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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94권, 선조 30년 11월 22일 기유 3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권율이 김응서·양연 등의 전공을 아뢰고 상주기를 청하다

권율이 장계(狀啓)하기를,

"입공 자효(立功自效)287) 의 처분을 받은 김응서(金應瑞)의 치보(馳報) 내에 ‘함안(咸安)에 주둔한 적을 밤에 무찌른 뒤에 원수(元帥)의 전령(傳令)에 의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장차 운봉(雲峯)으로 향하려고 할 때 항왜(降倭)에게 줄 상물(賞物)을 가지고 온 선전관(宣傳官) 인원침(印元忱)을 통하여 소명(召命)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길을 멈추고 행장을 꾸리던 즈음에 또 왜적 만여 명이 운봉에서 함양으로 넘어 들어가서 곧바로 산음(山陰)·삼가(三嘉) 등지로 내려가고 있다고 하므로 응서가 곧장 군병과 항왜를 거느리고 더러는 지름길로, 더러는 바른길로 나누어 달려가니 본적(本賊)이 산음에서 곧바로 의령(宜寧)으로 내려가 정진(鼎津)을 반쯤 건너고 있었다. 명병 수십 명이 마침 도착하여 전사(戰士)·항왜 및 전 현감 이정(李瀞)의 군대와 합세하여 일시에 돌진하여 맞부딛쳐 싸우는데, 화살이 빗발치듯 하니 적은 화살을 맞고 갑옷을 버린 채 퇴주한 자도 많아, 우리 군병은 기세를 떨치며 싸우다가 자신도 몰래 습격에 빠져드니, 적은 마병(馬兵)으로 추격하여 포위를 하였는데, 우리 군병은 명병 수십 명과 함께 포위 속으로 말려들어 거의 탈출하지 못할 뻔하였다가, 항왜 및 전사, 명병 등이 혈전을 하여 포위를 무너뜨렸다.

‘이때 출신(出身) 양연(楊淵)은 역전(力戰)하다가 전사하였고, 부정(副正) 정몽성(鄭夢星)은 온 몸에 칼을 맞아 좌우의 두 손바닥이 다 칼을 맞았고 손가락 한 개가 끊어졌으며, 항왜 손시로(孫時老)는 탄환을 맞아 왼편 가슴 밑을 뚫고 오른편 무릎 밑으로 나갔으나 아직 숨은 끊어지지 않았고, 항왜 연시로(延時老)는 말에서 떨어져 칼을 맞고 바로 죽었으며, 부정 임청옥(林靑玉)은 칼을 맞고 상처를 조금 입었다. 명병과 항왜 등의 참급(斬級)은 많게는 70여 급인데 분주하게 진퇴하는 동안에 거의 다 흩어져 없어졌으며, 명병은 두 급을 베고, 검첨지(儉僉知) 사고여무(沙古汝武)는 두 급을 베고, 훈련 부정(訓鍊副正) 이운(李雲)·항왜 동지(同知) 요질기(要叱其)·항왜 첨지(僉知) 사야가(沙也加)·항왜 염지(念之)는 각기 한 급씩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왜기(倭旗) 홍백·흑백의 크고 작은 것 3면(面)과 창 1병(柄) 칼 15병, 조총(鳥銃) 2병, 소 4마리, 말 1필과 포로되어 갔던 우리 나라 사람 1백여 명을 빼앗아 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출신 양연은 평안도 삼화(三和) 사람으로 계사년에 응서와 같은 때에 내려와서 오늘날까지 5년이 지났는데 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끝내 역전하다가 불의에 전사하였으니 지극히 불쌍하다. 정몽성은 본래 개령(開寧)에 살다가 가업(家業)을 망치고 진중(陣中)에 붙어 살았는데 싸움마다 먼저 나서서 공로가 가장 많았다. 이번에는 몸을 잊은 채 역전하다가 온 몸에 창을 맞았으니, 비록 목숨은 남아 있으나 마침내 폐인이 될 터인데, 만약 구휼을 하지 않는다면 굶어 죽을 것이 틀림없다. 항왜 손시로는 역전하다가 탄환을 맞아 생명이 위태로우니 별도로 시상하여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한다. 왜적의 머리 12급과 빼앗은 잡물은 항왜들이 모두 스스로 가지고 올라가기를 원하므로, 요구대로 줘서 올려보낸다.’ 하였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군공청(軍功廳)이 아뢰기를,

