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대신 및 비변사 유사 당상과 논의하다
상이 대신 및 비변사 유사 당상을 인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선이 비록 2백 척이라 하나 매우 많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16진(陣)이 거의 다 나온 것입니다. 행장의 군사는 두치(豆恥)의 길로 가서 정탐하여 전라도를 엿보려는 것 같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전라도 등은 전혀 방비를 하고 있지 않다. 한 사람도 수군(水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그곳은 호령이 행하여지지 않기 때문에 군사들이 즉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동안 간사한 아전들이 용사(用事)하여 제장(諸將)의 호령이 하나도 시행되지 않았고, 혹시 한 가지 명령이 내려도 수개월이 걸려 오는 자도 있고, 오지 않는 자도 있으니 매우 부당합니다."
하였다. 판중추부사 윤두수가 아뢰기를,
"이번에 도원수가 길에서 왜적 두세 명을 만났다 하는데, 혹시 적이 흉역(兇逆)을 부렸다면 얼마나 나라가 욕되게 되었을지 아득합니다. 마땅히 체찰사에게 하서하여 간이(簡易)하게 출입하지 못하게 하고, 또 그런 영적(零賊)을 소탕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순신(李舜臣)은 조정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전쟁에 나가는 것을 싫어해서 한산도에 물러나 지키고 있어 이번 대계(大計)를 시행하지 못하였으니, 대소 인신(人臣)이 누군들 통분해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지중추부사 정탁(鄭琢)은 아뢰기를,
"이순신은 참으로 죄가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순신은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계미년 이래 사람들이 모두 거짓되다고 하였다. 이번에 비변사가 ‘제장과 수령들이 호령을 듣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비변사가 그들을 옹호해주기 때문이다. 중국 장수들이 못하는 짓이 없이 조정을 속이고 있는데, 이런 습성을 우리 나라 사람들도 모두 답습하고 있다. 이순신이 부산 왜영(倭營)을 불태웠다고 조정에 속여 보고하였는데, 영상(領相)이 이 자리에 있지만 반드시 그랬을 이치가 없다. 지금 비록 그의 손으로 청정의 목을 베어 오더라도 결코 그 죄는 용서해 줄 수 없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이순신은 한동네 사람이어서신이 어려서부터 아는데, 직무를 잘 수행할 자라 여겼습니다. 그는 평일에 대장(大將)이 되기를 희망하였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글을 잘 아는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성품이 강의(强毅)하여 남에게 굽힐 줄을 모르는데, 신이 수사(水使)로 천거하여 임진년에 공을 세워 정헌(正憲)까지 이르렀으니, 매우 과람합니다. 무릇 장수는 뜻이 차고 기가 펴지면 반드시 교만하고 게을러집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순신은 용서할 수가 없다. 무장(武將)으로서 어찌 조정을 경멸하는 마음을 갖는가. 우상(右相)이 내려갈 때에 말하기를 ‘평일에는 원균(元均)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되고 전시에는 써야 한다.’고 하였다."
하니, 좌의정 김응남이 아뢰기를,
"수군으로서는 원균만한 사람이 없으니, 이제 버릴 수 없습니다."
하고, 유성룡이 아뢰기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깊습니다. 상당 산성(上黨山城)을 쌓을 때, 원균은 토실(土室)을 만들어 놓고 몸소 성 쌓는 것을 감독하였다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수군의 선봉을 삼고자 한다."
하니, 김응남이 아뢰기를,
"지당하십니다."
하였다. 영중추부사 이산해(李山海)가 아뢰기를,
"임진년 수전(水戰)할 때 원균과 이순신이 서서히 장계(狀啓)하기로 약속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이순신이 밤에 몰래 혼자서 장계를 올려 자기의 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원균이 원망을 품었습니다."
하고, 윤두수가 아뢰기를,
"이순신을 전라 충청 통제사(全羅忠淸統制使)로 삼고, 원균을 경상 통제사(慶尙統制使)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원균이 만약 적의 소굴로 직접 침입하면 누가 당하겠는가. 소공(邵公)과 이현충(李顯忠)의 일007) 이 참으로 이와 같다."
하였다. 김응남이 아뢰기를,
"모름지기 어사(御史)를 보내 그로 하여금 규찰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문신(文臣)으로 특별히 어사를 정해 그간의 사정을 살피게 해야 한다."
"이순신은 조용한 사람인 듯한데, 다만 속임수가 많고 전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병조 판서 이덕형(李德馨)에게 이르기를,
"원균의 일을 급히 조처하라."
