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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87권, 선조 30년 4월 14일 갑술 3번째기사 1597년 명 만력(萬曆) 25년

침을 맞다

사시(巳時)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갔다. 이명증(耳鳴症) 때문에 면부(面部)의 청궁(聽宮)·예풍(翳風), 수부(手部)의 외관(外關)·중저(中渚)·후계(後谿)·완골(腕骨)·합곡(合谷), 족부(足部)의 대계(大谿)·협계(俠谿) 등을 각각 두 혈(穴)에 침을 맞았고, 편허증(偏虛症) 때문에 수부의 견우(肩髃)·곡지(曲池)·통리(通里)와 족부의 삼리(三里) 등 각각 두 혈에 침을 맞았고, 겨드랑이 밑에 기류주증(氣流注症)이 있어서 족부의 곤륜(崑崙)·양릉천(陽陵泉)·승산(承山) 등 각각 두 혈에 침을 맞았다. 도제조 김응남(金應南), 제조 홍진(洪進), 부제조 오억령(吳億齡), 의관(醫官) 양예수(楊禮壽)·허준(許浚)·이공기(李公沂)와 침의(針醫) 5명이 입시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창문이 모두 닫혀 어두워서 침을 놓기가 불편하다면 열어도 괜찮다."

하니, 의관 등이 아뢰기를,

"열어 놓으면 침을 놓을 때에 명쾌하겠습니다."

하고, 드디어 한 칸의 창문을 열었다. 응남이 아뢰기를,

"신들이 여러 의관과 밖에서 상의한 바에 의하면, 요사이 날씨가 더워지고 있어서 침을 맞기에 온당치 못하다고 하여 아랫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놓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의 생각은 기어코 맞고 싶다."

하였다. 홍진이 아뢰기를,

"의방(醫方)에, 침을 놓을 때는 뜸을 뜨지 않고 뜸을 뜰 때는 침을 놓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침과 뜸을 함께 실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겨드랑 밑에 기류증이 있어서 한쪽이 너무 허(虛)하니, 반드시 쑥김[艾氣]을 들이는 처방이 좋을 것 같다."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뜸뜨는 법에 반드시 50장(壯)이나 1백 장을 떠서 다 진무른 뒤에 그만둔다고 하였으니, 이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 기어코 뜨시겠다면 차라리 잠시 쑥김만 들이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한 번의 쑥김을 들이는 것으로 효과를 볼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응남이 아뢰기를,

"신이 의관 정사민(鄭士敏)의 말을 듣건대, 우각(牛角)으로 뜨는 뜸은 한 번만으로도 효과를 본 자가 있다고 하였고, 신도 가슴을 앓는 자가 한 번의 뜸으로 효과를 얻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필코 많이 떠야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침을 놓은 뒤에 뜸을 뜨는가?"

하자, 의관들이 아뢰기를,

"먼저 침으로 통기(通氣)를 하고 나서 쑥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경락(經絡)에 이미 침을 놓고 나서 또 쑥김을 들인다면 이미 열기가 있게 되는데, 이 뒤에 또 침을 놓고 뜸을 뜬다면 반드시 손상이 있을 것입니다. 침을 다 놓은 뒤 맨 마지막에 우각으로 뜨고 쑥김을 들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이 방법을 외간에서 사람들이 많이 쓴다고 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침의가 의논하여 하라."

하니, 침의들이 아뢰기를,

"침을 놓고 또 뜸을 뜨고 또 침을 놓는다면 도리어 손상이 있을 것이니, 침을 다 놓은 뒤에 뜸을 뜨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그리고 오른손의 굴신(屈伸)하는 곳에 어떤 기운이 이따금 내려 잠깐 사이에도 있다 없다 하고 또 당길 적도 있다. 오른편 겨드랑 밑에 기가 도는 듯하고 오른편 무릎이 늘 시리고 아픈데 대체로 오른편이 더욱 심하다. 그리고 이따금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증상이 있고 온몸에 땀이 나지 않아도 이쪽은 땀이 나는데 또 추위를 견디지 못할 적도 있다."

하니, 의관들이 아뢰기를,

"이는 풍기(風氣)입니다. 그러나 더러는 습담(濕痰)이 소양경(少陽經)에 잠복해 있어서 그러기도 합니다."

하였다. 상이 아랫 부위에 침을 맞을 적에는 병풍을 앞에 가리라고 명하였다. 억령 등이 아뢰기를,

"전부터 침을 맞으실 적에는 신이 늘 입참(入參)하여 왔습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여야 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번에는 전과 다르다. 발을 벗고 앉아서 재신(宰臣)을 접견하기가 미안하다."

