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선조실록 101권, 선조 31년 6월 18일 신미 1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유 제독과 중국 군사의 소동, 군량 문제, 왜적의 동정에 대해 이야기하다

상이 모화관(慕華官)에 나아가서 유 제독(劉提督)을 영접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대인께서 소방(小邦)의 일 때문에 추위와 더위를 겪고 있으니 그 고초가 매우 심합니다. 그런데 소방의 잔파가 지난번 보다도 더욱 심하여 일로(一路)의 지공(支供)마저 제대로 모양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심히 미안스럽습니다."

하니, 유 제독이 말하기를,

"천자(天子)의 명을 받들고 온 일인데 감히 수고롭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귀국에 와 있는 지가 이미 1년이 되어가니, 귀국 사정에 대해 무슨 일인들 모르겠습니까. 설사 섭섭한 점이 있었다손치더라도 어찌 그것을 염두에 두겠습니까."

하고, 뒤이어 자리로 나가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중로(中路)에 배신(陪臣)을 계속 보내어 행역(行役)을 위로해 주셨으니 매우 감사합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두 번씩이나 왜적의 화를 당하였으므로 스스로 보존할 수가 없던 차에 대인께서 나오신다는 말을 듣고 밤낮으로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중간에 거짓 소문이 나돌아 ‘우리 나라 사람들이 대인 군대가 소란을 피우는 것이 싫어서 놀라 흩어졌다.’고도 하고, 양 아문(楊衙門) 【양호(楊鎬). 】 대인이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는데,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인께서는 이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으니, 이곳 사정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지난해 9월 북경(北京)에서 병마(兵馬)가 집합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정에서도 의논이 분분하여 바로 출발시키지 못했었습니다. 대개 제가 지난번 이곳에 왔었기 때문에 귀국의 형편을 잘 알 것이라고 하여 저로 하여금 우선 귀국에 가서 상황에 따라 처리하도록 한 것입니다. 제가 통솔하고 있는 병사는 1만 2천 명이고 광동병(廣東兵)도 5천 명이지만 모두 조심할 줄 알기 때문에 소란을 피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양 경리(楊經理)조선을 총괄하여 다스림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스스로 조정 대신들과 상의하여 조처하고 있으며, 또 마귀(麻貴)·동일원(董一元) 두 장수는 각기 경상 좌·우도(慶尙左右)를 거느리고 있고 나는 혼자서 전라도를 담당하고 있어서 서로 간섭하지 않는데, 어찌 서로 불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면하고 있는 급선무는 오직 군량 문제입니다. 천조(天朝)에서 은자(銀子)를 지급했지만 민간에 양곡이 없다면 어디에서 사들일 수 있겠습니까. 하사해 준 천조의 군량도 운반하지 못하고 있으니 앞날의 일이 매우 우려됩니다. 아무쪼록 여러모로 헤아려 잘 조치해 주소서."

하니, 상이 말하기를,

"군량을 마련하는 일은 소방에서도 힘을 다해 조치하고 있지만, 물력(物力)이 탕진되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근심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양곡이 부족하면 부자(父子)간에도 보전할 수 없는 것인데 더구나 삼군(三軍)이겠습니까. 금년엔 변사(邊事)를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마치지 못한다면 명년에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니 미리 군량을 조치해 놓는 것이 매우 지당할 것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근래 적병의 숫자 및 군량의 실태에 대해서는 변보(邊報)가 있어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병가(兵家)의 일이란 모름지기 적진의 정세를 탐지하여야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니, 하나하나 들려주십시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대인께서 모두 알고자 하신다면 창졸간에 말씀으로 자세히 보고하기 어려우니, 천천히 세밀하게 적어서 드리겠습니다. 대개 전라도경상도 연해(沿海) 지역의 동서로 9백여 리는 적들이 줄을 이어서 주둔하고 있는데, 청정(淸正)경상도서생포(西生浦)에 있고 행장(行長)전라도 순천(順天)에 있으므로 그 중간 수십 개의 군읍(郡邑)에 적병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제가 알려고 하는 것은 대략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무쪼록 소상히 알려 주셔서 저로 하여금 적의 정세를 분명히 알게 하여 여러 천장(天將)과 상의하여 지휘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일 할 것 없이 상세히 적어서 보여주십시오."

하니, 상이 말하기를,

"삼가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하고, 인하여 허성(許筬)을 돌아보며 이르기를,

"비변사로 하여금 자세히 적어서 올리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4책 10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448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통신(通信)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무역(貿易)

○辛未/上出慕華館, 迎劉提督。 上曰: "大人以小邦之故, 載罹寒暑, 艱苦極矣。 小邦殘破, 甚於疇昔, 一路供頓, 不成形樣, 其爲未安何如?" 提督曰: "奉天子之命, 敢言勞乎? 俺來在貴境, 已一年于玆, 貴邦之事, 何事不知? 縱有缺乏, 豈可爲意?" 仍就坐, 行茶禮。 提督曰: "中路續遣陪臣, 勞問行役, 多謝。" 上曰: "再遭賊禍, 不能自保, 聞大人之出來, 日夜渴望, 而第聞之, 中間有訛言, 或以東人厭大人之軍, 擾害而驚散, 或以爲楊衙門 【楊鎬也。】 以大人之來臨, 爲不悅云, 豈有此理? 大人住此久久, 可察此間情事矣。" 提督曰: "上年九月在北京, 待合兵馬, 朝廷亦多議論, 不得遄發矣。 大槪以俺前旣來此, 備知此邦事勢, 故使俺第往看勢而從事矣。 我之所率軍兵一萬二千, 廣東兵亦五千, 皆知斂戢, 不爲擾害。 而楊經理總治朝鮮, 事之大小, 自與朝廷大臣, 相議處置, 且兩將, 各將慶尙左右道, 吾則獨當全羅道, 不相管攝, 豈有相戞之事? 當今急務, 唯在糧餉。 天朝雖給銀子, 民間若無菽粟, 何從而貿換? 所賜天糧, 亦不得搬運, 前頭之事, 極可憂慮。 須十分商量, 善爲措置。" 上曰: "糧餉一事, 小邦亦極力措置, 而物力殘破, 事不如意, 方以爲慮。" 提督曰: "糧餉不足, 則父子難保, 而況三軍乎? 今年邊事可畢, 而幸若未畢, 則明年亦不可期。 預措糧餉, 至當至可。" 且曰: "近日賊兵衆寡, 及其糧餉多少, 必有邊報, 可以知之。 兵家之事, 須探知彼間情勢, 然後可以有爲, 願一一聞之。" 上曰: "大人必欲聞之, 不可以言語, 倉卒詳悉, 徐當備細書呈。 大槪全羅慶尙沿海地方, 東西九百餘里, 連亘屯據, 而淸正慶尙西生浦, 行長全羅順天, 其間數十郡邑, 無處不有。" 提督曰: "欲聞者非大槪。 須的當開報, 使明知賊中情形, 可與諸天將相議, 有指揮之事。 詳悉書示, 不貴巨細。" 上曰: "謹領分付。" 仍顧謂許筬曰: "令備邊司, 仔細書呈。"


  • 【태백산사고본】 64책 101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448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통신(通信)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