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수 권율이 적정을 자세히 보고하다
도원수 권율이 서장을 올리기를,
"병사(兵使)의 군관(軍官)인 조개(曺漑)와 전사(戰士)인 정승헌 등이 죽도와 부산 등의 적진에 들어갔다가 이달 7일에 돌아와 말한 중에 ‘죽도의 길을 따라 부산에 들어가 적진의 형세를 살펴보았더니, 성곽은 두세 겹을 둘러쳐 완전하게 쌓았고 성을 수비하는 장비들은 전보다 배가 되었으나 왜적의 수는 불과 6∼7천 명이었다. 날마다 오가는 배들도 실상 군사를 증원하기 위한 배가 아니었고 현지에 있는 왜인들의 식량과 병기를 수송하기 위하여 서로 교대해서 쌀을 운반하는 배였다. 이는 왜인들의 말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우리들이 보기에도 역시 그러했다. 죽도의 방어 시설과 왜적의 수는 부산과 같았다. 농사에 관한 것은 소식을 널리 듣지는 못했으나 오래 머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달 4일에 시만(時萬)이란 이름의 왜장이 30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곧바로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여 바람을 기다리다가 5일에 가덕도로 갔다. 무슨 배냐고 물었더니, 왜인과 왜적에게 붙은 사람들이 답하기를 「가덕도의 군대가 고단해서 군병을 증원하는 것이다. 」고 하기도 하고, 혹은 「서로 교대시키기 위한 배이다. 」라고 하기도 하여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그 수는 많지 않았다. 또 5일 석양 무렵 3백여 명에 이르는 청정의 군대가 두 패를 지어 부산을 지나 곧바로 안골포로 향했다. 그들이 가는 이유를 물었더니, 답하기를 「안골포 진영의 형세가 고단하고 군사도 매우 적어 만일 예기치 못한 변고가 발생하면 형편상 반드시 패전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안골포의 왜장이 본시 청정의 부하였기 때문에 이로써 군대를 증원하려는 것뿐이지 별다른 뜻은 없다. 」고 했다.’
‘가덕도와 안골포 등의 진영은 조선 사람을 일체 금지시키고 들켰다 하면 모두 살해한다 하므로 가서 살펴보지 못했다. 들리는 말로는 안골포의 왜군은 5∼6백 명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부산포의 왜인 중에 그 나라의 사정을 알 만한 사람을 찾아 은냥(銀兩)을 주고서 정세를 은밀히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일본의 병마가 지난날 일찍이 나오려 했었는데, 행장과 풍무수(豊茂守)·풍직무(豊直茂) 등이 관백을 속여 고하기를 『조선이 지금은 병마가 정강(精强)하며 주즙(舟楫)144) 도 매우 많아졌다. 우리 일본의 힘으로도 아마 쉽게 당해내지는 못할 것이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군사를 일으켜 전투하는 일은 잘 참작해서 하도록 하라. 』 하였다. 이들이 이렇게 속이자 관백의 미친 마음도 이로 인해 다소 꺾여 대병을 일으키려던 계획을 중지하고 있으며, 일본에 머물고 있는 장수들도 다시 싸우고 싶지 않은 생각에 매양 형편상 곤란하다는 뜻을 백방으로 아뢰어 지금까지 결정하지 못하며 미루어 지금에 이르렀다. 」고 하였다.’
