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황신이 일본국에서 돌아와 올린 서계장
통신사 황신(黃愼)이 일본국(日本國)에서 돌아와 서계(書啓)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평조신(平調信)이 말하기를 ‘관백(關白)이 청정(淸正)·장정(長政)495) ·길성(吉盛)496) ·행장(行長) 등 네 장수로 하여금 먼저 떠나게 하였으니 이 네사람이 당연히 선봉장(先鋒將)이 될 것이다. 청정은 금년 겨울에 먼저 바다를 건너나갈 것이고, 장정과 길성은 겨울을 지내고 봄에 나갈 것이다. 청정 등이 비록 먼저 간다 해도 단지 전날 있던 곳에 주둔할 것이며, 대군(大軍)은 2월경에 나갈 것이다.’하였습니다. 신들이 낭고야(浪古耶)에 도착하던 날 장정은 이미 풍전주(豊前州)로부터 와서 있었는데 바다를 건널 시기를 탐지하여 들어보니, 그 수하의 군병·식량·무기가 아직 정리되지 못하여 현재 일자를 정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1. 신들이 대포(大浦)에 있을 때 평행장(平行長)이 역관(譯官) 박대근(朴大根)에게 말하기를 ‘청정이 비록 빨리 오고 싶더라도 반드시 병기를 수선하고 군량을 모은 후에야 바다를 건널 것이니, 그렇게 되면 당연히 1∼2월경이 될 것이고 대군은 3∼4월경에 모두 부산에 이르게 될 것이다.’하였습니다.
1. 평행장이 또 박대근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러한 관백의 노여움은 실로 뜻밖의 일로 앞으로 조선은 반드시 왕자를 보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혹 중국에서 지시가 있으면 끝내 거절하지는 못할 것인데 만일 보낼 것을 허락한다면 우리들이 먼저 관백을 찾아가서 손수 적은 관백의 서문(誓文)을 받아와 한편으로는 철병하고, 한편으로는 왕자를 모시고 바다를 건너게 하여 반드시 오늘과 같이 두서없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였습니다.
1. 평행장이 또 박대근에게 말하기를 ‘나는 조선이 모든 일을 반드시 중국의 지시에 따르고 있는 줄 아는데 중국에 왕래하는 데는 마땅히 수 개월을 허비할 것이니 명년 2월까지를 기한하여 회답을 기다리려고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군사를 움직일 것이다. 만약 조선이 확실히 왕자를 보내려 하고, 또 대신을 파견하여 우리 진영에 와 있게 한다면 이에 의거하여 관백에게 치보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1. 유부(游府)의 휘하에 있는 왕천총(王千總)이란 자가 신 황신(黃愼)에게 말하기를 ‘전일 사개(沙蓋)에 있을 때, 행장·정성(正成)497) ·조신(調信)498) ·소서비(小西飛) 등 네 사람이 심 노야(心老爺)의 숙소에 왔었다. 행장이 심 노야에게 말하기를 「조선이 왕자 보내는 일을 기꺼이 허락하겠는가?」하니, 심 노야가 답하기를 「나는 이곳에서도 죽기를 사양하지 않을 것이지만, 서울에 가서도 죽음을 사양치 않을 것이다. 조선이 어찌 왕자를 보낼 이치가 있겠는가. 이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니, 나는 감히 허튼 말을 하지 않는다. 」하자, 소서비가 「왕자는 반드시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며, 행장은 「나도 또한 이와 같이 생각한다. 」하였다. 조신은 웃으면서 말하기를 「왕자가 올 수도 있으니 내가 만약 병력으로 위협한다면 저들은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했다.’하였습니다.
1. 왕천총이 다시 신 황신에게 이르기를 ‘전일 관백이 신변에 데리고 있는 장문(張文)이란 왜승(倭僧)을 심 노야(老爺)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조선은 일본을 막아 중국으로 통하지 못하게 하고 지금 또한 왕자를 보내어 사례하지 않으니, 이는 우리를 매우 얕본 것이다. 일본에서 먼저 조선을 공격하는 것이 당연한가, 아니면 중국에서 먼저 치겠는가?」하니, 심 노야가 임기응변으로 답하기를 「너희는 군사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우리 조정에 품고하여 조선을 처벌하도록 청하면, 반드시 어떤 처사가 있을 것이다. 」고 했다.’하였습니다.
