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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100권, 선조 31년 5월 2일 병술 1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조 총병을 위로하니, 조 총병이 접반사에 대한 시상을 요구하다

상이 조 총병(祖總兵)의 관사로 행행하여 접견하였다. 총병이 말하기를,

"병마(兵馬)를 많이 데리고 오지 못하고 가정(家丁) 1백여 명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세운 공은 없고 피해만 많이 끼쳐 미안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피해를 끼친 일이 뭐 있겠소이까. 이 제독(李提督)이 지난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소방을 위험에서 구제해 주었으므로, 소방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분의 덕택이외다. 지금 듣건대 이 제독이 전사했다고 하니, 소방의 상하(上下)가 누군들 슬퍼하지 않겠소이까. 그런데 또 그의 아우까지 진중(陣中)에서 죽었다 하니 더욱 놀랍고 슬프외다."

하였다. 총병이 말하기를,

"신하된 자가 국사(國事)에 죽는 것은 곧 직무상 본분이요, 시신(屍身)이 말가죽에 싸여 돌아가는 것도 남자의 소원입니다. 국왕께서는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말씀하십니까. 매우 감사합니다. 지난번 요동(遼東)의 달자(㺚子)가 나와 오래 주둔하고 있자 군문(軍門)이 저에게 가서 방어하라고 하였으므로 제가 이곳에 왔으나 지금은 달로(㺚虜)가 이미 떠났습니다. 경리(經理)가 ‘성주(星州) 등지는 이 총병이 전사하여 의지할 데가 없다.’ 하고, 나에게 남하(南下)하라고 하였습니다. 4∼5일간 말을 쉬게 하였다가 다시 남하할 계획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초 대인(大人)의 덕을 크게 입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데 지금 또 남하하신다 하니, 무어라고 말해야 옳을지 모르겠소이다."

하였다. 총병이 말하기를,

"이미 신하가 되었으니 고생하는 것에 대해 마음 상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배신(陪臣) 박승종(朴承宗)과 통관(通官) 등이 성주·상주(尙州)·초계(草溪) 등지를 함께 다니면서 갖은 고생을 다 겪었습니다. 그곳은 소금과 장도 없었으니 그 고통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지금 또 다시 남하하게 되었으니 시상(施賞)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모두가 직무상의 본분인데 무슨 공로가 있다 하겠소이까. 그러나 대인께서 명하시니 마땅히 참작하여 시행하도록 하겠소이다."

하고, 상이 승지에게 묻기를,

"총병의 접반사(接伴使)에 대해서도 시상하는 법규가 있는가? 전례를 상고하여 시행하라."

하였다. 총병이 말하기를,

"현재 일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으니 지금이 바로 인재를 등용할 시기입니다. 제가 해인사(海印寺) 등지에 머물러 방어하고 있었으므로 왜적이 범접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와 같이 하지 않았더라면 군량미는 반드시 대부분 산실(散失)되었을 것입니다. 군사를 거느린 총병의 접반사는 모두 상전(賞典)을 받았는데, 저는 원임 총병(原任總兵)이란 이유 때문에 배신이 아직까지 상전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시행하시지 않는다면 잘못되는 점이 많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참작하여 명한 대로 따르도록 하겠다고 답하였다. 총병이 말하기를,

"배신과 통관은 고생이 많았습니다. 영리한 젊은 통사(通事)를 선정하여 보내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난번 보내주신 마의(馬醫)는 제 말뿐이 아니라 군중(軍中)의 말까지도 병이 있으면 치료하였으니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약이 없으니 그것도 구하고자 합니다."

하니, 상이 명한 대로 따르도록 하겠다고 답하였다. 총병이 말하기를,

"울산(蔚山) 싸움에서 타고 다니던 말이 탄환에 맞았고, 가정(家丁)의 말도 산실(散失)된 것이 많아서 입고 있던 양피의(羊皮衣)같은 것을 팔아서 말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모두 노둔하고 수척하여 전투용으로는 합당치 않습니다. 아침에 배신의 말을 들으니, 국왕께서 저에게 말을 보내주셨다 하는데 받기가 미안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서 말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노둔한 말이지만 정표로 드리는 것인데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 황공하외다."

