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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83권, 선조 29년 12월 5일 정묘 3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왜적을 방어하는 여러 방도를 정원에 전교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1. 한강(漢江)을 사수(死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강을 지키지 않았다가 적이 성아래까지 이르러 적에게 포위 당한 뒤에야 도성을 지키려고 한다면 그 계책은 잘못된 것이다. 지금은 창졸간에 당했던 임진년과는 다르다. 강원도에서부터 행주(幸州)에 이르는 강변 일대에 둔영(屯營)을 나누어 설치하고, 적이 건널 만한 얕은 여울에 작은 보(堡)를 연이어 설치하고 기계도 많이 준비하여 대략 왕입신(汪立信)문천상(文天祥)의 계책465) 을 본받아 장사(將士)들이 방어할 곳을 만든다면 비록 허술하게 하더라도 괜찮을 것인데, 다만 어떤 군사로 그곳을 지켜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적이 경상도를 경유하여 곧바로 강원도로 돌입하여 영동(嶺東)을 넘어 한강 뒤로 돌아나오게 되면 이는 말할 수 없이 큰일이다. 그렇다면 영동을 엄하게 지키지 않을 수 없으니, 대체로 이러한 절목은 본사(本司)의 조치에 달려 있는 것이다.

1. 청정(淸正)이 1∼2월 사이에 나온다고 하니, 미리 통제사로 하여금 정탐꾼을 파견하여 살피게 하고, 혹 왜인에게 후한 뇌물을 주어 그가 나오는 기일을 말하게 하여, 바다를 건너오는 날 해상에서 요격하는 것이 상책이다. 다만 바다를 건너오는 날을 알아 내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1. 옛날 사람들은 용병(用兵)할 때에 혹 자객을 쓰기도 하였다. 지금 적이 다시 덤벼들려는 것은 오로지 청정(淸正)에게서 연유하니, 혹 항복한 왜인을 모집하거나 어떤 핑계로 사람을 파견하여 도모한다면 그 무리들은 저절로 와해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가 이를 해 내지 못할까 염려된다. 어떤 자가 ‘이러한 일은 왕자(王者)의 일이 아니다.’고 말하기에, 나는 대답하기를 ‘옛날 불이나서 이웃집에 사다리를 빌리러 가는 자가 진퇴할 때 읍을 하고 계단을 양보하면서 걸어갔다고 하니, 이 말이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1. 적의 무리 중에 투항하려는 자가 많으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으나 우리 나라는 땅이 좁고 계책이 옹졸하여 처리할 바를 알지 못하니 애석한 일이다. 투항한 자를 받아들이는 일에 대하여 전부터 나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였으나 시끄러운 말들이 매우 많아 어떤 자는 그들이 내응(內應)할 것이라고 말하고 어떤 자는 적의 모략은 헤아리기 어렵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투항한 자가 지금까지 여러 해가 되었지만 과연 내응한 일이 있었는가. 우리 나라는 적을 헤아리는 것이 항상 이 모양이다. 전쟁하는 상황으로 말하자면 왜인 한 명을 제거하는 데에도 많은 힘을 소비해야 하는데, 스스로 투항해 오는 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찌 옹졸한 계책이 아니겠는가. 다만 여러 곳에 나누어 두었다가 그 무리들이 번성하게 되면 염려가 없을 수 없다. 지금 벼슬을 준다고 하여 다방면으로 유인하되, 혹은 경상좌도로부터 상경하여 강원도에 이르러 임명하고, 혹은 북도로 나누어 보내 호로(胡虜)를 방어하게 하며, 혹은 섭 유격(葉遊擊)에게 알려서 그 곡절을 진술하여 요동(遼東)으로 들여보내는 등 그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여러모로 강구하여 항복한 왜병을 받아들이는 일을 힘써야 한다. 요컨대 적으로 하여금 복부를 부실하게 하여 수족까지 피폐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병가(兵家)의 권모(權謀)인 것이다.