1. 신들이 낭고야에 있을 때 평조신이 박대근에게 말하기를 ‘행장의 말에 의하면 청정이 지금 비후(肥後)에서 널리 전사(戰士)를 모집하면서 「내가 조선에 가서 5년간만 둔경(屯耕)하면 양곡을 많이 얻을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다시는 일본에서 주는 녹을 기다리지 않아도 식량이 떨어질 염려는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일본에 있어봐야 척촌(尺寸)의 땅도 없지만, 조선에 가서 공만 세운다면 반드시 땅을 나누어 줄것이다. 」하여 무뢰배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그가 열 달 안으로 일어나려 하지만 어찌 그와 같이 빠를 수 있겠는가.’하였습니다.
1. 평경직(平景直)이 박대근에게 말하기를 ‘관백의 수하(手下)에 감물(監物)하는 자가 있는데, 청정과 함께 조선에 가기를 자청하면서 말하기를 「5년간의 녹봉을 한꺼번에 받아 군기(軍器)를 수선하여 조선에 가서 5년간 농사를 짓게 해주면 내려준 쌀을 모두 상환하겠다. 」하니, 일본의 여러 장수들이 모두 그의 망언(妄言)을 미워하였다. 어떤 자가 「네가 어찌 조선을 빼앗을 수 있음을 아느냐?」 하고 물으니, 답하기를 「나는 일찍이 청정과 이에 대한 일을 미리 강구해 놓았다. 조선인은 전사(戰死)한 자가 태반이고, 살아 남은 자는 겨우 3분의 1이니 이것이 빼앗을 수 있는 첫째 이유이고, 조선 백성들은 부역에 시달려서 원망하는 자가 매우 많으니 이것이 빼앗을 수 있는 둘째 이유이며, 조선인은 전투에 익숙하지 못하여 우리가 이르는 곳마다 도망쳐 무너지니 이것이 빼앗을 수 있는 셋째 이유이다. 」 하였다.’ 하였습니다.
1. 요시라(要時羅)는 ‘명년 봄에 만약 군사를 다시 출동시키게 된다면, 평수가(平秀家)가 다시 대장이 될 것이다.’ 하고, 어떤 자는 ‘소조천융경(小早川隆景)의 양자인 금오(金吾)가 대장이 될 것이다.’ 하는데, 그는 관백의 조카라 합니다.
1. 조신이 박대근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이 지금 다시 군사를 움직인다면 반드시 먼저 전라도를 침범할 것이다. 또한 조선에는 지금 비축해 놓은 곡식이 없어 대군(大軍)의 식량이 염려되니 반드시 먼저 군량을 운반해야 하고 수군을 격파한 다음에 수군과 육군이 동시에 진격할 수 있다. 그런 까닭으로 여러 장수들이 이미 이런 계획을 의논하여 결정하였다.’ 하였습니다.
1. 조신은 또 역관 이언서(李彦瑞)에게 말하기를 ‘조선의 수군이 차츰 수전(水戰)을 익히고 선박도 견고하니 피차가 맞서서 서로 버티며 진퇴하면서 싸운다면 반드시 이기기가 어렵다. 만약 어두운 밤에 몰래 나가서 습격하되 조선의 큰 배 한 척에 으레 일본은 작은 배 5∼6척 내지 7∼8척으로 대적하고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돌진하여 일시에 붙어 싸운다면 수군도 격파할 수 있다. 전일 거제(巨濟) 싸움에서, 나는 그때 삼포(森浦)에 있으면서 사람을 시켜 속히 거제 진장(陳將)에게 일러 배에 올라 싸우지 말고 다만 성벽을 굳게 지키고 있다가 저들이 육지에 내려오기를 기다려 교전(交戰)하라고 지시했다. 그때 이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조선의 수군은 기회를 잡지 못하고 물러갔다.’ 하였습니다.
1. 조신은 또 말하기를 ‘일본인이 탐라(耽羅)에 좋은 말이 있다는 것을 듣고 오래전부터 가서 약탈하려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으니, 지금은 우선 전라도를 침범하고 다음에 탐라를 취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1. 조신이 이언서에게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조선인이 전일 의지(義智)499) 등이 왔을 때에 논의가 통일되지 못하여, 혹은 현소(玄蘇)와 종의지 등의 목을 베어 효시해야 한다 하였고, 혹은 이와 같이 해서는 옳지 못하니 사신을 보내어 통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한다. 그 후에 변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당초에 이 두 사람을 죽이지 못한 것이 애석하다. 그때 효시하자는 의논이 참으로 총명한 식견이었다. 」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 만약 그렇다면 조선 사람은 참으로 졸렬한 생각을 가졌다. 당초에 만약 이 두 사람을 죽였다면 일본이 조선을 두려워해서 오지 않았겠는가? 더욱 일본의 비위를 건드려 반드시 조선에 그 책임을 물으려고 했을 것이다. 예로부터 통신하는 사신을 죽이는 나라가 있었던가. 비록 두 적국이 교전하더라도 사신은 그 사이에 있는 법이니 지금 조선이 일본에 대하여 불쾌한 일을 해도 일본에서 통신하는 사신을 죽이겠는가. 이는 잗단 자의 소견이다.’ 하였습니다.
