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군문을 전별하면서 적의 간첩·둔전·수성 등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다
상이 홍제원(弘濟院)에 거둥하여 형 군문을 전별하였다. 맞아들여 자리를 정하자, 군문이 말하기를,
"저번에 적추(賊酋) 가등청정(加藤淸正)이 포로가 된 중국 사람을 꾀어 거짓으로 나의 표첩(票帖)을 만들고는 그들을 시켜 조선에서 정탐하다가 수원(水原)에 머물러 있던 중국 사람들에게 잡혔는데, 국왕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매우 경악스럽습니다."
하였다. 군문이 말하기를,
"그가 지난번에 와서 허실을 정탐하여 돌아갔었는데 지금 다시 나왔다가 사로잡혔다고 하며, 또 전에 조선 사람들도 역시 꾀임을 당하여 매번 정탐하였다고 하였으니, 앞으로는 각별히 요패(腰牌)를 차도록 하여 십분 엄금하십시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닌 것으로 국내의 허실을 탐지한 것이니 극히 증오스럽습니다. 국왕께서는 성문의 안팎을 살펴 금지시키도록 신칙하고 또 외방의 배신들에게도 특별히 사찰하도록 하여 세작배(細作輩)들이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들은 허실을 탐지할 뿐만 아니라 창고와 무기고 등에 불을 지르기도 하니 몹시 두렵습니다. 또 나라 사람들에게 각각 요패를 차도록 하면 간첩을 식별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마산(馬山)은 90리 길입니다. 오늘 차마 이별하지 못하겠습니다마는 길이 멀기에 부득이 물러가고자 합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우리 나라가 잘 지키지 못하여 종사를 잠시도 보존하기가 어려웠는데 중국 조정에서 이미 대병을 내보내고 또 군량을 보내주었으니 황은이 망극합니다. 그리고 여러 대인들께서도 우리 나라 보기를 한 집안과 같이 여겨 힘을 다해 주선해 주시니, 여러 대인들의 덕에 대해서는 비록 이 몸이 죽더라도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였다. 군문이 말하기를,
"내가 전년 10월부터 병량(兵糧)을 보내주기를 청하였는데 미처 오지 못하였습니다. 지금은 얼음이 풀려서 병량이 많이 왔으니 왜적은 토평할 것도 없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둔전(屯田)과 수성(修城)에 십분 힘쓰십시오. 또 신하들의 현부(賢否)를 분명하게 알아서 어진 자는 진출시켜 상을 주고 불초한 자는 물리쳐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저의 이번 걸음은 병량을 계속해서 보내도록 하고자 해서이니 병량에 대해서는 걱정하실 것이 없습니다. 조선의 백성들이 만약 경작을 하지 못하게 되면 살아갈 길이 없을 것이니, 힘써 권장하기 바랍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저의 사후관(伺候官)들이 노고가 많았으니 이원익에게 물어서 차례대로 올려 쓰시기 바랍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그것은 바로 직분상 당연한 일로 수고에 대해 보상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항상 근면하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부가 이와 같으니 분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거리가 멀고 도로조차 좋지 않은데 거기에다가 봄날인데도 오히려 추우니 귀체(貴體)를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군문이 말하기를,
"왜적을 금년 내로는 평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로(三路)에 이미 분병(分兵)하였고 수병(水兵)도 겸하여 오니 왜적은 평정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서로 읍하고 떠났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0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군사-통신(通信) / 군사-병참(兵站) / 군사-휼병(恤兵) / 농업-전제(田制)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법-치안(治安) / 인사(人事)
○上幸弘濟院, 餞別邢軍門。 迎入坐定, 軍門曰: "前者賊酋淸正, 厚誘被擄唐人, 僞作俺之票帖, 使之偵探於本國, 而見擒於水原。 留住唐人, 國王知否?" 上曰: "專不聞知。 極爲驚愕驚愕。" 軍門曰: "頃者旣已來探虛實而歸, 今者見擄於再來云。 前此本國人, 亦多被厚誘, 每每偵探云。 自今以後, 各別腰牌, 十分嚴禁。 此非細事。 探知國內虛實, 則極可惡也。 願國王, 城門內外, 申飭譏禁, 且令外方陪臣, 另爲査察, 勿使細作輩恣行也。 非但探聽, 投火倉庫及武庫等地, 甚可畏也。 又令國人, 各佩腰牌, 則可辨間諜之人。" 且曰: "馬山九十里地。 今日不忍別離, 而但路遠, 不得不辭。" 上曰: "小邦失守, 宗社朝夕難保, 而天朝旣發大兵, 又發糧餉, 皇恩罔極。 而諸大人視之, 亦如一家, 盡力周旋, 諸大人之德, 雖隕首結草, 無以爲報。" 軍門曰: "俺自前年十月, 請出兵糧, 而未及來。 今則解氷, 而兵糧大至, 倭賊不足平。" 且曰: "屯田、修城, 十分勉力。 且明知臣下之賢否, 賢者進而賞之, 不肖者退而遠之。 俺之此行, 當使兵糧, 連續出送, 兵糧則不足憂矣。 本國人民。 若失耕作, 生道絶矣, 亦須勸勉。" 且曰: "俺之伺候官, 多有勞苦, 須問于李元翼, 次次陞用。" 上曰: "此乃分內事, 不足償勞, 而常慮其不勤。 然分付如此, 當如敎。" 上曰: "山川遼夐, 道路脩阻, 加以春日尙寒, 願珍寶貴體。" 軍門曰: "倭賊, 今年內可以平之。 三路旣已分兵, 水兵兼至, 賊不足平。" 遂相揖而去。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0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군사-통신(通信) / 군사-병참(兵站) / 군사-휼병(恤兵) / 농업-전제(田制)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법-치안(治安)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