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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98권, 선조 31년 3월 29일 갑인 6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양 경리가 이남으로 군사를 보내고 올린 자문

양 경리(楊經理)가 이남(二南)으로 군사를 나누어 보내고 이자(移咨)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또 압록강(鴨綠江) 이서(以西)를 나누어 주 제독(周提督)에게 맡기고 전라도와 서해 이남을 진 총병(陳總兵)에게 맡기되 동서(東西)의 수병(水兵)이 서로 기다리고 있지 말고 성세(聲勢)를 연락하여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어 방어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제주(題秦)하였으니, 대개 이상과 같이 군사를 나누는 등의 일은 본시 부득이한 일입니다. 가령 오늘 어느 곳에 경보가 있으면 구원병을 파견하여 가서 습격하게 하고 내일 어느 곳에 위급함이 있어 구원을 요청해 오면 장수를 나누어 보낼 경우, 군사와 말들만이 명을 따르느라 피로해질 뿐만 아니라 남쪽 변방에 사는 백성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흩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어떻게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겠으며 어떻게 강토를 보수(保守)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 한번의 수고로움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종시토록 위험한 속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결말을 보지 못하게 될 것으로, 앞으로의 수고로움이 아마도 이보다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역별로 군사를 나누어 보내 경작을 하면서 지키게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백성들을 보호하여 생업을 즐기게 하고, 한편으로는 왜노로 하여금 곤궁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니, 어찌 만전(萬全)의 장구한 계책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대병(大兵)을 이미 나누어 보냈으니 군량에 관한 일이 가장 긴급합니다. 만일 군량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굶주리게 되어 적과 대치하기가 곤란할 것입니다.

지금 조사해 보건대 중국에서 수로와 육로를 경유하여 이미 압록강을 건너간 양향이 모두 18만 4천 8백여 석이고 현재 운반 중에 있는 양향도 많으며, 앞으로 매년 1백 70만 석을 보내기로 이미 의정(議定)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만 느슨하게 처리하여 접제(接濟)하지 못할까 염려되니 앞서 주둔하였던 곳을 참조해서 가까운 곳으로 속히 운반, 조처하여 군수(軍需)에 대비하도곡 회의하여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이자(移咨)하는 것이니 바라건대 귀국은 해조의 배신을 엄하게 신칙하고 독향 관원(督餉官員)을 아울러 보내어서, 자문의 내용을 본 후 군사가 주둔할 지방으로 나아가 군사의 수를 살펴보아 미리 나누어 보내 조처하게 하십시오. 각처의 주둔지에 속히 운반해서 지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긴요한 일이니 신중히 조처하여 결핍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좌도(左道)의·영천(永川)·신녕(新寧)·의흥(義興) 등처와 우도(右道)의 고령(高靈)·성주(星州)·선산(善山) 등처는 특히 일찌감치 조처해야 할 것입니다. 독향 배신의 경우는 지방을 나누어 정하여 책임을 맡기더라도 오히려 태만하게 일을 처리하여 군흥(軍興)을 어그러뜨리는 자가 있을 것이니, 반드시 엄하게 구처(究處)하여야만 능히 일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미 시행한 연유와 어느 곳에 얼마의 양료(糧料)를 준비하여 두었다는 내용을 자문으로 보내어 참고 하여 시행할 수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은 아주 긴절한 요무(要務)이니 느슨하게 처리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상 자문을 보냅니다.

다음의 내용을 첨부합니다.