1. 신들이 사개(沙蓋)에 있을 때, 한 왜승(倭僧)이 묵은 종이 한 장을 보이면서 ‘이는 왕년에 서(徐)500) ·사(謝)501) 두 명사(明使)가 왔을 때 의정한 조약을 베낀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이를 받아 보니, 그 안에는 7건의 조약이 있었으므로 그 종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1. 신들이 사개에 있을 때, 포로로 끌려간 우리 나라 사람 염사근(廉士謹)이란 자가 있어 일본의 사정을 모두 알려 주었습니다. 또한 신들을 직접 찾아와 만났는데 신들이 그와 담화하면서 그의 사람됨을 보니, 경박한 것 같고 말하는 것도 매우 과장되어 믿을 만한 자는 못 되는 듯하였습니다. 그가 써서 보여준 별지는 가지고 왔습니다.
1. 신들이 대포(大浦)에 있을 때, 요시라가 박대근에게 말하기를 ‘어제 행장·정성(正成)·의지 등이 함께 앉아서 나를 불러 묻기를 「우리들이 지금 부산에 도착하여 조선의 회보를 기다리면, 조선은 또한 반드시 중국 조정에 처치를 품달할 것이다. 중국에 왕복하려면 내년 봄에야 돌아올 것인데 만약 그 동안에 조선이 우리 세력이 고립되어 있는 것을 이용하여 부산을 습격한다면 어찌되겠는가? 너는 조선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 말해 보라. 」하기에, 나는 답하기를 「조선은 모든 일을 감히 독단으로 하지 못하고 반드시 중국의 지시를 받으니, 그동안 경솔히 행동할 이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또한 반드시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1. 요시라가 또 비밀히 박대근에게 말하기를 ‘관백은 지금 인심을 많이 잃었고 포악한 짓을 고치지 않고 있으니, 3∼5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보전할 수 없는 형세가 될 것이다. 지금 조선은 왕자를 일본에 보낼 수 없더라도 또한 회유책으로 세월을 끈다면 끝내 후환이 없을 것이다.’ 하니, 박대근이 묻기를 ‘무엇을 회유책이라고 하는가?’ 하자, 요시라가 ‘청정과 장정이 나오는 시기가 아무리 빠르더라도 반드시 연말이나 혹은 명년 2월 이후가 될 것인데, 마땅히 먼저 군량을 운반할 것이고 대군(大軍)은 3∼4월 이후가 되어야 모두 부산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니 조선은 내년 1∼2월 내에 사람을 보내어 알리기를 「왕자는 나이가 어리고 신병이 있을 뿐 아니라 지난번 북방에 있을 때에 처사를 잘못하여 토민(土民)에게 결박되어 진영으로 보내졌으며 그런 까닭으로 국왕이 노하여 먼 변방에 폐치(廢置)했으니 사람들이 모두 수치로 여기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은 외국에 사신으로 보낼 수 없고 벼슬이 높은 재상을 직접 관백에게 보내어 면전에서 화친을 강정(講定)하려 하며, 또한 매사에 서신과 폐백을 통하여 항식(恒式)을 정하고자 한다. 」 하면, 행장이 반드시 이뜻을 관백에게 전달할 것이고, 관백도 그 말에 기뻐하여 혹시 허락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왕복하면서 일자를 끌어 나가면 저들도 이치상 변고가 발생할 것이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관백은 깊은 궁궐에서 성장하여 민간의 고통을 모르는 자가 아니고, 또한 일찍이 하천(下賤)에서 나온 자이므로, 도보(徒步)의 괴로움도 알고 땔감과 쌀짐을 지는 괴로움도 알 것이며, 남에게 구타나 욕설을 당하면 화가 난다는 것도 알 뿐만 아니라 남에게 칭찬을 듣는 것이 기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지금 그가 아랫사람을 대하는 데 저토록 포악하고 남의 노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으므로 일본에서는 대소인을 막론하고 모두 원한이 뼈에 사무쳤으니, 결코 좋게 끝마칠 리가 없다. 그도 스스로 그런 점을 알고 있는지 항상 「내가 친조카를 자식으로 삼아 부유하고 귀하게 해주었는데 도리어 나를 해치려 한다. 내가 진실로 온 나라 대소인이 모두 나를 죽이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가만이 앉아서 화를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위세(威勢)를 마음껏 부리다가 죽겠다. 」고 하였다 한다. 그 의도가 대체로 일본 사람들은 조금만 안일해지면 반드시 음흉한 꾀를 만든다 하여 해마다 노고를 가하려 하니, 반드시 전쟁을 그치게 할 리는 없을 것이고 장차 스스로 망하게 되어야 그만둘 것이다.’ 하였습니다.