하였다. 총병이 말하기를,

"저에게 말이 없어 주시는 것이니 타고서 전진(戰陣)으로 가겠습니다. 이 말이 죽어 버리면 어쩔 수 없겠지만 살아 있게 된다면 다시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만 주시니 받기가 미안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소방의 일로 나왔는데 휘하에 있는 사람 중에 말을 잃은 자가 많다 하니 모두 주고 싶소이다. 그러나 군문의 명령으로 지금 말을 준비하는 중이어서 일일이 보낼 수는 없소이다. 대인께서 말이 없다 하기에 정을 표한 것인데, 이처럼 말씀하시니 황공하외다."

하고, 차를 들기를 청하였다. 상이 이 부총(李副總)·파 유격(擺遊擊)·양 유격(楊遊擊)이 사망하여 비참해 한다는 것을 통관에게 말을 만들어 고하게 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국왕께 많은 괴로움을 끼쳐드려 마음에 걸립니다. 남자는 죽음을 영광으로 삼습니다. 더구나 조정의 신하가 국사에 죽었으니 그 또한 다행한 일입니다. 이처럼 지나치게 염려하여 주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하였다. 주석(酒席)을 베풀려 할 즈음에 총병이 말하기를,

"매우 감사합니다. 사제(舍弟)가 전쟁에서 죽고 군졸도 많이 사망하였습니다. 천명이라고는 하더라도 술을 마시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승지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무어라고 대답해야 하겠는가?"

하니, 좌우가 말하기를,

"이 말은 예절에 맞습니다. 억지로 청하기는 미안합니다."

하고, 이정구는 아뢰기를,

"술자리를 크게 벌이는 것은 감히 할 수 없지만 간단하게 한 잔 하자는 뜻으로 말을 만들어 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런 뜻으로 다시 청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병으로 죽었다고 하더라도 차마 마실 수가 없는데, 이 사람은 전쟁에서 죽었으니 너무 슬퍼서 마실 수가 없습니다. 차나 드십시다."

하고, 이어 눈물을 씻었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의 말을 들으니 슬픔을 견딜 수 없소이다."

하고, 차를 청하니 명대로 따르겠다고 하였다. 차를 마시고 나서 상이 예단(禮單)을 증정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국왕의 후의는 지난번에 이미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지금은 첩자(帖子)만 받겠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하였다. 상이 다시 청하니, 총병이 굳이 사양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 다시 올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좌우의 가정(家丁)들에게 나누어 주시기 바라오."

하니, 답하기를,

"매우 감사합니다.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왜 받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감히 다시 번거롭게 할 수 없다고 하고, 드디어 읍(揖)하고 나와 환궁(還宮)하였다. 총병이 즉시 와서 사례하니, 상이 나아가 영접하여 전각으로 올랐다. 총병이 말하기를,

"오늘 누추한 곳을 찾아주시고 또 배신과 통관으로 하여금 원로(遠路)에 문안하게 하시니 매우 감사합니다."

하니, 상이 당치 않다고 했다. 총병이 말하기를,

"예의상 당연히 절하고 사례드려야 하오나 날씨가 무더워 존체에 수고를 끼칠까 염려되므로 읍만 하겠습니다."

하고, 서로 읍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누추한 곳을 찾아주니 감사하기 그지 없소이다."

하니, 총병이 당치 않다고 하여 서로 읍하고 자리에 앉아 차를 들었다. 총병이 예단을 올리며 말하기를,

"임진년065) 에 나온 이후로 폐를 끼친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행장을 모두 보내버렸기 때문에 정을 표할 만한 물건이 없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변변치 못한 것입니다만 조그만 정성을 표할 뿐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의 성례(盛禮)는 감히 감당할 수 없소이다. 첩자(帖子)를 받으면 그 또한 성의(盛意)를 받는 것이니, 황공하여 감히 사양하겠소이다."

하였다. 총병이 굳이 청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주는 것을 감히 받지 않을 수 없소이다. 매우 감사하외다."

하였다. 총병이 작별을 고하면서 말하기를,

"4∼5일이 안 되어 남하(南下)하게 될 것입니다. 필시 오랫동안 헤어지게 될 것이니 절하고 물러가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당치 않소이다. 대인께서 소방의 일을 위해 멀리 오셨는데 지방이 잔파되어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황공하외다."

하자, 총병이 말하기를,

"특별히 공을 거둔 것은 없고 폐만 끼쳐서 매우 황공합니다."

