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 파귀의 관사에 나아가 접견하고 위로하다
상이 파 유격(頗遊擊)의 【이름은 파귀(頗貴)이다. 】 관사에 나아가서 접견례를 행하였다. 【일찍이 직산(稷山)의 싸움에서 많은 참획의 공이 있었으므로 상이 직접 가서 위로하였다. 】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본국을 위해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왜적을 무찔러 주었으니 절하여 사례하고자 하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일찍이 서로 절한 바 있으니 이제 그만두기를 청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만리 먼 길에 수고하고 들판에서 큰 고생을 하셨으므로 과인이 항상 마음에 미안하게 여기고 있는데 이제 또 본국을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하여 왜적을 죽이고 물리쳤으니 감히 절하고 사례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이 말씀으로도 충분히 절을 대신할 만하니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고, 서로 읍하고 앉았다. 상이 이르기를,
"흉악한 왜적이 서울까지 접근하여 군사와 백성이 궤멸되고 종사가 거의 망할 지경이었는데 다행히도 대인의 위력을 힘입어 흉적의 예봉이 조금 꺾여서 이미 모두 물러갔으니 황제의 은덕이 망극하며 또한 여러 대인들의 공덕에도 감사하외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이것이 바로 도야(都爺)·제독(提督)과 국왕(國王)의 복입니다. 나에게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스스로 요란만 피웠을 뿐입니다."
하고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유격이 말하기를,
"어제 경리(經理)가 사로잡은 왜적을 사살하며 말하기를 ‘네가 반드시 조선 사람을 많이 죽였을 것이니 내가 통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다.’ 하고, 칼을 뽑아 베며 말하기를 ‘네가 조선 사람을 죽일 때 어찌 오늘에 와서 나한테 죽을 것을 알았겠느냐.’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들 왜적은 우리의 원수인데 지금 이 말을 들으니 과인도 매우 통쾌하외다."
하고, 주례(酒禮)를 행하였다. 상이 자리에서 내려와 술을 부으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좌상(座上)에서 주례를 행하시기 청하오니 너무 수고롭게 마십시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 술은 축하하는 것이니 감히 내려와서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유격도 따랐다. 유격이 말하기를,
"내가 주량이 적어서 아마도 많이 받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오늘은 다른 날과 다르고 작은 정성이 이 자리에 있으니 대인께서는 양대로 드시기를 원하외다."
하자, 유격이 말하기를,
"힘써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배신을 시켜 술을 돌리라고 하겠습니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편안히 앉아서 술을 마심이 옳을 것입니다. 현왕(賢王)께서 너무 수고로우실까 걱정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말씀대로 하겠소이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감사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서 왜적과 직접 싸워 보셨는데 그들을 상대하기에 어떠하였습니까?"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왜적의 성격이 매우 사나워서 아무리 앞잡이가 죽어도 뒤에 있는 군대가 물러서지를 않습니다. 내가 지금 나이가 55세이고 몸소 많은 싸움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각종의 오랑캐를 모두 겪어 보았으나 왜적과 같이 사나운 놈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기(鐵騎)로 달려들어 짓밟으면 능히 용맹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군사는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장수는 관리에게 폐를 끼치면서 조그마한 공이라도 세워 왕에게 보답하지 못했으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마는 너무 허물하지 마십시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천조의 대인이 본국의 일로 먼 지역에 와서 노고가 많으신데도 지방이 잔파되어 정성껏 받들지 못하는데 이제 이러한 말씀을 들으니 도리어 부끄럽고 감사할 따름이외다. 염려하지 마시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허다한 군사에 어찌 반드시 폐해가 없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천병이 뉘집 일로 이곳에 와 수고합니까. 어찌 싫어하고 괴로와하는 마음이 있겠습니까. 모든 접대를 뜻대로 하지 못하여 한이 될 뿐이오."
하였다. 유격이 은자(鋃子) 몇 냥을 내어 주방 하인(廚房下人)에게 나누어 주기를 청하자, 상이 이르기를,
"감히 받을 수 없소이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술이 이미 족하니 끝냈으면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굳이 권할 수 없소이다마는 몇 잔 더 드시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이겨내지 못하여 실례할까 두렵습니다."