1. 요시라는 또 말하기를 ‘어제 관백이 조선의 일로 노하니, 행장 등은 모두 감히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오직 정성(正成)만이 분발하여 관백에게 한마디 할 말이 있다고 청하자, 관백이 무슨 말인가 물었다. 정성이 말하기를 「지금 이 일은 행장 등과 처음부터 끝까지 힘써 주장했는데도 필경 이와 같이 어긋났으니 명 나라와 조선이 반드시 우리들이 거짓을 꾸며 속였다고 할 것이다. 우리들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보겠느냐. 남아로서 세상에 태어나 이러한 나쁜 평판을 받기보다 차라리 이자리에서 죽고 싶다. 」 하니, 관백은 별로 노하는 기색도 없이 단지 「네가 하는 말이 행장의 말과 다름이 없는데, 당초에 어찌 나에게 상세히 알리지 않고 이제서야 그런말을 하느냐. 」고 하였다.’ 하였습니다.
1. 평행장이 신들에게 말하기를 ‘조선에서는 필시 왕자가 일본에 이르면 구류될것이라 하겠지만 절대로 그럴 리는 없다. 왕자가 오기만 하면 다시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고, 왕자 외에는 백관이 모두 오더라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하고, 그는 또 말하기를 ‘왕자가 오고 안 오는 것을 분명히 회답하여 주면 내가 당연히 3∼4월까지 기다릴 것이다. 대군(大軍)이 나오기 전에 통지해주면 매우 좋겠다. 만약 군대가 출동한 후 형세를 관망하여 행동하려고 한다면 그때는 시기가 이미 늦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1. 평행장이 신들에게 말하기를 ‘장정은 청정과 한편이니, 이 두 사람이 나가면 먼저 울산·기장(機張) 등 옛 성에 자리잡을 것이다. 관백이 조선의 회답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이미 내렸으니, 저들도 감히 먼저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저들이 혹시 때때로 몰래 행동하여 화친하는 일을 망쳐 놓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다. 조선은 경주(慶州) 등과 같은 곳에 반드시 방비를 강화해야 할 것이고, 또한 그러한 곳에 군량을 비축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관백은 내가 처음부터 조선의 일을 주관했다 하여 전년에 나를 선봉으로 삼았고 앞으로도 다시 선봉으로 삼아 나가도록 할 것이다. 설혹 부득이 교전(交戰)하게 되더라도 만약 통지할 일이 있으면 나에게 통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83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33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기(軍器)
- [註 495]장정(長政) : 흑전장정(黑田長政).
