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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 82권, 선조 29년 11월 20일 임자 2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비변사에서 산성의 수축과 방비에 대해 아뢰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산성을 수축하는 것이 적을 막는 급무이긴 합니다마는 반드시 형세가 제압하게 되어 있는 땅을 얻어서 수축해야 싸우고 지키기에 유익할 것입니다. 경상도 창녕(昌寧) 사람 성천희(成天禧)는 지난 임진란 때에 의병장(義兵將)이 되어 적을 토벌한 공으로 가설정(加設正)이 된 자인데 지금 창녕에서 올라와 말하기를 ‘창녕에는 적이 오는 길목에 화왕 산성(火王山城)이 있는데, 반드시 지켜야 할 요충이고 지세가 험고(險固)하여 요해지가 된다. 그래서 창녕 고을의 온 백성이 다 들어가 지켜 적을 막으려고 이미 일면을 쌓았으나 아직 미처 다 쌓지 못한 곳이 있다. 근처에 분정(分定)하여 여러 고을의 백성이 협력하여 다 쌓고서 여러 고을의 수령(守令)이 같이 들어가 지키면, 적의 군사가 감히 이 길을 거쳐서 북으로 올라오지 못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들 또한 영남(嶺南)의 형세를 보건대 이 성은 과연 반드시 지켜야 할 요충이고 그 고을의 현감(縣監) 이영(李英)은 조금 의지할 만하며 백성의 마음도 이러하니, 적세(賊勢)가 움직이기 전을 틈타서 현풍(玄風)·영산(靈山)·청도(淸道)의 수령으로 하여금 이영과 합동으로 힘을 다해서 쌓고 들어가 굳게 지키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직로(直路)의 관방(關防)이 이루어질 수 있고 내지(內地)의 요충의 형세가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니, 순찰사(巡察使)에게 하유(下諭)하여 수령을 신칙(申勅)해서 반드시 성취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강원도의 관동(關東) 일대는 영남의 영해(寧海)에 통하는데, 적이 만약에 해로를 거쳐서 북으로 본도(本道)로 올라오면 그 사이의 방수(防守)하는 곳은 울진(蔚珍)만이 산에 의지하여 성자(城子)가 있으므로 이곳을 지키지 않아서는 안 될 듯 하니, 이것도 순찰사에게 하유하여 원주 산성(原州山城)과 마찬가지로 조치케 하여 반드시 지킬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1책 82권 54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16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교통(交通) / 과학-지학(地學)

○備邊司啓曰: "山城修築, 禦敵急務, 但必得形勢控制之地而爲之, 然後可以有益於戰守。 有慶尙道 昌寧成天禧, 往在壬辰時, 爲義兵將, 討賊以功, 爲加設正者也。 今自昌寧上來言: 昌寧當賊路, 有火王山城, 乃是要衝必守之地, 而地勢險固, 有百二之勝。 ‘昌寧一邑之民, 皆欲入守禦賊, 已築一面, 而尙有未及盡築之處。 若令近處, 分定列邑之民, 協力畢築, 而列邑守令, 同爲入守, 則賊兵不敢由此路北上’ 云。 臣等亦觀嶺南形勢, 此城果係要衝必守之處。 本邑縣監李英, 稍可倚仗人民之心, 又復如此。 乘賊勢未動之前, 使玄風靈山淸道守令, 協同李英, 極力畢築, 而入保堅守, 則直路之關防可成, 而內地要衝之勢可禦矣。 請下諭于巡察使, 使之申勑守令, 期於成就爲當。 江原道關東一帶, 通嶺南寧海。 賊若由海路, 北上本道, 則其間防守之所, 惟蔚珍, 據山有城子, 似不可不守。 此亦下諭於巡察使, 與原州山城, 一樣措治, 爲必守之計何如?" 傳曰: "依啓。"


  • 【태백산사고본】 51책 82권 54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116면
  • 【분류】
    군사(軍事) / 외교-왜(倭)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교통(交通) / 과학-지학(地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