하였다. 다시 아뢰기를,

"근시(近侍)의 반열에 있으면서 침을 맞으실 적에 입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미안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병풍 밖에 있으면 된다.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다."

하고, 아랫 부위에 침을 맞은 뒤에 병풍을 걷으라고 명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침을 맞을 적에 아픈 줄도 모르고 또 피도 나지 않았으니, 이러고도 효과를 볼 수 있겠는가?"

하니, 의관이 아뢰기를,

"통기만 하였을 따름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오른편과 왼편을 일시에 점혈(點穴)하고서 침을 놓았는가?"

하니, 의관이 아뢰기를,

"오른편의 허한 곳에 침을 놓으면 더욱 허해지기 때문에 오늘은 왼편에만 침을 놓았습니다. 오른편은 다음 날에 놓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헤아려서 하라."

하였다. 침 놓기를 마친 뒤에 약방 제조(藥房提調) 및 의관들이 차례로 나갔고, 왕세자는 문안 때문에 들어와 머물러 모시다가 침을 마친 뒤에 동궁(東宮)으로 돌아갔다.


  • 【태백산사고본】 55책 87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9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의약(醫藥)

    ○巳時, 上御別殿。 以耳鳴之症, 受鍼面部聽宮、翳風, 手部外關、中渚、後谿、腕骨、合谷, 足部大谿、俠谿等各二穴; 以偏虛之症, 受鍼手部肩髃、曲池、通里, 足部三里等各二穴; 以脅下有氣流注之症, 受鍼足部崑崙陽陵泉承山等各二穴。 都提調金應南、提調洪進、副提調吳億齡, 醫官楊禮壽許浚公沂, 鍼醫五員入侍。 上曰: "窓戶皆閉, 若昏而不便於施鍼, 則開之無妨。" 醫官等曰: "開之則施鍼時, 可以明快矣。" 遂開一間之戶, 應南曰: "臣等與諸醫官, 外間相議, 近來日氣向熱, 受鍼未穩云, 故下意則皆不欲爲之矣。" 上曰: "予意必欲爲之矣。" 洪進曰: "醫方以爲, 鍼則不灸, 灸則不鍼云。 今者鍼、灸竝施, 亦未穩當矣。" 上曰: "脅下如有氣流注, 而一邊偏虛, 必以艾氣入之, 方好矣。" 應南曰: "灸法, 必五十壯、百壯, 盡腐爛, 然後乃已, 此則決不可爲之。 必欲灸之, 亦須暫入艾氣爲當。" 上曰: "一入艾氣而有效乎?" 應南曰: "臣聽醫官鄭士敏之言, 以牛角灸, 一度爲之, 而有見效者云, 臣亦見胸腹痛者, 一灸而得效。 不必多灸而有效也。" 上曰: "鍼然後灸之乎?" 醫官等曰: "先以鍼通氣後, 入艾氣可矣。 但已施經絡鍼, 而又入艾氣, 則已有熱氣矣。 此後又鍼又灸, 則必有損。 施鍼畢, 而最末以牛角灸, 入艾氣何如? 此法外間云, 人多用之矣。" 上曰: "鍼醫議爲。" 鍼醫等曰: "鍼而灸, 灸而又鍼, 則反有傷矣。 盡施鍼後, 終末灸之宜當。" 上曰: "然則如是爲之。 且右手屈伸處, 有氣時降, 倐忽之間, 乍有乍無, 亦有拘急之時。 右脅之下, 氣若流行, 右膝常覺酸痛。 大槪右邊偏甚, 有時如蟲行之狀, 全體不出汗, 而此邊則出汗, 亦有不耐寒冷之時矣。" 醫官等曰: "是風氣也。 或有濕痰, 藏於少陽經而然矣。 上受鍼下部時, 命以屛風遮障於前。 億齡啓曰: 自前受鍼時, 臣常入參矣。 今則何以爲之?" 上曰: "今則異於前。 脫足而坐, 接見宰臣未安。" 再啓曰: "在近侍之列, 受鍼時, 不得入侍, 極爲未安。" 上曰: "在屛外矣, 雖不入何妨?" 上受鍼于下部後, 命去屛。 上曰: "施鍼時, 不覺痛, 且不出血。 如是而亦有效乎?" 醫官曰: "只通氣而已。" 上曰: "左、右邊, 一時點穴而受鍼乎?" 醫官曰: "右邊虛處鍼之, 則尤至於虛, 今日只鍼左邊, 而右邊則他日施之何如?" 上曰: "量爲之。" 施鍼畢後, 藥房提調及醫官等, 以次出, 王世子以朝問安, 因留侍, 過畢鍼後, 還東宮。


    • 【태백산사고본】 55책 87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96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왕실-의식(儀式) / 의약(醫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