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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90권, 선조 30년 7월 5일 갑오 3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중국군과 진법이 다른 데 대한 훈련 도감의 대비책을 재가하다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都監)의 군사는 비록 충분히 정예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수년 동안 교열(敎閱)을 받았기 때문에 다소나마 좌·작·진·퇴(坐作進退)하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군기가 문란하여 대열을 지키지 못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습니다. 다만 익힌 것이 남법(南法)인데 지금 도독은 어떤 법으로 교련(敎鍊)할지 알 수 없습니다. 전일부터 봐 온 바로는 명장의 행진(行陣)하는 법이 모두 일치하지 않아, 유 총병(劉總兵)은 오로지 북법(北法)만을 썼고 오(吳)·낙(駱) 두 장수는 남법만을 사용하였는가 하면 북방의 장수는 북법(北法)만을 썼으니, 만약 전에 학습하지 않은 법으로 갑자기 시험한다면 아마도 생소함을 면치 못할 것이므로 이 점이 우려됩니다. 미리 도독 중군에게 그의 진법(陣法)이 남법을 쓰는지 아니면 북법을 쓰는지를 물어보고 도독에게 우리 군사는 남방의 진법만을 훈련하였음을 알리면 임시해서 응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감의 군사는 남쪽 지방에서 부방(赴防)204) 하는 자를 제외하고는 그 수가 많지 않은데 이제 북법으로 진법을 연습토록 한다면 마치 어린아이 장난과도 같을 것이니, 병조의 청용군(聽用軍)205) 등속을 연습하는 대열에 합하여 습진(習陣)하는 날에 참가토록 하면 군사의 수가 초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만 청용군들이 좌·작·기·고(坐作旗鼓)의 절차를 알지 못하는 점이 염려되니, 만약 도독이 진법을 연습시키는 날이 촉박하지 않으면 청용군들로 하여금 모두 도감에서 학습하고 사수(射手)와 더불어 합동하여 교련을 받게 하면 그런대로 군대의 위용에 도움이 되어 그다지 초라하지 않을 것입니다.

군중의 이목은 단지 금고(金鼓)·기치(旗幟) 및 군인의 호건·호의(號巾號衣)에 있을 뿐인데 도감에서는 이런 것을 마련할 곳이 없고, 그밖에 마련해야 할 허다한 물품도 아무리 온갖 힘을 써서 구하려 해도 마련할 방도가 없습니다. 기치는 근일에 신품으로 개조하였다고는 하나 중국군이 가지고 있는 기치에 비하면 너무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오히려 모양을 갖춘 셈이라 할 수 있더라도 군사의 호건·호의에 있어서는 수년 동안 착용했던 것으로 모두 헐었고 그중에 부방에서 갓 돌아온 군사는 거의가 누더기를 착용하여 알몸이 드러나 보이므로 보기에 너무도 초라한데 이에 대하여 창졸간에 주선할 방도가 없습니다. 병조는 일국의 군병을 관장하는 곳으로 이러한 일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군사를 보충해 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보병의 가포(價布)로서 다른 곳에 사용하던 것을 수합하여 혹 군사의 복장과 두건을 만들거나 혹은 기치와 기계를 더 만들면 도움이 반드시 많을 것입니다. 만약 도감의 힘만으로 하려고 하면 마련할 형편이 못 되므로 감히 여쭙니다.