하니, 아뢰기를,
"원균을 처음 수전(水戰)에 내보낼 때 의논이 일치되지 않아 이에 이르렀습니다. 근래 변방 장수의 일을 보건대, 이운룡(李雲龍)은 도적 한두 명을 보면 나아가서 싸우지 않고 단지 문보(文報)만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이 평시 같았으면 어찌 그의 몸에 견벌(遣罰)이 미치지 않았겠습니까. 원균을 좌도(左道)로 보내는 것이 무방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좌도로는 보낼 수 없다."
하니, 김수가 아뢰기를,
"서성(徐渻)이 술을 차려 잔치를 베풀고서 두 사람이 화해(和解)하도록 했는데, 원균이 이순신에게 말하기를 ‘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다.’ 【다섯 아들이란 권준(權俊), 배흥립(裵興立), 김득광(金得光) 등을 말한다. 】 하였으니, 그의 분해 하고 불평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였다. 이덕형이 아뢰기를,
"군사 일은 반드시 조리(條理)가 있어 마치 그물에 강(綱)이 있는 것과 같은 연후에야 두서(頭緖)를 알 수 있는 것인데, 전라도의 일은 매우 문란합니다. 신이 군사의 액수(額數)를 알고자 하여 무학(武學)이라 이름하여 팔도로 하여금 병조에 올리게 하였더니, 황해도 등은 이미 올려보냈는데 전라도는 잠잠하게 아무 소식이 없으니, 매우 허술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일본에 사신 보내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사신을 보내지 않으면 후회하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사세가 이미 급하게 되었으니, 보내도 도움이 없을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사세로 보아 하기 어려운 것인가, 의리로 보아 말하는 것인가?"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사세가 이미 급하게 되었는데, 어찌 의리를 생각하겠습니까."
하자, 【이는 망발이다. 대신이 ‘어찌 의리를 생각하겠습니까.’라는 말을 입에서 내어 임금에게 들려줄 수 있단 말인가. 】 상이 이르기를,
"의리는 아무리 위급한 때라 해도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번 황신(黃愼)이 갈 때에는 무슨 의리가 있었기에, 오늘날 성지(聖旨)를 받들어 사신을 보내느 것만 유독 의리가 아니란 말인가."
하였다. 이산해가 아뢰기를,
"신이 병으로 사실(私室)에 누워 있는데, 미아(迷兒)가 급히 와서 말하기를 ‘일변(日變)이 비상하다.’ 하였습니다. 변이 매우 참혹합니다. 양변에 극(戟)이 있었는데 그 극은 천문지(天文志)에 미세한 것이라고 하였지만 이것은 쏘는 빛이 매우 크니 극이 아닙니다. 또 붉은 기운 또한 흉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러한 때에, 어찌 천변(天變)이 있어야만 경계하겠는가. 계사년 정월 초하루에 흰무지개가 해를 꿰었는데 누군들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때 평양에서 크게 이겼으니, 이번에는 청정의 목을 벨 징조가 아니겠는가."
하자, 이덕형이 아뢰기를,
"계사년에 신과 제독(提督)이 군중에서 나와 흰무지개를 바라보고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84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154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인물(人物)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과학-천기(天氣)
- [註 007]소공(邵公)과 이현충(李顯忠)의 일 : 소공은 소굉연(邵宏淵)으로 이현충과 함께 송(宋)나라 사람이다. 이현충은 충용(忠勇)이 뛰어났는데, 소흥(紹興) 연간에 여러 차례 군공을 세워 중흥(中興)의 명장이 되어 벼슬이 태위(太尉)에 이르렀다. 효종(孝宗) 때 금(金)나라 군사를 물리쳐 하남(河南)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소굉연이 그 공을 시기하여 서로 틈이 생겨 사사건건 저지하여 큰 공을 이루지 못했다. 《송사(宋史)》 권367 이현충열전(李顯忠列傳).
