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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04권, 선조 31년 9월 6일 무자 1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정 주사가 회례하기 위하여 시어소에 와 주본의 내용에 대해 말하다

정 주사가 시어소(時御所)에 왔는데, 그것은 회례(回禮)하기 위해서이다. 주사가 말하기를,

"속국(屬國)에 어려움이 있어 거룩하신 천자(天子)께서 군사를 내어 구원하였습니다. 지난해 도산(島山)의 전투에서 가등청정을 사로잡았더라면 귀국이 평안하였을 것이고 천자께서도 동쪽의 걱정이 풀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양호(楊鎬)이여매(李如梅)가 공을 탐내어 적을 가볍게 여기다가 끝내 큰 일을 그르쳤으니, 이여매는 당연히 수죄(首罪)가 되고 마귀(麻貴)는 그 다음입니다. 양호가 황상(皇上)을 간교하게 속여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모든 사실을 아뢰었습니다. 황상의 노여움은 다름이 아니라 대체로 귀국이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간사한 사람이 있어서 국왕과 배신(陪臣)에게 떠들어대기를 ‘양 경리(楊經理)가 돌아간 뒤에는 천조가 식량을 줄이고 군사를 철수시키는 계획이 있을 것이다.’ 하였는데, 지금 정말 군사를 거두어 가고 식량을 줄였습니까. 귀국이 2백여 년 동안 천조를 공순히 섬겼기 때문에 황상께서는 그런 점을 통촉하여 군사와 식량을 재차 동원하여 반드시 왜적을 섬멸하고야 말려고 하는데, 어찌 철병할 리가 있겠습니까."

사신은 논한다. 간사한 사람이 남의 나라에 재앙을 끼침이 크다. 말은 순하여 조리가 있고 공손하여 충성스러운 듯하기 때문에 완전히 믿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막상 일을 행할 적에는 이치에 어긋나고 의리에 거슬려 결국 국사를 망치고야 만다. 정 주사가 처음 빈연(賓筵)의 응대에서 먼저 도사(島山)에서 패배한 이유를 말하고 다음에 왜적을 반드시 섬멸하겠다는 뜻을 진술하였다. 만일 정 주사의 속마음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들 그의 말을 옳게 여겨 그 계획을 믿지 않겠는가. 정 주사가 올린 주본(奏本)에 이미 식량을 줄이고 군사를 철수하자는 말이 있었으니, 번방(藩邦)을 구제하고 왜적을 완전히 섬멸하는 것은 정 주사의 뜻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말을 꾸미고 혀를 놀려 번국(藩國)의 임금과 신하를 속이려 하지만 속마음이 이미 드러났는데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하니, 상이 말하기를,

"천조에서 군사를 출동시켜 끝까지 구제하여 주니 천자의 은혜가 망극합니다. 우리 나라가 대인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였었는데 이제 대인의 말을 들으니 식량을 줄이고야 말 것이라 하니 감격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승지를 돌아보면서 이르기를,

"정 대인의 주본에서 식량을 줄이고 군사를 철수하자는 말이 있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지금 대인이 어찌하여 이와 같이 말을 하는가?"

하니, 우부승지 최관(崔瓘)이 아뢰기를,

"그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주사가 말하기를,

"지난해의 전투에서 대군(大軍)이 적의 성채(城寨)를 포위하였었으니 한 시각만 늦췄더라면 가등청정(加藤淸正)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여매는 자신이 공을 세우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공을 세울까봐 두려워하여 서둘러 징을 쳐서 군사를 퇴각하게 함으로써 결국 큰일을 그르쳤으니 통한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7년 만에 얻은 이 좋은 기회가 끝내 이같이 되었으니 이여매는 천하의 죄인입니다. 나는 가슴에 가득한 단성(丹誠)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임금을 섬기는데 어찌 남의 말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양호는 이미 황상을 속였고 또 국왕에게 큰소리치다가 끝내 큰 일을 그르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는 분함을 참을 수 없어 사실을 근거하여 주문(奏聞)하였습니다. 또 마병(馬兵)이 이곳에 와서 부녀를 간음하고 집을 헐어버리는 등 여러 가지로 난동을 부리는 것에 대하여 나는 실로 통한스럽게 여겼습니다. 때문에 이 역시 주본에 기록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대인이 속마음을 숨김없이 다 털어놓으시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흉적이 나라를 침범한지 이제 7년째인데 위급한 국가의 형세는 갈수록 더욱 심하여 우리 나라의 힘으로는 섬멸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일 준봉(準封)141) 한 일이 있었으나 남원(南原)의 함락이 잇따라 있었으니, 적의 교활함은 진실로 말만을 가지고는 물리치기 어렵다는 것은 대인도 아는 바입니다. 우리 나라의 상하(上下)는 대인이 우리의 창생(蒼生)을 구제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하였다. 주사가 말하기를,