오 총병(吳總兵)에게 그당시 중군(中軍) 조의(趙誼)로 하여금 찾아가서 군사를 훈련시킬 만한 교사를 요청토록 하였더니 총병은 즉시로 군중에서 무예에 유능한 사람 6인을 선발하여 날마다 도감에 와서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이 말한 창 쓰는 법은 《기효신서(紀效新書)》와는 달랐으니 《신서》에서는 창끝을 유연하게 휘두르는 것을 일품으로 여겼으나 이들은 유연하게 하는 것을 하품으로 여겼습니다. 대체로 그들은 우리 군사들이 여러 기술에 그런대로 능숙하고 다만 수법(手法)과 족법(足法)이 약간 달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서》에서는 살수(殺手) 기술에 화법(花法)과 정법(正法)이 있는데 전후에 걸쳐 중국 사람이 가르친 것이 무엇이 정법이고 무엇이 화법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당시 5∼6일 계속해서 도감에 와 군사훈련을 지도하였는데 도감이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면서 그에게 오랫동안 머물면서 가르쳐 줄 것인지의 여부를 물었더니 난색을 보이기에 감히 만류를 청하지 못하였거니와 지금은 이미 충주(忠州)로 내려갔습니다. 대체로 도감군이 연습한 법은 문유(聞兪)진양기(陳良璣)에게서 나왔으니 이는 곧 낙가(駱家) 군중의 법인데 이제 또 다른 기예를 다시 배운다면 어느 것이 우수하고 우수하지 않은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결국에는 한단(邯鄲)의 걸음206) 이 되지 않을까 싶으니 이 또한 염려됩니다. 요즘 중국군이 사용하고 있는 여러 진법을 다시 관찰하여 장점만을 선택해서 점차적으로 익힌다면 유익할 듯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대로 하라. 며칠 내로 진열을 사열할 것이니 도감은 십분 정돈하여 신중히 거행하라. 영상(領相)은 제조(提調)로 있으니 마땅히 그 책임을 맡아야 한다. 우리 나라의 일은 모두가 어린아이 놀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어서 중국인이 이를 보고 박장 대소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른바 한단의 걸음을 배운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어찌 널리 배우고[博學] 자세히 묻는다[審問]고 말하지 않았던가. 반드시 배움을 넓게 하고 묻기를 자세히 하며 행함을 독실히 한 후에야 적용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안 개구리나 요동 돼지207) 를 면치 못할 것이니, 그런 군사를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모름지기 오 총병(吳總兵) 문하에 가서 여러 가지 법을 많이 습득하여 그의 묘법을 모두 달통하면 이십년 이화 창법(二十年梨花槍法)이 어찌 양가(楊家)에게만 있겠는가.208) 고오조(高敖曹)·울지공(尉遲恭)·왕언장(王彦障)·곽영(郭英)의 무리도 이 앞에서는 굴복할 것이다. 다만 부지런히 가르치고 독려하는 데 달렸으니 더욱 나의 뜻을 받들어 시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8책 9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61면
  • 【분류】
    군사-병법(兵法) / 외교-명(明) / 출판-서책(書冊)

  • [註 204]
    부방(赴防) : 수자리하는 군사.
  • [註 205]
    청용군(聽用軍) : 자원하여 편입된 군사임.
  • [註 206]
    한단(邯鄲)의 걸음 : 남의 것을 모방하려다가 도리어 자기 것도 잃는다는 비유. 한단 학보(邯鄲學步).
  • [註 207]
    요동 돼지 : 우물안 개구리와 비슷한 뜻. 어떤 요동 사람이 머리가 흰 돼지를 진기하게 여겨 이를 왕께 바치려고 가다가 하동(河東)을 지나면서 그 지방의 돼지가 전부 흰돼지인 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며 도로 돌아갔다고 함. 《후한서(後漢書)》 권33 주부전(朱浮傳).
  • [註 208]
    이십년 이화 창법(二十年梨花槍法)이 어찌 양가(楊家)에게만 있겠는가. : 어떤 기술이든지 배우면 할 수 있다는 것임. 이화창법은 옛날의 창법으로, 배꽃가루를 통(筒)에 넣어 창끝에 매달고서 임전했을 때 이 창을 한 번 던지면 수십보 거리까지 갈 수 있고 그 가루가 피부에 닿으면 즉사한다고 함. 송나라 이전(李全)이 그 법을 사용하여 산동(山東) 지방에서는 당할 자가 없었는데 그의 아내 양씨(楊氏)가 말하기를, "20년간 연마한 이화창에는 천하에 적수가 없다." 하였음. 《삼재도회(三才圖會)》 기유(器由) 이화황식(梨花槍式).