- [註 496]
길성(吉盛) : 삼길성(森吉盛).- [註 497]
정성(正成) : 사택정성(寺澤正成).- [註 498]
조신(調信) : 유천조신(柳川調信).- [註 499]
○通信使黃愼, 回自日本國書啓:
一, 平調信言: "關白, 使淸正、長政、吉盛、行長等四將先去, 此四人當爲先鋒。 淸正則今冬當先渡, 長政、吉盛則冬末春和當出去。 淸正等雖先去, 只屯據舊壘而已, 大軍則二月間出去’ 云。 臣等到浪古耶之日, 長政已自豐前州, 赴身來到。 探聽其渡海遲速, 則其手下軍兵、糧械, 未及整理, 時未定日字云。 一, 臣等在大浦時, 平行長謂譯官朴大根曰: "淸正雖欲快來, 必須繕兵聚糧而後渡海, 其勢當至正二月間, 大軍則當於三四月間, 齊到釜山" 云。 一, 平行長又謂朴大根曰: "今此關白之怒, 實是意思所不到。 此後朝鮮, 必不肯遣王子, 然倘有天朝指揮, 則亦不得終拒。 萬一許遣, 則我輩當先往關白處, 討得手書誓文以來, 一邊撤兵, 一邊奉王子過海, 必不使無頭緖如今日也。" 一, 平行長又謂朴大根曰: "我知朝鮮, 每事必稟天朝指揮, 計往返天朝, 當費數月, 須以明年二月爲期, 以待回話。 過此則必至動兵。 若朝鮮丁寧許遣王子, 且差大臣, 來在營中, 則可以據此而馳報關白矣。" 一, 游府標下王千總者謂臣愼曰: "前日在沙盖時, 行長、正成、調信、小西飛等四人, 到沈老爺所寓。 行長謂老爺曰: ‘朝鮮肯許王子來否?’ 老爺答曰: ‘我則在這裏死不辭, 到京裏死亦不辭, 朝鮮王子, 豈有許遣之理乎? 此則決不可成, 我不敢謊說也。’ 小西飛曰: ‘王子必不肯來。’ 行長曰: ‘我亦如是思量。’ 調信笑曰: ‘王子或有來理。 我若以兵勢脅之, 則彼不得不從’ 云。" 一, 王千總復謂臣愼曰: "前日關白, 使身邊張文、倭僧, 來謂老爺曰: ‘朝鮮沮遏日本, 俾不得通中國, 今又不肯遣王子來謝, 是慢我甚矣。 當自日本征伐耶? 自天朝可征討耶?’ 老爺權辭答之曰: ‘爾不須動兵。 我當替爾, 稟天朝, 請罪朝鮮, 必將有以處之’ 云。" 一, 臣等在浪古耶時, 平調信謂朴大根曰: "行長言 ‘聞淸正, 今在肥後, 廣募戰士, 每云: ‘我到朝鮮, 屯耕五年, 可以大得糧穀, 更不須日本頒祿, 自能無乏。 爾等在日本, 旣無尺寸之地, 到彼有功, 則當有分土云。’ 故無賴之徒, 或多從之者。 渠欲以十月內起身, 然豈能如是之速耶?" 一, 平景直謂朴大根曰: "關白手下, 有監物者, 自請同淸正往朝鮮, 願受五年祿俸, 修繕軍器, 俟往朝鮮, 耕作五年, 當盡償其米云云, 日本諸將, 皆惡其妄言。 或問爾何以知朝鮮之可取耶? 答曰: ‘我曾與淸正, 孰講此事。 朝鮮人戰死者太半, 餘存者三分之一, 此一可取也。 朝鮮之民, 困於賦役, 怨苦者甚衆, 此二可取也。 朝鮮人不習戰, 到輒奔潰, 此三可取也’ 云云。" 一, 要時羅言: "明春若再動兵, 則平秀家當復爲大將" 云, 或言: "小早川隆景之養子金吾者, 當爲大將, 是關白姪子云。" 一, 調信謂朴大根曰: "我輩今若再擧, 則當先犯全羅。 且朝鮮今無儲穀, 大軍乏食可虞。 必須先運米糧, 當先破舟師, 然後可以水陸幷進, 故諸將已爲議定此計" 云。 一, 調信又謂譯官李彦瑞曰: "朝鮮舟師, 稍習水戰, 船且堅厚, 若彼此排列相持, 進退而戰, 則必難取勝。 若昏夜潛行, 出其不意, 每朝鮮一大船, 例以日本小船或五六或七八當之, 冒矢石突進, 一時搏戰, 則舟師亦可破也。 前日巨濟之戰, 我時在森浦, 使人馳語巨濟陣將, 使之愼勿登船出戰, 只宜堅壁, 待彼下陸, 方與之交鋒云。 其時用此術, 故舟師不能伺便而退去矣。" 一, 調信又曰: "日本人每聞耽羅有好馬, 久欲往犯而不果。 今則先犯全羅, 耽羅必次之矣。" 一, 調信謂李彦瑞曰: "我聞朝鮮人, 於前日義智等來時, 論議不一, 或以爲當斬玄蘇、義智等梟示, 或以爲不可如是, 當遣使通信云云。 厥後變生之初, 人人皆言惜也。 當初不能殺此二人, 其時梟示之議, 眞明見云。 