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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83권, 선조 29년 12월 2일 갑자 2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순검사 차출이 늦어진 이유를 비변사가 아뢰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삼가 본사 및 병조에 내리신 비망기를 보니 【위에 보인다. 】 황공하고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신들은 모두 무상한 자들로 비변사의 자리에 있으면서 지모는 짧고 건백(建白)은 어긋나 날짜만 보내며 성상의 걱정을 끼쳐드렸으니, 이는 모두 신들의 죄입니다.

다만 모든 일은 계책이 정해지면 뜻이 견고해지고 뜻이 견고해지면 논의가 일치되며 논의가 일치되면 일이 이루어질 것이고, 만약 계책이 정해지지 않으면 심지(心志)가 견고하지 못하고 심지가 견고하지 못하면 논의가 분분하며 논의가 분분하면 일은 이루어짐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도성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도 이와 같은 상태로서 지킬 수 있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점차적으로 수선하여 성의 규모를 대략 완전하게 하되 성곽이 낮은 곳은 증축하고, 포루(砲樓)를 지을 수 있는 곳은 더 지으며 성가퀴를 만들고 참호를 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인심이 조금은 의지하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런 뒤에 성가퀴를 헤아려 군사를 나누어 배치하되 도성 사람만으로 부족하면 외방 군인들을 다수 징집하여 성을 지킬 계책을 세우고, 식량과 기계에 대한 것도 그 안에 조치해 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배치와 설비는 하루 이틀에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하지 않아서도 안 됩니다. 요컨대 상황에 따라 힘을 길러서 차례로 경영해야 할 것입니다. 다행히도 천도(天道)가 순응하는 자를 도와 적세(賊勢)가 조금 수그러져서 우리의 방비 태세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비록 한때 수고는 하더라도 무궁한 장래의 이익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여 조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사세가 위급하게 된다면 신들이 어찌 감히 군부(君父)께 위태한 곳에 억지로 거처하도록 하겠습니까.

적과 대치한 지도 벌써 4년이 지났으니 도성을 수비하는 일은 주야로 쉬지 않고 황급히 해야 할 것이라는 전교는 지당하십니다. 다만 도성을 수축하는 일은 인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계사·갑오년의 일이야 더 말할 것이 없고, 작년 가을부터 백성들이 비로소 생기를 되찾았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성을 수축하자는 논의가 여러 번 나왔다가 도로 그쳤던 것입니다. 지금 적변(賊變)이 다시 급하게 되어 신민들이 모두 성을 수비할 것을 청하니, 이는 참으로 사방에서 다같이 바라고 있는 청이기에 신들이 부득불 순검사를 차출하여 도성의 형편을 관찰하자고 계청하였던 것입니다. 제신들이 이미 순찰하여 조사하였으므로 수선 절목에 관해 각기 소견이 있을 것이니 절목을 마련하여 다시 상청(上請)해야 하는데, 계절이 한창 추워 얼음과 눈이 단단하게 얼어붙어서 인공(人工)을 가하기 어려우므로 형세를 보아가면서 참작하다가 날이 조금 풀리기를 기다려 일을 시작해야 할 듯 하기에 수일을 지체하며 계품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체한 죄는 면할 길이 없습니다. 청컨대 병조와 더불어 중론을 참작하고 신중히 헤아려 수선하는 절차와 군병의 다소, 군량 및 기계에 대하여 모든 사목을 마련한 뒤에 조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다만 사서인(士庶人)을 구별하지 말고 장정을 선발하여 성가퀴를 헤아려 인원을 배치하고 미리 약속하고 영을 내려 시험삼아 한번 훈련하여 본인들로 하여금 자신이 배치받은 성가퀴를 알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서두르지 않을 수 없으니 어찌 바삐 허둥댈 때 비로소 할 것인가. 다시 살펴 시행토록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2책 8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124면
  • 【분류】
    군사(軍事) / 사법-치안(治安) / 외교-왜(倭) / 재정-역(役)

    ○備邊司回啓曰: "伏承下本司及兵曹備忘記, 【見上】 不勝惶恐未安之至。 臣等俱以無狀, 待罪備邊之地, 計慮短淺, 建白齟齬, 淹延度日, 以貽宵旰之憂, 此皆臣等之罪。 但凡事計定則志固, 志固則議同, 議同則事成。 若計策不定則心志不固, 心志不固則論議雜出, 議論雜出則事無由成。 今之言都城可守者, 亦非謂如此而可守也。 必也漸次修繕, 使城制粗完, 雉堞之低淺者增築, 砲樓之可造 者添造, 弓家當設, 垓塹當鑿。 若此則人心粗有依保之意。 然後又計垜分軍, 都城之人不足, 則多徵外方軍人, 以爲守城之計, 而糧餉、器械措置, 亦置其中。 此等排設措備, 不可以時月可辦, 然亦不可謂不可辦而不爲。 要當隨勢畜力, 次第經營。 幸而天道助順, 賊勢少緩, 而我之爲備得成, 則雖有一時之勞, 將爲久遠之利。 不然而措置未成, 事勢危急, 則臣等亦安敢請君父, 强處危地哉? 與賊對壘, 今己四年, 措置都城, 所當汲汲遑遑, 不舍晝夜, 上敎允當。 但都城修築之擧, 當用人力。 癸巳、甲午之事, 不暇論, 自前年秋, 人民始有生意, 而力未遑及, 故修城之議, 累發而還止。 今因賊變又急, 臣民皆以守城爲請, 此固四方同然之請。 臣等不得不啓出巡撿使, 以觀都城形止。 諸臣已爲巡審, 其於修繕節目, 各有所見, 當磨鍊節目, 更爲上請, 而時方寒冱, 氷雪凝固, 人功難施, 似當觀勢商量, 稍待日(曖)〔暖〕 , 始可擧事, 故數日遲回, 未卽啓稟, 稽緩之罪, 在所難逭。 請與兵曹, 參酌衆論, 從長計度, 修繕節次, 軍兵多少, 糧餉器械, 竝爲事目磨鍊後, 處置何如?" 傳曰: "依啓。 但抄發丁壯, 勿論士庶, 計垜分授, 預爲約束, 申令試一習之, 使其人, 知其所授之垜。 此一款則誠不可不速爲, 何可於倉卒始爲之? 更察施行。"


    • 【태백산사고본】 52책 83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124면
    • 【분류】
      군사(軍事) / 사법-치안(治安) / 외교-왜(倭) / 재정-역(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