1. 오늘날 문제되는 것은 군량이다. 이를테면 섭 유격을 후하게 대접하여 우리 나라의 군량이 결핍된 사정을 알리기를 ‘민간에 곡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합(收合)할 방도가 없고, 더구나 근년에는 목화(木花)가 크게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몸에 걸칠 옷이 없어서 혹 얼어죽은 사람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때에 군문(軍門)에서 군량을 운반해 오겠다고 허락하였다 하니, 온 나라 사람들이 감격해 마지 않는다. 다만 사세가 위급하니, 만약 먼저 남포(籃布)와 목화(木花) 등의 물건을 왕경(王京)에 운반하여 여러 도에서 쌀을 사 군량의 자본을 삼는다면 군문(軍民)이 모두 그 힘을 입을 것이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1. 파사성(婆娑城)의엄(義嚴)으로 하여금 지키게 한다고 하는데 의엄인들 어떻게 맨주먹으로 지킬 수 있겠는가. 군량·기계·군정(軍丁)을 다수 준비하여 지급하고 유사 낭청(有司郞廳)을 보내 군량과 기계의 상태를 조사하여 아뢰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유정(惟政)466) 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이 사람은 비록 중이기는 하나 장수로 쓸 만한 사람이다. 유정은 영남 사람이니 영남으로 내려 보내어 원수(元帥)의 절제를 받게 하는 한편, 승군(僧軍)을 거느리고 한쪽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다만 의엄과 유정 두 중에게 공명고신(空名告身)을 지급 할 수는 없으나 선과(禪科)에 대해서는 첩(貼)을 많이 만들어 주어 권위가 그들로부터 나오게 한다면 그 부하들에게 호령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이 두 중은 국사에 충성을 다하고 있으니 후하게 대우하지 않을 수 없다.

1. 지금 왜적에게 부형이나 처자의 원한이 있으면서도 복수하지 못하는 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이들에게 교령(敎令)을 내려 스스로 병졸을 모집하게 하거나 몸소 종군하게 하거나 노복으로 대신하게 하고, 그 중에서 뛰어난 자를 발탁하여 장수로 삼아 별도로 한 부대를 조직하여 적을 토벌하게 해야 한다.

1. 황신(黃愼)의 서장(書狀)에 ‘적들이 다시 나올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설령 나온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명년 봄에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적에 대한 정보는 한마디라도 중요한 듯하니, 이 한 건을 조보(朝報)에 기재하여 민정(民情)을 안정시켜야 한다.

1. 북방의 병졸을 많이 징발하여 오지 않을 수 없으니 참작하여 조처해야 할 것이다.

1. 김응서(金應瑞)로 하여금 평행장(平行長) 등과 두터운 관계를 맺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청정(淸正)을 도모하려면 모사(某事)로써 허락해야 하는데, 그러나 이 일은 쉽게 말할 수 없다.

1. 여러 왜추(倭酋)467) 가 모두 중국으로부터 관작을 받았는데도 청정만이 누락되었으니 청정이 분심을 품고 독기를 부리는 것은 당연하다. 혹 심 유격(沈遊擊)에게 이야기하여 잘 처리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여러 조목에 대하여 의계(議啓)할 일을 비변사에 이르라."


  • 【태백산사고본】 52책 83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125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사-임면(任免)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 / 농업(農業)

  • [註 465]
    왕입신(汪立信)과 문천상(文天祥)의 계책 : 왕입신은 적을 방어하는 계책으로서, 강줄기에 1백 리마다 둔영(屯營)을 설치하고 둔영마다 수장(守將)을 배치하며, 10둔마다 총독부(總督府)를 두되 그중 요해처에는 군사를 배로 늘려 무사시에는 서로 왕래하면서 정찰토록 하고 유사시에는 공방책(攻防策)을 병용하자고 제의 하였고, 문천상은 적을 임시 견제하는 방책으로 천하를 4분하여 각각 진(鎭)을 설치하고 진마다 도독을 두어 때로는 기일을 정하여 진격하기도 하고, 혹은 방어도 하자는 제의를 하였음. 《송사(宋史)》 권416 왕입신전(汪立信傳)·권418 문헌상전(文天祥傳).
  • [註 466]
    유정(惟政) : 사명당(泗溟堂).
  • [註 467]
    왜추(倭酋) : 왜적의 두목.