하였다. 상이 예단을 증정하고, 변변치 못한 물건으로 정을 표한다고 하니, 총병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 감히 다시 청할 수 없소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니, 총병이 말하기를,

"그럼 지필묵(紙筆墨)만 받겠습니다."

하고, 이어 말하기를,

"절을 드리고 물러가고 싶으나 국왕을 수고롭게 하여드릴까 염려됩니다. 읍을 하십시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제일 먼저 평양에 도착하여 위엄을 보였으므로 흉적이 핍박하여 오지 못했고, 인하여 서로(西路)의 천병(天兵)이 대거 공격할 수 있었으니, 소방이 지금까지 보존된 것은 모두가 대인의 은혜이외다. 매우 감사하외다."

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평양의 일에 대하여 국왕께서 말씀이 없으셨으므로 감히 말씀드리지 못했었습니다. 그때는 산천(山川)의 형세를 잘 알지 못하였고, 사람들이 왜병의 수가 3천 명이라고 하기에 3천의 병마를 거느리고 가면 충분히 토멸(討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경솔하게 들어 갔었습니다. 만약 형세를 알았더라면 2∼3일 간 머무르면서 군대를 정돈한 후에 공격하였을 것입니다. 사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고군(孤軍)으로 적을 업신여겼다가 패하였으므로 항시 부끄럽게 여겨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런데 오늘 국왕께서 도리어 치사(致謝)하시니 더욱 황공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소방도 처음에는 적세를 잘 알지 못했소이다. 적을 모두 섬멸하지는 못하였더라도 천위(天威)를 크게 보였으니 매우 감사하외다."

하니, 총병이 말하기를,

"오늘 언급하시니 감히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제독(李提督)이 접전할 때, 저는 남문으로 들어가 30여 수급(首級)을 참획하였는데, 사상(死傷)한 가정(家丁)도 30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귀방을 위해 성의를 다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소방을 위해 이처럼 진념(軫念)하니 매우 감사하외다."

하니, 총병이 드디어 읍하고 나갔다.


