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체찰사 노경임과 고급사 권협을 인견하다
오시(午時)에 상이 도체찰사 종사관 홍문관 교리 노경임(盧景任)과 첨지중추부사 고급사(告急使) 권협(權悏)을 인견하였다. 상이 노경임에게 이르기를,
"무슨 일 때문에 왔는가?"
하니, 노경임이 아뢰기를,
"사실이 모두 장계 가운데에 있습니다. 이원익과 권율(權慄)이 마침 가까운 곳에 있는데, 조치하는 규획(規劃)이 같지 않기 때문에 신으로 하여금 친히 와서 아뢰게 한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니, 아뢰기를,
"이원익은 일을 반드시 자세히 살핀 연후에 하는데, 권율은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급하게 하므로 같지 않음이 많기 때문에 이원익은 고민이 많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간섭하기 때문에 그런가?"
하니, 아뢰기를,
"규획이 같지 않아서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래서는 안 된다. 도원수는 마땅히 체찰사를 따라야 한다. 전장에 임하여서는 혹 스스로 결단할 일이 있겠지만, 평일에는 원수가 체찰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하니, 우부승지 허성(許筬)이 아뢰기를,
"원래 명호(名號)가 많아서 제장(諸將)이 영을 들어야 할 주장(主將)을 모릅니다. 이미 ‘원수(元帥)’라 이름해 놓았으면 원수 역시 마땅히 스스로 결단해야 하고, 또 남의 절제(節制)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부사(副使)라고 칭호해야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도체찰사는 지금 경주에 있는가? 그대는 경주에서 왔는가?"
하니, 아뢰기를,
"신은 경주에 있다가 왔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체찰사는 잘 있는가?"
하니, 아뢰기를,
"지난번에는 지칠 줄 모르고 나라 일을 하였으나, 금년에는 병이 많아 수척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원수는 어디에 있는가?"
하니, 아뢰기를,
"체상(體相)이 원수에게 전령하였더니, 원수는 바쁜 일이 있어 한산도에 갔다고 답하였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경주는 누가 지키고 있는가?"
하니, 답하기를,
"권응수(權應銖)와 김태허(金太虛)·홍계남(洪季男) 등이 부산 산성(釜山山城)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예로부터 산성이 있었는가?"
하니, 답하기를,
"예로부터 산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약자들을 산성으로 몰아넣어 주민을 소개(疎開)하니, 민정(民情)이 매우 민박하게 여깁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른바 민박해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 아뢰기를,
"사람은 많고 성은 좁아서 다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수군은 얼마나 조치되었는가?"
하니, 아뢰기를,
"한산도의 수군의 배는 50∼60척이며, 지금 양호 지방에서 조치하고 있는 선박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번 중국 사신의 말 가운데 ‘관백은 나이가 많고 잔열(殘劣)하다.’하였으니, 전에 듣던 바와 다르다."
하니, 허성이 아뢰기를,
"신이 본 바로는 그 신장은 보통이나 눈빛이 사람을 압도하였습니다. 중국 사신이 잔열하다고 한 말은 진위(眞僞)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계빈(界濱)이란 곳은 마치 우리 나라의 한강(漢江)과 같다고 하는데 그러한가?"
하니, 허성이 아뢰기를,
"계빈은 바로 해빈(海濱)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층루(層樓)가 있다고 하였다."
하니, 허성이 아뢰기를,
"5층, 3층의 누가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래서 반 공중에 아득한데 배를 타고 그 아래를 지나가면 완연히 그림 속을 가는 듯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적의 누(樓)에는 반드시 층계가 있어 다닐 것이다."
하니, 허성이 아뢰기를,
"판자를 깔아 사다리를 만들고 좌우에 난간이 있으며 동(銅)으로 기둥을 세웠는데, 그 넓이는 25간이나 되며 높이는 50장(丈)이나 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계빈의 인구는 얼마나 되는가?"
하니, 허성이 아뢰기를,
"대·소 계빈이 있어 거리가 15리인데 여염집이 섞여 있으며, 술이나 떡을 파느라 시장에 좌판(坐販)이 줄지어 있는 것이 마치 중국의 통주(通州)와 같았습니다."
하였다. 상이 권협에게 이르기를,
"속히 청병(請兵)하여 부산의 적을 소탕하라."
하니, 권협이 아뢰기를,
"근력이 미치는 한 어찌 감히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에 헌패(憲牌)를 가지고 가라고 전교하셨기 때문에 속히 들어갈 수 있을 듯하고, 별달리 운반할 물건도 없으니, 관마(官馬)를 지급하면 어찌 속히 도착하지 못하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통사(通事)는 몇 사람이나 데리고 가는가?"