‘또 묻기를 「평조신이 들어간 것이 벌써 오래되었다. 짐작되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그러한가?」 하고 물으니, 그 왜인이 은밀하게 답하기를 「기별이 29일에 이미 도착했는데 장수들이 숨기고 말하지 않아 아직 전포(傳布)되지 않고 있다. 내가 만일 다른 사람에게 이를 누설한다면 나는 반드시 우리 장수의 손에 죽을 것이니 조심하고 가볍게 퍼뜨리지 말라. 」 하고, 이어 말하기를 「조신이 관백에게 들어가 말하기를 『왕자를 데려오는 일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군사를 출동한다 하더라도 끝내 성취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비록 서폐(書幣)를 가지고 대신이 통신(通信)하는 것일망정 그렇게라도 하여야 하겠는가?』 하자, 관백이 답하기를 『왕자를 데려오는 일이 실제로 어려운 형편이라면 그렇게 수호(修好)하는 것도 무방할 듯하다. 』고 말했다. 조신이 이미 돌아오는 길에 올랐으니 불일내(不日內)에 이곳에 올 것이며, 온다면 서로 간에 좋은 일들이 조약으로 정해져 곧바로 철병을 꾀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도 조선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바로 관백에게 통보하여 한편으로 병마를 내보내어 각기 앞 부대의 진영 뒤쪽에 주둔하게 하고는 올해는 경상도와 전라도 쪽만으로 내보내어 곡식을 가져다가 군량을 만들어 쌓아 둔 다음 내년 봄을 기다렸다가 출동시켜 깊숙이 쳐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평경직(平景直)145) 이 또 나와서 말하기를 『아비가 금명간에 돌아올 것이다. 좋든 나쁘든 간에 즉시 통지할 것으로 헤아려진다. 그러나 지금 병마가 오지 않는 것은 아비가 가서 반드시 의논이 잘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부터 좋은 일이 있어 두 나라의 전쟁이 해결된다면 그 다행함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 했다. 」 하였다. 이로 본다면 이에 대한 기별이 반드시 이미 도착했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나라가 허락할 것인가의 여부를 알지 못하여 아직 숨기고 꺼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또한 왜인은 「일본에서 꺼리는 점은 항복한 왜인이다. 그 숫자가 이미 만 명에 이르고 있는데, 이 왜인들은 반드시 우리 일본의 용병술(用兵術)을 모두 털어놓았을 것이다. 조선에서 산성을 쌓고 있는 것도 역시 이 왜인들의 지휘일 것이다. 지금 조선에 항복한 왜인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하기에, 답하기를 「다른 곳에 나누어 둔 숫자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우리 나라 우병사가 거느린 수가 거의 천여 명에 이르는데 이들 모두에게 상으로 벼슬이 내려지고 의관(衣冠)이며 전마(戰馬)가 주어지고 아내를 얻어 풍족하게 살고 있다. 」라고 하였더니, 왜인이 「항왜(降倭)를 발탁하기로 결정되었다는 것은 이미 자세히 알고 있다. 우리들도 투항하고자 하나 중로에 살해될 지의 여부를 몰라 주저하다가 지금에 이르렀을 뿐이다. 조신이 올 때에 강화의 기별이 있으면 항복하는 자들이 줄어들겠지만 전투를 벌인다는 기별이 전해진다면 항복하는 자가 많아질 것이다. 조선이 후대하고 죽이지 않는다면 어찌 다만 우리들 뿐이겠는가. 그대가 다시 와서 우리들을 인솔해 가도록 하라. 」 하였다.’
‘죽도에서는 어떤 늙은 왜인이 귀에다 대고 말하기를 「왜장들은 매양 『조선이 청야(淸野) 작전을 써서 산성으로 들어가고 곡식들을 다른 곳에 옮겨 저장하는 것이 걱정이다. 물길에서 가까운 지역의 산성이라면 10년의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식량 운반이 편리하고 군량을 계속할 수 있으니 기어이 함락시킬 수 있겠지만 만일 아주 궁벽한 지역에서 성곽을 튼튼하게 마련하고 식량을 쌓아 두고 청야 작전으로 막아낸다면 들에는 노략질할 것이 없고 뒤로는 계속되는 군량이 없게 되어 격파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로서는 큰 걱정거리이다. 』 하며 이를 늘 논의하고 있다. 조선에서 이런 기미를 알아차리고 조처를 취한다면 한번도 실수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뜻을 그대 장수에게 알려 간활(奸猾)한 술책에 넘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일본 배 1천 5백 척이 남만(南蠻)으로 도망해 들어간다는 일도 은근히 물었으나 모두 다 모른다고 말했다. 단지 말하기를 「남만은 바닷길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바람결이 좋으면 27일 만에 강안(江岸)에 도착할 수 있으나 바람결이 좋지 못하면 3∼4개월이 걸려도 강안에 접근하지 못하여, 파손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처럼 험한 뱃길로 어찌 도망쳐 갈 리가 있겠는가. 이는 반드시 잘못 전해진 소문일 것이다. 」 하였다.’라고 말해왔습니다.