  • 【태백산사고본】 64책 10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30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군사(軍事) / 사법-법제(法制)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丙戌/上幸祖總兵所館, 接見。 摠兵曰: "兵馬未得多帶, 只有家丁百餘名, 而別無所成之功, 而徒多擾害, 未安。" 上曰: "豈有擾害之事? 李提督前者率兵, 拯濟小邦, 小邦之至今保存者, 全賴此也。 今聞戰沒。 小邦上下孰不痛慘? 今弟亦沒於陣中云, 尤極驚慟。" 摠兵曰: "爲臣子者, 死於國事, 乃是職分內事, 馬革裹尸, 亦是男子之願。 奈何國王言之至此? 多謝。 前日遼東 㺚子, 出來久屯, 軍門令俺往防, 俺來此矣, 今則虜已去。 經理以爲: ‘星州等處, 李摠兵亦戰亡, 無所倚賴。’ 令俺南下。 當歇馬四五日, 更爲南下矣。" 上曰: "當初多蒙大人之德, 至今保存。 今又南下云, 不知言喩。" 摠兵曰: "旣爲臣子, 勤苦何傷? 但陪臣朴承宗及通官等, 同往星州尙州草溪等處, 備嘗艱苦。 其處鹽醬亦無, 其苦如何? 今將更爲南下, 請施賞。" 上曰: "皆是職分內事, 有何功勞? 然大人有命, 當參酌施之。" 上問承旨曰: "摠兵接伴使, 亦有施賞之規乎? 考前例爲之。" 摠兵曰: "時未了事, 此正用人之秋也。 俺留防海印寺等處, 故不得犯。 設若不如是, 如糧餉必多散失矣。 率軍摠兵之接伴, 皆蒙賞典, 俺則以原任摠兵之故, 陪臣尙未蒙賞。 今若不施, 欠面多矣。" 上曰: "當參酌依命。" 摠兵曰: "陪臣、通官則勤苦多矣。 伶俐小通事, 定送何如? 前給定給理馬, 非但我馬, 軍中之馬有病, 則治之甚好。 然無藥, 亦欲得之耳。" 上曰: "當依命。" 摠兵曰: "蔚山之戰, 所騎馬中丸, 家丁之馬, 亦多散失, 如身上羊皮衣等物, 亦轉賣, 貿馬以來矣。 然皆駑疲, 不合於戰用。 朝聞陪臣之言, 則國王送馬於俺, 受之未安。" 上曰: "聞大人失馬, 故馬雖駑, 表情而已。 如是言之, 惶恐。" 摠兵曰: "無馬, 給之則當騎往戰陣。 若故失則已, 生則可牽還矣。 而獨給於俺, 受之未安。" 上曰: "大人以小邦事出來, 麾下之人多失馬云。 欲盡給, 而以軍門之令, 方備馬, 不得一一備送。 大人無馬, 則表情矣, 如是言之, 惶恐。" 請行茶。 上以李副摠擺遊擊遊擊死亡悲慘事, 令通官, 措辭告之, 摠兵曰: "多勞國王掛心。 男子以死爲榮。 況朝廷臣子, 死於國事, 亦幸矣。 過念至此, 多謝。" 將擺酒之際, 摠兵曰: "多謝。 舍(第)〔弟〕 死於兵事, 軍卒亦多死亡。 雖曰天數, 飮酒未安。" 上顧謂承旨曰: "何以爲對?" 左右曰: "此言禮也。 强請未安。" 李廷龜曰: "以杯盤則不敢, 而立行一杯之意, 措辭請之何如?" 上以此意更請, 摠兵曰: "雖死於病, 尙不可忍。 此則死於兵, 慘不能飮。 願飮茶。" 仍拭淚。 上曰: "聞大人之言, 不勝慘然。" 請茶, 曰: "惟命。" 茶訖, 上呈禮單, 摠兵曰: "國王厚意, 前旣屢受。 今只領帖。 多謝。" 上再請, 摠兵固辭。 上曰: "大人前, 雖未可再進, 願分諸左右家丁。" 答曰: "多謝。 若可受, 則豈不受乎?" 上曰: "不敢更煩。" 遂作揖而出, 還宮。 摠兵卽來謝, 上出迎上殿。 摠兵曰: "今日來臨陋地, 且令陪臣、通官, 遠路伺候, 請拜謝。" 上曰: "不敢。" 摠兵曰: "禮當拜謝, 而天暑恐勞尊體, 請作揖。" 乃相揖。 上曰: "來顧陋地, 請作拜以謝。" 總兵曰: "不敢。" 乃相揖, 就座行茶。 摠兵進禮單曰: "自壬辰出來, 多有擾害之事, 而行李盡送, 無可表情。 此物誠薄, 只表微意。" 上曰: "大人盛禮, 不敢當。 領帖則亦領盛意, 惶恐敢辭。" 摠兵固請, 上曰: "大人之賜, 不敢不受。 多謝。" 摠兵告辭曰: "不過四五日, 當南下。 必致久闊, 請行辭拜。" 上曰: "不敢。 大人爲小邦事遠來, 而地方殘破, 事不稱情, 惶恐。" 摠兵曰: "別無所成之功, 而徒有擾害之事, 不勝惶恐。" 上呈禮單曰: "薄物表情。" 摠兵辭不受。 上曰: "大人前, 不敢再請。" 顧左右, 摠兵曰: "只受紙地筆墨。" 仍曰: "欲拜辭, 而恐勞國王, 請作揖。" 上曰: "大人初到平壤示威, 故兇賊不得逼迫, 西路天兵, 因而大擧。 小邦之得有今日, 皆是大人之賜。 多謝。" 摠兵曰: "平壤之事, 國王不言, 故不敢言矣。 其時不知山川險夷。 人言倭奴數三千, 意謂率三千兵馬, 足以討之, 輕入矣。 若知形勢, 則可住二三日, 整治而後擊之。 不量事勢, 而孤軍輕敵, 致有敗衂, 每爲慙赧。 今日國王反致垂謝之言, 尤爲惶恐。" 上曰: "當初小邦, 亦不知賊勢矣。 雖未得盡勦, 大示天威, 多謝。" 摠兵曰: "今日言及, 敢詳言矣。 李提督接戰時, 俺自南門入, 斬獲三十餘級, 家丁死傷, 亦三十餘名。 俺爲貴邦事, 無不用心矣。" 上曰: "大人爲小邦事, 軫念至此, 多謝。" 總兵遂作揖而出。


  • 【태백산사고본】 64책 10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30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군사(軍事) / 사법-법제(法制)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