○訓鍊都監啓曰: "都監之軍, 雖不可爲十分精鍊, 數年敎閱, 頗知坐作進退之法, 不至紊亂失次。 但所習者, 南法, 不知都督敎鍊, 又出於何法。 自前觀天將所行陣法, 亦皆不同, 劉總兵專用川法, 兩將用南法, 北方之將則用北法。 若以未曾學習者, 猝然試之, 則恐或未免生疎, 此爲可慮。 預於都督中軍處, 問其陣法用南用北, 使都督, 亦知我軍所習, 爲南陣, 則臨時庶有所答矣。 都監之軍, 除赴防南方者外, 其數不多, 以此習陣, 有同兒戲。 兵曹聽用之類, 相雜鍊習, 用於習陣之日, 則軍數不至埋沒, 只恐聽用軍, 專不知坐作、旗鼓之節。 若都督習陣, 不在數日之內, 則令聽用軍, 竝爲學習於都監, 與射手, 通融敎鍊, 或可以少添軍容, 不至落莫矣。 軍中耳目, 只在金鼓、旗幟及軍人號巾、號衣而已, 都監無出處, 而自外措辦許多之物, 雖艱辛萬狀, 而無路辦出。 旗幟, 近日頗以新件改造, 而其視唐軍所持則不侔矣。 然此則猶可成形, 至於軍士號巾、號衣, 則數年穿着, 盡皆壞陋, 其中赴防纔還之軍則幾何, 百結赤脫, 所見尤爲埋沒, 此則倉卒無以處之。 兵曹, 主管一國軍兵, 此等事, 亦是所當致念者。 軍士雖不得添助, 而如步兵價布, 用於他處者收合, 或爲軍士衣巾, 或添作旗幟、器械, 則其爲所益必多。 若但用都監之力, 則無可辨之勢, 敢此仰稟。 吳總兵處, 其時卽令中軍趙誼, 往請敎師, 則總兵卽發軍中善於武藝者六人, 連日來敎於都監, 其言用槍之法, 亦稍與《紀效新書》有異。 新書則以槍梢軟顫者爲上, 而此則以軟顫爲非。 大槪以爲我國之軍, 於諸技, 頗已向熟, 只是手法、足法, 有些少未通處云。 《新書》中, 殺手之技, 有花法、正法, 未知前後唐人所敎, 孰正孰花耳。 其時連五六日, 來敎於都監, 都監亦以酒饌供饋, 問其留敎與否, 則似有難色, 故不敢請留, 而今則已下忠州矣。 蓋都監軍所習之法, 出於聞兪陳良璣, 乃家軍中之法。 今又改學他技, 則旣不知孰爲勝負, 而末抄恐成邯鄲之步, 此亦可慮。 近日更觀天兵各陣之法, 取其所長, 漸次慣熟, 則似爲便益。 敢啓。" 上曰: "依啓。 都監不日將閱陣, 其十分整齊愼之。 領相以提調, 當任其責。 我國之事, 未有不如兒戲者, 恐爲唐人抵掌捧腹。 且所謂學步邯鄲者是矣。 雖然, 豈不曰博學而審問之乎? 必也, 學之博、問之審、行之篤, 然後乃可爲適用之才。 不然則終未免井底蛙, 遼東豕耳。 其將奚用焉? 須就吳總兵門下, 廣習諸技, 盡得其妙法, 則二十年梨花槍之法, 豈獨在於楊家? 而高敖曹尉遲恭王彦障郭英之輩, 當在下風矣。 只在勤勤敎誨程督而已, 更加體奉, 施行毋忽。"


  • 【태백산사고본】 58책 90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261면
  • 【분류】
    군사-병법(兵法) / 외교-명(明)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