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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93권, 선조 30년 10월 4일 신유 6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접반사 이덕형이 경리 양호를 만나 나눈 이야기를 종사관을 시켜 보고하다

경리 접반사 종사관이 아뢰기를,

"아침 문을 닫기 전에 경리가 신 이덕형(李德馨)을 불러서 들어오게 하므로 신이 나가서 보고 절을 하니 경리가 기둥 밖에까지 나와서 답례를 하고 신에게 올라오라고 한 다음 병의 증세를 묻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노야(老爺)께서 염려해 주신 덕으로 조금 나았다.’ 하였습니다. 계단에서 내려와 감사하다고 절하면서 도감(都監)을 없앨 수 없다고 말하려 했는데, 경리가 굳이 내려오지 못하게 만류하고 자기 옆에 서 있게 하면서 할 말이 있다고 하기에, 신이 부득이 그대로 서서 말하였습니다. 그에게 ‘소생이 병중에 있었으므로 오랫동안 직무를 살피지 못해 아문(衙門)에 다소 불미한 사체가 있으니 매우 황공하다. 품첩(稟帖)으로 올리는 말씀도 미진한 바 있으니 노야께서는 거듭 헤아려 달라.’ 하니, 경리가 웃으면서 ‘저번에 통사(通事)와 방자(幇子)를 삭감하는 일을 알리려고 하다가 배신의 체면 때문에 그대로 두게 하였다. 나의 일용 생활에 소요되는 생선·고기·식초·장물·생강·마늘 등의 물건은 모두 공급관(供給官)이 실어온 짐 속에 있는데 별도로 도감관(都監官)을 두어서 또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가?’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이 도감관은 폐단을 끼치며 소요 물품을 지방 고을에서 운반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각 집사(執事)의 인원을 갖추어 문하(門下)에서 살피게 할 따름이다. 만약 관원이 많은 것이 싫으시다면 4∼5인을 줄여서 분부에 따르겠다. 이 관원을 만약 끝내 다 없앤다면 소생이 무슨 면목으로 문하에서 살피겠는가. 체면이 거듭 손상되어 국왕께서도 감히 안심하지 못할 것이다.’ 하고, 다시 노야에게 절하고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고 하니, 경리가 웃으며 ‘이는 작은 일이니 개의할 것 없으며 품첩은 내가 서서히 살펴서 결정하겠다.’ 하였습니다.

이어 소 안찰(蕭按察)의 편지 6∼7장을 내 보이는데 모두 심유경(沈惟敬)을 구호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에는 ‘근래에 분분하게 다투면서 모두들 「참급(斬級)은 조선 사람을 죽여 거짓으로 왜적인 양 꾸민 것이다. 」 하는데 공을 살피고 군대를 다스리는 사람이 어떻게 맨손으로 왜적을 죽일 수 있겠으며, 조선 사람은 적을 바라보기만 하고서도 달아나는데 어떻게 벨 수 있겠느냐.’ 하였습니다. 경리가 그 편지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지난날에 왜적의 머리를 조사할 때 밖에서 말하기를 ‘이것은 가짜 왜적이 아닌가.’ 하였다. 이에 신이 대답하기를 ‘가짜 왜적이라면 좌우(左右)의 귀를 살펴보아 귀걸이 구멍을 뚫었던 흔적이 있으면 알 수 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왜적의 머리는 모두 진짜 왜적이니 어찌 그럴 리가 있겠는가.’ 