조선이 왜(倭)와 교제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었는데 병술년155) 으로부터 수린(壽藺)을 보내어 국서(國書)와 예물(禮物)을 싸가지고 일본 살마(薩摩)의 제주(諸州) 및 대마도의 제군(諸郡)과 제포(諸浦)를 통하게 하였습니다. 혹은 도서(圖書)156) 를 받아 해마다 왜선(倭船)을 통하여 무역(貿易)할 것을 약속하기도 하고 혹은 조선의 쌀과 콩을 받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명주 1천 필(疋)과 쌀 5백 섬을 이세수(伊勢守)에게 바쳐 일본에 전달(轉達)하기도 하였으니, 이는 모두 헌납(獻納)하거나 무역한 증거입니다. 또 국왕과 여러 추장(酋長)의 사선(使船)이 정해진 수효가 있고 여러 사신을 접대하는 데 정하여진 규례(規例)가 있습니다. 왜관(倭館)의 사신이 타는 배에 대한 크기와 선부(船夫)는 일정한 규격과 정원이 있고 도서(圖書) 발급을 맡은 관직이 있으며, 맞이하고 연회(宴會)하는 데 정하여진 격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황(天皇)의 세계(世系)와 국왕의 세계 및 정령(政令)·풍속 등이 낱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사신에 부탁하여 유구(琉球)까지 통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도설(圖說)을 살펴보니 웅천(熊川)·동래(東萊)·울산(蔚山)에는 항상 거주하는 왜호(倭戶)가 2천 여 호이고, 전산전(畠山殿) 부관(副官)의 서계(書契) 가운데 국왕과의 화친을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이를 가지고 보면 명주와 쌀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있으며 왜적을 불러 들여 땅을 회복하려 한다는 말을 빈 말이 아닙니다. 관백을 대단찮은 추장으로 여기고 불러들인 것인데 그러한 헛점을 이용하여 드디어 일거(一擧)에 조선을 습격하여 격파하였으니 이는 조선의 군신(君臣)이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은 삼경(三經)을 익혔으므로 이미 춘추 대의(春秋大義)를 알 것이므로 당연히 천조의 정삭(正朔)157) 을 삼가 받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또 일본의 강정(康正)·관정(寬正)·문명(文明) 등의 연호를 따라 크게 썼습니까. 또 작은 글자로 천조의 영락(永樂)·선덕(宣德)·경태(景泰)·성화(成化) 등의 기년(紀年)을 일본 기년의 아래에 두 줄로 나누어 썼으니, 이는 일본을 높이 받드는 것이 천조보다 훨씬 더한 것입니다. 그런데 글에는 또 태조·세조·열조(列祖)의 성상(聖上)을 참칭(僭稱)하여 감히 천조의 칭조(稱祖)·존상(尊上)과 같이하였으니, 저들이 2백년 간 공순(恭順)한 의리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러나 황상께서 이것으로 조선을 문책하여 저들 군신이 무슨 말로 답변하는지를 시험하소서. 더구나 그들은 글을 꾸며 중국의 선대 제왕을 헐뜯고 욕하였습니다. 그 한 서문(序文)을 보면 저절로 그 대략이 드러나니 조선의 임금과 신하가 중국을 가볍게 업신여긴 지가 이미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왜적을 불러 흔단을 일으켜 스스로 병화(兵禍)를 자초해 놓고는 억지로 분(憤)을 내어 구원을 요구하면서 걸핏하면 사절(死節)을 일컬으므로, 우리 황상께서는 작은 나라를 은혜로 보살펴 창고를 열고 군사를 파견, 이미 전 국토를 다시 찾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또 고집스럽게 예문(禮文)을 다투어 황상께 동방을 돌보도록 하는 걱정을 끼침으로써 또 스스로 안일(安逸)에 젖어 천조에 재앙을 떠넘기니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저 방군(邦君)이 무도하면 육사(六師)158) 를 발동하는 것은 삼대(三代)의 변함없는 대법(大法)입니다. 지금 조선 국왕 【성휘(姓諱). 】 이 신민(臣民)에게 포학(暴虐)하고 주색(酒色)에 빠져 있으면서 감히 왜적을 꾀어 침범하게 하여 천조를 우롱하였고, 다시 양호(楊鎬)와 한 패가 되어 떼 지어 천자를 속였습니다. 우리 황상께서는 너그럽고 인자하여 차마 토벌하여 베지 아니하나 천감(天鑑)과 조상의 혼령이 반드시 넋을 빼앗고 그 후손을 끊어 버릴 것입니다. 도독(都督) 형개(邢玠)와 감찰 어사 진효(陳效)가 제독(提督) 마귀(麻貴) 및 사도(司道)·장령(將領) 등의 관원과 함께 어찌하여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오늘은 계책을 상의(商議)하여 소(疏)을 올려 한통속으로 속이고 내일은 사람을 시켜 보류(保留)하도록 하여 사정(私情)을 따르며 잘못을 감싸주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몰래 국왕을 꾀어 배신(陪臣) 이원익(李元翼)을 차출하여 보류하도록 상소하여 양호의 공덕을 창송하게 하였으며, 크게 교활한 허국위(許國威)는 그런 풍조를 본받아 멋대로 붓을 휘둘러 억지로 제장(諸將)의 연명(連名)을 받아 주소(奏疏)하여 양호를 칭송하였습니다. 바라건대 진무사(鎭撫司)에게 명하여 당적(黨賊) 허국위팽우덕(彭友德), 그리고 배신 이원익 등을 법에 따라 국문, 내력을 끝까지 캐어 명백하게 하소서. 그렇게 되면 뭇 간신들이 국가의 권력을 농락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이 이제 조선에 있으면서 간사하게 속이는 것을 들춰냈으니 간사한 자들이 또 조선의 임금과 신하를 의혹시켜 산으로 오르거나 바다로 들어가야 된다는 말을 하여 사람들의 귀와 눈을 놀래게 할까 걱정됩니다. 그러나 저 조선 국왕은 봉작(封爵)이 있고 땅이 있는데 차마 대대로 지키던 나라를 버리고 망명(亡命)의 무리를 답습한다면 앞으로 어디로 가겠습니까. 이는 지혜로운 사람은 유혹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황상께서는 신(臣)이 아뢴 것과 아울러 바친 《해동기략》을 조정의 신하에 내려 공변되게, 평의(評議)하도록 명하소서. 조선의 임금과 신하는 왜(倭)와 끊었다면서 중국을 우롱하지 않았는지, 형개·진효·마귀 등은 정(情)을 따라 한 통속으로 속인 것은 아닌지, 사사로움을 따라 잘못을 감싸는 것은 아닌지를 조사하면 여러 패거리의 간사한 꾀가 절로 여러 사람의 눈을 가리거나 공론(公論)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그에 대한 성지(聖旨)는,

