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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96권, 선조 31년 1월 23일 기유 5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유성룡이 안동에서 민심동요 상황을 알리고, 군대 재편성을 요청하다

겸 사도 도체찰사 의정부 영의정(兼四道都體察使議政府領議政) 유성룡(柳成龍)안동(安東)에 있으면서 장계를 올리기를,

"중국군이 물러난 뒤 도내(道內)의 사람들이 다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다고 여겨, 길에서 양식을 운반하던 사람들이 혹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들이 있는 힘을 다해 양식과 마초(馬草)를 나른 것은 살 길이 있기를 바라서였는데, 이제는 다 끝났다.’ 하였습니다. 신이 직접 그 모습을 목격하였는데 비통함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경주에서 사흘을 머무르며 제장(諸將)에게 군병을 수습하도록 하였습니다. 그 중에 경주울산의 군사들은 많은 싸움을 겪었으므로 수고가 다른 군사들의 갑절이었기 때문에 그 가운데 수고가 많은 사람 5∼6인을 뽑아서 보고하게 하여 경기의 군량을 나누어 주어 남아 있는 목필(木匹)을 사게 하였고 전사자(戰死者)들은 처자를 특별히 돌보게 하였습니다. 이어서 영천(永川)·신령(新寧)·의성(義城)·의흥(義興) 등을 순찰하고, 지금 안동에 도착하여 경리(經理)의 거동을 살피고 있습니다.

신의 우매함으로 오늘의 형세를 삼가 살피건대, 손을 써볼 수 있는 곳이 없는 듯합니다. 민력(民力)이 이미 고갈되었고 인심(人心)은 더욱 흩어졌으므로 좌도(左道)와 우도(右道)로 침공해 올 적세(賊勢)가 긴박합니다만 우리에게는 이를 차단할 계책이 없습니다. 중국군을 많이 머물게 하고 싶으나 식량을 댈 수가 없고, 조금 머물게 한다면 앞으로 적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신이 밤낮으로 고민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어떤 계책을 써서라도 도모해야 할 것이요, 무익하다고 하여 그만둘 수는 없습니다. 도내(道內)의 속오군(束伍軍)들은 훈련을 겪지 않아서 명칭만 군대일 뿐 실제로는 적과 싸울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또 이번에 양식을 준비할 때 온갖 명목(名目)을 붙여 그들에게서 탈취해간 것이 너무 심했는데, 또 그들을 징발하여 싸움터로 보낸다면 백성들이 모두 약속을 저버렸다고 원망하여 산골짜기로 숨어버릴 것이니, 누가 징발에 응하려 하겠습니까. 이것이 현재 조처하기가 매우 어려운 점입니다.

