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신이 병부에 보낸 게첩
중국 사신이 병부에 보낸 게첩은 다음과 같다.
"책봉 일본 정사 등관 오군영등 아문서 도독 첨사(冊封日本正使等官五軍營等衙門署都督僉使) 양(楊)476) 등이 동봉(東封)을 완보(完報)하는 일입니다. 본직이 본년 6월15일에 부산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던 것은 이미 본제(本題)에 갖추어 알렸습니다. 길이 험난하고 풍파가 매우 거세었지만 황상(皇上)의 위령(威靈)에 힘입어 다행히 목숨을 보전하여 8월 4일에 이르러서 비로소 화천주(和泉州)에 도착하니 곧 풍신수길이 미리 준비한 사신 접대소인데, 이곳에서 일본국의 신도(新都)와의 거리는 1백 30여 리나 되었습니다. 수길이 여러 차례 왜장 장성(長盛)과 삼성(三成) 등을 파견하여 글을 보내어 영접하고 위로했는데, 자못 성심을 다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황제께서 내린 용절(龍節)·고명(誥命)·조칙(詔勅) 등은 윤8월 18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도착하였으므로, 본직 등이 즉시 수행원을 거느리고 배 위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받들어 저의 숙소에 안정시켜 놓았습니다. 왜장 행장이 수길에게 치보하여 9월 2일을 택해 대판(大坂)지방에서 책명(冊命)을 받들어 봉(封)을 받기로 정하였으므로 본직 등은 9월 1일에 절(節)을 가지고 먼저 가서 당일로 대판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음날 수길은 황제께서 하사하신 규인(圭印)·관복(冠服)을 받아 즉시 찰 것은 차고 입을 것은 입고는 중국의 궁궐을 향하여 오배 삼고두례(五拜三叩頭禮)를 행한 다음 고명(誥命)을 받았습니다. 봉을 받은 다음 우리들이 머무는 곳에 이르러 다시 황제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저희들이 멀리 바다를 건너 오느라 수고했다는 등의 말로 위로하였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오래 머물 수가 없어서 즉시 떠나가겠다는 인사를 하고, 4일에 절(節)을 받들고 화천주에 돌아와서 현재 배가 준비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니, 준비되는 대로 즉시 길을 달려 귀국하여 궐하(厥下)에 복명하겠습니다. 이 때문에 구제(具題)할 뿐만 아니라 구제해야겠기에…. 만력 24년 9월 5일."
- 【태백산사고본】 52책 83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27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통신(通信)
- [註 476]양(楊) : 양방형(楊方亨).
○ 【天使兵部揭帖曰:】
冊封日本正使等官五軍營等揭衙門署都督僉事楊等, 爲完報東封事, 職於本年六月十五日, 自釜山登舟渡海, 已經具本題知訖。 一路險阻, 風波艱危異常, 仰仗皇上威靈, 幸得保全軀命, 至八月初四日, 始抵和泉州, 乃豐臣秀吉預備接待使臣之所, 距日本國新都一百三十餘里。 秀吉屢差倭將長盛、三成等, 持書迎慰, 頗知竭誠。 欽命補給龍節、誥命、詔勑等件, 於閏八月十八日方到, 職等卽時率領隨行員役, 詣舟次, 叩頭迎捧, 安定職寓。 倭將行長, 馳報秀吉, 擇於九月初二日, 奉迎冊命於(大坂)〔大阪〕 地方受封。 職等初一日, 持節前往, 是日卽抵(大坂)〔大阪〕 。 次日領受欽賜圭印、官服, 旋卽佩執頂被, 望闕行五拜三叩頭禮, 承奉誥命。 受封訖, 嗣至職等寓所, 再申感激天恩, 及慰勞職等, 涉歷勞頓等語。 職等不敢久留, 卽辭, 以初四日捧節回至和泉州, 見今唯待調集鉛隻, 卽趲程西還, 復命闕下。 爲此除具題外, 理合具題。 萬曆二十四年九月初五日。
- 【태백산사고본】 52책 83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27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왜(倭) / 군사-통신(通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