동로(東路)는, 제독 아문(提督衙門)의 원임 참장(原任參將) 왕등산(王登山)이 군사 1천 2백여 명을 거느리고 안동(安東)에 주둔하고 있으며, 대동 유격(大同遊擊) 파새(擺賽)는 군사 2천 5백 명을 거느리고 안동에 주둔하였으며, 진정 도사(眞定都事) 설호신(薛虎臣)은 군사 3천을 거느리고 안동에, 남병 부총관(南兵副總管) 오유충(吳惟忠)은 군사 3천 9백여 명을 거느리고 영천(永川)신녕(新寧)에, 연수 참장(延綏參將) 왕국동(王國棟)은 군사 2천 명을 거느리고 영천과 신녕에, 유격 진잠(陳蠶)은 군사 2천 1백여 명을 거느리고 의성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지금 섭사충(葉思忠)은 남병(南兵)을 대신 거느리고 유격 진인(陳寅)은 군사 4천 명을 거느리고서 의성에 주둔하고 있으며, 선부 유격(宣府遊擊) 파귀(頗貴)는 군사 2천 5백 명을 거느리고 의홍(義興)에 주둔하고 있으며, 원임 부총병(原任副總兵) 해생(解生)원래 병마(兵馬)가 없는데 잠시 파귀를 따라 의흥에 주둔하고 있으며, 준화 우영 유격(遵化右營遊擊) 진우문(陳愚聞)은 군사 1천 5백 명을 거느리고 예천(醴川)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현재 새로 교대하는 군사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군사는, 선부병(宣府兵)이 2천이고 유격 팽신고(彭信古)의 군사가 3천 명입니다. 수병(水兵)은, 복건 유격(福建遊擊) 허국위(許國威)가 군사 1천 1백 80여 명을 거느리고 영일(迎日)장기(長鬐)에 주둔하고 있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군사는 복병(福兵)이 1천명이고 참장(參將) 왕원주(王元周)가 거느린 오송병(吳松兵) 1천과 파총(把總) 이원상(李元常)이 거느린 오송병 1천 명입니다.

중로(中路)는, 부총병 이여매(李如梅)와 원임 유격 도관(塗寬)학삼빙(郝三聘)의 군사 3천을 거느리고 선산(善山)에 주둔하고 있으며, 절병 유격(浙兵遊擊) 섭방영(葉邦榮)은 군사 1천 6백 명을 거느리고 선산에, 원임 유격 노득공(盧得功)안본립(安本立)의 군사 2천 6백 명을 거느리고 성주와 고령 사이에, 절병 유격 모국기(茅國器)는 절병 2천 9백 명과 밀운병(密雲兵) 1천 명을 거느리고 성주와 고령 사이에, 원임 부총병 이영(李寧)은 이여매(李如梅)의 요병(遼兵) 2천 8백 명을 거느리고 상주(尙州)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군사는, 절병이 4천이고 부총병 장방(張榜)이 거느린 대동병(大同兵)이 2천 명입니다.

서로(西路)는, 유 제독(劉提督) 본영(本營)이 사천(四川)의 토병(土兵) 1만 2천 명을 거느렸는데 도착하는 때에 나눌 것이며, 원임 부총병 이방춘(李芳春)은 준화병(遵化兵) 1천과 진국보(陳國寶)의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남원에, 삼둔 유격(三屯遊擊) 우백영(牛伯英)은 군사 1천 1백 명을 거느리고 남원에, 절병 유격 남방위(藍芳威)는 군사 3천 3백을 거느리고 남원에, 원임 대동 참장(大同參將) 이영(李寧)은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전주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군사는, 유격 부양교(傅良橋)가 거느린 남당병(南戇兵) 1천 5백 명으로 도착할 때 나눌 것입니다. 수병은, 총병 진인(陳璘)의 본영이 광동(廣東)의 5천 명을 거느렸으며, 유격 이금(李金)이 절병 3천 3백 명을 거느리고 전라도 지방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수병은, 유격 장양상(張良相)이 거느린 광동병 3천과 유격 심무(沈茂)가 거느린 절병 3천 1백 명, 유격 부일승(副日昇)이 거느린 낭산병(狼山兵) 1천 5백 명, 파총 양천윤(梁天胤)이 거느린 강북병(江北兵) 3천 명입니다.