"준봉에 대한 일은 나는 사실 모릅니다. 그때 나는 때를 얻지 못하여 집에 물러가 있었기 때문에 강화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아는 바가 아닙니다. 나는 단지 전수(戰守)의 계책을 논할 뿐입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이같이 분부하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였다. 주사가 말하기를,

"전일 회자(回咨)에는 사실에 의거하여 보고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배신(陪臣)과 통역관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 꼭 사실을 근거로 완전히 하여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였다. 주사가 말하기를,

"내가 세 번이나 나왔으나 지방이 잔파된 까닭으로 한 장의 종이와 한 마리의 닭도 쓰지 않았는데 국왕께서는 이를 아십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대인의 일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미안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고는, 드디어 읍(挹)하고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66책 104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90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인물(人物)

  • [註 141]
    준봉(準封) : 풍신수길을 일본 국왕으로 봉함을 허락한 일.

○戊子/丁主事來時御所。 回禮也。 主事曰: "屬國有難, 聖天子發兵拯濟。 上年島山之役, 若擒淸賊, 貴邦得安, 而聖天子亦弛東顧之憂。 楊鎬李如梅, 貪功輕敵, 終誤大事。 李如梅當爲首罪, 麻貴其次也。 楊鎬奸欺皇上, 不以實報, 俺不勝憤惋, 俱實奏聞。 皇上之宸怒, 無他, 蓋以貴邦之不以實報也。 今有奸人, 乃哄國王及陪臣曰: "楊經理入歸之後, 天朝將有減糧撤兵之計’ 云, 今果撤兵減糧乎? 貴邦恭謹事大二百餘年, 皇上洞燭其然, 再發兵糧, 必滅此賊而後已, 豈有撤兵之理乎?"

【史臣曰: "憸人之爲禍於人國大矣。 其言順而有理, 恭而似忠, 故人莫不傾信之, 及其行事也, 拂於理, 悖於義, 終至於壞了國事而後已。 之初對賓筵, 首言島山敗衂之由, 次陳必滅此賊之意。 苟非識之肝肺者, 誰不是其言而信其計哉? 之上本, 旣有減糧撤兵之言, 則拯濟藩邦, 蕩滅此賊, 非之志也。 今乃飾辭騁舌, 欲瞞藩國之君臣, 而肝肺已露, 尙何可掩哉?"】

上曰: "天朝發兵, 終始拯濟, 皇恩罔極。 小邦專不知大人之旨意, 今聞大人之言, 減糧撤兵, 果非大人之意, 而必欲殲此賊而後已, 不勝感激。" 上顧謂承旨曰: "大人奏本, 有減糧撤兵之言, 人誰不知? 今大人何如是措辭耶?" 右副承旨崔瓘對曰: "其言何足取信?" 主事曰: 上年之役, 大兵進圍賊寨, 若延一刻, 則可獲淸正, 而李如梅恐已不得功, 而他得大功, 徑自鳴金退軍, 終誤大事, 不勝痛恨。 七年之後, 得此好機會, 終焉如此, 李如梅, 中外之罪人也。 俺滿腹丹悃, 一心事君, 何畏人言? 楊鎬旣瞞皇上, 又哄國王, 竟至於誤了大事, 俺不勝憤惋, 據實奏聞。 且馬兵來此, 多般作挐, 奸淫婦女, 撤毁廬舍, 俺實痛恨, 亦爲上本矣。" 上曰: "大人開心盡心, 不勝感激。 兇賊壓境, 七載于今, 國勢危急, 日甚一日, 小邦之力, 難以殲滅。 前日雖有準封之擧, 而繼有南原之陷, 賊之狡詐, 固難以言語却之, 亦大人之所知也。 小邦上下, 只望大人拯濟蒼生也。" 主事曰: "準封一事, 俺實不知。 其時俺不得於時, 退在私門, 和之一字, 非俺所知。 俺則只論戰守之策而已。" 上曰: "如是分付, 多謝。" 主事曰: "前日回咨, 不以實報, 今則陪臣、通官, 皆在於此, 須據實完送何如?" 上曰: "依敎。" 主事曰: "俺三度出來, 以地方殘破之故, 不用一張紙、一隻雞, 國王知之乎?" 上曰: "大人之事, 孰不知之? 不勝未安。" 遂作揖而出。


  • 【태백산사고본】 66책 104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90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역사-사학(史學)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