그가 보고 들은 바를 모두 다 말할 필요는 없으나 청정의 군대가 안골포로 옮겨왔다는 말은 반드시 전날 오가며 상의하였던 일이 있는 듯합니다. 이로써 헤아려본다면 불원간에 연변에서 보복이 일어날 이치가 없지 않으니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좌도(左道)에 머물러 주둔하고 있는 서울의 장병들을 어느 만큼 이송하여 변란에 대비하는 것이 옳을 것같이 생각되기도 하기에 첩을 올립니다."
하였는데, 비변사에 계하하였다. 회계하기를,
"요시라가 한 말을 대강 보면 협박하기 위한 것인 듯하여 다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적들이 요구했던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회를 틈타 독기를 부릴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계책은 적정(敵情)의 사실 여부를 따질 것이 없이 전수(戰守)의 계책을 조금도 늦춰서는 안될 것입니다. 더구나 전라도는 저들이 침을 흘리며 반드시 침범할 지역입니다. 지금 양 총병이 이미 남원에 진주(進駐)하여 형세를 유리하게 만들었으니, 서로 약속을 통지하고 여러 장수들을 거듭 단속하였다가 기회를 보아 일제히 일어나게 하여 좋은 기회를 잃는 일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좌도의 군사를 이동시켜 우도의 방비에 충당하는 일은 좋은 계책이 아닌 듯합니다. 적들이 나올 방향을 지금으로서는 아직 모르며 좌도의 군사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갑자기 이러한 기별을 듣고 이쪽 군사를 저쪽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흉적들에게 허실을 엿보게 해 성동격서(聲東擊西)하게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적진에서 투항해 오는 자가 있느냐 없느냐는 적들이 장차 움질일 것인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한 말은 형편으로 헤아려볼 때 허망한 말이 아닌 듯합니다. 대체로 적과 마주 대하고 있을 때에 도망해 오는 적을 불러들이는 것은 저들의 형세를 고단하게 하고 우리의 형세를 북돋우는 방법입니다. 설사 도망쳐 나온 뒤에 처치가 곤란하다 할지라도 지금은 중국 장수가 남원에 주둔하고 있으니 항복해 오는 대로 모두 중국 장수에게 보내어 재량대로 해결하게 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세세한 일들을 십분 자세히 살펴 지휘할 것을 체찰사에게 모두 행이(行移)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윤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6책 88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225면
- 【분류】군사(軍事) / 외교-왜(倭)
○都元帥權慄書狀:
兵使軍官曺漑及戰士鄭承憲等, 入送竹島、釜山等賊陣, 而今月初七日, 還來進告內, 由竹島之路, 入往釜山賊陣, 形勢探審, 則城子二三匝完築, 禦具倍前, 倭數則不過六七千。 日日往來之船, 實非添軍之船, 乃在此倭人糧料、軍器相遞番載米之船也。 非但倭人之言如是, 吾等之所見, 亦如此。 竹島防禦節次、倭賊多小, 與釜山相同。 農作之事, 亦不廣聞, 似無久住之計矣。 今月初四日, 時萬稱名倭將, 領船三十餘隻, 直到釜山前洋待風, 初五日指向加德。 問其何船, 倭人及附賊人等答曰: "加德孤單, 添兵事出來。" 或曰: "相遞船。" 未知其詳, 然其數不多矣。 又初五日夕時, 淸正之軍, 幾至三百餘名, 作二運, 過釜山, 直向安骨浦。 