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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실록78권, 선조 29년 8월 4일 기해 3번째기사 1596년 명 만력(萬曆) 24년

죄인 김덕령을 친국하다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가 죄인 김덕령(金德齡)을 친국(親鞫)했다. 상이 이르기를,

"금군(禁軍)과 위사(衛士)들에게 밥을 먹이도록 하라."

하였다. 김덕령은 나이 30이었다. 추국하기를,

"역적 한현(韓絢)·이몽학(李夢鶴) 등과 결탁하여 몰래 통하여 모의(謀議)하여 성세(聲勢)를 만들고, 국가가 위태하고 어지러운 때를 당해 불궤(不軌)를 도모한 사실이 모든 역적들의 공초에서 셀 수 없이 나왔다. 한현의 공초 내에는 ‘장수는 김덕령이다.’ 했고, 또 ‘이몽학박승립(朴承立)김덕령을 찾아가 만나보고 함께 거병(擧兵)하는 일을 모의했다.’ 하였으며, 유규(劉赳)의 공초 내에는 ‘전라도김 장군이 있는데 장군의 명칭은 익호 장군(翼虎將軍)이다.’ 했고, 이업(李業)의 공초 내에는 ‘장후재(張後載)김덕령에게 왕래했는데, 덕령이 「사세를 보아가며 하라. 」고 했다.’ 하였다.

전후로 역적들의 공초가 의논한 것도 아닌데 말이 똑같았으니, 흉악한 음모와 비밀한 계책을 서로 통하면서 함께 반역을 한 정상이 밝은 하늘아래 훤히 드러나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짓을 꾸민 내력을 사실대로 정직하게 진술하라."

하니, 공초하기를,

"비록 도적들의 한 말이 그와 같을지라도 공모했다면 반드시 오고 간 자취가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해가 훤히 비추는 아래에서 제가 군부(君父)에게 진달(陳達)하는 말이니, 옳으면 옳다 하고 그르면 그르다 할 것이니, 어찌 감히 조금이라도 숨길 수 있겠습니까. 국가를 위해 3∼4년 동안이나 친척들과 이별하고 분묘(墳墓)도 버려 두고서 변방에 나가 고생하며 방수(防戌)했었으니, 만일 국가에서 알게 되었다면 반드시 큰 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터무니없는 명성이 있었기 때문에 저 역적의 무리들이 국가에서 저를 쓰지 않도록 하게 하려고 시기하여 모함하는 흉계를 부린 것입니다. 제가 우러러 받드는 군부의 앞에서 분변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발명(發明)하겠습니까?

7월 14일 도원수의 전령(傳令) 내에 ‘호서(湖西)의 토적(土賊) 수천여 명이 갑자기 발동했으니 섬멸할 태세를 갖춰 수십 기(騎)를 거느리고 오라.’ 했기에, 저는 이 전령을 듣고서 스스로 여기기를 ‘나의 칼을 시험할 기회가 왔다.’ 하고 즉시 운봉(雲峰)으로 달려갔다가 역적들이 이미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도로 돌아왔습니다. 14일에 전령을 듣고서 15일에 단계(丹溪)에서 유숙했으며 16일에 함양(咸陽)으로 갔다가 17일에 미처 운봉에 닿기 전에 도원수가 다시 전령을 고쳐 ‘역적들이 이미 무너져 흩어졌다.’고 했기에, 저의 생각에 도원수의 전령이 혹은 거짓인가 여겨져 다시 자세히 보니 곧 도원수가 한 것이었으므로 진소(陣所)로 돌아왔습니다. 이밖에는 진달할 일이 없습니다.

만일 공모하느라 서간(書簡)이 오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단지 그때만이 아니라 반드시 전부터 더러는 간찰(簡札) 같은 것으로 서로 통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시기하는 마음을 가진 역적들이 저를 모함하려고 하였는데 무슨 말인들 못하였겠습니까. 어찌 그들의 말만 듣고 그렇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저로서는 다시 진달할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김덕령을 따로 가두어 두었는가?"

하니, 신점(申點)이 아뢰기를,

"사가(私家) 한 칸에 가두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별처(別處)에 가두어 두고 병조로 하여금 실한 군사를 더 배정하여 수직하게 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이 아뢰기를,

"김덕령은 역적들의 공초에 나왔으니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마는 여러 역적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린 다음에 의논하여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옛적부터 역적을 다스리는 일은 반드시 문서를 기다려 본 다음에야 다스렸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역적들의 공초에 나왔는데 어찌 의심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상황이 이러하니 반드시 살게 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차차 따져 물어 실정을 얻어내야 합니다."

