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 마귀를 전송하다
상이 숭례문 밖에 나가 마 제독(麻提督)을 전송하려는데, 정언 이이첨이 와서 아뢰기를,
"마 제독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참으로 국가의 성패와 존망이 관계되는 바로서 다른 장관들의 행군과 같지 않습니다. 상께서 문외에서 전송함이 미안한 듯싶으니, 청컨대 강가까지 나가 직접 전송하여 중국 장수를 우대하는 뜻을 보여주소서."
하였는데, 상이 도승지 윤담무(尹覃茂)를 돌아보고 이르기를,
"전에 제독이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말을 듣고 내가 강가에서 전송하려 했었다. 지금도 생각은 하지만 시간이 임박하여 할 수가 없다."
하자, 윤담무가 아뢰기를,
"이제 이미 임박하여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사간원에 답하기를,
"아뢴 말은 마땅하다만 제독이 지금 나오고 있어 할 수가 없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대인이 멀리 행차하시는데 과인이 감히 나와서 전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인의 편찮은 기후가 지금은 어떠합니까?"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천질(賤疾)이 아직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남쪽 소식을 듣고 부득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말하기를,
"날씨도 추운데 멀리 가시니 과인은 참으로 미안합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국가의 큰일인데 어찌 감히 수고로움을 말하겠습니까."
하고,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남쪽 변방의 연이은 소식을 이미 들어서 아실테지요?"
하니, 상이 말하기를,
"소방의 정탐한 보고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병조 판서 이항복을 불러 앞으로 나오게 하고 묻기를,
"제독의 이번 행군이 경의 뜻에는 어떠한가? 양식은 마련할 수 있는가? 계획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니, 항복이 아뢰기를,
"중국 장수가 나아가는 것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대장이 적은 군사를 거느리고 곧장 내려가는 것은 온당치 못한 듯하니, 10여 명의 잔적(殘賊)을 죽인다 해서 무슨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또한 호서·호남 천리가 모두 잿더미가 되어 양초를 준비하는 일을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방책이 없으니, 신도 어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비변사가 정충신(鄭忠愼)을 보내 호남의 왜정을 탐지하게 했는데, 지금 돌아와서 말하기를 ‘전주성은 왜적의 무리가 다 헐어버려 터만 남아 있을 뿐이고, 남원은 성지(城池)가 그대로 있는데 왜적의 자취는 없어졌으며, 나주에는 대부대의 적이 주둔하고 있고, 곡성·구례 등에도 수백 명의 왜적이 있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2일과 4일에 연이어 왜적을 사로잡고 또 남원 5∼6리 지역에서 한 명의 왜적을 사로잡았는데, 그들에게 들으니 ‘남원 서쪽 언덕에 옛성이 있는데 왜적이 지금 옛성을 수축하여 돌을 쌓아 기초를 다지고 나무를 엮어 채(寨)를 만들며 웅거하여 지키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또한 조선 사람을 사로잡아 남자에게는 쌀 5두를 걷고 부인에게는 쌀 3두를 걷은 후에 면사첩(免死帖)을 준다.’ 하기에, 내가 지금 달려가서 이여매(李如梅)를 후원해서 협력하여 공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니, 상이 말하기를,
"후원을 어찌 꼭 대인이 직접 해야 하겠습니까. 배신(陪臣) 이항복이 호남으로 사람을 보내서 왜적의 동태를 탐지하게 했는데, 방금 올라와서 하는 말이 ‘남원에는 왜적이 없음을 목격하고 왔다. 다만 나주에 대부대가 있는데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주둔하고 있으며, 구례·곡성 등에도 많다.’고 하였습니다."
하자, 제독이 말하기를,
"저도 들었는데 그 말이 옳습니다만, 남원 서남쪽 수십 리의 땅에 옛성을 수축한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옛성이라 함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곡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니, 이해룡(李海龍)이 아뢰기를,
"중국말에서는 구(舊)와 곡(谷)의 발음이 같으니 곡성인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장운익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대장이 직접 가서 후원한다는 것은 그 이유를 모르겠다."
하니, 장운익이 나와서 아뢰기를,
"제독의 뜻은 가고 싶지는 않으나 경리가 강요하므로 양초가 떨어진 것을 알면서도 부득이해서 내려가는 것이니, 오래지 않아 돌아올 것입니다. 전에는 제독이 경리와 비등했는데 이번 군사를 동원하는 일은 경리의 절제를 받습니다. 소신에게 세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으니, 호서·호남이 판탕되어 양식을 이어댈 길이 없음이 첫째이고, 대장이 적은 군사로 급히 내려가는 것이 둘째이며, 군사는 열세이고 먹을 것은 다되어 어쩔 수 없어 군사를 돌리게 되면 흉적이 듣고 업신여기는 마음이 생길 것이며 우리 나라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실망할 것이 세째입니다."
하였다. 제독이 말하기를,
"제가 이번에 내려가는 것이 국왕의 뜻에는 어떠합니까?"
하니, 상이 말하기를,
"왜적을 섬멸하여 수치를 씻는 일은 참으로 소방의 지극한 소원이며, 군사를 출병하는 것은 대인의 신산(神算)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만, 충청·전라 두 도가 혹독하게 병화를 입어 공사(公私)가 탕진되고 흩어진 백성이 모이지 않아, 말먹이를 나르고 양식을 운반할 방법이 없습니다. 수원에는 양식이 조금 있으나 수원을 지나면 접제할 방책이 없으니, 만약 날짜를 조금 뒤로 미룬다면 주선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갑자기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양식이 없어 돌아오게 되면 도적의 기세만 북돋우게 되어 유익함이 없게 될 것이니, 이 때문에 걱정이 됩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그 말이 매우 옳습니다."