此說是否, 若然則朝鮮之人, 眞拙謀也。 當初若殺此兩人, 則日本其將怕朝鮮而不來乎? 將愈激日本,而必欲求其(當)〔償〕 於朝鮮矣。 自古豈有殺信使之國哉? 雖兩敵交兵, 使在其間。 今朝鮮雖有不快之事, 日本肯殺通信使乎? 此則小家之見也。" 一, 臣等在沙盖時, 有一倭僧, 示一故紙曰: "此是往年徐、謝兩天使來時, 所定約條謄書者。" 云。 臣等取見, 則中有七件約條, 厥紙齎來矣。 一, 臣等在沙盖時, 有我國被擄人廉士謹者, 盡示日本事情。 且來見臣等, 臣等與之談話, 見其爲人, 頗似浮薄, 所言亦極譸張, 似不足信。 其書示別紙, 則亦爲齎來耳。 一, 臣等在大浦時, 要時羅謂朴大根曰: "昨行長、正成、義智等同坐, 招我問曰: ‘我等今到釜山, 以俟朝鮮回報, 朝鮮亦必稟天朝處置。 往返當至春半, 此時朝鮮, 或乘我勢孤, 掩襲釜山則奈何? 汝知朝鮮事情, 試言之。’ 我答曰: ‘朝鮮每事不敢自專, 必稟天朝指揮, 似無輕擧之理。 然我亦未敢必’ 云矣。" 一, 要時羅又密謂朴大根曰: "關白積失人心, 爲惡不悛, 不出三五年, 勢必難保。 今朝鮮雖不得遣王子, 亦可以計羈縻, 延拖日月, 則終必無患矣。" 朴大根曰: "何謂羈縻之計也?" 要時羅曰: "淸正、長政, 其來雖快, 必至歲暮, 或歲後, 二月以後, 當先運軍糧, 大軍則當至三四月後, 齊到釜山。 朝鮮須趁正二月內, 差人來報曰: ‘王子則非唯年幼、多病, 頃在北方處事乖宜, 被土民縛送軍前, 故國王怒其罪, 廢置邊遠, 人皆醜之, 今不可奉使外國。 欲令秩高宰相, 親往關白, 面前講定和好, 每事通書幣, 定爲恒式’ 云, 則行長當通此意於關白, 關白亦必喜其辭, 或可見許。 如是往復, 撑過日字, 則彼亦有變生之理矣。" 又曰: "關白非生長深宮, 不知民間疾苦者, 渠亦曾自下賤崛起, 知徒步之苦, 知負薪、負米之苦, 知喫人打罵之爲可慍, 知受人奬賚之爲可喜, 而今渠遇下如此, 不恤勞苦, 日本大小之人, 皆怨入骨髓, 決無善終之理。 渠亦自知之, 常曰: ‘我以親姪爲子, 富之貴之, 而反欲害我。 我固知擧國大小之人, 皆欲殺我。 我與其坐而受禍, 寧肆其逞威而死也云云。’ 其意蓋以日本之人, 稍安佚則必生凶謀, 欲使連歲勞苦。 必無戢兵之理, 將至自取顚覆而後已也。" 一, 要時羅又曰: "昨關白怒朝鮮事, 行長輩俱不敢發一言, 獨正成奮然請於關白曰: ‘願有一言。’ 關白曰: ‘何言也?’ 正成曰: ‘今此事與行長輩, 終始力主, 畢竟乖違若此。 天朝及朝鮮, 必以我輩, 爲飾詐相欺, 我輩何面目見之乎? 男兒生世間, 受此醜名, 寧欲死於此也。’ 關白別無怒色, 但曰: ‘汝言與行長無異同。 當初何不詳稟於我, 而今爲此說也?’" 一, 平行長謂臣等曰: "朝鮮必以爲王子到日本, 則當被拘留, 此則萬無是理。 王子一往則更無他事。 王子之外, 雖百官齊往, 亦無益也。" 又曰: "王子來與否, 須爲回話。 我當三四月相待。 須趁大軍未出來之前, 通示幸甚。 若至動兵之後, 欲爲觀勢進退, 則無及矣。" 一, 平行長謂臣等曰: "長政, 是淸正之黨。 此兩人出來, 則當先據蔚山、機張等舊壘。 關白旣有待朝鮮回話之令, 渠亦不敢先動, 但恐渠或有時竊發, 欲敗和事, 亦不無其患。 如慶州等地, 須加防備, 且儲糧於此處可也。" 又曰: "關白以我自初, 幹朝鮮事者, 故上年使我爲先鋒, 今後亦當復爲先鋒而去。 設或不得已交兵之時, 如欲有所通示, 則須通示於我, 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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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외교-왜(倭) / 군사-전쟁(戰爭) / 군사-군기(軍器)
- [註 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