하고, 윤두수(尹斗壽)는 아뢰기를,

"이와 같이 큰 옥사는 비록 뒷날까지 기다리더라도 반드시 끝까지 알아내기 어려울 것이니 우선 오늘 문초해야 합니다."

하고, 이기(李墍)315)유영경(柳永慶)316) 이 아뢰기를,

"이는 성상께서 재량하여 처리하시기에 달렸습니다마는, 옥사의 사체로 말하건대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면 우선 후일을 기다렸다 하는 것이 무방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최담령(崔聃齡)을 신속히 잡아와야 되니 즉각 선전관(宣傳官)을 내보내라."

하고, 또 이르기를,

"김덕령은 사람을 죽인 것이 많은데 그 죄로도 죽어야 한다. 이빈(李賓)이 그를 절제(節制)하는 장수였는데도 또한 죽이려고 했었다니 그 죄 역시 크다."

하고, 또 이르기를,

"김덕령을 수직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긴밀하게 하라. 자진(自盡)하는 일이 있게 될까 염려된다."

하고, 또 이르기를,

"김덕령을 내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신시(申時)에 국문을 파했다.


  • 【태백산사고본】 48책 78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315]
    이기(李墍) : 대사간이다.
  • [註 316]
    유영경(柳永慶) : 대사헌이다.

○上御別殿, 親鞫罪人金德齡。 上曰: "禁軍、衛士等, 命之饋飯。" 金德齡年三十。 推曰: "締結逆賊韓絢李夢鶴等, 潛通謀議, 作爲聲勢, 當國家危亂之際, 圖爲不軌之狀, 發於諸賊之招, 不可勝數。 韓絢招內, ‘將帥則金德齡’ 云云, 又云: ‘李夢鶴朴承立, 往見德齡, 與議擧兵之事’ 云云。 劉赳招內, ‘有全羅道 金將軍, 將軍之名, 則翼虎將軍’ 云云。 李業招內, ‘張後載往來金德齡處, 德齡云: 「觀勢爲之」’ 云云。 前後賊招, 不謀同辭, 兇謀秘計, 無不相通, 同爲反逆, 情狀昭著, 天日之下, 不可隱諱, 造作節次, 從實直招。" 供曰: "盜賊所言雖如是, 必有通謀往復形迹。 天日之下, 矣身爲君父所陳之言, 是則是, 非則非云。 何敢一毫隱諱乎? 爲國家三四年, 離親戚棄墳墓, 苦戍邊方。 國家若知之, 必施大賞。 矣身有虛名之故, 彼賊輩欲使國家不用矣身, 因爲猜忌陷害之計也。 矣身仰戴君父, 不爲分卞, 則何處發明? 七月十四日都元帥傳令內, 湖西土賊數千餘名猝發, 勦滅次, 數十騎率領來到。 矣身聞此傳令, 自以爲吾劍得試之秋也, 卽馳到雲峯, 聞賊已就捕而還矣。 十四日聞傳令, 十五日宿丹溪, 十六日到咸陽, 十七日未到雲峯, 都元帥改傳令, 賊已潰散云。 矣身念都元帥傳令或是虛事, 更爲詳見, 則乃是元帥所爲也。 矣身還于陣所。 此外無所達之事。 若有通謀、通簡之事, 則非但其時, 必有自前相通, 或簡札之類也。 懷猜之賊, 欲陷矣身, 何說不可爲乎? 豈可徒以其言而爲然哉? 矣身更無所達之事云云。"上曰: "金德齡別爲囚置乎?" 申點曰: "囚之於私家一間矣。" 上曰: "前者不言乎? 別處囚之可矣。 且令兵曹, 加定實軍, 守直可矣。" 柳成龍曰: "德齡出於賊招, 無疑矣, 待衆賊之來, 然後議處。" 上曰: "自古治逆之事, 不必待文書, 然後治之。 出於諸賊之招, 豈有疑哉?" 成龍曰: "如此而必無生理, 但徐當究問得情。" 尹斗壽曰: "如此大獄, 雖待後日, 必難究問。 姑於今日, 問之可矣。" 李墍 【大司諫。】 柳永慶 【大司憲。】 啓曰: "此在自上裁處, 而以獄體言之, 仔細欲知, 則姑待後〔日〕 爲之無妨。" 上曰: "崔聃齡, 速爲拿來, 可矣。 卽刻發送宣傳官。" 上曰: "德齡所殺人者多, 其罪亦可死矣。 至於李蔩, 爲其節制將帥, 而亦欲殺之云云, 其罪亦大矣。" 上曰: "德齡守直事不輕, 堅密爲之。 恐有自盡之患。" 上曰: "德齡命出。" 申時罷鞫。


  • 【태백산사고본】 48책 78권 5장 A면【국편영인본】 23책 39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