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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99권, 선조 31년 4월 8일 임술 8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호조가 동전의 주조 및 유통의 방안을 건의하다

호조가 아뢰기를,

"동철(銅鐵)은 애당초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니, 지금 수 천만 관(貫)의 동전을 주조하려면 반드시 허다한 공력이 소비될 것이며, 과연 등통(鄧通)의 산과 같이 많은 구리가 없습니다. 전에 계청(啓請)하였던 각(閣)의 종(鍾)을 부수자는 것이나 뒤에 계청한 사찰의 그릇들을 부수어 쓰자는 것은 사실 이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이런 동철들을 다 써서 많은 양을 주조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이 외에는 더 판출할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물력(物力)이 고갈되어 있는 이때, 시행될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은 한갓 소요만 일으킬 뿐입니다. 그렇다면 애당초 하지 않은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니, 성상이 염려하시는 것이 사실 공연한 걱정이 아닙니다. 신들도 어찌 그러한 곡절을 모르겠습니까. 다만 경리가 한번 적극 시험해보기 위하여 주본을 올리라고까지 독촉하니, 아무래도 그만 둘 수는 없는 형세인 것 같아 매우 민망스럽고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이왕 그만 둘 수가 없는 일이라면 그 유통 계책을 강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동전을 주조한 후 각도로 나누어 보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사가게 하고서, 노비의 신공이라든지 여러 보병(步兵)·조례(皂隷)·나장(羅將) 및 일체의 잡세로 관에 바칠 포물(布物)들을 절반은 본색(本色)으로 바치고 절반은 동전으로 바치게 하며, 속목(贖木)과 작지(作紙) 등도 모두 동전을 사용하게 하면 수입의 길이 넓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백관의 산료(散料)와 하인 또는 각종 공장(工匠)들의 구량(口糧)도 절반이나 혹은 3분의 1을 제급(題給)하고, 모든 무사(武士)와 포수(砲手)·살수(殺手)의 상격(賞格) 및 처자료(妻子料)도 역시 동전으로 양급(量給)하며, 백관의 산료도 그와 같이 제급하는 수 외에 노자(奴子) 1∼2명을 더 마련하여 제급하며, 그밖의 무역의 값도 절반은 미포로 절반은 동전으로 지급하고, 기타 소소한 값들도 모두 동전을 사용하면 발산(發散)하는 길도 넓어질 것입니다. 만약 운용을 적절히 하고 내고 들이는 데도 일정한 방법을 둔다면, 유통 과정에 과연 폐단이 없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전혀 쓸모없는 정도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근래 와서 주육(酒肉)·두포(豆泡)·염장(鹽醬)·시초(柴草) 등의 소소한 값들은 모두 은자(銀子)를 사용하고 있는데, 중외의 백성들이 오히려 그 덕으로 생계를 꾸려 간다고 합니다. 그것을 처음에는 중국군을 상대로 매매할 때 시도해 보았는데, 오래 시행하고 나자 이미 습속(習俗)이 되어 술 팔고 땔감 파는 사람들이 살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먼저 은자가 있는 지 물어본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만력 통보(萬曆通寶)를 만들어 중국인과 매매할 때 서로 있고 없는 것을 교환하게 한다면, 사람마다 교환하기를 원하여 지금 은자를 쓰는 것과 같이 즐겨 사용할 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이 역시 사리로 보아 그럴 것이라는 억측일 뿐, 결국의 이해에 관해서야 또 어떻게 분명히 알 수 있겠습니까. 그저 구구한 소견을 감히 이렇게 아뢰는 것뿐입니다. 매우 황공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동전과 은자는 다르다. 지금 그렇게라도 마련하여 혹 시행되기를 바라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 나로서는 그 일이 반드시 시행이 안 되리라고 본다. 지금 초기(草記)를 보면 또 한 가지 큰 일을 추가하려고 하는데, 이는 까닭없이 일을 만드는 것으로써 일 하나 만드는 것이 일 하나를 더는 것보다 못한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러한 일을 한단 말인가. 내 뜻은 그러하니 다시 비변사와 상의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9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10면
  • 【분류】
    군사-병참(兵站) / 금융-화폐(貨幣) / 예술-미술(美術) / 사상-불교(佛敎) / 외교-명(明) / 재정-역(役) / 신분-천인(賤人) / 물가(物價) / 상업(商業)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신분-천인(賤人) / 무역(貿易)

〔○戶曹啓曰〕 : "銅鐵, 初非本國所産。 今欲鑄錢累千萬貫, 則必費許多功力, 果無卽山之利。 前啓請閣鍾之毁, 後啓請寺刹之器, 實爲此也。 雖盡用此等之鐵, 而責令多鑄, 此外亦無益辦之勢。 當玆物力蕩竭之時, 爲此試可之擧, 徒增一場騷擾, 則莫如當初不爲之爲愈, 聖慮所及, 實非偶然。 臣等亦豈不知此等曲折乎? 但經理銳意一試, 至欲上本, 督責如此, 其勢不容(伯)〔但〕 已, 極爲悶慮。 無已則流行之策, 不可不講定。 鑄錢之後, 分送各道, 許人買取, 如奴婢身貢, 諸員步兵、皂隷、羅將及一應雜稅布物納官者, 一半用本色, 一半納銅錢, 贖木、作紙, 皆用銅錢, 則收入之路已廣, 而百官散料及下人、諸色工匠等口糧, 或參半題給, 或三分之一題給, 凡武士砲ㆍ殺手賞格、妻子料, 亦爲量給, 或百官散料, 如今題給數外, 奴子一二名, 加磨鍊題給, 其他貿易之價, 一半用米布, 一半用銅錢, 零碎之價, 皆〔用〕 銅錢, 則發散之路亦廣矣。 若料理得宜, 而出入有方, 雖未知流行之無弊, 亦不至全無所用。 近日酒肉、豆泡、鹽醬、柴草小小之價, 皆用銀子, 中外居民, 賴此資生。 初則試用於唐兵買賣之間, 行之旣久, 習俗已成, 賣酒、賣柴之人, 如遇買之者, 必先問銀子有無。 此無他, 知其利之所在而然也。 若造萬曆通寶, 與唐人買賣, 通其有無, 則人人願換, 安知不如銀子之樂用乎? 然此亦臆料其事理而已, 其畢竟利害, 亦安能灼知? 姑以區區愚見, 敢此仰達。 不勝惶恐。" 傳曰: "銅錢與銀子異。 今欲如是磨鍊, 冀其或行, 恐近於迂。 此事, 予知其必不能行。 今見草記, 則又增一番大役, 是無故而生事也。 生一事, 不如減一事。 此何時而乃爾耶? 試將予意, 更與備邊司, 同議處之。"


  • 【태백산사고본】 63책 9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10면
  • 【분류】
    군사-병참(兵站) / 금융-화폐(貨幣) / 예술-미술(美術) / 사상-불교(佛敎) / 외교-명(明) / 재정-역(役) / 신분-천인(賤人) / 물가(物價) / 상업(商業)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신분-천인(賤人)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