問其去由, 則答曰: "安骨爲陣, 形勢孤單, 兵亦甚小, 脫有不虞之變, 勢將必敗之道, 故安骨將倭, 本以淸正管下, 以此添兵, 別無他意云云。" 加德、安骨等陣, 則朝鮮人物, 一切禁斷, 逢輒殺害云, 故不得進探。 傳問則安骨浦之倭, 不過五六百云云。 釜山浦 倭人, 可諳其國事情者, 給銀兩, 引問情形, 則答曰: "日本兵馬, 曾欲早來, 行長、豐茂守、豊直茂等輩, 誑告關白曰: ‘朝鮮, 今則兵馬精强, 舟楫甚盛, 雖我國之力, 恐不能輕當, 此非細事。 起兵戰鬪之事, 斟酌爲之。’ 以此欺之, 則關白之狂心, 因此小挫, 姑停大兵之擧, 在日本諸將, 亦不欲更戰, 每以勢難之意, 百般强陳, 至今未定, 遲留至此云。" 又問曰: "平調信入歸已久。 想有先知耶否?" 同倭密以答曰: "先聲二十九日已到, 將帥等諱不發言, 時未傳布矣。 汝若漏通他人, 則我必死我將之手, 愼勿輕傳。" 仍言曰: "調信入歸關白前言曰: ‘王子率來, 決不可爲。 雖發兵, 終不得成, 奈之何? 雖以書幣, 大臣通信, 猶可爲之乎?’ 關白答曰: ‘王子招致, 實所勢難, 則以此修好, 亦似無妨云。’ 調信已爲回程, 不日來此, 來則定約相好之事, 卽爲撤兵之計矣。 朝鮮如此不許, 則卽通關白, 一邊兵馬出來, 各屯前陣基後, 今年則只發慶尙、全羅等道, 取穀爲糧積置, 然後待明春, 動發深入之計耳。 平景直又爲來言曰: ‘我父今明當還來, 則好不好間, 卽通爲料矣。 然此時兵馬不來, 吾父之歸, 必好議而然也。 自此有好事, 解兩國之兵, 其幸何可勝言?’ 云云。" 此言觀之, 則先聲想必已到, 而未知我國之許與否, 姑諱不發, 分明矣。 又一倭曰: "日本之忌憚者, 乃降倭也。 其數已至千萬, 此倭等必盡言我國用兵之術。 朝鮮山城之築, 亦是此倭之指揮也。 今在朝鮮 降倭之數, 幾何?" 答曰: "他處分置之數, 不得詳知, 我國右兵使所率, 幾至千餘, 皆給爵賞衣冠戰馬, 作妻饒足而居矣。" 倭曰: "(宜定)降倭之發擢, 已盡詳知矣。 吾等亦欲投降, 不知中路殺害與否, 趑趄至此耳。 調信之來, 有講和之奇, 則降者小, 有相戰之奇, 則降者多。 朝鮮厚待不殺, 則豈特我輩也? 汝更來率去云云。" 竹島有一老倭, 附耳言曰: "倭將等每言: ‘以朝鮮淸野, 入山城, 移藏糧儲爲憂耳。 水路近地山城, 則雖十年之久, 運糧便易, 軍餉可繼, 期得陷沒, 若以深僻之地, 完城積糧, 淸野禦之, 則野無所掠, 後無繼餉, 勢難攻破。 以此爲之, 則吾等亦甚患矣。’ 以此常論。 朝鮮知此機微措之, 則萬無一失。 此意告爾將帥, 無陷奸猾之術, 如何云。" 日本船一千五百隻, 逃入南蠻中事, 亦爲密問, 則皆不知。 但言曰: "南蠻海路, 相距甚遠, 風利則二十七日, 始得江岸, 不利則雖至三四朔, 不得近岸, 數多致敗。 如此險濤, 豈有逃去之理乎? 必是誤傳之事云云。" 如是進告。 其所聞見, 雖不必盡言, 淸正之事, 移來安骨浦云, 此必前日, 往來相議有事之故也。 以此料之, 則不無近發沿邊, 報復之理, 極爲可慮。 左道留駐京將士量數移送, 待變便當妄料事, 牒呈。
啓下備邊司。 回啓: "要時羅所言, 以大槪觀之, 則似係要脅, 不可盡信。 然賊若所求不遂, 乘時肆毒, 在所必然。 故今日之計, 勿論賊報之實不實, 而戰守之計, 不可小緩也。 況全羅道, 乃是彼賊垂涎必犯之地。 今楊總兵旣已進駐南原, 作爲形勢, 相通約束, 申飭諸將, 相機齊奮, 無失(事)〔機〕 會事。 移左道之兵, 添防右道, 此則恐非長策。 賊之所向, 時未可知, 而左道之兵, 亦非有餘。 遽聞先聲, 移彼就此, 恐使兇賊, 窺覘虛實, 而致聲東擊西之患也。 賊陣中投降有無, 在於賊之將動與否, 此則以事情料之, 其言似不虛妄。 大抵與敵相對之際, 招納叛亡, 所以孤彼之勢, 而增我之氣也。 設使出來後, 處置爲難, 而今則天將, 方駐南原, 隨其來降, 一一付送天將, 以聽裁處, 亦無不可。 此等曲折, 十分詳察指揮事, 體察使處, 竝爲行移何如?" 啓依允。
- 【태백산사고본】 56책 88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2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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