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실록92권, 선조 30년 9월 20일 정미 3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접대 도감이 왜군을 추격하는 중국군의 전과를 보고하다
접대 도감이 아뢰었다.
"당일에 팽(彭)·파(擺)·시(柴) 세 장수가 먼저 돌아와 왜적을 추격하였는데 형강(荊江)에 이르러 접전하여 연승을 올렸습니다. 시 유격(柴遊擊)의 군사들은 14급을 베었으며, 파 유격(擺遊擊)은 손수 4급을 베고 군사들은 36급을 베었으며, 팽 중군(彭中軍)의 군사들도 36급을 베었으며, 제독(提督)의 가정(家丁)들은 35급을 베었고, 기타 장수의 군사들 역시 벤 것이 있어 여러 군영의 것을 합하면 1백 55급입니다. 왜적은 청주(淸州)·공주(公州) 두 곳의 대진(大陣)이 모조리 도망해 돌아갔는데 혹은 호남(湖南)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혹은 조령(鳥嶺)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져 퇴각하였습니다. 지금 이 왜적들은 사람을 만나면 즉시 죽이기 때문에 길가의 마을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어린아이도 남겨두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92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98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