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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97권, 선조 31년 2월 11일 병인 1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마 제독의 사관에 나가 접견하다

상이 마 제독(麻提督)의 사관(舍館)에 행행하여 접견하였다. 마 제독이 말하기를,

"요즘 일이 많아 즉시 가서 사례하지 못했는데 국왕께서 지금 또 왕림하시어 찾아주시니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대인(大人)은 신출 귀몰한 모책으로 천리길을 나와 왜난에 참여하여 불공 대천의 원수들이 대인의 수하(手下)에게 많이 죽었으니, 대인의 공과 덕을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천병(天兵)이 소방(小邦)의 일 때문에 왔으나 백성들이 군량을 지공(支供)하는 등의 일 때문에 분주히 노고하는 정상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속국(屬國)에서 천조(天朝)를 섬긴 지 2백여 년 동안 혈성(血誠)을 다하였기 때문에 천조에서도 속국에 대해 진념(軫念)하여 군병(軍兵)과 기계(器械)를 대대적으로 조발하여 구원하는 것인데, 그 때문에 군병의 사상(死傷)과 기계의 상실(喪失)에 대한 것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귀국이 천조를 섬기고 속국을 구원하는 일은 두 가지 모두 합당한 것이니 속국의 광영이 어찌 적다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지난번 싸움은 하늘이 도와 주지 않아 군사와 말이 수렁과 물 속에서 많이 죽었고 따라서 흉적이 마침내 주살을 피할 수 있게 되어 아직 일을 이루지 못했으니, 너무도 부끄러워 낯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다시 대거(大擧)를 도모하여 기필코 이 왜적을 섬멸해서 동토(東土)를 평정시켜 국왕께 붙여드리고 개가(凱歌)를 부르면서 환군(還軍)한 다음에야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끝나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황은(皇恩)이 망극합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당초에는 대인과 함께 같이 가기로 약속했었는데 떠날 때 군문(軍門)에게 청했더니, 군문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게첩(揭帖)을 보내 청했지만 역시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따라서 대인과의 약속을 저버린 듯하여 황공하고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그 일은 저희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군문께서 수차 글을 보내어 ‘국왕이 일찍이 첨공(僉公)에게 약속한 것을 이유로 여러번 같이 가기를 청했다. 나는 생각건대 경성은 근본(根本)이 되는 곳이요, 배신(陪臣)과 열읍(列邑)의 호령이 모두 이곳에서 나오므로 재삼 말렸다.’고 하였습니다. 국왕이 가시더라도 군병의 양식이 이어지지 못할 경우 일에는 유익함이 없고 한갓 오가는 데에 폐만 끼치게 될 것입니다. 국왕께서 같이 가지 않으셨어도 군량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국왕께서 가시지 않은 것이 잘 되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스러운 것은 가등청정(加藤淸正)을 즉시 사로잡아 섬멸시켜 변방의 전진(戰塵)을 없애지 못한 것입니다. 뒤에 오는 병마(兵馬)를 기다려 다시 거사하여 섬멸함으로써 동토(東土)의 백성들을 편안케 하여 주고 각자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가는 것이 바로 소원입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옛부터 대적(大賊)을 한번에 섬멸시킨 적이 있었습니까. 저 왜적은 너무도 흉악하니 오래지 않아 천위(天威)아래에서 자멸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대인께서는 조금 꺾인 것을 가지고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고, 또 말하기를,

"소방의 군사가 전장(戰場)에 가서 어떤 일을 하더이까? 조금은 효용(効用)이 있더이까? 그리고 왜적의 장기(長技)는 어떠하더이까?"

하자, 제독이 말하기를,

"국왕께서 지나치게 겸공(謙恭)하시는 뜻을 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국왕께서 함께 가시지 못한 일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사오니 모름지기 섭섭하게 여기지 마소서. 그리고 남병(南兵)의 포수(砲手)가 조선의 포수만 못합니다. 본토(本土)의 포수를 한쪽에 모두 붙이면 적도(賊徒)들을 많이 사살하니 참으로 가상한 일입니다만 수가 적은 것이 한스럽습니다. 지금부터는 수를 넉넉히 하여 가르쳤으면 합니다. 그리고 왜적에게는 장기가 없습니다. 험지에 의지하여 포를 쏘는 것이 바로 저들의 장기이지만 평원(平原)·광야(曠野)에 나왔을 때는 한번 포를 쏜 다음 건마(健馬)와 철기(鐵騎)로 공격해 들어간다면 다시 그 장기를 발휘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칼을 잘 쓴다고는 하지만 두어 자 사이에서 할 수 있을 뿐이요, 서로의 거리가 조금만 떨어지면 그것 역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본토인은 궁전(弓箭)으로 먼거리에서도 쏠 수 있으니 이것이 곧 승병(勝兵)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다른 장수의 말은 모두 믿을 것이 못되지만 저의 말은 모두 틀림없는 말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소방은 밖으로는 병력이 부족하고 안으로는 군량이 고갈된 상태라서 계획을 세울 바를 모르겠습니다. 대인께서는 반드시 계획하신 것이 있으실 것이니, 그에 대한 말을 들려주기 바랍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본토의 병마가 부족하다는 것은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군량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는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천조가 어떤 지방인데 군량이 없어 이 지방에서 나는 식량을 먹겠습니까. 천조에서 수로와 육로로 겸하여 운송해오고 있으나 도착하기 전까지 군량을 이어가기가 어려우니, 그 사이에 조달하는 것은 속국의 조처에 달려 있습니다. 대개 군량 한 가지 일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만 군문·안찰·경리 세 아문(衙門)이 이곳에 있으니, 스스로 조처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군문이 답한 것에 분명하지 못한 말이 있어 다시 묻기를,

