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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98권, 선조 31년 3월 1일 병술 5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접대 도감에서 경리의 중국군 승전소식, 군량 군마 확보책 등을 알리다

접대 도감(接待都監)이 아뢰었다.

"조금 전에 경리(經理)가 신을 안으로 불러들여 ‘국왕의 기후가 지금 어떠한가?’라고 묻기에, 신이 아직 편안치 못하다고 답하니, 경리가 ‘무슨 증세로 앓고 계신가?’ 하였습니다. 신이 ‘지난해 이후로 중국의 장관(將官)들을 접대하느라 분주하여 몹시 수고로우셨고 또 감기에 걸린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 평안치 못하시다.’ 하자, 경리가 ‘국사가 한창 급한데 국왕께서 오랫동안 평안치 못하니 기무(機務)가 많이 적체 될까 염려된다. 모름지기 마음 써서 조리하셔야 한다.’ 하고, 이어서 양소조(楊紹祖)의 발보(撥報)를 보여주었는데, 발보에 ‘본월 24일에 중국군 3백여 명이 울산(蔚山) 근처로 진격하자 왜적이 도망쳐 본채(本砦)로 돌아갔는데 중국군이 추격하여 30여 급(級)을 참하였다. 책(柵) 밖에서 살펴보니 왜적의 수가 많지 않았으며 동쪽으로 잇대어 성 하나를 쌓아 우물이 성 안으로 속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경리가 말하기를 ‘왜적들은 수백 명의 군정(軍丁)으로도 성을 쌓는데 그대 나라는 매번 힘이 부족하고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니 매우 한스럽다. 이번에 성을 쌓기로 결정한 곳에 왜적을 본받아 착실하게 축성하라. 해생(解生)파귀(頗貴)의 초병(哨兵)이 우도(右道)의 왜적을 섬멸하고 그대로 상주(尙州)에 머물고 있으니 즉시 본도 관량 배신(管糧陪臣)에게 행문(行文)하여 상주의 식량을 방출하도록 조처하여 결핍되지 않도록 하고 또 초옥(草屋)을 많이 지어 편안히 지낼 수 있게 하라. 남원(南原)에도 한 부대를 내려 보내었으니 해도(該道)의 관량하는 곳에도 속히 행문하여 식량을 준비하게 하고 초옥을 많이 짓게 하여 잘못되는 일이 없게 하라. 야전에서는 반드시 마병(馬兵)을 써야 하니 각도의 목장 말을 동원해 오되 비록 1백 마리가 차지 않더라도 우선 나에게 보내 분급(分給)하게 하라.’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96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왕실-국왕(國王) / 군사-병참(兵站)

    ○接待都監啓曰: "卽刻經理招臣入內, 問國王氣候今何如? 臣答稱猶未平復, 經理問傷的何證? 臣等稱: ‘自上年以來, 奔走接應多小天朝將官, 勞傷已甚, 又感風寒, 日久而未平矣。’ 經理曰: ‘國事方急, 而國王久欠安, 機務之事, 慮多墜解。 須用心調理。’ 仍出楊紹祖撥報示之, 曰: ‘本月二十四日, 天兵三百餘名, 馳入蔚山近處, 賊跑還本砦, 天兵追斬三十餘級。 至柵外, 看得賊衆不多, 東邊連築一城, 使井水入城內云云。’ 經理說道: ‘倭賊則能以數百名軍丁, 亦築城子, 爾國每稱力量不足, 人力不句, 可恨可恨。 今此築城看定處所, 效倭賊所爲, 着實設築。 解生頗貴哨兵, 殲右道倭賊, 仍爲留在尙州, 尙州糧餉, 馬上行文于本道管糧陪臣, 措置支放, 使無乏絶, 且多造草房, 安(揷)〔接〕南原, 亦送一枝兵, 該道管糧處, 亦急速行文, 準備糧餉, 多造草房, 俾無違誤。 野戰則必用馬兵, 各道牧馬, 隨先拿來, 雖不滿百, 輒先寄我, 使之分給。"


    • 【태백산사고본】 63책 9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96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왕실-국왕(國王) / 군사-병참(兵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