하고, 또 사양하자, 상이 따랐다. 예물 단자를 증정하며 이르기를,
"감히 조그마한 토산물을 가지고 작은 정성이나마 표하는 바이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일찍이 많은 예물을 받았으니 이제는 감히 받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은 정성이나마 여기에 담겼으니 물리치지 마시기를 바라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명령을 감히 어기지 못하여 우선 단자만 받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절을 하고 물러가기를 청하오."
하니, 유격이 말하기를,
"수고롭게 마시고 읍만 했으면 합니다."
하자, 상이 그대로 따라 읍하고 나왔다.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06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
○上幸頗遊擊 【貴。】 所館, 行接見禮。 【曾於稷山之戰, 多有斬級之功, 故上親往慰謝之。】 上曰: "大人爲小邦, 提兵南下, 殺退倭賊, 請作拜以謝。" 遊擊曰: "曾已相拜, 請勿爲。" 上曰: "大人勤勞萬里, 暴露原野, 寡人恒切未安于懷。 今又爲小邦, 出死力, 殺賊以却之, 敢不作拜以謝?" 遊擊曰: "此言足以當拜, 請勿勞。" 仍作揖而坐。 上曰: "兇賊逼近畿甸, 兵民潰散, 宗社幾亡, 幸賴大人之威, 兇鋒少挫, 已盡退斂, 皇恩罔極, 且感諸大人功德。" 遊擊曰: "是乃都爺、提督及國王之福。 俺何有哉? 只自擾害而已。" 行茶禮。 遊擊曰: "昨日經理射生擒倭子曰: ‘爾必多殺朝鮮之人, 我不忍痛憤之心。’ 因自拔劍斬之曰: ‘爾殺朝鮮人之時, 豈料今日, 爲我所殺哉?’" 上曰: "伊賊, 小邦之讎。 今聞此言, 寡人甚快焉。" 行酒禮。 上將下座行酒, 遊擊曰: "請於座上行禮, 勿更勞。" 上曰: "此賀杯也, 不敢不下。" 遊擊從之。 遊擊曰: "俺量少, 恐未多拜。" 上曰: "今日異於他日, 微誠亦在此, 願大人盡量。" 遊擊曰: "當勉從之。" 上曰: "請以陪臣行酒。" 遊擊曰: "安坐而行酒可也。 恐勞賢王。" 上曰: "依命。" 遊擊曰: "多謝。" 上曰: "大人與倭相較形勢, 難易如何?" 遊擊曰: "倭性甚獰, 雖前鋒殺死而後不退。 俺時年五十五, 身經幾百戰矣。 各種諸夷, 無不試者, 而無如倭奴之獰狠也。 然以鐵騎, 馳突蹂躪, 則不能自勇矣。" 又曰: "軍則擾害於民, 將則貽弊於官, 而未効寸功, 以報賢王, 無任惶慙。 請勿爲罪。" 上曰: "天朝大人, 以小邦故, 暴露遠域, 勞苦萬狀, 而地方殘破, 無以致誠, 今承此敎, 反增漸謝。 幸勿爲慮。" 遊擊曰: "許多兵馬, 豈曰必無擾害?" 上曰: "天兵, 以誰家之事, 來此勞苦? 豈有厭苦之心哉? 但以凡事, 不如情, 爲恨耳。" 遊擊呈銀子數錢, 請分給廚房下人, 上曰: "不敢當。" 遊擊曰: "酒已足, 請罷。" 上曰: "不得從容, 請加數杯。" 遊擊曰: "不能堪支, 恐有失禮耳。" 又辭, 上從之。 呈禮單曰: "敢將土産微物, 以表卑誠。" 遊擊曰: "曾已多受厚禮, 今不敢虛受。" 上曰: "微誠在此, 願勿却。" 遊擊曰: "不敢違命, 姑領單子。" 上曰: "請作拜以辭。" 遊擊曰: "勿再勞, 只作揖。" 上從之, 仍作揖以出。
- 【태백산사고본】 60책 93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06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