하니, 권협이 아뢰기를,
"2명을 데리고 가기로 하였는데 어제 인견할 때 의논한 바대로 2명을 더하였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통사의 숫자가 적으면 질병이나 사고로 의외의 일이 있게 되고, 선래(先來)역시 보내지 않을 수 없으니, 통사가 또한 적은 듯하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육문도(陸文韜)가 석 상서(石尙書)의 편지를 가지고와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이는 석 상서의 글이 아닌 위조였다. 석 상서가 그 말을 듣고 매우 미안해 하여 여러 차례 잡아내라 명하였는데, 육문도가 이미 돌아갔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다만 당초의 곡절을 석 상서가 반드시 자세히 알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그 글을 부쳐 보내고, 또 면대 교시하여 그대로 하여금 자세히 알아서 상서에게 밝히도록 하는 것이다. 대개 작년 9월 사이에, 병부(兵部) 차관(差官) 육문도라 칭하는 자가 갑자기 석 상서와 이여매(李如梅) 등의 게첩(揭帖)및 예단(禮單)을 가지고와 도감(都監)에 바쳐 내전으로 보내왔다. 그 때에 섭장(葉將)이 이곳에 있을 때였기 때문에 섭장의 게첩도 가지고 왔으니, 육문도는 3인의 게첩을 가지고 왔고, 예물은 석 상서가 나에게 보낸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중국의 현상(賢相)이 반드시 외국과 교통(交通)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중간에서 교사(狡詐)한 자가 석 상서를 음해(陰害)하려는 것이다.’라고 여겨 단지 회사첩(回謝帖)을 이 여매에게 보내면서 ‘이는 반드시 위조된 일이다.’ 하였다. 이번에 장언지(張彦地)가 상서의 수찰(手札)을 가지고 나왔는데 말하기를 ‘육문도의 일은 병부에서 모르는 일이다.’ 하였고, 지난 겨울에 또 공운로(龔雲路)를 보내 병부의 글로 나에게 말하였다. 내가 그 글을 보여주고, 또 한 부를 등사해서 공운로에게 주니, 공운로 역시 말하기를 ‘후일 배신(陪臣)이 경사에 올 때 부치라.’ 하였다. 그러니 그대가 병부에 가서 자세히 말하라."
하니, 권협이 아뢰기를,
"병부에서 비록 신에게 묻지 않더라도 신이 품백(稟白)해야 합니까?"
하자, 상이 이르기를,
"내가 거절했다는 뜻을 반드시 언급하고 ‘국왕 역시 배신(陪臣)으로 하여금 친히 글을 보게 하고 대인(大人)으로 하여금 곡절을 자세히 살피도록 하였다.’고 해야 한다. 이여매(李如梅)가 글씨를 지워 변조한 것이 어찌 이처럼 많은가."
하고, 또 소첩(小帖)을 보여주변서 이르기를,
"이것은 석 상서의 첩이며, 이 하나는 석 상서가 이여매에게 첩(帖)하여 조선 국왕에게 전송(轉送)한 것이라 하니, 모름지기 이 글을 보고 또 그 곡절을 자세히 알라. 또 이 첩은 이여매의 글이고 예단(禮單) 4필은 또한 이여매가 보낸 것으로 함께 한 의첩(衣帖)에 넣었다. 글씨를 위조한 것이 분명하니, 반드시 간사한 사람이 시킨 것이다."
하였다. 권협이 아뢰기를,
"이번에 소신이 가서 별도로 정문(呈文)을 지어 한편으로는 석 상서에게 변명하고, 한편으로는 우리 나라의 정상을 분명히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승문원(承文院)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별도로 정문을 짓되 ‘배신이 육문도의 글을 가지고 간다.’ 하면 무방할 것이다."
하였다. 미시(未時)에 파하고 나갔다.