"아뢴바 조선이 은폐(隱蔽)한 사정을 차출해 보낸 과신(科臣)으로 하여금 긴급하게 아울러 조사하게 하라고 전에 여러 번 엄지(嚴旨)를 내렸다. 동방의 일은 조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날에 공죄(功罪)가 스스로 밝혀질 것이므로 정응태는 다시 번거롭게 진언(進言)할 필요가 없다. 아뢴 내용 중 왜(倭)에 관한 일이 사실인지의 진위(眞僞)와 일체의 전쟁에 관한 기밀 조치를 형개·진효·정응태·서관란(徐觀瀾) 등이 모든 혐의를 제거하여 마음을 비우고 회의해서 거행하되 힘써 국사(國事)를 중하게 여기어 피차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하라. 현재 추방(秋防)이 긴급하고 부(部)의 사무가 번잡하니 소대형(簫大亨)은 안심하고 봉직(奉職)하라. 쓸데없는 분분한 말은 모두 허락하지 않는다. 인하여 만세덕(萬世德)을 재촉하여 일정을 단축해서 나아가 경리하게 하라. 해부(該部)에 알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6책 104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49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왕실-국왕(國王)

  • [註 153]
    만력(萬曆) : 명나라 신종(神宗)의 연호.
  • [註 154]
    20년 : 1592 선조 25년.
  • [註 155]
    병술년 : 1586 선조 19년.
  • [註 156]
    도서(圖書) : 일본의 사자(使者)가 우리 나라에 입국(入國)할 때 제시하여야 하던 입국 허가증. 대마 도주(對馬島主)나 일본의 추장에게 내려준 동인(銅印)으로 모든 왕복 문서나 입국자에게 이것을 찍어 신빙의 표신(標信)으로 삼았다.
  • [註 157]
    정삭(正朔) : 역법(曆法).
  • [註 158]
    육사(六師) : 천자의 군대.