○傳于政院曰: "一, 漢江不可不死守。 不守漢江, 而賊至城下, 爲賊所圍, 然後欲守都城, 則其計誤矣。 今非如壬辰之倉卒。 自江原幸州沿江一帶, 列營分屯, 又於淺灘賊渡可疑處, 連設小堡, 多備器械, 以爲將士守禦之所。 略倚汪立信文天祥之策, 雖草創爲之可也, 第未知以何兵守之? 且賊由慶尙道, 直衝江原, 踰嶺東而繞出漢江之後, 則是不可說。 然則嶺東不可不嚴加把守。 大略如斯節目, 在本司措置。 一, 淸正正二月間出來云。 預令統制使, 偵探候望, 或厚賂倭人, 俾告其期, 渡海之日, 邀擊於海上, 此上策也, 但知其渡海之日爲難。 一, 古人用兵時, 或用刺客。 今此賊之更肆, 專由於淸正。 或募降倭, 或某條遣人圖之, 其黨自解, 然我國恐不能爲之。 或曰: ‘此非王者事。’ 予應之曰: ‘古有失火, 而借梯於隣家者, 揖遜進退, 讓階而行。 此言何以異於是乎?’ 一, 賊衆多欲來投, 此機不可失, 我國地狹計拙, 不知所以爲處, 其可惜也。 自前納降之事, 予則以爲可爲, 而囂囂之言甚多, 或以爲內應, 或以爲賊謀難測。 投降者今累年矣, 果有內應之事乎? 我國之料敵, 每每如此。 以戰陣間言之, 除去一, 亦費多少之力。 自來之賊, 拒而不受, 豈不拙乎? 但分置諸處, 寔繁有徒, 則不可無慮。 今宜許以官爵, 多般誘引, 或從慶尙左道而上京, 至江原而除之; 或分送於北道, 以禦虜; 或告於葉遊擊, 陳其曲折, 入送遼東, 其處之之道, 多般講究, 而務納降。 要使賊腹敗支披, 不可不爲, 此兵家權謀也。 一, 今之所患者軍糧。 若厚待葉遊擊, 告以我國乏糧之意曰: ‘民間不無米穀, 而無由收合。 且近年木花大無, 民不被體, 或有凍死者。 軍門已許運糧, 一國之人不勝感激。 但事勢甚急, 若先將藍布、木花等物, 運至王京, 貿米諸道, 以爲軍糧之資, 則軍民皆賴其力云云。’ 一, 婆娑城, 以義嚴守之云, 義嚴何能張空拳守之? 軍糧、器械、軍丁, 多數備給, 且遣司郞廳, 軍糧、器械形止, 摘奸來啓事。 一, 惟政, 今在何處? 此人雖曰僧人, 而可用以爲將者。 , 嶺南人也。 下送於嶺南, 聽元帥節制, 率其僧軍, 使當一隅可也。 但右二僧, 空名告身, 雖不可給付, 而禪科多數, 成貼給之, 稍使威權出於其掌, 則可以行號令於其下矣。 大槪右二僧, 盡心國事, 不可不厚待事。 一, 今之與賊, 有父兄妻子之讎, 而不能報者何限? 可下敎令自募, 或身自從軍, 或以奴代之, 擢其中爲尤者定將, 別爲一隊討賊事。 一, 黃愼書狀內, 諸賊出來與否, 未可的知, 設使出來, 必不能趁明春云云。 今時賊報, 一言似關, 此一款出於朝報, 以安民情事。 一, 北兵不可不多數徵來, 量處事。 一, 令金應瑞平行長等, 不可不厚結。 若圖淸正, 則許以某事, 然此則未易言也。 一, 諸酋, 皆受天朝官爵, 而淸正獨不及焉, 宜淸正之懷憤肆毒也。 或圖於沈遊擊善處。 右諸條議啓事, 言于備邊司。"


  • 【태백산사고본】 52책 83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125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인사-임면(任免)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 / 농업(農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