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 접반사 장운익이 직산 전투의 상황을 보고하다
제독 접반사(提督接伴使) 장운익(張雲翼)이 아뢰기를,
"방금 직산(稷山)의 전쟁터로부터 돌아온 중국 병사가 말하기를 ‘천안(天安)과 직산 사이에서 뜻밖에도 왜적의 선봉이 모두들 흰 옷을 입고 들판을 뒤덮어 오기에, 중국 병사들이 처음에는 조선 사람으로 생각하여 진격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왜적의 선봉이 먼저 포를 쏘므로 중국 병사들이 일시에 말을 달려나가 시살(廝殺)하며 한참 동안 교전(交戰)하였는데, 화살에 맞거나 곤봉에 맞아 죽은 왜적이 거의 5백∼6백 명에 이르렀고 수급(道級)은 30여 개를 베었으며 해 부총(解副摠)237) 과 양 참정(楊參政)238) 도 각각 손수 수급 2개를 베었다. 그런데 왜적이 산에 올라가 백기(白旗)를 드니, 천안의 대군(大軍)이 즉각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므로 중과 부적(衆寡不敵)으로 각자 퇴각하여 지켰는데 해 부총 등 네 장수는 지난밤에 직산을 떠너 올라오고 있으며 중국 병사들도 죽은 사람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독이 즉각 각 군영에 명을 내려 모조리 강변(江邊)으로 나가 진을 치고 그대로 야영(野營)하게 하였다고 하며, 또 영기(令旗)를 보내 파 유격(擺遊擊)으로 하여금 정예병 2천 5백 명을 뽑아 거느리고서 수원(水原) 길에서 왜적을 맞아 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9책 92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90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丙申/提督接伴使張雲翼啓曰: "卽刻自稷山戰所回來唐兵說稱: ‘天安、稷山之間, 不意倭賊先鋒, 皆着白衣, 遍野而來, 唐兵等初謂稱朝鮮人, 不爲進逼。 俄而倭先放砲, 唐兵一時跑馬廝殺, 交戰良久, 倭人中箭被棍死者, 幾至五六百, 斬級三十餘顆, 解副摠、楊叅政, 各手斬二級。 而倭賊登山擧白旗, 天安大軍, 卽刻雲集, 衆寡不敵, 各自退守。 解摠兵等四將, 去夜發稷山前來, 唐兵亦多死者云。’ 且提督卽刻發放各營, 使之盡數出陣江邊, 仍爲野營云, 且發令旗, 使擺遊擊, 抄領精兵二千五百, 迎擊於水原之路云。 敢啓。" 傳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59책 92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90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