- 【태백산사고본】 53책 84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53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 / 건설(建設)
○午時, 上引見都體察使從事官弘文館校理盧景任、僉知中樞府事告急使權悏。 上謂景任曰: "緣何事來?" 景任曰: "事實俱在狀啓中。 大抵元翼, 與權慄適在近處, 措置規畫不同, 故令臣親自來啓矣。" 上曰: "所謂不同者, 指何事?" 曰: "元翼事必詳審, 然後爲之, 權慄則事無大小, 皆爲忙急, 事多不同, 故元翼多有悶慮者。" 上曰: "掣肘而然耶?" 曰: "規畫不同也" 上曰: "不然。 都元帥當從體察使可也。 若臨戰場, 或有自斷之事, 有之矣, 若平日, 則元帥聽體察使指揮。" 右副承旨許筬曰: "元是名號多門, 諸將不知聽令之主將。 旣曰名以元帥, 則元帥亦當自斷。 又曰聽人節制, 則可使稱號副使可也。" 上曰: "都體察, 今在慶州耶? 爾來自慶州耶?" 曰: "臣自慶州來。" 上曰: "體察好在否?" 曰: "頃於國事, 不知暫倦, 今年多病疲瘦。" 上曰: "元帥安在?" 曰: "體相傳令于元帥, 元帥答以有忙事, 往閑山云。" 上曰: "慶州誰守之?" 曰: "與權應銖、金太虛、洪季男等, 結陣于釜山山城。" 上曰: "古有山城耶?" 曰: "古有山城。 且老弱, 驅入山城, 使爲淸野, 民情極以爲悶迫。" 上曰: "所謂悶迫者, 何也?" 物多城小, 人難容入矣。 上曰: "舟師幾何措置?" 曰: "閑山之舟師五六十隻, 時方兩湖措置之船, 未知幾何。" 上曰: "今此天使之言曰: ‘關白年老殘劣’ 云, 異於前所聞矣。" 筬曰: "臣之所見, 其身長中, 而眼光照人。 天使所謂殘劣, 臣未知眞僞也。" 上曰: "界濱之地, 如我國漢江云, 然乎?" 筬曰: "界濱, 卽海濱也。" 上曰: "有層樓云。" 筬曰: "五層、三層之樓無數, 故半空縹渺, 乘舟而過其下, 宛如畫中行也。" 上曰: "賊之樓, 必層行也?" 筬曰: "鋪板爲梯, 左右有欄, 以銅爲柱, 其廣二十五間, 其丈五十丈。" 上曰: "界濱, 幾人住耶?" 筬曰: "大小界濱, 相距十五里, 閭閻兼匝, 或買酒餠, 列市坐販之狀, 有如中國 通州矣。" 上謂權悏曰: "速爲請兵, 以淸釜賊" 悏曰: "筋力所及, 安敢不前進? 今者有憲牌持行之敎, 故似爲速前入去, 而別無輸轉之物。 若給官馬, 則豈不速達乎?" 上曰: "通事幾人帶去?" 悏曰: "二名帶去, 昨仍引見所議, 又加二名矣。" 上曰: "通事數小, 則疾病事故, 必有意外之事, 先來亦不可不遣, 通事亦似小矣。" 上曰: "陸文韜持石尙書書視予, 卽非尙書書, 乃僞造者也。 尙書聞之, 極爲未安, 累令拿送, 而文韜已歸, 故不得之。 第當初曲折, 使尙書必詳知之可也, 故今付其書送之, 予且面敎, 使爾詳知, 而辨別於尙書。 大槪上年九月間, 兵部差官陸文韜稱名者, 忽然持石尙書及李如梅等揭帖及禮單, 來呈于都監, 轉入于內。 其時葉將, 在此之時, 故捧葉將揭帖而來, 文韜持三人揭帖, 禮物則尙書送于予者。 予意以爲, 天朝賢相, 必不交通外國, 必中間詐狡者, 陰害石尙書者也, 只以回謝帖, 送于李如梅處曰: ‘此必僞造之事’ 云耳。 今者張彦池, 持尙書手札來言曰: ‘文韜事, 非兵部所知’ 云。 去冬又遣龔雲路, 以兵部書言之, 予以其書示之, 且謄出一本, 付之雲路, 雲路亦言: ‘後日陪臣赴京時, 付送云爾。’ 其歸報兵部, 仔細言之。 悏曰: "兵部雖不問于臣, 臣必稟白乎?" 上曰: "以予拒之之意, 必及之。 國王亦令陪臣, 親見是書, 俾大人細燭曲折云云, 可也。 如梅塗擦, 何至於如此之多也?" 且以小帖示之曰: "此尙書石帖, 此一則尙書帖於如梅, 而使之轉送朝鮮國王者云也。 須見此文, 且詳見其曲折。 且此帖, 如梅書, 禮單四匹, 亦如梅所送, 而都入一衣帖。 卽塗擦僞造之事, 分明矣, 必奸人所使也。" 悏曰: "今玆小臣之去, 別作呈文, 一以辨明尙書, 一以暴白我國情狀何如?" 上曰: "令承文院議, 別爲呈文, 陪臣持文韜書以去云, 無妨。" 未時罷黜。
- 【태백산사고본】 53책 84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53면
- 【분류】왕실-국왕(國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軍事) / 건설(建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