○戊午/上命招大臣及備邊司有司堂上引見。 上曰: "賊船雖二百, 最多矣。" 成龍曰: "十六陣幾盡出來矣。 行長之軍, 往探豆恥之路, 似有窺覘全羅矣。" 上曰: "全羅等道, 防備全不爲之。 水軍無一人來者云, 何以爲〔之〕 乎?" 成龍曰: "彼處號令不行, 故軍不卽出。 其間奸吏用事, 諸將號令, 一無所施, 或一令之下, 動至數月, 或有至者, 或有不至者, 極爲未安。" 判中樞府事尹斗壽曰: "今者都元帥, 道逢二三, 儻或使賊得售其兇逆, 則其爲辱國, 未知如何, 宜下書體察使, 勿爲簡易出入, 且令勦滅零賊何如? 李舜臣不用朝廷命令, 厭於臨戰, 退保閑山, 今此大計, 不得施爲, 大小人臣孰不痛憤?" 知中樞府事鄭琢曰: "舜臣誠有罪矣。" 上曰: "舜臣未知其如何人, 自癸未年來, 人皆謂詐矣。 今者備邊司言: ‘諸將不聽號令, 守令不聽號令’ 云者, 無他故也, 自備邊容護之故也。 唐官欺罔朝廷, 無不爲之, 此習, 我國人皆爲薰襲。 李舜臣以燒釜營, 瞞告于朝廷, 領相在此, 此必無之理也。 今雖手持淸賊之頭, 斷不可贖其罪矣。" 成龍曰: "舜臣, 同里人也。 臣自少知之, 以爲能察職者。 平日希望, 必爲大將。" 上曰: "能解文否?" 成龍曰: "强毅不爲人(橈)〔撓〕 屈。 臣以薦水使, 壬辰之功, 至加正憲, 極爲過矣。 凡將, 志滿氣得則必驕惰。" 上曰: "李舜臣不可饒貸。 武將何以生心輕蔑朝廷? 右相下去時言: ‘平日則勿以元均爲將, 臨敵之日則用之’ 云。" 左議政金應南曰: "舟師莫如元均, 今不可棄。" 成龍曰: "爲國之誠不淺。 築上黨山城時, 均作土室入居, 親視築城云。" 上曰: "欲爲舟師先鋒。" 應南曰: "至當。" 領中樞府事李山海曰: "壬辰水戰時, 均與舜臣相約, 徐徐狀啓云, 而舜臣潛夜獨爲狀啓, 以爲己功, 故均由是怨恨。" 斗壽曰: "以舜臣, 〔爲〕 全羅、忠淸統制使, 以元均爲慶尙統制使何如?" 上曰: "元均若直入賊窟, 誰可止之? 邵公 李顯忠事, 誠如是矣。" 應南曰: "須遣御史, 使之糾察何如?" 上曰: "文臣, 別定御史, 使察其間事情, 則可也。" 斗壽、應南皆曰: "舜臣似是從容者, 而但多詐, 不爲前進者矣。" 上謂兵曹判書李德馨曰: "元均事, 急急措處。" 曰: "元均, 初以爲送于水戰, 論議不一, 至於此。 近觀邊將之事, 李雲龍見一二盜賊, 不爲進戰, 只行文報。 此人如在平時, 豈無譴罰及於其身乎? 元均送于左道無妨。" 上曰: "左道不可送。" 睟曰: "徐渻置酒開宴, 使二人和解, 則元均謂舜臣曰: ‘汝有五子’ 【五子指權俊、裵興立、金得光等也。】 云。 其忿惋不平可知。" 德馨曰: "兵事必有條理, 若網在綱, 然後可知頭緖, 而全羅一道之事, 極爲紊亂。 臣欲見兵額, 名爲武學, 而使八道上曹, 則黃海等道, 皆已上送, 全羅道則寂然無聲, 極爲虛疎。" 上曰: "遣使日本, 何以爲之? 若不遣使, 不無後悔。" 成龍曰: "事勢已急, 雖送之恐無益也。" 上曰: "事勢而爲難乎? 義理而言乎?" 成龍曰: "事勢已急, 何顧義理?" 【是妄發也。 大臣安得何顧義理字, 發於口而聞於人君乎?】 上曰: "義理雖顚沛之間, 豈有不顧乎? 昔者黃愼之去, 有何義理, 今日承聖旨遣使者, 獨非義理?" 山海曰: "臣病伏私室, 迷兒顚倒來告曰: ‘有日變非常’。 其變極慘, 兩邊有戟。 (之)戟, 《天文志》謂細微之物也, 此則射光甚大, 非戟也。 且赤氣者, 亦凶矣。" 上曰: "如此之時, 何待天變而後, 有所警惕? 癸巳年元月元日, 白虹貫日, 孰不大畏, 而其時大捷箕城。 此無乃梟淸正之徵乎?" 德馨曰: "癸巳年, 臣與提督, 出來軍中, 望見白虹, 皆有喜色云。"
- 【태백산사고본】 53책 84권 25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154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외교-왜(倭) / 군사(軍事) / 인물(人物)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