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에서 알성시의 시행에 대하여 아뢰다
예조(禮曹)가 아뢰기를,
"상께서 ‘알성(謁聖)은 마땅히 날짜를 낮추어 거행해야 한다. 후원(後苑)에 친림해서 한 적은 있었지만, 정시(庭試)로 인하여 취인(取人)한 적은 있지 않았다. 정시(庭試)에서 직부(直赴)하거나 혹은 급분(給分)하는 예가 있기는 하였으나 까닭없이 취인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할 듯하다.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병란 이후로 문교(文敎)를 펼칠 겨를이 없어 식년 과거(式年科擧)까지도 매번 중지되었으므로 선비들이 실망하고 조정에는 인재가 부족하게 되어 물론이 모두 온당하지 못하게 여깁니다. 이번에 취인(取人)한다는 명이 있자, 사방에서 식량을 짊어지고 멀리서 와 도하(都下)에 모여 있는데 형편상 오래 머물러 있기가 어렵습니다. 이때에 그들로 하여금 임금의 덕을 보게 하여 널리 뽑지 않는다면, 진실로 직부(直赴)하고 급분(給分)한다 하더라도 선비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고 또한 사람을 진작시키는 방도에도 결함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알성은 날짜를 늦추지 않을 수 없다 하더라도 많은 선비들이 모여 있는 것을 기회로 대정(大庭)에서 시험보이는 것은 실로 이유없는 행사가 아닙니다. 더구나 정시로 취인한 일은 평소에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근래에도 박동열(朴東說)과 유담(柳潭) 등의 전례가 있으며, 금번 이 무과(武科)도 벌써 초시(初試)를 치루었으니, 이 기회에 취인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신들의 의견도 그러하기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병란 후에 정시(庭試)를 행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중국 조정의 예를 보더라도 식년(式年)의 법만이 있을 뿐인데, 우리 나라는 별시(別試)가 빈번하다. 그리하여 간혹 한 장의 미사 여구로 취인하기도 하여 요행을 바라는 뜻을 갖게 한다면 그 누가 애써 독서하려 들겠는가. 이런 것을 가지고 인재를 진작시켜 이루게 하는 것이라 한다면 아마도 그렇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와 같이 아뢰니, 대략 취하여도 무방하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50책 81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8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사법-법제(法制)
○辛巳/禮曹啓曰: "謁聖當爲退行。 後苑親臨之時有之, 未有因庭試取人之時。 庭試有直赴, 或給分之例, 無端取人, 恐似未穩, 更議施行事傳敎矣。 兵亂以後, 文敎未遑, 至於式年科擧, 每爲停廢, 儒冠缺望, 朝著乏人, 衆情皆以爲未安。 今者取人有命, 四方之人, 贏糧遠來, 群集都下, 勢難久留。 不於此時, 使之觀國之光而廣取之, 則誠恐直赴給分, 無以慰士子之心, 而有欠於作人之方也。 謁聖雖不得不爲退卜, 因多士聚會之日, 試之大庭, 實非無端之擧。 況庭試取人, 不但平時有之, 近亦有朴東說、柳潭等前例, 而今此武科, 已爲初試, 因以取人, 似無未穩。 大臣之意亦然, 敢啓。" 傳曰: "亂後庭試未宜。 援例中朝則只有式年之法, 我國別試頻數。 或取一張儷句, 有僥倖之志, 其誰肯苦心讀書? 謂此作成人才, 或似不然。 然如是啓之, 略取不妨。"
- 【태백산사고본】 50책 81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84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사법-법제(法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