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 접반사 장운익이 중국군의 동정을 보고하다
10월 17일에 성첩한 제독 접반사 장운익(張雲翼)의 장계에,
"제독이 15일 전주(全州)에 당도한 일은 이미 장계를 올렸습니다. 16일에는 전주에 머물러 있지 않고 임실에 이르러 유숙하고 남원에서 15리 떨어진 지역에 이르렀는데, 이 부총(李副摠)과 중군(中軍) 해 부총(解副摠) 등 여러 장수들이 이미 먼저 와 있었습니다. 얼마 후에 서로 의논하여 분부하기를 ‘사람과 말의 먹이가 떨어진 지가 이미 3일이 되었으며 구례(求禮)는 지형이 험악하여 마병(馬兵)을 쓰기에 불편하니 부득이 철수해야겠다.’ 하고, 오수(獒樹)의 옛터로 돌아가 유숙하면서 신으로 하여금 밤을 새워 전주로 가서 식량을 재촉하여 제공하게 하였습니다. 어제는 제독의 가정(家丁)들이 구례로 가서 왜적과 싸워 4명의 머리를 베고 말 2필을 빼앗았으며, 중국 군사도 1명이 탄환을 맞아 죽었습니다. 오늘 제독이 수급 2과를 부총 이여매(李如梅)에게 주니 부총이 사양하다가 한참 후에 받았습니다.
대체로 중국 장수들은 곡성(谷城)에서 왜적이 물러간 것으로 공을 삼으며 구례에는 왜적이 많고 지형도 험악하다는 말을 듣고 교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전주에 있을 때 어렵게 약간의 쌀과 콩을 준비해 하루 먹을 식량이라도 보내려고 하였는데, 제독이 허락치 않고 유치해 두었다 회군할 때의 식량을 삼겠다 하더니, 끝내는 그 일로 꼬투리를 잡아 회군하여 올라갔으니 통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전주와 남원 일대에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고 공가나 사가나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보이는 바가 극히 참혹합니다. 곡식이 들판에 가득해도 수확하는 사람이 없는데, 주인 없는 논밭은 감사 황신(黃愼)이 지금 장수를 배정하여 베어다 군량을 삼고자 합니다. 남원과 임실은 왜적이 물러간 지 오래 되었어도 수령들의 간 곳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바로 모여들지 못하니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중국 장수의 행군 속도는 일정하지 않으니 서울에 들어갈 날짜는 서울 근처에 이르렀을 때 다시 아뢰겠습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22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 / 농업(農業)
○十月十七日成貼, 提督接伴使張雲翼狀啓:
提督十五日到全州事, 已爲狀啓。 十六日不留全州, 到任實止宿, 到南原府十五里地, 李副摠、中軍解副摠等諸將官, 已爲先至。 良久, 相議分付曰: "人馬糧絶, 已三日, 求禮地形險窄, 不便用馬兵, 不得已撤去云", 仍回鰲〔獒〕 樹舊基止宿, 令臣達夜前往全州, 催糧支放。 昨日提督家丁等往求禮, 與倭賊相戰, 斬四級, 奪馬二匹, 唐兵一名, 中丸而死。 今日提督, 以首級二顆, 給李副摠如梅, 則副摠辭謝, 良久乃受之。 大槪天將等, 以谷城賊退爲功, 且聞求禮, 賊多地險, 不欲交鋒, 故在全州時, 艱備米豆若干石, 請放一日糧, 則提督不許, 使之留作回糧, 畢竟執而爲言, 回軍上去, 不勝痛惋。 全州、南原一帶, 積屍山委, 公私廬舍, 無一遺存, 所見極慘。 但禾穀滿野, 無人(收獲)〔收穫〕 , 無主田畓, 則監司黃愼, 時方定將刈取, 欲爲軍糧, 而南原、任實, 賊退已久, 守宰不知去處, 以此人民不卽還集, 極爲可慮。 天將之行, 遲速無常, 入京日期, 則到近京地面, 更爲馳啓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22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병참(兵站) /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