"군량이 부족하고 군병이 넉넉하지 못하지만 흉적을 섬멸하려면 반드시 세워놓은 계책이 있어야 할 것인데, 그에 대한 술책을 듣고 싶습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그 말씀이 옳습니다. 군량이 부족한데 저 왜적들은 성을 굳게 지키고 있어 일을 결단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그 형세가 매우 어렵다는 그 말씀이 옳습니다. 다만 전일 제가 홀로 있을 때에는 매양 국왕과 서로 만나 의논하였으나 지금은 절제(節制)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 내 스스로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군문을 만나면 마땅히 이뜻을 통고할 것이나 군문이 반드시 금명 간에 국왕을 맞아 서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갑작스런 질문이라 답변할 수 없습니다만 후일에는 마땅히 이 뜻을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였다. 드디어 일어서서 서로 읍하고 나아갔다.


  • 【태백산사고본】 62책 97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81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군사-병참(兵站)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기(軍器)

○丙寅/上幸麻提督舍館處, 接見。 麻提督曰: "邇來多事, 未卽往謝, 而國王今又枉見, 多謝。" 上曰: "以大人之神謀, 來千里而赴難, 不共戴天之讎, 多死於大人之手下, 大人之功、大人之德, 無以爲報。" 提督曰: "天兵雖以小邦之事來, 而小邦之民, 以支供糧餉等事, 奔走勞苦之狀, 不忍見也。" 且曰: "屬國事天朝二百餘年, 盡其血誠, 故天朝亦軫念屬國, 大發軍兵、器械以救之, 其死傷喪失之費, 亦不可言也。 貴國之事天朝, 天朝之救屬國, 兩得其宜, 其有光於屬國, 豈云少哉? 然頃者之役, 天不助順, 士馬多死於泥水之中, 兇賊卒得逋誅, 尙未竣事, 愧赧愧赧。 然更圖大擧, 必期於蕩滅此賊, 奠安東土, 以付國王, 凱歌言旋, 然後俺等之能事畢矣。" 上曰: "皇恩罔極。" 且曰: "當初與大人, 約與從行, 而臨行請於軍門, 則軍門不許之。 更爲揭帖請之, 而亦不聽, 玆以未遂所願。 似與大人負約, 不勝惶愧。" 提督曰: "此事俺皆知之矣。 軍門數度送書曰: ‘國王以曾約於僉公, 屢度請行, 俺以爲京城根本之地, 陪臣與列邑之號令, 皆在於此, 故吾再三止之’ 云耳。 國王雖往, 而軍兵糧餉, 若不得繼, 則無益於事, 而徒貽弊於往來。 國王雖不從行, 芻糧不乏, 深喜國王不來之爲得也。 所可恨者, 淸正不卽擒滅, 以掃邊塵矣。 竢後頭兵馬之來, 再擧蹂躪, 以奠東土之民, 各自解兵而歸, 是所願也。" 上曰: "自古大賊, 安可一擧蕩滅? 彼賊窮凶極惡, 不久自滅於天威之下。 願大人, 勿以小挫爲念。" 且曰: "小邦之兵, 往于戰場, 爲何事耶? 小有効用耶? 且賊之長技何如也?" 提督曰: "國王過爲謙恭之意, 俺已知之。 國王不得從行之事, 亦已知之, 須勿爲恨。 且南兵砲手, 不如朝鮮砲手。 以本土之砲手, 全付一面, 則多中賊徒, 誠可嘉也, 但恨其少也。 自今以後, 從優數而敎之。 且賊無長技。 或據險放砲, 則是渠之技, 而若出於平原曠野, 則一放之後, 以健馬、鐵騎衝之, 則更不得施其技矣。 雖曰用劍, 只用於數尺之間, 而相去稍遠之地, 則亦無所施矣。 本土之人, 以弓箭射疏及遠, 是乃勝兵也。" 且曰: "他將之言, 皆不足信, 俺之言, 皆的實底語也。" 上曰: "小邦外而兵力不足, 內而兵糧匱竭, 小邦不知所以爲計。 大人必有成算, 願聞其說。" 提督曰: "本土兵馬之不足, 俺旣知之矣, 糧餉之不足, 非俺所知也。 天朝何許等地方, 而無糧就食於此地乎? 天朝水陸兼運, 而未及之前, 繼餉爲難, 其間調用, 在於屬國之措置矣。 大槪糧餉一事, 吾未知之, 軍門、按察、經理三衙門在此, 自當處之耳。" 上以軍門所答, 不有分明之語, 更問之曰: "糧餉不足, 軍兵不敷, 蕩滅兇賊, 必有成算, 願聞其術。" 提督曰: "其言是矣。 糧餉不足, 彼賊堅壁, 事未易決, 則其勢極難, 其言是矣。 但前日吾獨在之時, 每與國王相見而議之, 今則節制有人, 吾不得自處之。 今見軍門, 當通此意, 軍門必今明間, 邀國王相見矣。 今日忽遽, 後日當畢此意。" 遂起立, 相揖而出。


  • 【태백산사고본】 62책 97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81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군사-병참(兵站) /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기(軍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