"권율의 장계 내의 군공인(軍功人)은 사목(事目)을 마련한 뒤에 기록하여 해조(該曹)로 하여금 선례를 참조 시행토록 하되, 그 중 이미 준직(準職)이 된 자 및 항왜 당상(堂上)은 나머지의 공을 장부에 적어 두고서 뒷날의 공을 기다리게 하고, 출신 양연은 역전하다가 죽었으니 해조로 하여금 선례에 따라 추증(追贈)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61책 9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41면
  • 【분류】
    군사(軍事) / 인사(人事) / 외교-왜(倭) / 외교-야(野)

  • [註 287]
    입공 자효(立功自效) : 공을 세워 속죄하는 것.

權慄狀啓:

立功自效金應瑞馳報內, 咸安屯賊夜斫之後, 依元帥傳令, 領軍將向雲峯, 而因降倭, 賞物齎來, 宣傳官印元忱, 聞有召命, 停行治裝之際, 又聞倭賊萬餘名, 自雲峯踰入咸陽, 直下山陰三嘉等處, 應瑞卽率軍兵, 與降倭, 或由徑路, 或由直路, 分道馳進, 則本賊自山陰, 直下宜寧, 半渡鼎津。 天兵數十人適到, 與戰士、降倭等及前縣監李瀞之軍合勢, 一時突入薄戰, 射矢如雨, 賊多中箭, 棄甲退北, 我軍酣戰, 不覺襲沒, 賊以馬兵, 趕到圍抱, 我軍兵與天兵數十人, 竝入圍中, 幾不得脫, 降倭及戰士、天兵等, 血戰潰圍。 出身楊淵, 力戰而死; 副正鄭夢星, 滿身逢劍, 左右手掌, 皆逢刃, 一指斷絶; 降倭 孫時老逢丸, 自左乳下貫, 出右膝下, 命時不絶; 降倭 延時老落馬, 逢劍卽死; 副正林靑玉, 逢劍暫傷。 天兵與降倭等所斬, 多至七十餘級, 而奔遑進退之間, 幾盡散失。 天兵斬二級; (儉)〔倭〕 儉僉知沙古汝武斬二級; 訓鍊副正李雲降倭同知要叱其、僉知沙也加降倭 念之, 各斬一級。 旗紅白ㆍ黑白大小旗三面、槍一柄、劍十五柄、鳥銃二柄、牛四首、馬一匹, 我國被擄人百餘名奪來。 且出身楊淵, 乃平安道 三和之人也。 自癸巳年, 與應瑞同時下來, 今至五年, 不還其家, 終始力戰, 不意戰死, 極爲矜惻。 鄭夢星則本居開寧而蕩敗家業, 寄食於陣中, 每戰先登, 功勞最多。 今此忘身力戰, 滿身被搶, 雖保餘命, 終爲廢疾之人, 若不護恤, 飢死丁寧。 降倭 孫時老, 力戰逢丸, 氣息奄奄, 別爲施賞, 以悅其心。 頭十二級、所奪雜物, 降倭等皆願自持上來, 故準授上送事。

啓下備邊司。 軍功廳啓曰: "權慄狀啓內軍功人, 依事目磨鍊後錄, 令該曹, 照例施行, 其中已爲準職者, 及降倭堂上, 餘功置簿, 以待後効; 出身楊淵, 力戰而死, 令該曹, 依例追贈何如?" 上從之。


  • 【태백산사고본】 61책 94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41면
  • 【분류】
    군사(軍事) / 인사(人事) / 외교-왜(倭)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