대체로 용병(用兵)에 있어서는 군량의 준비가 우선입니다. 이 때문에 하루의 군량이 있은 뒤에야 하루의 군대가 되는 것인데, 지금 군병들은 모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군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금방 모였다가는 금방 흩어져 버리므로 지금까지 군대의 모양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이 살피건대 경상좌도와 우도에는 병사(兵使)와 방어사(防禦使)가 얼마 안 되는 군병을 거느리고서 적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중로(中路)의 대구(大丘) 일대는 텅텅 비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좌도와 우도의 형세가 단절되어 기맥(氣脈)이 통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는 마땅히 좌도의 경주와 중로의 대구와 우도의 의령(宜寧)·합천(陜川) 등에 각각 장수 한 명씩을 주둔시켜 그 근처의 군졸을 각 2∼3천씩 모집하여 항상 그곳에 머물면서 훈련 하는 군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지(內地) 사람들은 각기 쌀과 목필(木匹)을 내어 전사(戰士)들의 군량과 의복을 대게 한다면 병농(兵農)이 점차 나뉨은 물론 응모하여 군사가 되는 사람이 날로 모이게 되어 오늘처럼 볼품없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각도의 병사들에 대해서도 모두 숫자를 헤아려 그 가운데 정예롭고 용맹한 자를 뽑아서 장수들에게 거느리게 하고 본도의 제장(諸將)들이 거느린 군사와 함께 요해처에 나누어 웅거하면서 서로 연이을 수 있도록 주둔하여 연결되어 있는 형세를 취해야 합니다. 경주·대구·의령에 본도의 군진(軍陣)이 있으니, 그 사이인 영천(永川)·하양(河陽)·성주(星州) 등지에도 둔전을 두어 기각지세(掎角之勢)를 이루게 해야 합니다. 적세가 좀 완만하면 훈련도 하고 둔전(屯田)도 하다가 위급한 일이 있으면 동서에서 한꺼번에 일어나 혹 힘을 합쳐 즉시 적을 섬멸시키기도 하고 혹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며 매복도 하여 적의 앞뒤를 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백성들은 믿고 안심하여 농사짓는 일에 힘쓰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하늘이 재앙을 거두고 우리의 형세가 점차 형성되면 아마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게 될 것입니다. 지난 임진년에 평양(平壤) 서쪽 세 고을의 군대가 빙둘러 주둔하였다가 깊이 침입하는 적을 막았으므로 세 고을이 끝내 보전되었으니, 지금도 그때처럼 군사를 주둔시키고 형세를 더욱 확장한다면 유익함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의논하는 사람들이 모두 군량 문제를 어렵게 여기는데,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중국군이 내려왔을 때 군량을 조달할 계책이 전연 없었는데 단지 두세 고을의 힘으로 한두 달을 버텼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군량은 내지(內地)를 제외하고 대구·경주·영해 등에 있는 것이 아직도 1만여 석이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볼 때, 군량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전연 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한 고을의 군사가 있으면 당연히 한 고을의 힘으로 양성해야 하고 한 도의 군사가 있으면 당연히 한 도의 힘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고을의 군사가 10인일 때, 그 나머지 품관(品官)이나 서인(庶人)을 막론하고 군사가 되지 않은 자의 숫자가 몇 배나 많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곡식과 베를 적절히 대게 하여 조달하게 한다면 식량을 대는 데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대개 이 왜적을 섬멸하기 전에는 온 나라의 장정을 모두 모아 군대를 만들고 온 나라의 힘을 다해서 군량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러한 규법이 세워지고 구처(區處)가 적당하게 된다면, 지금은 이미 늦었지만 도모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지금 중국군이 이미 철군해 돌아가므로 민심이 의지할 데가 없어 수습하기 어려우니, 몇 달 뒤에는 장차 말할 수 없는 재앙과 뒤늦은 후회가 있겠 될 것입니다. 이것이 신이 밤낮으로 부심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함경도의 군사들은 용맹스러워 다른 군대보다 싸움을 잘 합니다. 전에는 징발해서 내려보냈지만 역시 군량이 없이 훈련시키지 못하였고 또 각 장수에게 분배(分配)하였으므로 형세가 대단치 않아서 별로 한 일이 없이 가버렸으니, 실로 애석한 일입니다. 이번에 남도(南道)의 군사들을 징발해 왔으나 용잡한 자가 대부분이어서 쓰기가 어렵습니다. 신이 데리고 있는 군관(軍官)인 전 부사(府使) 고경민(高敬民)은 일찍이 북변(北邊)에 있었던 자로 평소 군대의 실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길주(吉州)명천(明川)의 싸움에서 전공(戰功)이 많았습니다. 만약 남북도(南北道)에서 다시 용맹한 전사를 3∼4백 명 모집하여 이곳에 오게 하고, 본도의 군사와 함께 서로 섞어 훈련시켰다가 봄 2∼3월 해빙기의 변란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이 때문에 신이 함경 감사에게 이문(移文)하여 고경민으로 하여금 제때에 조발해 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충청 병사(忠淸兵使) 이시언(李時言)은 도원수 권율(權慄)이 이미 그 도(道)로 돌려보내 다시 정병 5∼6백 인을 뽑아서 우도(右道)로 내려와 정기룡(鄭起龍)과 합세하게 하였습니다. 경기의 군사들은 이번에 징발된 자가 매우 많으나 정예롭지 못한 자가 반이 넘습니다. 또 중국군의 양식과 마초를 나르는 일 때문에 한번 싸움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 역시 좌방어사(左防禦使) 변응성(邊應星)을 돌려보내 다시 그 도내에서 가장 정예로운 병사 약간을 엄히 골라서 함경도의 군사들이 내려올 때 함께 와 합세토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적세(賊勢)의 발동이 몇 달 뒤에 있을 것이니, 지금 제도(諸道)의 군사들을 모두 모아 사변(事變)에 대처하게 하는 것이 사세상 마땅하겠습니다. 중국군이 아군이 모였다는 것을 안다면 또한 다시 우리와 합세할 희망이 없지 않습니다. 신의 구구한 망견(妄見)이 적당한지의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사세상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도내의 인심도 사세(事勢)가 위태롭고 급박함을 알고서 있는 힘을 다해 곡식을 내어 군량에 제공함으로써 기필코 일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듣고 적절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매우 많았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완결될 수 있을 지의 여부는 예측할 수 없지만, 그 실정은 진실로 민망한 점이 있습니다. 이 일은 조정에서 빨리 의논하여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2책 96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70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농업-전제(田制) / 신분(身分)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兼四道都體察使議政府領議政柳成龍安東狀啓曰:

自天兵退來後, 道內人心, 以爲無復可爲, 其糧運在道者, 或泣下 以爲: "我輩 竭力糧草, 庶望生道, 而今則已矣。" 臣目見景象, 不勝悲痛。 留慶州三日, 令諸將收拾軍兵。 其中慶州蔚山之軍, 百戰之餘, 勞苦倍他, 故令抄報其稍優者五六人, 分給京畿軍糧, 措貿餘在木匹, 其戰死者, 別令優恤妻子。 臣因巡過永川新寧義城義興, 今到安東, 以候經理行止矣。 臣之愚昧, 竊見今日形勢, 似無着手處。 蓋民力已竭, 人心益散, 左右道賊勢衝突, 在於朝夕, 而在我無計把截。 欲多留天兵, 則無食繼之, 少留則又不足以禦賊。 臣日夜痛悶, 不知所出。 然其所當爲者, 當百計圖之, 不可以無益而不爲。 道內束伍之兵, 未經訓練, 雖有其名, 實不堪赴敵。 且今番至於措糧, 多作名目, 浚剝已甚, 又欲徵發赴戰, 則民皆以失信爲怨, 盡皆奔入山谷, 孰肯應調? 此其今日處置之極難者也。 大抵用兵, 當以備糧爲先, 故有一日之食, 然後方爲一日之軍。 今者軍兵雖可募聚召集, 而糧餉不足, 故旋聚旋散, 至今未成軍形。 臣觀慶尙左、右道, 僅有兵、防禦使, 率零碎軍兵, 名爲把截, 而中路大丘一帶, 則蕩然空虛。 以此左右道形勢斷絶, 氣脈不通。 今當於左道慶州、中道大丘、右道宜寧陜川等處, 各駐一將, 召募近邊之軍, 各二三千, 爲常留訓練之軍, 而內地之人, 各出米、豆、木匹, 以爲戰士糧餉、衣資, 則兵農稍分, 而應募爲軍者, 日漸聚集, 不至如今日之無形矣。 至於各道之兵, 亦皆量數抄發其精勇者, 使其將領之, 與本道諸將之軍, 分據要害, 列屯相望, 以爲連絡之勢, 如慶州大丘冝寧, 有本道之陣, 則其間永川河陽星州等處, 亦爲置屯, 掎角。 賊勢稍緩則訓練、屯田, 有急則東西齊奮, 或幷力勦截, 或合散設伏, 邀截首尾, 而其內地之民, 亦恃此爲固, 力於耕作。 如此而天意悔禍, 我勢漸成, 則庶有可濟於萬一。 往在壬辰, 平壤以西三縣之軍, 環列作屯, 以防深入之賊, 三縣終得保全。 今亦當依此布置, 而益張形勢, 則不無有益矣, 議者皆以軍餉爲難, 此固然矣。 然今當天兵下來時, 糧餉調度, 落落難合, 而只以數三邑之力, 一二月之間, 粗爲辦出。 今之遺在者, 除內地外, 在大丘慶州寧海等處者, 尙有萬餘石。 以此見之, 糧餉措置, 雖不易而亦非全然不可爲也。 臣之意, 有一邑之軍, 則當以一邑之力養 之; 有一道之軍, 則當以一道之力養之。 如一邑爲軍者十人, 而其餘未爲軍者, 勿論品官、庶人, 其數倍蓰。 量出米布, 調度有方, 則自可以接濟無乏。 蓋此賊未滅, 我國當悉一國之精以爲兵, 竭一國之力以爲食。 此規旣立, 而區處得宜, 則今雖已晩, 當有可圖之望也。 今天兵旣已捲回, 民心無所依賴, 不可收拾, 數月之後, 將有難言之禍, 不可追之悔。 此臣之所以晝夜腐心者也。 且咸鏡道之軍, 勇悍善戰, 勝於他兵。 前雖徵發下來, 而亦以無糧, 不能訓養, 且分配各將, 形勢不多, 別無爲而去, 良可痛惜。 今番南道之兵, 雖已調來, 而冗雜者居多, 亦爲難用。 臣所帶軍官前府使高敬民, 曾在北邊, 素得軍情, 吉州明川之戰, 戰功居多。 若於南北道, 更募得精勇力戰者三四百名, 旣到此處, 則與本道之兵, 相雜訓練, 以擬春汛待變之用, 似爲宜當。 故臣自此移文咸鏡監司, 使敬民及時調來, 而忠淸兵使李時言, 則都元帥權慄, 已還送其道, 再抄精兵五六百名, 下來于右道, 與鄭起龍合勢。 京畿之兵, 今番調發太多, 不精者居半, 且因天兵負糧、負草之役, 不得一戰。 而亦令左防禦使邊應星還去, 更於道內, 極擇其最精者若干名, 咸鏡軍人下來時, 同時來此, 與之協勢, 亦爲宜當。 蓋賊勢發動, 亦當在於數月之後, 此時諸道兵, 俱會待變, 於事爲宜, 而 天兵知我軍旣集, 則亦不無再擧協勢之望。 臣之區區妄見, 未知適宜與否, 而勢不得不爾。 且參以道內人情, 亦知事勢危迫, 頗願戮力, 出粟以爲軍食, 必期接濟。 聞臣此說, 以爲便宜者甚多。 雖前頭之事, 未卜完結與否, 而其情實可矜悶, 惟在朝廷急速商量定行何如?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62책 96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70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재정-국용(國用) / 재정-공물(貢物) / 농업-전제(田制) / 신분(身分) / 사법-치안(治安)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