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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78권, 선조 29년 8월 8일 계묘 1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최담령을 친국하다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죄인을 친국(親鞫)했다. 최담령(崔聃齡)은 나이 33세였다. 추국하기를,

"김덕령(金德齡)의 심복으로서 호서(湖西)의 흉악한 역적들과 결탁하여 함께 반역을 모의(謨議)하고 오가며 약조를 맺고서 번갈아 기세를 조성하여 몰래 불궤(不軌)를 도모한 실상이 여러 역적들의 공초에서 드러났다. 역적 도모를 한 절차를 하나하나 바른대로 진술하라."

하니, 공초하기를,

"저는 남원(南原)에 살고 있으며 직책은 수문장(守門將)입니다. 위에서 하늘이 내려다 보고 있는데 신자(臣子)로서 어찌 그와 같은 짓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초야(草野)의 한미한 백성으로 글도 못하고 무예(武藝)도 없습니다. 3∼4년을 김덕령의 진중(陣中)에 따라다니다 보니 우연히 터무니없는 이름을 얻게 되어 사람들이 용건(勇健)하다고 하므로, 병조(兵曹)에서 그 말을 듣고 관직에 차임하려 하여 서울로 불렀습니다. 내려갈 때에 부안(扶安)에 있는 처가(妻家)에 가서 세답(洗踏)한 다음 김덕령의 진중으로 가서 그곳에 죽 있었는데, 7월 10일에 도원수로부터 전령(傳令)이 와 ‘호서의 토적 수천 명이 불의에 갑자기 일어났으니, 같은 마음으로 협력할 수 있는 믿을 만한 기병 수십 백 명을 거느리고 밤낮없이 달려오라…….’ 하였습니다. 장수가 13일에 진주(晉州)·안강(安康)에 나갔다가 미처 운봉(雲峰)에 닿기 전에 다시 전령이 바뀌어 오기를 ‘역적의 괴수를 이미 베었다.’ 했기에, 진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습니다. 저의 군기(軍器)와 군량을 모두 도로 진중(陣中)에 보내고 처자를 만나기 위해 부안에 갔었는데, 현감 및 순찰사의 군관이 부안현에 잡아 가두었고, 의금부 도사에게 끌려 올라왔습니다.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알고 있다.’320) 고 옛사람이 말하였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은휘(隱諱)할 수 있겠습니까? 역적들의 무리가 터무니 없는 말을 퍼뜨린 것은 제가 최영(崔瑩)의 자손으로 어려서부터 용건(勇健)하다는 이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찌 이와 같은 민망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푸른 하늘이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으니 저는 이런 일을 할 리가 만무합니다."

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역적들의 공초에 많이 나온 자가 김덕령이어서 마땅히 추문(推問)해야 하겠지만, 여러 죄인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처결하는 것이 가하겠습니다."

하고, 윤두수(尹斗壽)가 아뢰기를,

"이 사람은 역적 박(朴)의 입에서만 나왔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필시 이는 최담령일 것이다."

하였다. 김응남(金應南)이 아뢰기를,

"우선 여러 죄인들에게 증거를 국문해 본 다음에 처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사람의 일은 한현(韓絢)이나 이몽학(李夢鶴)이 공모한 것과 같은 유는 아닙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일은 그렇게 말할 수가 없다. 비록 마음을 같이 했더라도 숨기고 말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것만 가지고 바로 마음을 같이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하였다. 정탁(鄭琢)이 아뢰기를,

"이 사람과 김덕령은 그대로 가두어 뒀다가 뒷날을 기다려 추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고, 최황(崔滉)이 아뢰기를,

"최담령은 역적들의 공초에 많이 나오지 않았으니, 최강(崔鋼)이 올라온 다음에 아울러 추문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사람은 사간(事干)이다. 김덕령의 일을 알아내자면 마땅히 먼저 이 사람을 추국해야 한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호남(湖南)과 결탁했다고 한 것은 반드시 그런 사람이 있어서일 것이다."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김덕령송유진(宋儒眞) 때에 자주 역적들의 공초에 나왔었으나 그때는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한현(韓絢)의 초사 속에 나왔으니, 이는 의심할 만한 일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대로 가두어 두는 일은 함께 의논해서 하라."

