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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92권, 선조 30년 9월 20일 정미 4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충청 병사 이시언이 휘하 부대의 작전 상황을 보고하다

충청 병사 이시언(李時言)이 치계(馳啓)하기를,

"청주(淸州)에 주둔했던 왜적이 진천(鎭川)충주(忠州)로 이동했기에 신이 군민(軍民)을 수습하여 방어사(防禦使)와 함께 그 앞길을 차단하려고 말을 달려 충주에 이르렀더니, 순찰사(巡察使) 정윤우(丁允祐)제천(堤川)에 있고 찬획사(贊畫使) 이시발(李時發)충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속오군(束伍軍) 이외의 한잡인(閑雜人)들은 이시발청주에서 패전한 뒤로부터는 모두 두려워하고 움츠러들어 깊숙이 숨어버리고 나오지 않기 때문에 다시 소집할 방법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각읍의 수령까지 모두 도망하여 숨어버렸는데, 청산 현감(靑山縣監) 이홍재(李弘載)는 일개 서생(書生)으로서 정예병(精銳兵) 50여 명을 뽑아 거느리고서 적진(賊陣)을 뚫고 신에게 와 현신(現身)했으니 지극히 가상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은 우선적으로 포상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啓下)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92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98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

    忠淸兵使李時言馳啓曰: "淸州屯賊移住鎭川忠州, 臣收拾軍民, 欲與防禦使截其前路, 馳到忠州, 則巡察使丁允祐堤川, 贊畫使李時發忠州矣。 束伍軍外, 如閑雜人,則一自李時發 淸州潰敗之後, 人皆畏縮, 深入不出, 更無召集之策。 至於各邑守令, 率皆竄伏, 而靑山縣監李弘載,一介書生, 抄率精銳五十餘名, 冒犯賊陣, 來現於臣, 極爲可嘉。 如此之人, 爲先褒賞事。" 啓下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59책 92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98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