하니, 경리가 말하기를 ‘이것이 모두 다 심유경이 기만하는 말인데 소야(蕭爺)가 다만 심유경을 보호할 줄만 알고 큰일을 무너뜨리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큰일이겠는가.’ 하고, 또 그 속에서 편지를 한 통 내보였는데 이는 바로 소 안찰마 총병(麻總兵)에게 극심한 원망을 한 것으로서 겉면에 쓰기를 ‘마 총병을 끊는 편지이다…….’ 하였습니다. 경리가 웃으면서 신에게 이르기를 ‘죄를 지은 심유경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가볍게 진수(鎭守)를 버리는 것이다.’고 말하고, 또 이봉양(李逢陽)에게 말하기를 ‘말들이 이와 같이 많으니 사체가 난처하다.’고 하자, 봉양이 말하기를 ‘전날의 참획에 관한 일은 노야께서 은밀하게 살폈다면 이러한 말들이 헛소문인 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통사(通事)와 문하 관인(門下官人)을 물리치고 가까이서 은밀히 말하기를 ‘소생이 듣기에는 노야가 5∼6천 명의 군사를 출동하여 남쪽으로 내려가고자 하였으나 군사를 많이 출동하면 양초가 부족하고 적게 발동하면 왜적의 수가 많기 때문에 내려가더라도 성공할 수 없다고 노야께서 전일에 소생에게 말하였는데, 이제 들으니 두 서너 명의 장수들이 남쪽으로 내려간다고 하니 노야의 마음 속에 어떠한 계획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니, 경리가 대답하기를 ‘부총(副摠) 이여매(李如梅)는 용맹한 장수이고 그 문하의 가정(家丁)들 중에 또한 건아(健兒)가 많다. 전라도에는 주둔해서 분탕하는 왜적이 많다 하니 쫓아가 죽여서 큰 공을 얻고자 한다. 내가 날마다 진수(鎭守)와 함께 상의하였는데 진수도 3∼4부대의 군사를 보내 왜적을 쫓아 죽이려 한다.’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전라도에 머무르는 왜적이 있으면 천병이 때를 맞추어 남쪽으로 내려가 토벌하여 위력을 보여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왜적이 전라도를 지났으면 경상도는 그들의 소굴과 가깝고 양초도 없으니 천병이 먼저 내려가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밀은 노야께서 헤아리기 바란다.’ 하니, 경리가 대답하기를 ‘마땅히 기미를 살피고 형세를 봐서 처리해야 한다. 군사의 일이란 한 가지로만 논할 수 없다.’ 하고 이어 차를 재촉해서 신에게 권하며 ‘속히 집에 돌아가서 병을 간호하라. 나도 요즘 옆구리가 매우 불편하여 음식도 전일과 같이 먹지 못하지만 큰일이 앞에 있으므로 하루도 누워서 조리하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신이 또 말하기를 ‘노야께서 늘 과군(寡君)에게 가서 사례하므로 과군은 마음 속으로 매우 불안해서 노야에게 와서 절하고자 하나 노야께서 또 사례할까 염려되어 이번에도 승지를 보내 이러한 뜻을 진달한다. 전에 이미 2∼3차례 사례하는 절을 받았으니 지금은 굳이 회사(回謝)하지 말아서 과군으로 하여금 안심하게 하라.’ 하니, 경리가 말하기를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겠는가. 설사 열 번이라도 예의는 마땅히 갚아야 한다. 국왕은 바로 한 나라의 주인이며 공후(公侯)의 위에 있으니 내가 어찌 감히 이곳에 앉아서 응당 해야 할 예의를 폐하겠는가. 가지 않으면 내 마음이 매우 불안하니 예의대로 행하여 피차가 모두 편안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내가 꼭 가서 절하겠다…….’ 하므로, 신이 감히 억지로 변론하지 못하고 물러왔습니다. 