하니, 유성룡이 아뢰기를,

"만일 엄하게 형신(刑訊)을 가한다면 먼저 죽어버릴 염려가 있습니다. 머물러 두고 기다렸다가 추문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우선은 형벌을 정지하고 기다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속히 국문해야 할 듯도 싶다. 그러나 만일 잡아 오는 사람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려고 한다면 우선 서서히 하도록 하라."

하고, 죄인을 하옥(下獄)하도록 명하였다. 미시(未時)에 국문을 파했다.


  • 【태백산사고본】 48책 7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

  • [註 320]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그대가 알고 있다.’ : 후한 시대의 양진(楊震)이 형주 자사(荊州刺史)로 있을 때 왕밀(王密)이 밤에 찾아와 금 10근을 내놓으며 아무도 알 사람이 없으니 받아달라고 하였는데, 이때 양진이 한 말. 어떤 비밀도 언젠가는 알려짐을 뜻한 것. 《후한서(後漢書)》 54, 양진 열전(楊震列傳).

○癸卯/上御別殿, 親鞫罪人。 崔聃齡年三十三。 推曰: "以金德齡腹心之人, 締結湖西兇賊, 相通謀議, 往來結約, 迭爲形勢, 潛圖不軌之狀, 現出於諸賊之招。 逆謀節次, 一一直招。" 供曰: "矣身居南原, 職名守門將。 上有蒼天, 爲臣子者, 豈有如此之理乎? 草野寒生, 不文不武, 三四年德齡陣中隨行, 偶得虛名, 人以爲勇健, 兵曹欲差聽用官, 召致京中。 下去時, 往扶安妻家, 洗踏後, 往德齡陣中, 常在其處。 七月初十日, 元帥傳令曰: ‘湖西土賊數千名, 不意卒發, 將可領同心協力, 可信數十騎, 罔晝夜進來云云。’ 將帥十三日出晋州安康, 未及雲峯, 改傳令來到, 賊魁已斬云云, 故還于陣所。 矣身軍器、軍糧, 盡爲還送于陣中, 而見妻子, 次往扶安, 縣監及巡察使軍官, 捉囚于扶安縣, 逢禁府都事, 被拿上來。 天知、神知, 我知、子知, 乃古語也。 矣身安敢有隱? 賊輩倡說虛言, 以矣身爲崔瑩子孫, 自少有勇健之名故也。 矣身豈有如此悶望之事乎? 蒼天在上, 矣身萬無此理云云。" 柳成龍曰: "多出於賊招者, 金德齡也。 所當推問, 而當竢諸罪人之來, 決之可矣。" 尹斗壽曰: "此人, 只出於朴賊之口。" 上曰: "必是此崔聃齡也。" 金應南曰: "姑待諸罪人憑問後, 處之如何? 此人之事, 非如韓絢夢鶴同謀之類也。" 上曰: "此事不可謂其然也。 雖有同心者, 而隱匿不言, 則不可以此, 而遽謂之不同心也。" 鄭琢曰: "此人及金德齡仍囚, 以待後日, 推之如何?" 崔滉曰: "崔聃齡, 不多出於賊招。 崔鋼上來後, 竝爲推問。" 上曰: "此人, 事干也。 如欲知德齡之事, 則當先推此人可矣。" 上曰: "締結湖南云者, 必有其人矣。" 成龍曰: "金德齡宋儒眞時, 頻發於賊招, 其時人不疑之, 而今者韓絢書中, 又爲現出, 此則似爲可疑。" 上曰: "仍囚事, 僉議爲之。" 成龍曰: "若嚴加刑訊, 則徑死可慮。 若有留待推問之事, 姑爲停刑, 以待之可矣。" 上曰: "似當速爲鞫問, 而若欲待捉來之人, 則姑徐爲之。" 命下罪人, 未時罷鞫。


  • 【태백산사고본】 48책 78권 8장 B면【국편영인본】 23책 41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기(軍器) / 변란-정변(政變)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