하고, 곧 가정(家丁)을 불러 한참 동안 말을 일러 경리에게 통고하게 하였는데, 이는 연로(沿路)에 양식이 없다는 뜻이었다. 상이 말하기를,
"먼저 몇 부대의 군사를 보내어 따라가겠다는 뜻을 보이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인이 직접 가는 것은 아마도 안전하지 못할 듯합니다."
하니, 제독이 말하기를,
"삼가 가르침을 따라 가기 전에 다시 헤아려서 처리하겠습니다. 군사가 이미 출발하였는데 날은 저물고 길은 머니 이만 떠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거듭 위로하자 제독이 사례하고 떠났다. 상이 선전관 두 사람에게 표신(標信)을 주어 도원수 권율(權慄)과 전라 병사 박명현(朴名賢) 및 충청 병사 이시언(李時言)에게 보내어 재촉해서 군사를 거느리고 달려가서 중국 군사와 협력하여 적을 섬멸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12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통신(通信) / 재정(財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丁卯/上幸崇禮門外, 將餞慰麻提督, 正言李爾瞻來啓曰: "麻提督領兵南下, 此誠國家成敗存亡之所關, 與他將官之行不同。 自上門外餞送, 似爲未安。 請於江上親餞, 以示優待天將之盛意。" 上謂都承旨尹覃茂曰: "前聞提督有南下之意, 予擬於江上餞送矣。 今亦思之, 而臨迫勢不可及。" 尹覃茂曰: "今已臨迫, 恐未及也。" 上答院曰: "啓辭之意當矣, 但提督今方出來, 恐未及也。" 上曰: "大人遠行, 寡人不敢不出餞。 大人愆候, 今則何如?" 提督曰: "賤疾時未快差, 而聞南報, 不得已下去矣。" 上曰: "天寒遠征, 寡人實深未安。" 提督曰: "國家之大事也, 何敢言勞?" 行茶禮。 提督曰: "南邊連日之報, 已聞知否?" 上曰: "小邦哨報, 時不來矣。" 上召兵曹判書李恒福前進, 問曰: "提督此行, 於卿意何如? 糧餉猶可辦出耶? 計將安出?" 恒福曰: "天將出就, 難可料度。 臣意則大將, 以孤軍徑下, 恐爲未穩。 雖殺十數零賊, 尙何益哉? 且兩湖千里, 盡爲灰贐, 措備糧芻, 百計無策, 臣亦未知其所出也。 備邊司送鄭忠愼, 往探湖南賊形, 卽刻入到曰: ‘全州城子, 賊徒旣盡撤毁, 只存遺址, 而南原則城池依舊, 賊蹤已絶, 而羅州, 大賊屯據, 且於谷城、求禮等處, 有數百賊徒’ 云。" 提督曰: "初二日、四日, 連擒生倭, 又於南原五六里許, 活擒一倭, 聞得南原西原有舊城, 賊方修其城, 而累石爲基, 築木爲寨, 爲據守之計。 且擄朝鮮人, 男丁則收米五斗, 婦人則收米三斗而後, 給死帖云, 故俺今馳往, 繼援李如梅, 協勢攻勦耳。" 上曰: "繼援, 豈必大人親自爲之? 陪臣李恒福送人于湖南, 探得賊形, 今方來到曰: ‘目見南原無賊而來。 但羅州有大陣, 行長屯住, 而求禮、谷城等處, 亦多有之云’ 矣。" 提督曰: "俺亦聞之, 此言是矣。 但南原西南數十里之地, 修築舊城云矣。" 上曰: "舊城云者, 是何地也? 無乃指谷城耶?" 李海龍曰: "漢語, 舊、谷音同, 疑必谷城也。" 上謂張雲翼曰: "大將親往繼援, 莫知其由。" 雲翼進曰: "提督之意則欲不往, 而經理强之, 故非不知糧芻之缺乏, 而不得已下去, 不久必當還師矣。 前則提督與經理相等, 而今此擧師之事, 則聽經理之節制。 小臣有三可悶焉, 彼兩湖蕩然, 繼糧無路, 一也; 大將以孤軍徑下, 二也; 兵孤食盡, 勢必回師, 兇賊聞之, 必生凌侮之心, 我國愚民, 亦必缺望, 三也。" 提督曰: "俺之此去, 於國王意何如?" 上曰: "滅賊灑恥, 固小邦之至願, 行師用兵, 在大人之神算, 而第忠淸、全羅兩道, 酷被兵火, 公私蕩然, 散亡未集, 飛芻輓粟, 計無所出。 水原雖有些小之糧, 若過水原, 則萬無接濟之策。 若遲日字, 則猶可周旋矣。 今遽南下, 糧乏旋還, 則只增賊氣而已, 反無所益, 玆用悶迫焉。" 提督曰: "此言甚是。" 卽招家丁, 良久說與, 通告于經理, 是沿路無糧之意也。 上曰: "先送數枝兵馬, 以示追躡之意, 似爲宜當。 大人親征, 恐是未安。" 提督曰: "謹領指敎, 當前往更量處之。 軍兵已發, 日晩路遠, 請辭去。" 上慰行再三, 提督稱謝而去。 上遣宣傳官二人, 齎標信, 趣都元帥權慄、全羅兵使朴名賢、忠淸兵使李時言, 使之領兵馳赴, 協助天兵, 以期勦滅。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312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통신(通信) / 재정(財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