경리의 얼굴빛은 전보다 매우 온화하여 각별히 은근한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도감 낭관을 그대로 보존하는 일은 저녘문을 닫을 때 그 비답을 기다리겠으며, 군사를 출동하는 일에 있어서도 기회를 보고 처리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오늘 내일 사이에 다시 면대해서 여쭈어 아뢰겠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0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軍事)

○經理接伴使從事官啓曰: "早門未關前, 經理招臣德馨, 使入來, 臣進見行禮, 則經理卽出楹外答揖, 請臣上楹外, 問病狀好否, 臣答以蒙老爺眷念, 少得差愈。 仍欲下中階, 行謝拜, 而說及都監不可革罷之意, 則經理固止之, 使立傍邊, 有所講話云, 臣不得已仍立以說稱: ‘小生在病中, 久不得察職, 衙門下有多少不好的事體, 小生恐惶無地。 稟帖上說不盡, 望老爺再加商量。’ 經理笑而答曰: ‘那時裁減通事、幇子, 將出告示, 而爲陪臣體面, 旋令仍存。 我的日用支應, 則魚、肉、醋、醬、薑、蒜百物, 都在供給官, 駄來行李中, 別設都監官, 又幹何事?’ 臣答稱: ‘此都監官, 非是派定支應於州縣, 有所貽弊, 只欲備各執事之人, 伺候於門下而已。 如以官員數多爲嫌, 則欲省四五員, 以便傳致分付。 此官員等若終被(破)〔罷〕 散, 則小生又何顔面, 伺候於門下哉? 體面重傷, 國王亦不敢安心。 更拜老爺, 乞老爺商量。’ 經理笑而答曰: ‘此小事, 不足介意。 稟帖, 我當徐察而有發下。’ 仍出示蕭按察書札六七道, 都是救護沈惟敬之事, 而其中一帖說稱: ‘近來爭議紛紜, 都說斬級, 殺了朝鮮人, 假作形。 驗功撥軍, 徒手豈能殺賊, 朝鮮人望風奔潰, 安得斬馘來云云。’ 經理指點說稱: ‘頃日驗馘, 外間說是假否?’ 臣答稱假, 則驗看左右耳, 有穿環痕, 可悉矣。 聽得此首級, 都是眞子, 那有如此云云。’ 經理說稱: ‘此皆沈惟敬瞞話, 爺但知保了沈惟敬, 而不知壞了大事。 這箇甚麽事?’ 又拈出其中一書示之, 乃蕭按察極致怨語於麻總兵者, 而外面, 書絶麻總兵書云云。 經理笑而謂臣曰: ‘欲保負罪的一沈惟敬, 而輕絶鎭守。’ 又謂李逢陽曰: ‘說話如此甚多, 事體難處。’ 逢陽答說: ‘前日斬級, 老爺密訪, 則可知此言爲虛妄矣。’ 臣仍辟通事及門下官人, 近前密說: ‘小生聞老爺欲發五六千兵南下。 今欲大發兵, 則糧草不備, 少發兵則賊衆數多, 雖往而成, 不得事功。 老爺在前, 對小生說稱如此, 今聞數三將官南下, 不知老爺心裏, 甚麽計較。’ 經理答說: ‘副摠如梅, 乃勇將也, 門下家丁, 亦多健兒。 聞全羅道有留屯焚蕩之賊, 欲追殺得大功。 我連日與鎭守商量, 鎭守亦欲遣三四枝兵馬, 追殺賊奴矣。’ 臣答稱: ‘全羅道有留屯之賊, 則天兵及時南下, 追勦示威, 未爲不可。 若賊已過全羅道, 則慶尙道, 迫近其窟穴, 又無糧草, 天兵先去, 無所成。 此等機宜, 望老爺商量。’ 經理答說: ‘當相機觀勢處之。 兵事, 不可一槪論。’ 仍催茶饋臣曰: ‘速回家保(𧏮)〔恙〕 。 我亦近來, 肚脅甚不平, 飮食亦不如前日, 爲因大事在前, 不得一日臥調云云。’ 臣又說稱: ‘老爺, 每往寡君下處, 回謝, 寡君心裏極不安, 欲來拜老爺, 每怕老爺回拜。 今時亦遣承旨官, 陳達此意。 前時已爲兩三遭往拜, 今不必更爲回謝, 使寡君安心。’ 經理說稱: ‘豈有此理? 雖十遭, 禮當回謝。 國王, 乃一國之主, 公侯之上。 我何敢坐此而廢應行之禮? 不去則我心甚不安, 於禮當行, 彼此俱安可矣。 我必往拜云云。’ 臣不敢强辨而退。 經理辭色, 比前甚和, 別致殷勤之語。 都監郞官仍存事, 當於晩門, 待其批下, 而至於發兵事, 亦有相機處置之語。 今日或明日, 當更面稟啓達矣。" 傳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07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