이상과 같이 국왕에게 이자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06면
  • 【분류】
    외교-명(明) / 군사-병법(兵法) / 군사-휼병(恤兵) / 군사-병참(兵站) / 농업-전제(田制)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국용(國用) / 교통(交通)

楊經理分兵二南, 移咨曰:

又派鴨綠以西, 屬周提督, 全羅、西海以南, 係陳摠兵。 東西水兵, 各不等, 聲勢聯絡, 掎角防禦, 已經會題外, 蓋前項分兵等事, 原非得已。 如今日某處有警告, 遣援兵追襲, 明日某處有急請救, 分將馳往, 不惟士馬疲于奔命, 卽以南邊地居民, 恐畏驚惶, 騷然離亂, 何以安其農事, 何以保守疆土? 若不擧此一勞, 終是淹淹, 年復一年, 無以結局, 將來之勞費, 恐不止于此也。 故此派地分兵, 且耕且守, 一保居民樂業, 一使倭奴坐困, 豈非萬全長策? 但大兵旣已分撥, 而糧餉最爲緊急。 萬一軍食不資, 自難枵腹以待。 今査中國發過水陸糧餉, 已運過江者, 計一十八萬四千八百餘石, 途次見運者更多, 每年已定百七十萬之數。 第恐緩難接濟, 所據前途駐軍處所, 仍當就近, 催運措處, 以備軍需, 相應會議。 爲此合行移咨, 前去貴國, 煩爲嚴行該曹陪臣, 竝行督餉官員, 照依後開駐軍地方, 仍照兵馬名數, 預先分投, 處辨上緊, 催運各該軍前, 以備供支, 愼勿缺乏。 如左道永川新寧義興等, 右道高靈星州善山等處, 尤須早計。 若督餉陪臣, 亦須分定地方, 專以責成, 倘有怠玩懈事, 違誤軍興者, 必欲嚴加究處, 方克有濟。 希將行過緣由, 辦備過糧料, 某處某處若干咨復, 査考施行。 此係喫緊要務, 請勿遲緩。 須至咨者。 計開, 東路, 提督衙門原任參將楊登山, 領兵一千二百餘員名, 駐安東; 大同遊擊擺賽, 領兵二千五百員名, 駐安東; 眞定都事薛虎臣, 領兵三千, 駐安東; 南兵副總管吳惟忠, 領兵三千九百餘員名, 駐永川新寧; 延綏參將王國棟, 領兵二千員名, 駐永川新寧; 遊擊陳蠶, 領兵二千一百餘員名, 駐義城。 今葉思忠, 代領南兵; 遊擊陳寅, 領兵四千員名, 駐義城; 宣府遊擊頗貴, 領兵二千五百員名, 駐義興; 原任副總兵解生, 原無兵馬, 暫隨頗貴義興; 遵化右營遊擊陳愚聞, 領兵一千五百員名駐醴川。 方時新代, 未到宣府兵二千, 遊擊彭信古兵三千。 水兵, 福建遊擊許國威, 領兵一千一百八十餘員名駐迎日長鬐; 未到兵一千, 參將王元周, 領吳兵一千、把總李元常, 領吳松兵一千。 中路, 副總兵李汝梅、原任遊擊塗寬, 領郝三聘兵三千駐善山; 兵遊擊葉邦榮, 領兵一千六百駐善山; 原任遊擊盧得功, 領安本立兵二千五百駐星州高靈之間, 兵遊擊(第國器)〔弟國器〕 , 領兵二千九百, 又密雲兵一千, 駐星州高靈之間; 原任副總兵李寧, 領李汝梅兵二千八百員名駐尙州。 未到兵四千、副總兵張榜, 領大同兵二千。 西路, 劉提督本營, 領四川土兵一萬二千, 到時自派; 原任副總兵李芳春, 領遵化兵一千, 又陳國寶兵一千駐南原; 三屯遊擊牛伯英, 領兵一千一百駐南原; 兵遊擊藍芳威, 領兵三千三百駐南原; 原任大同參將李寧, 領兵一千駐全州。 未到遊擊傅良橋, 領南戇兵一千五百, 到時派。 水兵, 總兵(陣璘)〔陳璘〕 本營, 領廣東兵五千; 遊擊李金, 領兵三千三百駐全羅道地方。 未到遊擊張良相、領廣東兵三千、遊擊沈茂, 領兵三千一百、遊擊副日昇, 領狼山兵一千五百, 把總梁天胤, 領江北兵三千。 右咨朝鮮國王。

宣宗大王實錄卷之九十八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06면
  • 【분류】
    외교-명(明) / 군사-병법(兵法) / 군사-휼병(恤兵) / 군사-병참(兵站) / 농업-전제(田制)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재정-국용(國用) / 교통(交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