○贊畫主事丁應泰一本:

屬藩奸有據, 賊黨朋謀已彰事。 臣行次夾江 中洲, 見豆、黍豐茂, 詢之遼人在途者, 曰: "此膏腴地, 收穫數倍西土。 先年, 朝鮮民爭訟之, 都事屢經斷案, 鮮人不平, 萬曆二十年, 遂令彼國世居戶, 往招諸島倭奴, 起兵同犯天朝, 奪取遼河以東, 恢復高麗舊土。" 等語, 臣不勝駭異。 臣行次定州, 而臣從役, 以布數尺, 換民舊書, 包(裏)〔裹〕 食物, 書名《海東紀略》, 乃朝鮮交好事實也。 自丙戌年, 遣壽藺, 齎書、禮, 達日本 蕯摩諸州及對馬島諸郡、諸浦, 或受圖書, 約歲通船互市, 或受朝鮮米、豆, 至納紬布千匹、米五百石于伊勢守, 轉達日本, 皆獻納互市之實跡也。 且國王、諸酋使船有定數, 接待諸使有定例。 倭館使船大小、船夫有定額, 給圖書有職掌, 迎候供宴有定儀。 復詳其天皇世係、國王世係, 與夫政令、風俗, 歷歷指掌。 且假日本之使, 而通給(流球)〔琉球〕 。 又按其圖說, 而熊川東萊蔚山, 其恒居戶二千有奇, 畠山殿副官書契中, 明言國王和親。 由是觀之, 紬、米之說有據, 而招復地之說, 非虛語也。 不謂關白雄酋, 乃因其招而乘其敝, 遂一擧而襲破其國, 則君臣之自貽〔伊〕 戚也。 朝鮮應科人習三經, 則旣知《春秋》大義, 當謹奉天朝正朔。 何爲又從日本 康正寬正文明等年號而大書之? 且小字分書永樂宣德景泰成化紀年于日本紀年之下, 則是尊奉日本, 加于天朝甚遠, 而書又僭稱太祖世祖、列祖聖上, 敢與天朝之稱祖、尊上等。 彼二百年恭順之義謂何, 而皇上試以此, 責問朝鮮, 彼君臣將何說之辭? 況其舞文, 訾辱中國先代帝王, 卽其一序, 已自槪見, 朝鮮君臣輕藐中國, 已非一日。 招構釁, 自啓禍戎, 而剛憤求援, 動稱死節, 我皇上恩勤字小, 發帑遣師, 已復還全土界(之)矣。 乃又固爭禮文, 再厪皇上東顧之憂, 且自偸安逸, 移禍天朝, 不知何所底極。 夫邦君無道, 六師移之, 三代不易之大法也。 今朝鮮國王 【姓諱。】 暴虐臣民, 沈湎酒色, 乃敢誘入犯, 愚弄天朝, 復與楊鎬結黨, 朋欺天子。 卽我皇上寬仁, 不忍遽加誅討, 而天鑑祖靈, 必奪其魄, 而斬其後矣。 督臣邢玠、按臣陳效, 與提督麻貴, 以及司道將領等官, 何乃未勘之先, 今日商計一疏, 扶同欺罔, 明日令人保留, 徇私曲庇? 旣陰誘 【姓諱】 差陪臣李元翼, 上疏保留, 訟功德, 大猾許國威, 承望風旨, 恣逞刀筆, 强寫諸將, 連名奏疏, 稱訟楊鎬。 乞勑鎭撫司, 將黨賊許國威彭友德及陪臣李元翼等, 依律鞫問, 窮究來歷明白, 則群奸不得倒持國柄矣。 臣今居發奸欺, 恐諸奸又將惑君臣, 爲登山入海之語, 駭人耳目, 然後彼有爵有土, 忍棄世守之國, 蹈亡命之流, 則將奚往? 此智者所不能惑也。 伏望皇上, 將臣所奏, 倂進呈《海東紀略》, 勑下廷臣, 秉公評議朝鮮君臣是否, 絶愚弄中國是否, 絶愚弄天朝邢玠陳效麻貴等是否, 徇情扶同欺罔是否, 徇私曲庇, 而諸黨奸謀, 自不能掩衆目, 而逃公論也。

奉聖旨:

這所奏朝鮮隱蔽事情, 著差去科臣, 上緊倂勘, 前屢有嚴旨。 東事候勘回之日, 功罪自明, 丁應泰不必再有陳瀆。 其奏內, 事是否眞僞, 一切戰守機宜, 著邢玠陳效丁應泰徐觀瀾等, 盡去嫌疑, 虛心會議行擧, 務以國事爲重, 毋得彼此參差。 見今秋防緊急, 部務繁重, 蕭大亨安心供職。 俱不許紛紛瀆辭。 仍催萬世德, 兼程前去經理。 該部知道。


  • 【태백산사고본】 66책 104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49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물(人物) / 왕실-국왕(國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